바다 속 깊은 화석들 속에서 잠자는시커먼 거인이일어나 주위를 바라볼 때텅 빈 창공 속의 별들은 추워하며서로 팔꿈치를 맞대고 몸을 녹이려 나오고십만 사자(死者)들의 죽은 눈망울들이강물 속에 떨어져물위에 뜬다프랑스 브르타뉴 카르나크는 시인 기유빅이 태어난 고향마을이다. 시의 첫 머리에 나온 것처럼 선돌을 비롯한 선사시대의 거석유물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하다. 고대의 시간이 흐르는 공간에서 외롭게 유년시절을 보낸 시인은 이런 광대한 시공(時空)을 시에 풀어내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19-06-02
동백나무들은 장애수(障碍樹)였다암병동 환자처럼 하나같이 괴롭고 불편한 육신들성긴 가지끼리 깍지를 껴서늘한 그늘 드리우고임종 직전 꾸역꾸역 환자가 토해내던 피뭉클뭉클 붉게 피우는 꽃숭어리들(…)아름다운 사랑은 모두 속붉은 병이었다시인은 해남 백련사의 동백꽃을 보며 생의 굴곡진 아픔과 사랑의 고통을 그려내고 있다. 굽은 동백나무를 ‘장애수’라고 하고 서늘한 그늘이나 동백의 붉은 꽃숭어리들을 환자가 토해내는 피로 형상화하면서 우리의 한 생도 사랑도 고통스럽고, 괴로움의 나무에 피워 올리는 붉은 동백꽃 같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흐르고 있음을 본다. 시인
2019-05-30
나에게 세 개의 시계가 있다하나는 리마트 강 수면에 어른거리는스위스 취리히 성모 사원의 시계다(빼기 일곱이다)다른 하나는 미국 록키 산맥 고원지대 도시덴버의 한 대학 실험실 인내의 시계다(날짜 변경선 너머, 빼기 넷이다)나머지는 부산 바닷가에서언제나 기다리는 기도의 시계다노시인의 참 재미난 시적 발상과 구성을 발견한다. 세 개의 시계 중 첫 번째 두 번째 시계는 외국생활을 하는 자녀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보는 시계이고 마지막 시계는 고국에서 자녀들이 유학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하기를 기도하는 시인 부부의 기다림의 시계다. 그리움과 기다림, 사랑이 스민 잔잔한 감동을 거느린 작품이다. 시인
2019-05-29
땔감으로 부려 놓은 폐자재 서까래에뒤틀린 대못 하나 불편하게 박혀 있다녹슬은 시간에 기대어항변도 변명도 않고대들보 깊숙이 박혀 안착하지 못한 죄로땔감에 휩쓸리어 노숙으로 뒤척이다수습할 시신도 없이잿불 속에 파묻힐까꼿꼿함 잃은 순간 못은 못이 아니라서뒤집기 한판은커녕 명함도 못 내밀고내쳐져 한테로 내몰린무의탁의 저 은유못은 사물과 사물을 붙박아 두는 매체로 사용되지만 이 시에서 무의탁 못이라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시인의 시선과 인식은 기존의 인식의 틀을 무너뜨리고 있다. 폐자재 서까래에 불편하게 박혀 있던 못은 그런 붙박이의 의미를 상실케 되며 우리네 한 생이 붙박힌 삶이 아니라 떠도는 삶이라는 것을 환기시켜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5-28
해 저문 날 낯선 마을을 지나다가우는 아이에게 길을 묻다이제 남이 된 여자와서로 메마른 인사….그 여자 허리의 흉터나를 보고 싶어 뛰어나올까서귀포 앞 바다에 비가 온다껴안아도 껴안아도아득한 아내의 허리날이 들어 붓 한 자루로 수평선을 긋다아득히 흘러가버린 시간을 읽고 있는 노시인을 본다. 지난 세월의 아름다운 인연도 사랑도 다 흘러가버린 시간의 허허로운 바다를 바라보며 허망하고 덧없는 시간들을 가만히 불러보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5-27
데린쿠유, 카파도키아의슬픈 구멍 속으로멀고 먼 시간 물어물어 내려갔더니이백오십 년 동안의 묵언(默言)이시간의 탯줄이어서구멍 속의 작은 구멍들뻥 뚫린, 눈의 흔적으로 나를 쳐다보는데멀리서 보니 뽀얀 눈물이고더 멀리서 보니 아예 해탈인봉긋한 무덤 속한 자루 자궁이었다시인이 말하는 오래된 미래는 무엇일까. 과거와 현재, 끝없이 반복된 시간의 존립과 파괴를 염두에 둔 의미깊은 개념이다. 시인은 무한하게 이어지는 시간이 세상과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말하며 그런 시간이 진열되어 있는 박물관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시인
2019-05-26
간밤을 설치게 했던 하우스재배 사과 배 포도나무 공포감도 위기감도 자꾸만 무뎌지는 수입 농산품, 선대(先代) 긴 한숨 같은 들바람이 불어올 때 경운기 코를 잡고 힘껏 시동을 건다 눈부신 쟁깃날로 검은 땅 독초 깊이깊이 갈아엎어 남아있어 죄가 된 아픔도 설움도 갈아엎어 갈아엎어지친 넋켜켜이 일어서는봉답마다 흙의 파도여새벽 둔덕길에 찔레향이 하얗게 빛나지만 시골의 농사는 깊은 어둠에 쌓여있다. 들판에 설치된 비닐 하우스 속에는 농민들의 피땀이 배인 우리 농산물이 자라지만 갖가지 수입농산물이 물밀듯이 들어와 우리 농촌을 피폐하게 만드는 현실을 깊이 개탄하는 시인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5-23
여름 한낮비름잎에꽂힌 땡볕이이웃 마을돌담 위연시로 익다한쪽 볼서리에 묻고깊은 잠 자다눈 오는 어느 날깨어나제상 아래심지 머금은종발로 빛나다천상 시인으로 살다간 눈물의 시인 박용래의 그리움의 시를 다시 읽는다. 여름 땡볕을 견디고 동지섣달 눈 오는 차가운 밤에 더욱 새빨갛게 빛나던 연시, 그 맛깔스럽고 탐스러운 연시가 익던 고향마을도 고향사람들도 허망하고 덧없는 세월에 얹혀 가버리고 제상 아래가 보인다고 말하는 시인의 젖은 눈매가 그려지는 아침이다. 시인
2019-05-22
좋겠지 오늘처럼 가을비 으슬대는 저녁답 아무리 더듬어도 달아오르지 않는 맹숭맹숭한 추억 그 싸늘한 손끝을 거머쥐고 가물대는 기억을 등불 삼아 어디 한번 찾아가 보는 것도 망각 그 불멸의 자궁 속에 누가 볼세라 은현잉크로 조그맣게 새겨져 있을 몇몇 여자 이름들 귓불을 어지럽히던 나직한 한숨들 벙어리 장갑 안에서 꼼지락대던 손가락들시인에게 망각은 끝이 아니라 기억을 생성시키거나 과거의 시간 공간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서 그 때의 행위와 관계와 사람들에 대한 것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놓는 장치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망각을 ‘불멸의 자궁’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5-21
저기 아득한 벼랑에 별 하나 떠 있네 온몸을 떨고 있는 한 떨기 젖은 꽃 아무도 못 보게 밤에만 피어있네 무성한 여름 꿈은 은하수에 벗어두고 외로운 점 하나 가슴속에 찍었네 마지막 불씨 하나 절벽 위에 심었네 한 생애 벼랑에서 그렇게 흔들리지만 불길에도 타지 않고 물길에도 젖지 않고 그 길은 가슴 속 칼날 위에 있어 겨울에도 지지 않게 빛으로 피웠네 재가 되어 다시 타는 눈보다 하얀 꽃 아무도 못 꺾게 벼랑 위에 피웠네오래전 우리 곁을 떠난 지역의 서정시인 김정구형의 따스한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아득한 벼랑에 별빛 받아 밤에만 피어나고 칼바람 부는 겨울에도 지지 않는 외로운 벼랑꽃을 얘기하는 시인은 벼랑꽃처럼 외롭게 살다가 갔다. 우리의 한 생이 벼랑꽃처럼 피었다가 지는 것은 아닐까. 시인
2019-05-20
아내가 숲길에서 품고 온단단하게 안으로 걸어 잠그고 둥글게 웅크린그래서 단단한 새알 같은 열매커다란 접시위에 놓았더니제법 향을 내어 거실 가구들이 킁킁댄다잊혀 질만큼 해가 드나들었던가 말았던가바람이 드나들었던가 말았던가아이의 손끝에서 그만 퍽 바스라졌다아니 그건 피어났다수천 개의 날개를 단 머리들이 접시에 수북 붕붕대었다그걸 아이는 폭탄이라고 했다그걸 아내는 꽃이라고 했다저렇게 수많은 걸 한 몸이라 생각하다니꽃잎들을 다시 숲으로 가져가서 흩어주어야겠다하나하나의 몸에서 수많은 폭발이 일어나겠지무수히 많은 길을 내는 생명의 꽃무리조현명 시인의 시적 관심이나 시선은 근사하고 가치로운 데만 머무르지 않고 이 시에서처럼 작고 보잘것 없는 풀꽃 하나, 낡고 찌그러진 열매 한 톨에 집중되곤 한다. 소외되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에 다가가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고 뜨겁게 호명함으로써 숨결 고운 생명체로 일으켜 세운다. 마르고 작은 젓나무 열매에 생명을 불어넣고 아름다운 목숨으로 되살려놓는 시인의 따스한 눈길, 마음길을 본다. 시인
2019-05-19
먼 길 가는 모양이다동네 어귀 느티나무 그늘 아래어떤 부부가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다조금은 떨어진 선 두 사람은목도리가 같아서인지 한눈에 부부 같다지아비가 한 손을 올린 채 앞으로 나와 있고지어미는 조금 뒤에서 웃고 있다시골버스의 유일한 승객인 나는그 부부를 발견하고 내심 반가웠지만운전기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나치는 게 아닌가두 사람이 늘 거기 서 있으면서도한 번도 버스를 탄 적이 없다는 듯이아아, 버스로는 이를 수 없는 먼 길 가는 모양이다그 부부는 이미 오랜 길을 걸어 저기 당도했을 것이고잠시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그런데 정갈하게 풀을 먹인 광목 목도리는누가 둘러주고 간 것일까목도리에 땀을 닦고 있을 그들을 뒤돌아보니미륵 한 쌍이 석양 속으로 사라진다시인이 시골 마을 앞에서 흰광목 목도리를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노부부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인생을 얘기하고 있다. 노부부가 기다린 것은 버스가 아닐지 모른다. 다만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그저 하염없이 지나가버리는 시간일 것이다. 버스 떠나고 그들은 얼마남지 않은 인생이라는 길가에서 다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
2019-05-16
피리 소리처럼 바람에 흩날리는늦가을 꽃잎 되어 날고 싶었지섣달 스무여드레 달을끌어당기며 훨훨 도솔천 날고 싶었지불꽃 일 듯 깨어나는 상념의 끝별빛 따라나서면자꾸만 헛디디는 나무 꼭대기 위의 길은빛 날개 아프게 꿈꾸며잠을 떠메고 떠돌고 있는 저 기다림고샅길 너머 솟대들은 저마다어둠을 깊이 물고 날아오른다또 날아오르는 꿈속의저 나무기러기들고샅길 솟대 끝의 나무기러기들은 묶여 있지만 끝없이 비상(飛上)을 꿈꾸고 있다는 시인의 인식을 읽는다. 늦가을 꽃잎이 되어, 피리소리처럼 도솔천을 훨훨 날고 싶은 것이다. 시인은 나무기러기의 열망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욕망의 한 자락을 펴보이고 있다. 현실의 굴레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꿈의 세계로, 아니 꿈의 세계 저편의 세계로의 비상을 염원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
2019-05-15
경계가 허물어질 때가 딱 한번 있었다유리창처럼 맑은 시간의 눈물이 한 방울 맺혔고시간을 굴절시켜시간의 이편과 저편을 구분하지 못해시스템들이 서로 당황해 하는 이상한 경험들이 발생했다자아시스템이 마음 속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빛을 주체하지 못했을 때자본시스템이 제도 속에서 스스로 발생한 어둠을 억누르지 못했을 때너와 내가 하나라는 사랑의 경험이폭풍 같은 기쁨을 불러왔을 때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자아시스템’과 ‘자본시스템’의 대립 충돌로 인식하는 시인은 이것을 해소하고 소통하는 매체로 ‘사랑’의 순간을 규정하고 있음을 본다. 기계 문명의 시대에서 어쩔 수 없이 부닥치는 것들이지만 이것의 극복을 위해서는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
2019-05-14
날로 기우듬해 가는 마을회관 옆청솔 한 그루 꼿꼿이 서 있다한때는 앰프방송 하나로집집의 생쥐까지 깨우던 회관 옆,그 둥치의 터지고 갈라진 아픔으로푸른 눈 더욱 못 감는다그 회관 들창 거덜내는 댓바람 때마다청솔은 또 한바탕 노엽게 운다거기 술만 취하면 앰프 켜고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이장과 함께생산도 새마을도 다 끊긴 궁벽, 그러나저기 난장 난 비닐하우스를 일으키다그 청솔 바라보는 몇몇들 보아라그때마다, 삭바람마저 빗질하여서러움조차 잘 걸러내어푸른 숨결을 풀어내는 청솔 보아라나는 희망의 노예는 아니거니와까막까치 얼어죽는 이 아침에도저 동녘에선 꼭두서니빛 타오른다마을회관 옆 청솔 한 그루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죄다 보아온 어른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겨울 삭풍을 견디며 당당히 서서 푸른 솔잎을 청청히 뻗친 소나무를 보면서 시인은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엄동을 견디며 서 있는 청솔을, 그 푸른 숨결을 본받으려는 시인 정신을 본다. 시인
2019-05-13
평생 한 번도바람에 거슬러 본 적 없었다발목이 흙에 붙잡혀한 발자국도 옮겨보지 못했다눈이 낮아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했다발바닥 밑 세상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러나 내 마음속에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었으므로참, 모질게도, 나는 살았다시인은 자신의 한 생을 풀에 비유하며 성찰하고 있다. 현실의 압력에 저항하지도 않았고 생활에 얽매여 어떤 변도 지향하지도 결행해보지도 않은 전형적인 소시민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온 것은 마음속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그 움직임이 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시인
2019-05-12
새파아란 얼음 소리화석 속의 침묵을간간이 깨지숲 속에서 비를 피하던눈먼 바위들 가슴 속에파아란 금이 간다북극이 갈라지고남극이 또 갈라지고평생을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몸 던져 싸우다 가신 문익환 목사님의 시집에 실린 시의 한 부분이다. 번개소리는 공감각적 표현으로 화석 속의 침묵을 깨는 얼음소리일 것이다, 가장 견고한 침묵을 깨는 소리는 엄청난 소리다. 그 소리는 동토(凍土)와 같이 오랜 독재의 세상을 깨고 진정한 민주의 세상을 불러오는 열망의 소리이며 외침일 것이다. 시인
2019-05-09
그림 속의 남자는 항아리 위에 부엉이와 까마귀와 미루나무를 그려 넣고 있다 여자가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백사장에 누워 당근 주스를 마시는 사이 그림 속 남자는 항아리를 들고 거대한 아궁이 안으로 들어간다 아궁이 안에는 비밀통로가 있다 남자는 비밀통로를 따라 뚜벅뚜벅 걸어간다 박쥐들이 붉은 눈을 깜박거리며 아궁이 밖으로 빠져나가 어두워진 남자의 마당을 날아다닌다 그림 속에서 달이 뜨고 별똥별이 떨어지고 개들이 컹컹 짖는다 당근 주스를 다 마신 여자는 기지개를 켜고 고무줄로 머리를 묶은 후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려다 달라진 자신의 그림에 흠칫 놀란다해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여자와 항아리 위에 그림을 그려 넣고 있는 남자는 시인이 방안에 누워 읽고 있는 소설책 속의 인물들이다. 인간이 근대적 위계질서랄까 권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욕망을 지켜주려는 시인의 의식이 잘 나타난 시다. 시인
2019-05-08
어머님과 호박국이 그리운 날이면버릇처럼 한 선배님을 찾아가곤 했었지기름기 없고 푸석한 내 몰골이그 집의 유리창에 어른대곤 했는데예쁘지 못한 나는이쁘게 단장된 그분의 방에 앉아거실과 부엌과 이층과 대문 쪽으로분주하게 오가는 그분의 옆얼굴을 훔쳐보거나가끔 복도에 낭낭하게 울리는그 가족들의 윤기 흐르는 웃음 소리유독 굳건한 혈연으로 뭉쳐진 듯한그 가족들의 아름다움에 밀려초라하게 풀이 죽곤 했는데그분이 배려해 준영양분 가득한 밥상을 대하면서속으로 가만가만 젖곤 했는데파출부도 돌아간 후에그 집의 대문을 쾅, 닫고 언덕을 내려올 땐이유 없이 쏟아지던 눈물혼자서 건넌 융융한 삼십대오래 전 우리 곁을 떠난 시인이 30대에 쓴 쓸쓸함이 묻어나는 시를 읽는다. 제목처럼 객지는 외롭고 쓸쓸하고 뭔가 위축되고 낯설어 불편한 곳이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 삶이라는 쓸쓸한 객지를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시인
2019-05-07
허리 반쯤 꼬부라진 백발 할머니와초등학교 6학년짜리 머리 까만 손자가감 따던 작대기를 내던지자핏빛으로 타던 황혼이 꺼진다잎사기들 모두 잃어버린지신(地神)의 머리털 같은 감나무의 검은잔가지들 끝에 까치밥 하나은색 공단 깔아놓은 하늘에 뜬 또 하나의해작가 한승원은 할머니와 손자가 감을 따는 풍경을 따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무서운 속도와 날 선 비정한 현대 문명에 비해 푸근하고 둥근 자연 속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감을 다 따지 않고 까치밥으로 남겨놓는 마음의 넓이와 깊이가 느껴지는 목가적인 시편이다. 시인
201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