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지역미술계의 새바람 ‘대안공간’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최근 대구 수성아트피아 갤러리에서는 2010년을 전후해 대구·경북에서 결성된 ‘B커뮤니케이션’과 ‘보물섬’이란 대안공간의 소속작가들 작품과 그 동안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전이 함께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동시대 지역미술의 방향성과 젊은 미술그룹이 갖는 시대적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지역 신진작가의 그룹 활동에 대한 방향성 모색’이라는 세미나도 개최되어 10년간 지속해 온 두 단체의 활동내역과 성과, 지역미술계에 끼친 영향 등을 되짚어 보는 토론의 장도 가졌다.1990년대 국내 대안공간이 미술시장과 전시문화의 환경 변화에 의해 자생적으로 개관되었다면, B커뮤니케이션과 보물섬은 2010년 전후 전시기획과 아트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큐레이터의 기획부터 활동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창작활동과 전시기획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에는 제한된 사회적 여건과 개인중심의 작가 창작환경으로 턱없이 부족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기획자의 열정과 용기만으로는 다변화되어 가는 미술문화와 작가들의 요구를 수행해 나가기에 더없이 많은 한계를 스스로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번 기회를 빌려 그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기획자 정세용은 2009년 ‘별의 별 시장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방천시장과 인연을 맞은 후 B커뮤니케이션이라는 작업실을 마련해 다채로운 창작활동과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하며 대안공간 운영을 시작했다. 2013년 ‘RUN+8展’에 이은 2015년부터의 ‘Bcom Artist Run Space展’은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발표의 장이 되었다. 지금은 동성시장 프로젝트와, 방천예가 운영까지 믿으며 대안공간의 발전가능성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대구와 인근 지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을 중심으로,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전시활동을 위해 2010년 결성된 ‘썬데이페이퍼’그룹은 전시 기획자 최성규에 의해 운영되어오다 2016년 해체되었다. 그리고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을 경산시장 인근에 새롭게 마련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나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국내 대안공간의 역사는 짧지만 대부분 상업화랑에 반발해 비영리 전시공간을 표방하며 활동 중이다. 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체 기타 단체 등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특징으로 인해 나날이 인기는 높아지는 추세이다. 이러한 대안공간들의 운영체제는 재능이 있는 신진작가들을 발굴·육성하고 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이 국제적 현대미술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데 일조하려는 자발적인 미술운동이기도 하다. 이들 두 단체가 한국미술의 흐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설립됐거나 정치적 배경 속에서 결성된 그룹이 아님을 익히 알고 있기에 그들의 활동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그리고 두 단체의 기획전과 이를 통해 배출된 작가들의 작품성향, 창작활동 영역은 지난 10년간 지역미술의 발전에 절대적 공헌을 한 점 역시 지극히 고무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2019-10-29

공부를 즐겁게 하려면?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學而時習之(학이시습지) 不亦說乎(불역열호)의 공자 말씀처럼 배우고 익히면 즐거워야 하지만 실제로는 공부가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 공부가 즐겁지 않을까? 공부하는 내용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삶과 연관 있는 공부는 어떤 공부일까? 미국 위스콘신 주의 메디슨 시(市) 고등학교에서 시의 중심지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공연장, 가게, 공원, 관공서, 대학 등이 자리 잡은 작은 도시를 재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디자인 대상인 시 중심지가 학습자에게 친숙한 장소였으며 학생들 간에 도시의 활성화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메디슨 시의 역사, 지리, 경제 뿐 아니라 물리나 건축학 같은 지식이 필요했다. 이처럼 지식 습득 자체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학습자가 자신의 삶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학습자에게 의미 있는 공부가 될 수 있다. 초등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글을 습득하도록 그림 그리기를 가장한 철자 쓰기, 놀이를 가장한 수 세기 등의 학습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하지만 아이들은 놀이를 가장한 공부라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아이들이 무의미하게 철자를 따라 쓰거나 숫자를 읽기보다는 생일날 친구를 초대하기 위해 초대장을 쓰고, 좋아하는 과자의 가격을 읽어 보는 것처럼 배움이 아이들의 삶과 연관될 때 더 효과적일 수 있다.혹자는 ‘학생의 일상 삶과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지식이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식의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학습자가 배워야 할 지식은 달라진다. 단순하게 논의하면, 지식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지식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불변하며 절대적이라고 간주할 경우 학습자가 배워야 할 지식의 목록은 고전이나 전문가가 구성한 교과 내용이다. 하지만 지식이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하여 상대적이라고 간주할 경우 오늘 과학이라고 믿었던 내용이 내일 사실 관계가 뒤집힐 수 있으므로 학습자가 배울 지식은 학습자가 속한 사회문화나 일상의 삶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산에 사는 아이는 식용 가능한 식물의 종류나 산을 오르내리는 방법을 알아야 하는 반면, 바닷가에 사는 아이는 생선의 종류, 항해할 수 있는 날씨, 생선을 잡기 위한 도구를 알아야 한다. 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학생들을 줄 세우고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인가? 학생이 일상에서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함인가? 이 질문의 대답이 교육 방법과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일단 잘 놀아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놀이에 흠뻑 빠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저녁 무렵 골목길에서 해가 지는 것을 잊을 만큼 놀이하던 경험 말이다. 그 놀이는, 어른의 간섭 없이 여러분 방식대로 진행하던, 순전히 자기-주도적인 놀이였을 것이다. 놀이를 통해 길러진 자기주도성은 훗날 자기주도적인 학업과 책임감 있는 직장생활로까지 이어진다. 놀이에 흠뻑 빠졌던 여러분도 지금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어 있지 않는가.

2019-10-28

나의 아름다운 선생님들

김현욱 시인고3 때, 대학 진학을 앞두고 내 선택지는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학과로 좁혀졌다.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서 일하고 싶었고, 학교에서 일한다면,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고 싶었다.당시는 수능과 내신, 논술이 대학 입시의 당락을 좌우했다. 수능과 내신 성적은 곧잘 반비례했다. 내신은 좋은데 수능이 나쁘거나, 수능은 좋은데 내신이 별로인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후자였다. 내신은 형편없었지만, 수능은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다. 글쓰기를 좋아해서 논술도 별 부담이 없었다.존경하는 선생님을 몇 분 찾아뵙고 진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넌 교대를 가면 좋겠다.” 가정 형편, 성격, 특기, 전망 등을 종합한 선생님들의 애정 어린 조언이었다. 결국 나는 가까운 교대로 진학했다. 교대는 고등학교와 비슷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여학생이 많다는 것뿐. 한동안 적응을 못해서 학사경고를 받으며 방황했다.어찌어찌 졸업해서 고향으로 돌아와 교단에 섰다. 18년이 흘렀고, 그때 선생님들의 조언이 제자를 향한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왔음을 비로소 깨닫는다.교대 진학해서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동기들이 그동안 만났던 교사들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점이었다. ‘인간’ 같지 않은 ‘선생’들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물론, 나도 그런 ‘선생’들을 만난 적이 있다. 촌지, 편애, 폭력, 권위, 방관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억울하게 심한 폭행을 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아름다운 선생님들의 면면이 더 많다.심윤경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는 동구의 아픔을 다독여주는 박영은 선생님이 나온다. 가정사에서 비롯된 폭력과 억압 때문에 동구는 초등학교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난독증을 앓고 있다. 박영은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자상한 배려 덕분에 동구는 가족들 앞에서 선생님의 편지를 낭독하기에 이른다. 동구에게 박영은 선생님은 ‘영혼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인물이다. 박영은 선생님이 없었다면 동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구의 아름다운 영혼의 정원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으리라.교사는 아이들의 영혼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다. 최근에 본 영화 ‘벌새’의 김영지 선생님, 그 유명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키팅 선생님, 하이타니 겐지로의 동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에 고다니 선생님과 아다치 선생님. 그리고 심윤경의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 박영은 선생님. 이들이 책과 영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이들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아름다운 선생님도 많을 것이다.입시철이다. 고3 조카는 최근에 면접을 열심히 보러 다닌다. 오로지 성적으로만 가늠해서 원서를 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삶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한다. 의대에 입학했다가 자퇴하고 애니메이션 학과로 진로를 바꾼 학생이 그걸 증명한다. 자신을 잘 아는 아름다운 선생님들과 삶과 진로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다. 좋은 스승을 만나려는 준비가 되어있다면, 김영지 선생님, 박영은 선생님, 키팅 선생님, 고다니 선생님, 아다치 선생님들은 바로 여러분 곁에 있다.

2019-10-27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서정주 시인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고 했지만, 내게는 딱히 그럴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워낙 시골에 묻혀 살기도 했지만, 어디 간들 올바른 정신과 맑고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쉽겠는가.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도 그렇다. 사람들이 주는 기쁨과 위로보다는 사람 때문에 받는 실망과 고통이 더 큰 것이 현실인 것 같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상처입고 좌절한 사람들이 사람이 없는 산속에 들어가서 치유와 활력을 얻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사람을 싫어하거나 멀리하자는 말이 아니라 사람에게만 집착을 하여 실망하고 좌절할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날 중에 가장 좋은 날이다. 어느 계절이든 좋은 날이 없지 않지만 나는 청명한 가을날이 그중 좋다. 그 가장 좋은 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도 좋겠지만, 온전히 나만의 날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혼탁한 인간사를 저만치 제쳐놓고, 그 보석같이 찬란한 날 속으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이고 들리는 대로 해찰하며 하루를 보내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누리게 되는, 사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일 년 삼백육십오일, 비바람 눈보라 몰아치는 날이든 고요하고 청명한 날이든 사실은 어느 하루 축복이 아닌 날이 없다.우리가 누리는 산과 들 하늘과 바다는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들이다. 인간사회의 부귀영화나 지위권세 따위로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라 그렇다. 이렇게 좋은 날들을 두고 비관하고 절망해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인가. 저 가을 들판에라도 나가보라. 눈부신 가을볕과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싸고 코스모스, 쑥부쟁이, 산국, 구절초…. 풀꽃들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긴다. 아무 것도 나를 따돌리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오히려 반기니 자괴감이나 박탈감 따위를 가질 이유가 없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는 비록 초라한 존재지만 이 가을날 속에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 나는 오로지 나다.한가롭게 하늘이라도 쳐다볼 여유도 없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 재물을 모으고 높은 지위에도 올라서 선망과 존경의 대상이던 사람들이 졸지에 망신살이 뻗쳐 만인의 지탄과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본다. 그렇게 의기양양하던 자부심과 자존감이 하루아침에 수치와 오욕으로 바뀌지 않던가.그러므로 무엇을 위해서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는 것에 박수를 보낼 일만은 아닌 것이다. 온갖 편법 탈법 불법으로 스펙을 만들어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부모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못해 주어서 자식에게 미안해 할 게 아니라, 적어도 그런 식으로 자식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다고 오히려 자부심을 가질 일이 아닌가.모든 존재가 그렇듯 인생은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살아있는 그 자체로 이유이고 목적이고 충만이다. 어쩔 수 없이 각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이렇게 좋은 날에는 하루쯤 저 가을꽃들처럼 자족의 모습으로 나를 놓아두자.

2019-10-24

학교, 수행평가 함정에 빠지다!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10월 안개는 어느 달보다 진하고 무겁다. 눈으로는 한발조차 내딛기 힘들다. 안개에 쌓인 세상에서 생각한다, 안개는 너무도 빠른 10월 시간을 조금이라도 잡기 위한 자연의 벽이라고!시간은 나이의 속도(㎞/h)로 흐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달 또한 예외가 아니다. 10월 달의 빠르기는 1월의 10배 이상이다. 옆 한 번 돌아볼 겨를 없이 벌써 10월 말이다. 그 어떤 상실감이 이보다 더 클까! 필자를 위로하는 것은 역시 시(오세영, ‘시월’)이다.“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돌아보면 문득/나 홀로 남아 있다.//(중략)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시인의 말대로 지금 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잃어가는 연습이다. 하지만 늘 생각뿐이다. 놓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뜻대로 안 되는 게 삶이라고 하면 너무 구차한 변명일까? 분명 필자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데, 성숙은 늘 남의 일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학생들을 생각하면 필자의 이런 생각은 너무 사치이다. “중간고사 끝난 지 언제라고 11월 중순까지 매일 몇 과목씩 수행평가입니다! 정말 숨 한번 제대로 쉴 수조차 없습니다!” 누렇게 뜬 얼굴로 필자에게 하소연 하던 학생들의 모습이 비수가 되어 꽂혔다.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한 수행평가,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교육부 지침을 잠시 보자!“수행평가는 교과 담당교사가 학습자들의 학습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다. 학생의 수행과정과 결과를 평가해야 하며, 과제형(숙제형) 평가를 지양하고 다양한 학교교육활동 내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한다.”정말 말로만 보면 이보다 더 완벽한 평가는 없다. 그런데 정말 말처럼 시행될까? 어느 방송사의 “새벽 4시까지 수행평가 ‘허덕’, 학생들 혼수상태” 라는 보도에 대해 교육부는 “과제형 수행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점검하겠습니다.”라고 교육 현장과 너무도 동떨어진 답변을 내놓았다. 과제형 수행평가라고 해서 과제를 해가는 것도 있지만, 모양만 과제형이고 사실은 암기형 서술 평가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이런 구태 한 수행평가를 준비하느라 잠을 설치고 있는데, 교육부는 이런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이 나라 교육을 암흑의 터널로 몰아넣은 것은 분명 평가이다.과정 중심 평가는 물론 그 어떤 평가가 되었던 이 나라 평가의 궁극적 목적은 ‘한줄 세우기’다. 평가 목적이 오류인데, 방법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오류가 참이 될 수는 없다.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우선 그 오류를 인정해야 하는데, 교육 당국은 그걸 계속 외면만 하고 있다.교사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낸 수행평가를 학생들보다 더 잘 볼 자신이 있는가?평가를 위한 무의미한 평가 대신 결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는 자연을 학생들에게 마음껏 보게 하는 10월이면 어떨까!

2019-10-23

詩의 향기 속으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 유유자적 시를 쓰고, 산으로 들로 번져가는 단풍 잎새가 말을 걸어오는 계절.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가을하늘에 제 나름의 감성의 촉수로 시의 감흥을 펼쳐보면 어떨까?시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의 발로(發露)이다. 시는 말로 그리는 그림이며 마음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이게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한 언어실천이다. 또한 시는 그리움의 소산이기도 하고 깨달음과 깨침의 통찰이자 지혜이기도 하다. 결국 시는 충만한 생명과 무한한 정신을 드러내어 사람의 가슴에 울림을 주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언어적 구성물이라 할 수 있다.시를 쓰는 일은 축복이다. 상처가 조개 속에서 진주를 키우듯이, 삶의 자극이나 어느 순간의 감동이 시의 씨앗이 되고 한편의 시를 싹트게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하는 것이며,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시를 만나러 가는 길은 항상 가슴이 설레고 조금쯤은 흥분되거나 긴장하기 마련이다. 시인의 정신세계는 무한대여서 어느 선현의 말씀처럼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세상을 보면서’ 산다. 그래서 시인들은 시를 쓰면서 부단히 고민하고 감성을 연마하여 삶의 행복을 정련(精鍊)하는지도 모른다.시를 읊거나 낭독하는 것은 시의 행간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다. 시가 지닌 사회성과 역사성, 교훈성과 계몽성을 차치하고라도, 시를 음미하며 감정을 살려 낭송하는 것은 시에서 묻어나는 감동의 향기를 세상에 널리 피워내는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꽃자리를 옮겨가며 나풀대는 나비의 날갯짓 같기도 하고, 들풀을 쓰다듬으며 잎새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의 몸짓 같기도 하다. 이른바 시 낭송이란 생명의 언어로 만들어진 시를 우아한 육성으로 전함으로써 시 본연의 울림과 스밈을 더해 주는 표현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포항지역에는 8,9년 전부터 시의 몸에 목소리의 옷을 입히며 정갈함과 향긋함을 전해온 분들의 노력으로 지역의 특색있는 시낭송 문화가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그들은 해마다 시낭송 발표회를 가지면서 경북교육청문화원에서 개최하는 ‘찾아가는 행복콘서트’와 포항시 주관의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사업’ 등에 동참하거나 재능기부를 하면서 문화사업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다.특히 최근에는 도심 속의 휴식처 같은 서옥(書屋)의 뒤뜰에서 서울과 지방의 저명한 시인들을 초청해 시담(詩談)을 나누고 시낭송회를 열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또한 전국규모의 시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실로 왕성한 활동과 내실있는 행보가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하늘빛 그리움으로 잔잔히 여울지는 시와 그윽한 목소리를 타고 흐르는 향기나는 시낭송의 삼매에 빠져, 가슴 붉게 물드는 낭만으로 이 가을이 익어갔으면 좋겠다.

2019-10-22

검찰개혁도 역사의 질서 안에 있음을…

서정목 대구가톨릭대 교수필자는 통번역학을 전공하였다. 그래서 통번역 업계와 업무를 잘 안다. 통역업무가 필요한 업체에서는 통역사를 부른다. 모신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통역을 붙인다는 말을 쓴다. 과외 선생도 모신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과외선생도 붙인다. 변호사는 붙인다거나 댄다는 말을 쓴다. 존경받는 직업에는 아마 이런 말을 쓰지 않는 듯하다. 과거 변호사를 보고 칼 안든 강도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요즘이야 변호사를 비롯한 사짜 직업들의 수난시대이니 옛말이려니 한다. 그러나 대체로 검사, 판사, 변호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는 않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검사와 재벌, 검사와 조폭, 그리고 이들을 돕는 변호사는 막장드라마 못지않게 단골 소재가 되었다. 이처럼 법조계는 대중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고 친근하게 느끼는 직업군이 아니다. 이들이 대중들의 불신을 받는 것은 공정하게 법의 잣대가 적용되지 않은 때문이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은 디케(Dike)이며, 로마신화에서는 유스티시아(Justitia)이다. 유스티시아의 조각상은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저울, 그리고 눈에는 눈가리개를 하고 있다. 법을 심판하는데 있어 칼같이 저울질하되,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는 것은 편견없이 공정하게 재판하라는 의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법에 관한한 최고의 가치는 공정함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며칠 전 저녁, 한 TV 드라마에 놀라운 대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 세상은 수많은 혁명을 통해 인간의 삶은 개선되어 왔고 앞으로는 더 좋아진다. 부딪히고 깨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하는 것이 역사의 질서”라는 것이다. 그저 드라마 대사로 받아들이기로는 너무나 감동적이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과 민주화도 이러한 역사의 질서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서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민주화를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수많은 시민의 피와 땀을 바탕으로 민주화 투쟁을 통해 이루었다. 우리의 민주화는 시민들이 부딪히고, 깨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서면서 당면한 과제를 극복하여 온 역사의 질서인 것이다. 다만 경제적으로 압축 성장한 것처럼, 민주화도 압축해서 압축 민주화(!)를 이루다 보니 아직 덜 다듬어진 부분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검찰개혁, 사법개혁의 과제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역사는 인간을 위주로 인간의 삶에 유용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보한다. 검찰개혁도 역사의 질서에서 보면 이루어져야 하는 수순이다.한국인들은 평등의식이 강하다. 평등의식이 강한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가 되고, 부를 숭배하고 부자를 존경하는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가 된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누군가 한 말이 떠오른다. 공정하지 않은 법의 적용은 평등에 위배된다. 그래서 시민들은 무소불위의 검찰권을 거부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를 외친다. 민주화는 별 볼일 없는 보통 사람이 많이 사는 사회가 되는 과정이다. 함께 더불어 사는 이런 사회는 온다.

2019-10-21

미술전시 홍보의 중요성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밤낮으로 일교차가 심해지며 본격적인 가을을 실감하게 된다. 노랗게 물든 단풍나무 가로수만큼이나 가을의 분위기도 무르익어 간다. 지역 화랑가에는 크고 작은 전시가 열려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문화적 풍요로움을 선물해주고 있다. 화가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창작의욕으로 작품을 제작하지만, 정작 전시회를 알리는 홍보방법과 필요성에는 적절한 방법을 알지 못해 아쉬움을 주고 있다. 전시는 작가 본인은 물론, 작가의 창의력과 장인정신이 담긴 작품이 일반인과 호흡하는 소통의 장이다. 따라서 전시는 관람객의 존재를 필수 전제로 하고 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전시는 존재가치가 없으며,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작품은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고 평가받을 때 비로소 예술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힘들게 준비한 작품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새로운 미의식과 미술양식을 관람객들이 공감하는 시간은 성공적인 전시홍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일반인들이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는 우선 전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전시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앞으로 열릴 전시는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전시장을 찾아나 설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미술 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시 정보를 얻는 방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중 가장 널리 활용되고, 대중에게 익숙한 경로가 바로 언론매체에 실리는 미술기사나 TV방송을 통해 전시 안내이다. 여기서 말하는 언론매체의 미술기사는 홍보활동의 성과물이다. 미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살아 숨 쉬는 정보, 유용한 정보, 작품과 세상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전시 홍보 활동도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있다.작가들은 본인의 전시를 알리는 보도자료 작성에 대해 한번쯤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언론기자들이 요구하는 ‘전시 보도자료’는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시회의 중요도 순서로 작성하면 좋다. 누가 봐도 간결하고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사진과 같은 시각 자료와 함께 요점을 정확히 전달하면 성공적인 전시회를 위한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보도자료는 공식자료이다. 언론홍보를 위해 언론사에 배포하는 문서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성격성을 띤다. 허위와 왜곡, 과장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전시 정보의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주제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보도자료에 전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없으면 전시의 성격과 특징을 헤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으로 보도자료를 작성하면 된다. 홍보방법에 있어 대중매체의 세계는 다른 분야처럼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파급효과의 증대, 정보의 전문화와 다양화, 언론시장의 발전, 온라인 공간의 등장 등으로 인해 어제와 오늘의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이다. 언론매체의 중요성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커질 수밖에 없다. 정보의 중요성과 함께 홍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앞으로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대중들에게 알리는 절대적 수단이 될 것이다.

2019-10-20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이 있다. 불교 열반경의 일화에서 비롯된 말이다. 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여러 맹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 보라고 했다. 상아를 만져본 사람, 귀를 만져본 사람, 머리를 만져본 사람, 코를 만져본 사람, 다리를 만져본 사람, 배를 만져본 사람, 꼬리를 만져본 사람이 저마다 다른 대답을 했다. 그들 각자는 직접 생생하게 체험을 한 것이니 누가 다른 소리를 하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옥신각신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싸운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런 노릇이겠는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제 손으로 직접 만져본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이 오히려 사실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낳을 수 있으니 과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겠다.대한민국이라는 코끼리에 대해서도 맹인모상(盲人摸象)식의 편견과 왜곡이 난무하고 있다. 자신이 겪어 알고 있는 부분을 전체인 양 일반화하거나 이념과 진영논리에 빠져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사람들끼리 세력을 형성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악으로 몰아 적대시하는 대결구도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정부 수립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방면에서 어느 정도의 발전과 성과를 거두었는지 따져 보면 성장과 성공을 한 나라인지 실패와 퇴행을 해온 나라인지를 알 수가 있다. 또 한 방법으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를 해보고 상대적인 평가를 내리는 방법이다. 대한민국이 출발할 당시에 비슷했거나 오히려 나은 나라들이 지금은 어떠한지를 비교해보면 성패에 대한 판단이 나올 것이다.어느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가 놀랄 정도의 성공을 한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독재니 혁명이니 쿠데타니 하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런 분쟁과 부작용도 결국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성장과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그것은 지난 정권들에 잘잘못이 있었지만 과보다는 공이 더 컸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소위 좌파들이 내세우는 혁명이니 개혁이니 하는 논리는 기왕의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국사태’로 드러난 좌파세력의 민낯은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망상이고 자가당착인가를 알게 한다. 심지어 일부 교수나 작가들까지 ‘조국’을 비호하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편향성이 얼마나 심각하게 최소한의 정의나 윤리마저도 훼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접근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 김일성 일족을 신(절대존엄)으로 떠받드는 사이비종교집단에 불과한 것이 북한이라는 코끼리의 실상일진대, 김정은 일당은 대화나 타협의 상대가 아니라 수백만 원혼들과 칠천만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할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9-10-17

교육 개혁의 희망 경북도의회!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잦은 태풍 소식에도 자연은 자신의 할 일에 최선이다. 나무들은 10월의 언어인 단풍으로 대화의 문을 열었다. 그 문으로 때론 누군가의 가슴 저린 첫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귀 밝은 감나무는 가지마다 그들을 저장했다. 길이를 늘리기 시작한 가을밤에 감들은 그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몰래 펼쳤다. 그리고 홀로 붉어졌다. 그 붉음에 자연은 더 풍성해진다.풍성한 가을과는 달리 이 사회는 더 흉악해지고 있다. 독단과 독선, 고집과 아집만이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순수는 예전에 죽었다. 순수가 죽은 자리엔 추악함이 자리했다. 한때 가장 순수했던 촛불도 이젠 아니다. 오염된 촛불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멀게 만들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떼로 외치는 소리는 소음에 불과하다. 소음만 가득한 도로에서 정의는 죽었다.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적도, 과정도 순수해야 한다. 그런 개혁만이 모두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개혁은 명분은 있지만 방법은 틀렸다. 당정청(집권당, 정부, 청와대)이라는 말은 특정 이데올로기와 동의어이다.당정청이 개입된 개혁의 방향은 그들의 특정 이데올로기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런 개혁에 순수는 없다. 교육 개혁에는 제발 당정청이 개입하지 않기를 바란다.당정청 타령만 하는 중앙 정치를 보면 이 나라 미래는 0% 출산율보다 더 암담하다. 그래도 이 나라가 버티는 것은 경북도의회처럼 일하는 지방 의회가 있기 때문이다.필자는 지난 6년 동안 당정청은 물론 교육부, 도교육청, 인권위원회, 권익위원회 등에 대안학교 학생들이 받고 있는 차별을 철폐해달라고 수십 차례 읍소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필요성은 알지만으로 시작하는 행정기관 특유의 미꾸라지 어조의 빈정거림뿐이었다. 그 사이에 많은 학생들이 교육기회를 놓치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되었다. 교육행정기관들은 늘 뒷북만 쳤다.그런데 드디어 경북도의회가 교육행정기관들의 앵무새 화법을 끊는 조례개정안을 발의 통과시켰다. 교육청 실무자들과 6년 동안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번 일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아니 사건을 넘어 개혁에 가까운 일인지 안다. 교육 개혁의 서문을 연 조례개정안은 “경상북도 사립학교 재정보조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경상북도교육청 학업중단 예방 및 대안교육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재도 의원)이다. 다음은 전자의 개정 사유이다.“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을 근거로 하여 일부 사립학교(각종학교 포함)에 대한 재정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고 있으나, 교육부에서는 시행령 자체가 교육청의 재정지원 여부를 구속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음. (중략) 사립학교 재정보조사업에 단서조항을 두어 재정지원이 필요한 사립학교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됨.”교육 평등권의 실질적인 보장을 위해 경북도의회가 보여준 초당적인 모습이 당리당략에 빠져 있는 중앙 정부는 물론 편협한 교육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육 관계자들에게 큰 울림이 되길 바란다. 그 울림이 교육 개혁의 신호탄이 되어 희망을 잃어버린 이 나라 교육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2019-10-16

10월, 天高心肥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10월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 한층 더 깊어지는 달이다. 천고마비는 원래 ‘추고마비(秋高馬肥)’에서 유래되었는데, 송대 정강전신록에는, ‘가을이 깊어지고 말이 살찌면 오랑캐들이 다시 쳐들어와 이전의 맹약을 책할 것을 두려워한다.’라는 기록이 있고, 사마천의 사기에는 흉노족들이 ‘가을에 말이 살찌면 대림(8E5B林)에서 큰 모임을 갖고 가축들의 수를 비교한다.’고 적혀 있다. 흉노족은 가을철이면 살찐 말을 타고 중국 변방에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는데, 이로 인해 변방 중국인들은 가을이면 늘 전전긍긍해야만 했다.이처럼 가을이, 한쪽에선 약탈하기 좋은 계절로, 다른 쪽에선 두려움에 떠는 계절로 다가온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그러나 선우(흉노족의 우두머리)의 입장에서는, 겨울을 대비해 중국 변방을 공격하여 자국민의 양식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고, 중국 군왕들의 입장에서는 장성을 쌓아 흉노의 침입을 막는 게 최우선의 과제였을 테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이든 모두 자국민의 생업 보장과 안전을 위한 위정자들의 고민이 ‘추고마비/천고마비’속에 함의되어 있었던 셈이다. 비록 한쪽에게 좋은 것이 다른 쪽에게는 그렇지 않긴 했어도. 적어도 자국민들을 위한 최선이 무엇일지는 늘 고민했던 위정자들의 흔적만큼은 엿볼 수 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사는 다 비슷비슷해서, 옛날이라 하여 위정자들이 늘 백성들만을 생각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당쟁과 사화들, 그 속에서 고통 받던 백성들이 일으킨 수많은 민란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러한 위정자들을 깨치려는 노력은 옛부터 줄기차게 일어났던 바다. 이와 관련해, 허균이 남긴 논설 호민론은 주목할 만하다.호민론에서는 백성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위정자들에게 가만히 순종하기만 하는 항민(恒民), 윗사람을 원망하기만 하는 원민(怨民), 가만히 참으며 틈만 엿보다가 시기가 오면 일어나는 호민(豪民)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호민이 반기를 들면 원민들은 소리만 듣고도 절로 모이고, 항민들 또한 살기를 구해서 따라 일어나므로, 관직에 있는 자라면, 이러한 호민들을 두려워하여, 정치를 똑바로 하라는 것이 요지이다.옛말에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민심에 근간한 정치를 왕도 정치라 하여 가장 이상적으로 여긴 것도 이 때문이다. 옛 제왕들은 민심을 잘 파악하고자 언로(言路)를 확대하고 상소제도를 두었으며, 끊임없이 자기 수양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제도만 두고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나 ‘귀’가 없다면, 그 또한 옳지 않다고 여긴 탓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수신(修身)을 무엇보다도 크게 생각하곤 하였다.요새 들어 인재 등용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회 이슈들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정치적 입장에 따른 시위대들의 시시비비를 논하기에 앞서, 이 천고(天高)의 계절 가을에, 위정자들은 민심의 소리에 깊이 한번 귀를 기울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맑게 가꾸고 살찌워 보는, 심비(心肥)를 우선적으로 실천해 보면 어떨까?

2019-10-15

천고마비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가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긴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더위가 꺾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열린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고, 새벽녘에는 발치에 두고 자던 이불을 슬며시 턱까지 끌어당긴다. 절기의 변화는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참으로 심오하다. 이제 추분이 지났으니 낮보다 밤이 길어지기 시작할 것이며 곧 월동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미세먼지 스트레스로 하늘 쳐다 볼 일이 별로 없다가 추석 달 보느라 모처럼 올려다 본 가을하늘은 더 없이 높고 공활했다. 아! 이래서 천고마비라 하는구나. 예나 지금이나 하늘 높은 건 반가운 일이지만 마비(馬肥)는 좀 다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살찐 말은 아름답지만 사람의 경우는 기준이 좀 달라서 살을 빼느라 온통 난리법석이다. 살찐 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도 불룩 나온 아랫배가 부의 상징이라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그들을 부러워하던 이 땅의 부모님들 눈에는 학업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은 언제나 ‘얼굴이 반쪽’이었다. 배나온 사장님은 흠모의 대상이었으며, 그가 타고 온 포니자동차가 내뿜는 연기 냄새는 향수보다 매혹적이라 동네 아이들은 자동차 꽁무니를 무작정 따라 뛰곤 했다.불과 몇 십 년 만에 세상은 놀랍도록 변했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고, 배기가스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라 하여 오래된 경유차는 서울시내 진입을 제한할 지경이 되었으니 자동차는 더 이상 자랑이 아니라 재앙일지도 모를 일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가치롭게 여기던 시대가 있었으나 미의 기준도 달라져서 TV에 나오는 아이돌의 얼굴모습이나 몸매는 하나같이 바비인형을 닮았다. 그런 비현실적인 몸매가 선망의 대상이 되자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는 하지만 살 빼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은가 보다. 음식조절과 운동은 기본이고 약물이나 성형수술을 무리하게 하다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다이어트가 쉽지 않은 까닭이 조상 탓이라는 설도 있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경작을 시작한지는 불과 1만년 정도에 불과하니, 19만년 동안은 수렵, 채취로 연명했음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사냥에 성공하고 맛있는 열매를 발견해야 먹을 수 있었으니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야 했을 것이고, 많이 먹고 몸속에 저장하여 다시 먹을 때까지 오래 견딜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먹지 않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인체에는 그만 먹으라는 신호가 한 가지인데 반하여, ‘계속 먹어라’ 하는 신호는 무려 일곱 가지나 되며, 살이 빠지게 되면 위험신호로 인지해 기초대사량을 줄이게 되어 더 이상 살이 빠지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러니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노력을 하거나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다 부작용의 위험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멋진 계절 가을, 부작용 없이 다이어트하면서 내면은 부디 풍성하게 살찌우자. 깊어가는 가을밤, 월동준비 하듯 마음의 양식을 준비하자.

2019-10-14

만신창이 우리말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우리 민족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은 고유한 말과 글을 가진 게 아닐까 싶다. 한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자기들만의 언어를 이어온다는 것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의 정체성을 갖는 일이다. 그것은 인류문명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민족적 자존이요 삶의 근간이기도 하다. 특히나 한글의 독자성과 우수성은 세계의 학자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한글은 세계 어떤 나라의 일상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 체계이다.”(에드윈 라이샤워·하버드대 교수),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존 맨·과학사가, 다큐멘터리 작가), “세종이 만든 28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알파벳이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기법 체계이다.”(재레드 다이아몬드·캘리포니아 의과대 생리학자)…. 심지어 미국 시카고대 교수이자 언어학자인 매콜리는 20여 년간 동료 언어학자들과 매년 한글날을 기념해오고 있다고 한다.한글의 우수성은 21세기 인터넷 정보통신의 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언젠가 모 방송국에서 각 나라의 문자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속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같은 조건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문자로 소설 어린 왕자의 1장을 타자로 입력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실험이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았을 때 한국이 가장 먼저 어린 왕자의 1장을 입력했다. 이는 중국, 일본보다 일곱 배나 빠른 속도였다. 한글로 5초면 치는 문장을 중국, 일본의 문자를 통해 입력할 경우 35초가 소요된다는 얘기다.우리말에는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것을 갈고 다듬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로 전해줄 역사적 사명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고 나라의 근간을 굳건히 하는 일이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말과 글의 가치와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히나 청소년들의 언어실태는 우려를 넘어 절망감이 들 정도다. 그렇게 말과 글이 날로 오염되고 파괴되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학계나 교육 당국, 언론계 어디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고 한번 오염되고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말이다.시급한 처방으로는 방송 매체들이 캠페인이라도 벌여 우리말 바르게 쓰기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종사자들은 물론 출연자들에게 사전에 몇 가지 주의사항만 교육해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그러면 불필요한은 외래어나 비속어, 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학교에서의 언어교육이다. 아이들에게 고운 말 바른 말 교육은 그야말로 백년지대계의 초석이다. 올바른 심성과 정서를 함양하는데 언어교육보다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년도 문화재청 예산이 1조원이 넘는다니, 그 중 1할이라도 가장 소중하고 실생활에 밀접한 문화재인 우리 말과 글의 아끼고 가꾸는 일에 쓰기를 바란다.

2019-10-10

10.09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구름 한 점 없는 파란 10월 하늘만 봐도 눈물이 난다. 그 눈물에 대해 하늘이 물었다, 왜 그러느냐고? 그 물음에 칠순을 넘기신 어머니께서 추석날 외할머니 산소에서 대성통곡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엄마, 세상 살기 참 힘들다.” 굴곡 많은 삶 속에서 속으로 수없이 삭였을 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恨) 맺힘의 원인 중에는 필자가 가장 크게 차지했다.지난 주말 청소를 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의 가방을 옮기다 어머니의 아픔 중 가장 큰 아픔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수로워 보이지 않아 그냥 들었다. 그랬다가 중력보다 더 센 가방의 저항에 도로 내려놓고 말았다. 가방의 저항은 필자의 마음을 후려쳤다.입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필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잊고 있었다. 가방의 무게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휴일에도 자신의 꿈을 위해 독서실로 향하던 딸아이의 모습을 소환했다. 필자는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잠시 밖에 나갔던 아이가 들어왔다. “아빠, 나 조금만 잘게!”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어제 잠을 못 잤어!”“다음 주부터 중간고사!” 필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방문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보았다. 가방은 커다란 바위덩어리 같았다. 그 큰 바위덩어리를 매일 메고 다녔으니 어깨와 허리가 오죽할까 싶어 당장이라도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필자는 가방 앞에서 망설였다. 그런 필자의 모습이 너무 가증스러웠다.시험(試驗)! 누구를 위한, 또 무엇을 위한 시험인지? 이 나라 시험은 줄 세기 이외에는 그 어떤 기능도, 역할도 하지 못한지 오래다. 교사들은 석차를 핑계로 문제를 최대한 비틀어서 출제하고, 이에 뒤질세라 학원들은 학교의 함정을 넘기 위해 오로지 문제풀이에만 몰두하는 이 나라 교육! 진정한 평가는 사라지고 괴물 같은 시험만 존재하는 시험 공화국! 그 공화국의 문이 10월에 열렸다.아이의 가방을 옮기는데 저울이 옆에 있었다. 필자는 무심결에 올려보았다. 그 숫자에 필자는 다시 놀랐다. 여고생들이 만든 “대한민국 고등학생 가방 무게를 재어보았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오버랩 되었다.동영상에는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의 가방 평균 무게가 나온다. 그 무게는 6.56㎏! “쌀 30컵-쌀30인분, 1.5L 생수병 4.5개의 무게”무게 재기가 끝난 후 제작자들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이 책가방 이외에도 당신을 무겁게 하는 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고생들은 답했다.“학원, 공부, 시험, (….) 입시, 대학, 내신, 스펙” 영상 중간에 친구들의 질문에 울어버린 여고생이 나온다.그 학생을 울게 한 짐은 바로 “부모님의 기대”였다. 딸아이의 가방 무게는 10.09㎏! 이 무게는 그날 공부할 책들을 뺀 무게. 만약 그 책들까지 넣었다면? 거기에다 필자의 부담까지 얹었으니 아이의 어깨와 허리가 괜찮을 리 만무하다.눈부시게 아름다운 10월의 하늘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아름다운 학생들! 그 학생들이 줄 세우기 식 시험에 병들고 있다. 이 나라 교사에게 묻는다, 당신은 시험과 학생 앞에 당당한가? 그리고 대통령과 장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개혁 앞에 떳떳하고 정당한가?

2019-10-09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조현명 시인A는 문제아였다. 만나는 선생님들마다 외면했다. 도와준다고 말을 건넸다가 오히려 나쁜 일을 당하는 수가 많았다. 후배들의 돈을 빼앗는 것은 작은 일이었다. 오토바이를 훔치거나 성폭행범으로 신고 되기도 하고 동네 불량배에 끼어서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당연히 선도위원회나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에 이름이 여러 번 올라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위원들은 한탄만 하고 끝이 났다.“이런 아이는 작은 잘못에도 강하게 처벌해야합니다. 그러질 못하니 잘못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몽둥이찜질로 정신 차리게 할 수 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경찰과 검찰에서도 청소년이라고 양형기준을 낮추어버리니 그걸 이용합디다.”결국 A는 폭력과 절도 강도 성폭행으로 소년원 생활을 했다. 이후 학교생활에서도 사고뭉치였다. 오히려 더 대담하게 사고를 쳤다. 교사들은 “앞으로 큰 범죄자가 될 것이다.” 라고 했지만 아무도 교정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런 아이는 극소수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에 비하면 착한 수준이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다는 것에는 동일한 것 같다.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교육이 뿌리 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개×× 같은 욕을 하는 것은 차라리 애교스럽다.“당신은 우리가 낸 세금과 납입금으로 월급을 받지 않느냐?”는 말을 해,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고 컴퓨터가 말썽일 때 학생의 도움을 받으면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같은 요즘 힙합가사를 흥얼거린다. 교사를 비아냥대고 교사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화를 내고 체벌을 하면 신고하겠다고 협박한다. 흉기를 들고 달려들거나 주먹질해오면 교사는 방어권도 없다. 방어하다가 되려 학생에게 폭행을 가한 것으로 책임질까 두렵다. 피하는 것이 상수다. 이것은 교육을 포기하는 일이다.이지경이 된 것은 기존의 교육철학이 뒤흔들렸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이 두려움을 기반한 교육을 부정하고는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는 아직도 두려움을 기반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교사들에게 ‘사랑의 매’를 빼앗고 ‘학생 인권 조례’ 같은 것으로 학생들의 권리를 신장시켰다. 무조건 오래 참고, 교사의 사랑으로 감화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매뉴얼처럼 내려 보내졌다.두려움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교육사례는 ‘서머힐’이나 뉴욕의 ‘자유학교’정도이다. 그것은 성공했다고 보기 힘이 든다. 왜냐하면 소수교육에 적용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보통학교에서 그런 예를 찾기 힘 든다. 세상의 질서는 ‘두려움’으로 계층지어 있고 그것을 학교교육 또한 따라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지금이라도 A같은 아이는 두려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아니면 ‘서머힐’ 같은 대안교육으로 보내든지.다수 보통학교에서 두려움이 없는 아이들이 양산되는 것을 이제는 막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뭘 해야 할지는 뻔하다. 현장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2019-10-07

응답하시오, 1998 교육부 장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대통령께 읍소(泣訴)합니다. 제발 교육과 관련해서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를 자제해주십시오. 세간의 이런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지금 이 나라는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우왕좌왕하는 나라라는 말을요. 다음은 어느 장관 임명식에서 하신 말씀입니다.“국민을 좌절시키는 기득권과 불합리의 원천이 되는 제도까지 개혁해 나가겠습니다. 고교 서열화 등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부터 다시 한 번 살피고, 특히 교육 분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습니다.”대통령께서 보여주시는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처럼 대통령에 대한 맹신적인 신뢰를 가진 사람들이야 위의 말씀에 대해 무한 지지를 보내겠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제도”가 아닌 어느 장관처럼 “기회의 공정을 해치는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있기에 대통령의 말씀이 또 다른 혼돈을 부르는 구호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의 교육 개혁 주문에 정치인 교육부 장관은 “개혁안을 신속하게 마련하겠다.”고 즉답을 하였습니다. 과연 그 다음은 뭘까요? 보고용 졸속 정책들의 양산입니다. 그걸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실무자들이 고생할 것이며, 또 교육 현장의 혼돈은 어떨까요?교실 교육이 무너진 지는 오래입니다. 대표적인 때는 1998년입니다. 그 때의 교육부 장관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당시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담화에 대한 기사입니다.“1998년, 교육부가 ‘2002년 무시험전형’이라고 발표했던 대입전형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은 담화문을 통해 첫째, 암기위주의 낡은 방식의 교육을 지속시키고 사교육비 부담의 멍에를 지우는 입시 위주의 초·중등학교 교육이 이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중략) 둘째, 새로운 대학입학 제도를 마련하면서, 학생 선발에 관한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대학입학제도는 교장추천제, 무시험전형제, 다양한 기준에 의한 특별전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한 줄 세우기’ 입시제도에 손질을 하여 대학 간 서열 완화를 꾀하겠다고 밝혔다.”20년 전에도 교육 개혁을 외쳤습니다. 그 때 필자는 초임이라 정치인 교육부 장관이 제시한 이상적인 교육정책에 대해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금방 이는 교육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정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간자습 폐지 등 준비 안 된 요란한 정치적 교육 공약 때문에 교실은 심하게 요동쳤고, 급기야 교실 붕괴 현상까지 초래하였습니다. 이런 혼란을 틈 타 금수저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만은 유명 대학이나 기관의 인턴 등에 참여시켜 황금 스펙을 쌓게 하였으며, 그 결과 금수저 세습에 성공하였습니다. 왜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까? 왜 애꿎은 제도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까? 만약 지금의 제도에 대해서 질타하시려면 위의 담화를 발표한 장관에게 먼저 책임을 물으셔야 합니다.세계 일로 바쁘시면 제가 묻겠습니다, 1998년 교육부 장관은 대입제도가, 교육이 왜 이 모양인지 응답하시오!

2019-10-01

학교 패드립 경보

김현욱 시인학기 초에 두 남학생이 주먹다짐을 했다. 친구들이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한 아이는 눈이 뒤집혀서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이마가 찢어지고 코피가 터졌다. 웬만해서는 이 정도로 과하게 싸우지 않는다. 두 아이를 진정시키고 다친 곳을 치료하고 싸운 이유를 물었다. 한 쪽에서 “패드립”이란 말이 나왔다. 어안이 벙벙해서 그게 뭐냐고 물었다. “우리 엄마 욕을 했어요. 니 에미 어쩌고 저쩌고요.”패드립. 패륜과 애드리브를 합친 신조어. 자신의 부모나 조상을 비하하는 패륜적인 언어를 가리킨다. 시사상식사전을 찾아보니 2010년경 온라인게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걸 어디서 배웠어?” “유튜브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패드립은 대체로 “니 에미…, 니 애비….”로 시작한다고 한다. “니 에미 애자(장애인)지. 니 애비 없지.” 이게 애들 입에서 나올 소린가. 기가 막혀서 먼 하늘만 바라봤다.요즘은 눈에 띄게 아니 귀에 띄게 청소년들의 욕설을 자주 듣는다. 학교뿐만 아니라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PC방에서, 식당에서 온갖 욕들이 날아다니고 튀어나온다. 욕에도 수준이 있다면 청소년들의 욕하는 습관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자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다가 자녀의 단톡방이나 문자메시지, 연습장에서 육두문자를 보곤 소스라치게 놀라는 학부모도 적잖다.정치인들의 막말, 어른과 부모의 위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욕설, 패드립, 막말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병들었다. 학급장기자랑 시간에 동요를 부르고 시를 암송하는 아이는 사라졌다. 학교에서 교사의 생활지도는 명분만 남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변명만 남았다. 솔직히 어쩔 도리가 없다. 진심으로 다가가 감화시키는 방법이 유일하지만, 학교 여건은 녹록치 않다. 교사로서 아버지로서 부끄럽고 참담하다. 말은 물과 같다. 물이 오염되면 뭇 생명이 병든다. 말이 오염되면 수많은 정신이 병든다.며칠 전에 학부모에게서 패드립을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자신의 아이가 다른 반 친구들에게 패드립을 당했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분노와 모욕감으로 치를 떨었다. 다음 날 패드립을 한 아이들은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했다. 그게 그렇게 나쁜 말인지 상처를 주는 말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 아이들은 패드립과 막말과 욕설이 그렇게 나쁜 말인지, 상처를 주는 말인지, 칼보다 더 위험한지, 모르고 마구 내뱉고 있다. 어쩌면 다행이다. 알고 그런다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얼마 전 수원 어느 노래방에서 중학생들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와 공분을 샀다. 네티즌들은 소년법을 개정하라며 또다시 국민청원을 냈다. 갈수록 청소년들의 인성은 메마르고 영혼은 거칠어지고 있다. 패드립이란 말이 서글프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 몇몇이 욕설을 하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서 배웠을까? 어쩌면 좋을까? 적어도 친구의 부모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패드립만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2019-09-29

한국, 2019년 가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소설가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에는 세 젊은이가 등장한다. 스물다섯 살 대학원생인 안(安)과 구청직원인 나, 서른다섯 살 가량의 월부 서적외판원이 포장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다. 외판원이라는 사내는 그날 급성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고백을 하고, 그 돈을 다 써버릴 때까지 같이 있어주기를 간청한다. 마지못해 함께 술을 마시고 화재현장 구경을 하고 밤늦게 여관에 들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그 외판원이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다.제3공화국이 출범한 이듬해인 국민소득 103달러 시절었다. ‘뚜렷한 가치관을 갖지 못한 도시인들의 방황과 연대감 상실로 인한 절망’을 주제로 한 이 소설은 암울하고 께름칙한 분위기로 끝나지만 정치적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었다. 이른바 4·19와 5·16이라는 양대 정변을 겪은 후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젊은이들이 정체성의 혼란과 경제적 궁핍에서 오는 실존적 불안과 좌절을 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소설이었다.그로부터 55년이 지난, 2019년 가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쓴다면 어떤 캐릭터가 적절할까. 아마도 대다수가 요즘 연일 매스컴을 도배하는‘조국’ 일가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없이 좋은 소설거리라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아니 ‘조국사태’ 그 자체가 어떤 소설보다도 더 극적이고 적나라하게 이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한 편의 드라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일부 유명 소설가들이 ‘조국’을 비호하는 발언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란 냉철한 이성의 산물은 아니라는 반증이라고나 할까.한 때 운동권에 속하기도 했던, 사회주의 성향의 한 인물이 국립대학 교수가 되고 마침내 법무부 장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노정하는, 우리 시대의 속살과 민낯은 대다수 서민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과 배신감을 안겨준다. 강남좌파로 불리는 기득권층의 실상과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분석과 새로운 조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과 그로 인해 형성된 세력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들이 공평과 정의라는 명목으로 포장한 사회주의적 이념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추종하는 무리들이 떠받치고 있는 기득권의 위험성이 도처에 불거지고 있는 현실이다.현 정권을 장악한 좌파세력은 사회주의적 이념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행동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그런 시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색깔론이니 냉전논리니 하는 프레임을 씌우거나 적폐로 몰아 속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때마침 ‘조국사태’가 터져서 그들이 내세우던 공평과 정의가 위선과 가식이었다는 게 밝혀져 분노와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결국 국민들 각자가 깨우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좌우 편향의 정권이 여러 번 뒤집혀야 한다. 그래서 어느 쪽이든 맹목적인 진영논리의 추종이나 고정관념이 허망하다는 걸 체득해야 한다. 태풍 ‘타파’가 지나가고 다시 날이 갰다. 이 가을 우리 정국에도 모든 악습과 불의를 타파하고 공명정대한 계절이 오기를 기대한다.

2019-09-26

선물같은 만남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우리의 일상은 모두 만남으로 이어진다. 사람과 만나고 사물을 대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간다.또한 문명과 만나고 문화를 접하며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만남의 끈을 이어간다. 만남으로 연결되는 수많은 고리와 인연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만남에서 비롯되는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선물같은 만남과 인연을 바탕으로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회생활을 영위해간다.그래서 삶은 끝없는 조우요 부단한 해후라 했던가.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씨족이나 부족단위로 마을을 이루며 살아왔다.조상대대로 한 지역에 살면서 계(契)나 두레, 향약(鄕約)같은 것을 정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협력을 도모했다. 바쁘고 힘든 농사일을 같이 하며 협동심과 공동체의식을 키워왔다.그것은 곧 단위 부락의 단합과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마을에 큰 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발벗고 나서서 서로 돕고 위로하며 다독이는 인정 어린 풍습이었다. 어쩌면 동심협력(同心協力)과 상부상조의 미풍은 우리 민족의 큰 저력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와 같은 미덕의 기저에는 만남과 인연이 있었다.시대의 가치와 사회적인 양상이 많이 변모된 요즘은 어떤가? 지연, 학연 등에서 비롯된 공동체와 이익집단 등 특정한 목적이나 이념을 내세운 각종 단체와 모임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진정한 마음으로 진지한 의견을 개진하며 견제와 균형으로 조직의 순기능적인 면을 살리기 보다는, 배타적이며 맹신적으로 비방과 왜곡을 일삼는 단체가 허다하다. 이른바 ‘내로남불’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대부분 자신과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 생각하면 ‘차이’는 ‘차별’이 되고, 사회는 조화의 빛을 잃은 흑백지대가 된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이해해야 할 대상이 되고 그에 대한 관심이 상대에게 전해지면 ‘다름’은 점차 ‘같음’이 되기도 한다.최근들어 국내외적인 정세(情勢)가 심상치 않게 흐르는 것 같다. 무역의 파고와 안보의 불안이 가중되고 정치, 사회적 갈등과 경제상황이 바닥을 치는데도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사회단체 등에서는 아전인수격으로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고 있다.한데 힘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도 부족할 판에 목전의 유불리만 따지니, 한심하고 우려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상대방과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와 타협으로 합리적인 중지를 모아가는 슬기가 필요하다. 독단과 배척은 고립과 파멸을 자초하고 비난과 반대를 위한 반대는 공동선을 해칠 뿐이다.하루하루 선물같은 만남이 계속 유지되려면 서로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과 겸양의 미덕으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더불어 손잡고 아름다운 동행으로 나아갈 때 모두의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그것은 곧 붕정만리(鵬程萬里)로 향하는 대승적인 길이기도 하다.

2019-09-25

학교 내 대안교실의 가능성은? (下)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출근길에 올려다 본 서쪽 하늘에 한가위 달이 하얗게 떠 있었다. 비록 모습은 한가위 날에 본 둥근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들게 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한가위의 희망을 마지막까지 나눠주려는 달의 모습에 힘이 났다. 필자는 생각했다, 저 달이 다시 둥글게 차오르는 날엔 지금보다 더 환하게 살리라고. 그리고 ‘달빛기도’(이해인)라는 시를 떠올렸다.“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중략)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좀 더 환해지기를/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중략)//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시를 생각할수록 시인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우리 모두가 내내 행복하기를 바라는 시인의 기도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것은 달처럼 둥글게 사는 것이다.모처럼만에 시상이 떠오르려는 순간 방정맞은 메시지 알림 소리에 시상이 날아가 버렸다. 메시지 내용은 개혁을 외치는 장관 이야기! 개혁이라는 말을 보면서 대통령 취임사를 생각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 도대체 뭐가 평등하고, 뭐가 공정하고, 뭐가 정의로운지 대통령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평등과 공정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조국에서 가장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분야는 바로 교육이다.그것을 잘 보여주는 제도 중 하나가 ‘학교 내 대안교실’이다. 왜냐하면 같은 중학생이지만 일반 중학교 학생들은 무상교육에 대안교실 프로그램까지 지원받으면서 학교생활을 하지만, 대안학교 학생들은 국가로부터 단돈 1원의 지원도 못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은 예산이 투입된 학교 내 대안교실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냐면 그것도 분명 아니다. 대안교실을 정규 교육과정에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가 과연 몇 개나 될까? 교무실에서 상담실로 떠넘기기식으로 맡겨진 대안교실이 교육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예산은 있는데 대안교실 프로그램에 참가하고자 하는 학생이 없어요.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문제아로 낙인 찍힐까봐 거부해요. 체험활동도 한 두 번이지, 진짜 힘들어요.”3년 전 컨설팅에서 들은 어느 대안교실 운영자의 하소연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필자는 대안 교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대안교실 컨설팅 보고서를 작성하였다.“담당자를 전문 상담사에서 일반 교사로 전환, 학습과 체험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루도록 사업 계획서에 명기, 관리자 및 담당자 연수 조기 시행 (…)”지난 8월 경북 남부권 대안교실 운영자들이 산자연중학교를 찾았다. 필자는 이들이 더 없이 반가웠다. 왜냐하면 학교 내 대안교실 제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또 필자의 제안이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3년 전과 변한 것이 없었고, 대안교육 담당자들의 한숨소리는 더 커졌다. 예산 쓰기용 학교 내 대안교실, 과연 이대로 좋을까? 이 제도를 주관하는 교육청 관계자에게 묻고 싶다, 대안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2019-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