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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구영신(送舊迎新)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태엽을 감는 벽시계가 하나 있다. 누가 버리는 걸 가져와서 내 방에 걸어놓은 것이다.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멈출 때마다 태엽을 감아주면 다시 살아나서 잘 돌아가곤 한다. 시계가 빨리 가면 나사를 풀어 추를 좀 늦추어 주고 늦으면 반대로 추 밑의 나사를 좀 죄어주면 빨리 간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인데 적어도 내가 죽을 때까지는 고장이 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가서 좋다.시계추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똑딱똑딱 소리를 내는 데 평소에는 거의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다른 소음이 없는 고요한 시간에도 일부러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월도 그렇게 의식을 못하다가 연말이 되어서야 한 해가 언제 다 지나가버렸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세월 가는 줄 모르게 바쁜 사람들도 가끔씩은 세월의 흐름에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연말이면 송구영신이란 말을 많이 한다. 묵은 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으라는 말이니 분명 덕담이 될 것이다. 일부러 보내고 맞지 않아도 저절로 가고 오는 것이 세월일진대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지난 것에는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빈 마음으로 새 날을 맞으라는 뜻일 것이다. 말은 쉽고 지당하지만 사실 이것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세상의 온갖 불화와 분쟁의 대다수가 바로 구습과 편견과 고정관념 따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는 식의 꽉 막힌 옹고집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벌어지는가.새것을 맞는다는 것은 새로운 문물이나 유행을 쫓는다는 말이 아니다. 기독교 성서에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세월이 흐른다고 자연현상의 원리가 변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고목이라도 살아있는 한 봄이면 새 잎을 내듯이 산다는 건 시시각각 송구영신 하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 바로 건강한 삶일 것이다. 자연은 저절로 그러한데 사람들은 탐진치(貪嗔痴)에 찌들고 막혀서 그게 잘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새것을 맞으려면 먼저 묵은 것을 보내야 한다. 재물이든 권세든 명예든 이념이든 기왕의 것을 다 버릴 수는 없을지라도 집착은 말아야 한다. 놓아야 할 것을 놓지 않고 보내야 할 것을 보내지 못해 아득바득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는 자에겐 미래가 없고 이미 가진 것에 집착을 하면 새로움이 없다. 새롭지 않은 것에는 생명이 없으니, 송구영신을 잘 해야 하는 이유다.해가 다 가도록 꽉 막힌 정국은 뚫릴 줄을 모른다. 이 정권이 출발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적어도 막히고 닫히고 고착된 정권은 아니겠지, 하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지금까지의 어느 정권보다도 지독한 편견과 아집과 과거에 집착하는 고집불통의 행태를 드러내었다. 눈과 귀를 틀어막은 것도 모자라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말 그대로 전대미문이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참으로 송구영신이 절실한 시국이다.

2019-12-26

2020년도의 (학)부모는?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끝은 때로는 뭔가를 강요한다. 그 강도는 끝으로 갈수록 더 세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지 않고는 안 될 불가항력의 순간을 만들기도 한다.끝을 얼마두지 않은 12월, 그것도 2010년대의 마지막 12월이 만든 절대 강요가 있다.그것은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관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을까? 사람들은 관계를 위해 태어났고, 또 평생 관계를 맺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살다가, 관계 속에서 죽는다.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안타까운 것은 관계에 대한 지식은 많지만, 그 지식을 삶의 지혜로 이끌어낼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뉴스다. 뉴스는 관계에 실패한 사람들의 백과사전이다.2019년도의 뉴스를 책으로 엮는다면 그 규모는 역대 최고일 것이다. 정치, 경제, 교육 등 어느 하나 희망적인 것이 없다.국가 혼란의 중심에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국민과의 관계를 저버리고 당리당락과 사리사욕에 빠졌다는 것이다.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에게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국민을 농락하던 그들이 파렴치하게 또 표를 달라고 우리 곁으로 오고 있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뽑아야 한다.그런데 정치인이야 다시 뽑으면 되지만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 그 이상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 교육계이다. 물론 그 이유도 관계 실패이다. 교육계의 관계 선(線)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복잡하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부모, (학)부모와 학생, 학교와 지역, 학교와 시대 등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계 선으로 이루진 것이 교육이다.그런데 우리 교육계에서는 그 선들이 다 엉켜버렸다. 어떤 선은 복구가 불가능하게 끊겨버렸다. 그 이유는 불신(不信) 때문이다.지금과 같은 교육계의 모습으로는 우리는 그 어떤 희망도 이야기할 수 없다. 희망은커녕 조만간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희망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절망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정말 방법이 없을까?그 방법을 필자는 관계에서 찾았다. 기초가 허술한 모래성은 곧 무너진다. 우리 교육계가 무너진 이유는 불신으로 교육 요소들 간의 관계 선이 끊어졌거나 엉켰기 때문이다.그래서 필자는 관계의 가장 기본인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서 필자는 어떤 부모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2020년에는 덜 미안한 부모가 되기 위해, 또 교육 불신의 중심축이 된 끊겨버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선이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음 글을 등대처럼 밝힌다.“부모에게는 세 가지 겸손이 필요합니다. 아이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겸손,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겸손이지요. (중략) 부모가 겸손할 때 아이는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서천석, 『하루 십 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2019-12-25

청년의 니즈, 현장에서 찾는다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실장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추진되고 있는 청년정책은 저출산·고령화 정책과 맞물려 있다. 아동가족수당, 무상교육 확대, 사교육비 경감, 신혼부부 주거 마련 부담 완화 등을 통한 다양한 정책이 함께 추진되고 있다.산업화 주역인 제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게 되었다. 이후 제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는 현재 사회 중추를 이루는 세대이며, 급격한 사회 변화와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다.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속에서 성장했으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다.현재 청년은 이들 세대들과는 달리 삶의 다양성과 여유와 같은 가치관을 중요시한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지식과 정보가 넘쳐는 나지만 과거에 비해 청년의 사회 진입 기회는 오히려 위축됐다. 무조건 아끼고 저축하기보다 의미 있는 경험과 소비를 지향하며, 일방적으로 기업을 권유하거나 단편적인 지원으로 취업을 유인하는 정책은 이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판단된다. 청년의 가치관이 다른 세대에 비해 다른 니즈가 있으므로 눈높이에 맞은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청년에게 일자리만이 문제가 아니라 이들의 가치관을 이해해야만 하는 고민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히 각 영역별 분절적인 이해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가 담길 수 있는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첫째, 취업지원 네트워크를 마련하여 맞춤형 취업알선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세분화한 맞춤형 취·창업알선 특화프로그램을 지원하여 2030 타깃으로 취업을 적극 지원하는 기업경영 및 행정지원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둘째, 소통과 공감의 어려움이 단순한 자존감 상실, 우울·불안 등 개인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의 정신질환으로 확대될 수 있고, 이러한 정신질환이 은둔형 외톨이, 묻지마 범죄 등으로 이어짐에 따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때문에 정신건강 온라인 자가검진 사이트 개설 및 운영, 자살 위기자 및 고위험자 조기발견을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 확대해야 할 것이다. 학교, 직장 등으로 찾아가는 정신건강 예방교육 실시, 박람회, 축제 등에 찾아가는 블라인드 정신건강 상담 서비스 강화, 자살 시도자나 사망자의 유가족이나 친구 등을 중심으로 집중관리할 필요가 있다.셋째, 문화에 소외된 청년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여가문화 참여 독려와 문화체험기회 확대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생활체육 프로그램의 이용료 할인 혜택과 문화바우처제도를 확대 적용하여 여가문화 참여활성화를 지원한다.그리고 문화 형성에 필요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문화 채널 플랫폼(UCC, SNS, 공모전 등을 실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화정보 공간을 청년에게 공유 및 제공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대여하여 청년이 직접 공간을 구성하고 계획을 마련하는 기회 제공도 필요하다.

2019-12-23

인생은 하나의 긴 인용문

김현욱 시인올해 읽은 책들의 목록을 살펴본다. 부지런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성에 차진 않는다. 허생처럼 두문불출 7년 동안 책만 읽고 싶다. 과연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냥 행복할까? 솔직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뭔가 또 다른 것을 바라겠지. 1년 동안 딸에게 읽어준 그림책, 동화책을 포함하여 참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에 밑줄을 그었다. 밑줄 친 낱말이나 문장, 문단은 워드로 작성해서 갈래별로 모아둔다. 월동 준비를 하듯 차곡차곡 마음에 모아둔다. 겨우내 어쩌면 사는 내내 두고두고 꺼내어 쓴다. 마음의 양식이란 말은 헛말이 아니다. 좋은 문장은 좋은 음식과 같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몸에 피와 살이 되듯 좋은 문장을 읽으면 영혼에 빛과 온기가 돈다. 올 한 해 만난 좋은 문장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에서 만난 불편한 진실이다. “현대 정신의학은 삶에서 예상되는 많은 문제는 알고 보면 화학적 불균형으로 인한 정신 장애이므로 약을 먹어서 해결하라고 세뇌하는 쪽으로 너무 많이 나갔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어째서 우울증인가.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의 우울과 불안을 뇌신경 전달 물질의 불균형이 초래한 우울증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는 비정하고 무책임하다.”메리 파이퍼의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란 책은 읽고 또 읽은 책이다. 다독(多讀)보다 더 좋은 것은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재독(再讀), 삼독(三讀)이다. 책이 너무 좋아 아끼는 지인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선물했다. 고 장영희 교수의 스테디셀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처럼 서재에 두고 오래 읽을 책이다.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은 읽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비극은 아름다운 어떤 존재가 성장하고 싶어 하는데 다른 어떤 존재가 그것을 저지할 때입니다.”흐로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대담을 정리한 보르헤스의 말이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은 ‘지옥’에 관한 보르헤스의 관점이다. “지옥에 관해 말하자면, 난 지옥이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지옥을 장소라고 여기는 이유는 단테를 읽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난 지옥을 상태라고 생각해요. 영혼은 스스로 지옥이나 천국에 이르게 되죠.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혼은 그 스스로를 거치면서 지옥이나 천국이 되는 거예요.” 언젠가부터 나도 천국이나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해왔다. 논어 위정편에서 ‘불혹(不惑)’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마흔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지만, 그것 또한 특정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여긴다. 보르헤스의 영웅 에머슨은 “인생은 하나의 긴 인용문”이라고 말했다. 남의 글과 말에서 인생의 지혜를 배운다. 12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맵찬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다. 두문불출, 책 읽기 참 좋은 계절이다. 밑줄 긋기 딱 좋은 계절이다.

2019-12-22

통일로 가는 길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우리가 이 노래를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울 당시에는 남북통일이 상당히 절실한 과제였다. 남북의 분단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한 천만 이산가족의 생살을 찢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 겨레가 둘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벌였다는 건 천추의 한으로 남을 비극이었다. 노랫말처럼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루어야 할 민족의 숙원이 통일이었다.분단이 된지 70년이 지나도록 줄곧‘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했지만 아직도 통일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다방면으로 통일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확인된 것은 북쪽의 김일성 왕조가 건재하는한 통일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으로선 김정은 일당의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는 통일에 대한 온갖 논의와 수고가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통일은 물론 핵무기의 포기조차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것이 김정은의 처지다. 김정은에게 핵을 포기하라는 것은 무장 강도에게 흉기를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무장 강도가 흉기를 내려놓는 순간 그를 기다리는 것은 쇠고랑과 교수대뿐인데 어찌 쉽사리 항복을 하겠는가. 북한 주민을 다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버티는 데까지 버텨보는 수밖에 다른 대책이 없을 것이다.북의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거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은 곧 자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김정은이 적화통일을 노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언감생심이다. 완전히 꼭두각시가 된 2천 5백만 북한 인민들도 감당하기 벅찬데, 민주화투쟁의 역사를 자랑하고 전직 대통령들도 감방으로 보내는 대한민국 5천만 국민까지 통치하겠다는 꿈을 꿀 수가 있겠는가. 그런즉 김정은이 말하는 통일이란 위장술일 뿐이다.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이니 남북공동선언이니 하는 것도 시간과 돈을 벌기 위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순진한(?)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했던 김정은과 문 대통령의 판문점 도보다리의 만남도 그렇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속셈을 모른 채 그런 기획을 했다면 완전히 농락을 당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사기극의 공모자인 것이다. 그 때는 몰랐더라도 지금쯤은 눈치를 챘을 것이다. 아직도 사태파악을 못했다면 그것은 무지몽매의 차원이 아니라 정신상태를 의심해야 할 일이다. 무엇에 홀린 듯 이 정권은 임기의 절반이 지나도록 오로지 김정은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는 데만 집착을 해왔다. 그 결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무리수를 남발하여 정치, 경제, 외교, 안보를 파탄지경에 빠트렸다.통일로 가는 길에 무엇이 가장 걸림돌인지는 자명하다. 외부의 힘에 의한 제거가 어렵다면 내부의 봉기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대화와 협상의 문을 열어 놓더라도, 암암리에 북한의 인민들이 김일성 일족의 주술에서 풀려나 세습독재에 저항하는 세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전력 지원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최선일 것이다.

2019-12-19

12월에 읽는 10월 시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중략)//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세영, ‘시월’)지난 10월을 건너면서 필자는 매일 ‘시월’을 읽었다. 아름다운 이별과 잃어가는 연습이라는 두 단어가 힘겨운 10월을 견디는 힘을 주었다. 참 어수선했던 나라, 올해만 살고 말 것처럼 숨 막혔던 집회의 대한민국 2019년 10월! 절망의 10월을 넘어오면서 필자는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을 상상했다. 그 만남은 안정되고 희망찬 12월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은 허상이 되었다. 10월을 데자뷰 하듯 광장은 또 시끄럽다.오로지 집권 연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과 다시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사생결단을 하고 있는 사람들! 대한민국 정치엔 이 두 부류의 사람들 말고 오롯이 국민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다. 패스트트랙이고 뭣이고 이 나라 정치인들이 하는 모든 짓은 자신들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한 정쟁(政爭)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그런데 아픈 것은 이 나라 정치야 태생부터가 국민과는 별개로 정치인 자신들의 영욕을 위한 싸움의 장이라고 치더라도 교육은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이다. 정치판에 구속된 교육의 모습이란? 교육 전문가도 아닌 대통령의 감정적인 말 한 마디에 교육 시스템 전부가 바뀌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육 판에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고등학교 정문은 물론 골목마다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가로펼침막이 내걸렸다. 대상 학교는 S대학교! 축하할 일이고, 축하받을 일이다. 그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을지 알기에 필자도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그러면서 필자는 생각한다, 정말 이 나라 초중고 교육의 끝이 어디인지? 그 끝을 이야기 해주는 말이 있다. “서, 고연, 서성한, 중경외시, 건홍동 ……” 필자도 오래 전부터 씁쓸하게 이 말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노래하듯 해오고 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 말은 없어지기는커녕 더 큰 생명력을 얻고 있다.이 나라 학생들은 역사 속 임금 순서보다 이 말을 더 절실히 외우고 있다. 이것이 마치 이 나라 교육의 종착지인 양 생각하고 무조건 앞쪽에 들기 위해 올인한다. 만약 들어가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다시 공부해서라도 순서를 당기려 애쓴다. 학생들의 희망과 행복지수, 출산율 등 이 나라 교육은 참 많은 것을 잃었다. 시에서는 “잃어 간다는 것은/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나라 교육은 언제 즈음 성숙의 반열에 올라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게 학교에서 자신과 나라의 밝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올해가 이런데 내년이야? 희망 없는 내년을 맞이해야 할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만 한 연말이다.

2019-12-18

소통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12월은 여느 달보다 모임이 많기 마련이다. 공적인 성격을 띤 단체는 의례히 한 해의 결산을 해야 할 것이며 사적인 모임이라하더라도 이런저런 의미를 붙인 마무리가 거의 12월에 집중된다. 특히 송년회는 빠지기도 찜찜하여 일일이 참석하다보면 피로감이 쌓여 일상이 불편할 지경이다. 쌓여가는 송년의 피로 중에도 더러는 휴식 같은 모임도 있다.며칠전 40년 지기가 되어버린 후배가 카톡으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아트팜 송년파티에 초대합니다.” 과수원 냉장창고를 리모델링한 작업실을 ‘아트팜’이라 이름붙이고 가끔씩 지인들을 불러서 예술행사를 벌이는데, 송년회에 초대되기는 처음이다.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클래식기타 연주에 심취해 있었는데, 귀에 익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비롯하여 이문세의 ‘행복한 사람’으로 연주를 마친 팀은 놀랍게도 포스코 사원이라 소개되었다. 푸짐하게 준비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하다 다시 음악감상 시간을 가졌는데, 해설을 곁들인 희귀음반 감상이었다. 일본의 시라토리 에미코를 시작으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주디 씰의 앨범이 소개되었고,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브라질의 재즈싱어 마르시아 로페즈 등 격이 다른 음악이었다. 음악은 국적과 언어를 넘어 감동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케 하였다.옆 자리에 앉은 이가 스스럼없이 얘기를 건넸다. 분명히 일본, 미국, 브라질 등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의 음악을 들으며 이렇게 소통이 되는데, 얼마 전 라오스 여행에서 한국사람을 만났는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웃었다. 충청도 출신인 한국인이 베트남에서만 난다는 향료인 ‘침향’을 팔고 있었는데, 경상도 사람인 이 양반이 “그거 빠사 무도 돼요?”라고 물으니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듣지를 못하더라는 얘기였다. 물론 심한 사투리 탓이긴 하나 한국인간에도 한국말로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다.소통이 화두인 시대이다. 온갖 방식으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세상에 여전히 불통인 경우도 허다하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도시의 미래는 청년문화가 좌우한다. 문화는 그 특성상 뿌리 내리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반드시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포항시도 청소년문화센터의 건립 등을 통하여 청년문화의 계발과 청년창업에 집중하고 있다. 포항예총에서 청소년들의 꿈과 재능을 키우기 위하여 ‘틴틴페스티벌’이라는 청소년공연예술축제를 위한 예산을 신청했는데, 시의회 심의에서 예총회원들의 연령이 높으니 청소년문화를 이끌 수 있겠는가를 걱정하며 예산을 배정해도 이벤트사에 위탁하지 않을까를 우려한다고 들었다. 당연한 염려이다. 그러나 이 일은 누가해도 해야 한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 예총회원들의 연령이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천명 회원 중에는 젊은 회원들도 많다. 그리고 청년문화를 꽃피우는 주체는 청소년들이지만 문화제공자는 기성세대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올바르게 운영하느냐 일 것이다.진정한 소통은 무조건 믿고 보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남이가’ 하는 패거리 문화도 아닌 공감과 경청에 기반한 쌍방의 소통일 것이다. 문화예술인들도 시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때이다.

2019-12-17

학과와 전공에 대한 디지털 시대의 논리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바야흐로 대학 정시모집기간이다. 수험생들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지원할지 실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오늘날의 대졸 취업준비생들은 단군 이래로 최대의 스펙을 갖추고 있다지만 막상 취업은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취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학과와 전공의 선택이다. 옛날에는 다니는 대학을 그만 두지 않은 이상 입학 시에 선택한 전공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대학에서 전공을 바꾸는 제도인 전과 제도, 그리고 한 개 이상의 전공을 더 이수할 수 있는 복수전공 제도가 있다. 옛날부터 있어온 부전공 제도도 여전히 존재한다. 다른 대학교로 편입하는 기회도 과거와는 달리 많이 제공되고 있다.대학의 입장에서도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이던 학과의 명칭과 전공의 개념도 많이 변화하였다. 일반적으로 과거 대학의 조직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농학, 사범대학, 법학, 의학으로 구분되었고, 각 단과대학의 개별 전공들이 독자적으로 하나의 전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가령, 기계과는 기계과, 자동차과는 자동차과와 같이 각자 독자적으로 운영되었고, 영어영문과, 중어중문과와 같이 어문계열의 경우, 문학과 어학을 위주로 학과의 명칭이 구성되어 운영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융복합의 시대에서 외국어와 관광, 항공 서비스와 무역을 결합한 새로운 이름의 학과가 생겨나고, 전기자동차, 드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과 같은 키워드를 학과 명칭에 포함한 학과와 전공이 속속 출현한다. 아울러 학교별 특성화에 따라 특색 있고 전문성을 지닌 다양한 전공을 제시하면서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이제는 학과와 전공에 관한한 학생도 생물(生物)이고 대학교도 생물(生物)이어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해야만 한다. 필자가 항상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전공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전통적인 학과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오늘날 우리 사회는 융복합을 지향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나의 전공에 자신의 적성과 희망, 그리고 특기를 살리기 위해 전과를 하거나 복수전공, 부전공, 연계전공, 자기설계전공 등을 결합해서 융복합적인 전공 지식을 형성하면서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가 추천하는 전공은 소프트웨어공학이다.또한 막상 공부하고 싶은 전공이 없거나, 딱히 들어맞는 적성이 없다면, 소프트웨어공학, 또는 관련 전공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소프트웨어공학은 문과생들도 접근하기에 비교적 무난한 전공이다. 문과생이든 이과생이든 각자 자신의 전공에서 소프트웨어공학을 접목한다면, 단순한 산술적 합이 둘이 아닌 더 이상의 시너지를 발휘하게 된다.너도 나도 소프트웨어를 전공하면 그 분야에는 인력이 넘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각자의 전공과 전산의 융복합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 ‘Atom’의 아날로그 세계와는 달리 ‘Bit’의 디지털 세계에서는 공유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능하다. 디지털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2019-12-16

사진, 그 추억의 갈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유사(有史) 이래 인류는 기호나 그림으로 기록을 남겼다. 대상을 본뜨거나 의미를 전달하는 회화(繪畵)문자 체계를 고대 이집트 등지의 그림문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글이나 그림을 쓰거나 그리고 새긴 흔적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기록의 산실이라 했던가?시간은 기록이 되고 기록과 사진은 역사가 된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흐려지고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생각을 적어두거나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사진 등으로 남겨두면 소중한 추억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일상을 속속들이 일기처럼 적거나 사진으로 남기면서 자신의 삶을 풍부하게 가꿔 나가는지도 모른다.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현대인의 생활은 그 면면이 찍히고 사진기록으로 남겨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령 여행을 한다거나 행사에 참관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하는 등의 소소한 순간들을 폰카메라를 이용해 손쉽게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사진과 사연을 알리고 함께 나누며 관심과 소통, 안부와 공감으로 인맥과 관계망을 넓혀나가는 양상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각박하고 스피디한 정보화시대에 친구나 지인 등을 자주 만나 담소할 수 없으니 온라인 상에서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교감하는 것도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 아닐까 싶다.1990년대 말 디지털카메라가 본격 보급되기 십 수년 전부터 필자는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서 친구들의 결혼식이나 자녀들의 성장과정 등의 사진을 거의 도맡아 찍어왔다. 오죽했으면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 시인이 필자 더러 ‘인연을 인감도장처럼 찍는 찍사다’ 라고 표현했을까? 살아오면서 몇 차례 이사를 했지만, 지나칠 정도로 숱하게 찍어 인화해둔 사진들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창고 한 켠에 두어 박스 정도 쟁여져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수시로 그 빛바랜 사진들을 몇 장씩 꺼내 본인들에게 전해주니, 그렇게도 좋아하고 감격(?)해마지 않았다. 사진을 매개로 옛적을 회상하며 세월의 여울을 더듬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일상의 편린(片鱗)을/사진으로 켜켜이//기록영화 찍듯이/누리고 공유하는//저마다/기억의 곳간에/별로 뜨는 망울들’ -拙시조 ‘추억의 갈피’ 전문(2019)-현재 사진은 시각적인 언어로, 창조적인 예술로 생활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사진으로 남겨놓으면 거기에 담긴 풍경이나 인물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가 시간에 버물려지면서 스토리가 되고 작품이 된다. 사진 속에서는 아련한 옛날이 망각의 저편에서 넌지시 손짓하기도 하고, 무언의 얘기꽃이 새록새록 피기도 하며, 아린 그리움 속에 엷은 감미로움이 안개처럼 깔리기도 한다. 순간은 영속의 실재(實在)이듯, 찰나의 순간을 담는 사진이 시각 정보로, 예술로, 기록으로서의 쓰임새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렇듯 사진은 우리 삶의 각인이고 여운이자 기억의 곳간에 별로 뜨는 추억의 갈피이리라.

2019-12-15

초겨울 숲에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야산을 밀어 만든 아파트 단지에 아담한 공원이 있다. 새로 나무를 심어서 조성한 공원이 아니라 원래의 산 일부를 그대로 보존한 공원이다. 키 큰 교목들로는 소나무도 더러 있지만 참나무들이 대부분이어서 여름에는 그늘이 좋고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이 좋다. 참나무도 종류가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밤나무를 비롯해서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가 대부분이다. 잎이나 도토리의 모양과 크기, 나무껍질의 모양으로 구별을 하는데 이 공원에는 상수리나무가 주종이고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도 더러 보인다.큰 나무 밑에는 어린 참나무들과 싸리, 개옻나무, 아카시아, 청미래, 인동덩굴, 찔레, 억새 등이 덤불을 이루고 있다. 산책로 오솔길 가에는 풀을 벤 자리에 파랗게 새로 자란 풀과 뒤늦게 꽃을 피운 쑥부쟁이가 추위에 떨고 있다. 얼핏 보아서는 어지럽게 무질서한 풍경 같지만 인위적으로 가꾸고 다듬은 공원보다 오히려 편안한 기분이 든다. 고층아파트 단지 안에 이렇게 자연생태계를 그대로 유지한 공원이 있다는 건 여간 흐뭇한 일이 아니다.초겨울의 숲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바싹 마른 잎을 달고 있는 참나무들이다. 키 큰 나무들은 거의 다 낙엽이 졌는데, 어린나무들은 대부분 마른 잎을 그대로 달고 있다. 상록수가 아닌 활엽수들이 마른 잎을 단 채로 월동을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산책로 가의 벤치에 앉아 그 까닭을 생각해보다가 문득 ‘바스락거리기 위해서’라는 답을 떠올린다. 아직 어린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로 삭풍의 겨울을 견딘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혹독할 것 같다. 사람들도 몸살이 나서 삭신이 쑤시고 아플 때 신음소리라도 내면 견디기가 조금은 나은 것처럼 채찍으로 감기는 매운바람 앞에서 바스락 소리라도 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스스로 대견할 정도로 그럴싸한 추측인 것 같다.다분히 감성적인 상상을 하며 숲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보다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관목들과 덩굴들이 뒤엉킨 덤불숲 밑에는 마른 나뭇잎을 바람막이로 월동하는 풀뿌리나 벌레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후자가 더 당위성을 갖는 결론일 것 같지만, 전자를 아주 버릴 생각은 없다. 세상의 이치란 그렇게 사실적인 당위로만 따질 일이 아닌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바람막이가 되기보다는 바스락거리기 위해서 마른 잎은 달고 있다는 것이 더 절실하게 와 닿는 결론일지도 모른다. 초겨울 숲에서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상념에나 빠져 있는 것도 한갓 부질없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또 한 해가 저물도록 대한민국의 정세는 시끄럽고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거짓과 위선과 탐욕과 망집으로 얼크러진 실타래를 쾌도난마 할 묘책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천심이라는 민심도 떨어져 뒹구는 가랑잎처럼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던가. 이 나라의 권력자와 위정자들을 모두 겨울 숲으로 데리고 가서 온종일 찬바람에 가랑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듣게 하면 어떨까. 미세먼지처럼 자욱한 인간사의 소음 너머로 무엇이 참인지 보일 때까지.

2019-12-12

달나라 교육(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어찌 이 나라 교육은 시간이 갈수록 달나라로 가고 있을까! 정말 우리 교육이 달나라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나라 교육은 설령 우주과학 기술이 발달해 우리가 달나라에 간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곳에서 의미도 없는 줄기세우기 식 시험을 볼 것이 확실하기에 달나라 교육이라는 말도 참 조심스럽다.요즘 교육계 돌아가는 꼴을 보면 휘황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휘황(輝煌)하다’의 뜻을 사전에서는 “행동이 온당하지 못하고 못된 꾀가 많아서 야단스럽기만 하고 믿을 수 없다.”라고 정의하고 있다.필자는 휘황(찬란)하다는 단어를 아는 게 너무도 다행스럽다. 왜냐하면 지금 이 나라 교육이 돌아가는 꼴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묻고 싶다. 이 나라에는 교사가 있는지? 물론 필자의 이 말에 분노해 하며 나는 교사다고 말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는 교사는 그런 학교 직장인이 아니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참으로 학생들을 위하는 스승을 말한다.한 때 우리 교육에는 스승이 많이 계셨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제자를 살리시는 스승의 노력 덕분으로 아무것도 없는 이 나라가 그나마 지금의 모습까지 올 수 있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한 때 이념 운동을 한 이데올로기 집단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의 스승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스승들을 우리는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우리 교단에는 스승이라는 단어가 사어(死語)가 된지 오래다. 몇몇 단체에서 스승 상을 주고는 있는지만, 과연? 필자가 기억하는 스승은 필자에겐 달과 같은 분이셨다. 스승께서는 어두운 밤길 당신을 태우셔서 기꺼이 필자의 길을 밝혀주셨다. 이 나라의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길이 되어 주시기도 하셨지만,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셨다. 한 때이지만 그나마 이 나라 교육이 정부 하명과 같은 심한 외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이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키울 인재를 양성해서 사회로 배출시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스승들께서 몸으로, 정신으로 그 외풍을 막아주셨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거의가 YES를 외치는 교사들뿐이다. 그저 교육부 하명이 떨어지면 그것을 따르기 급급하다. 그러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다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의를 말 할 수 있을까? 설사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우리의 말을 얼마나 믿을까?이 나라 교사들에게 묻는다. 다음과 같은 교육부의 하명이 우리 교육에서 정말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부모나 사교육의 영향력이 학생부 생성 단계에서부터 개입되어 학종의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이에, 정규 교육과정 내에서 교사가 학생의 학교생활을 직접 관찰·평가·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함으로써 학종의 공정성을 높이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자 합니다.”12월, 달나라로 가는 교육을 막지 못하는 마음이 시리다.

2019-12-11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소속감과 애정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으며 이 욕구에는 위계가 있어서 하위 욕구가 만족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를 추구하고 어렵다고 한다. 식욕, 수면욕, 배설 등 생리 욕구가 가장 기초적인 욕구이며 이 욕구가 충족되면 위험이나 고통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소속과 애정 욕구, 사회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존경 욕구, 마지막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아실현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욕구 이론은 연령이나 성, 인종을 초월해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은 육아에도 적용된다. 아이를 지도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생리 욕구와 안전 욕구가 충족되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하고, 아이와 성인과의 관계에서 충분한 애정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행동하게 된다. 아이들은 인정받고 싶으나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 서툴러서 못할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대부분의 경우는, 행동의 한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어른의 지도 방식이 일관되지 않을 때이다. 같은 행동도 어른의 기분이 좋고 나쁨에 따라 허락되거나 허락되지 않을 때 아이는 혼란을 느낀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에게 허락할 수 있는 행동의 경계를 명확히 알려주고 일관되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 일관되어야만 아이도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예측이 가능할 때에 상황에 대한 통제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아이를 인정하기 위해 우리 어른들이 하는 칭찬 중에 비효율적인 칭찬이 있다. 비효율적인 칭찬의 예로는 “네가 최고야”처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는 칭찬이 있고, “착하구나”와 같이 착함의 기준이 상대적이고 모호한 칭찬 등이 있다. 남들과 비교하는 대신, “어제는 나무만 그렸는데 오늘은 나무에 매달린 사과까지 그렸구나”처럼 지난 날보다 현재 아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본 지면에서 아이를 인정하는 방법 중 하나를 공유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긍정적인 자아상 만들기이다. 긍정적인 자아상 만들기는, “너는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색연필을 친구에게 빌려주는구나”처럼 “너는 어떠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행동하는구나”라며 아이에게 바라는 모습을 담아 칭찬하는 방법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꽃’처럼 아이를 꽃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불러줄 때 아이는 그렇게 성장할 것이다. 언어도 습관이어서 쉽게 바꿀 수가 없고 연습이 필요하다.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아이를 인정하는 말을 적어보자.

2019-12-10

교육개혁과 관료주의와 일선교사

조현명 시인교육개혁을 바라보는 일선교사의 생각은 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외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정책과 시스템은 교육부라 이름하는 교육 관료주의로 이루어져 있다. 항상 그 시스템의 말단에 서있는 일선교사가 교육 개혁의 대상이며 개혁 실행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개혁에서 소외가 될 수밖에 없다.결국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정책으로 전환되는 악순환을 경험한다. 일선교사는 그러므로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관료주의 시스템이 단단하게 구축되어있다. 마치 검찰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촛불까지 켜들고 하지만 잘 안 되는 것과 같이 교육 관료주의 또한 만만치 않다.전국단위의 연수회에서 교육부 행정 사무관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에 대한 질의 응답시간이었는데, 갑자기 “학교에서 고3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편성 실행하고 있습니까? 전부 수능에 맞추어 왜곡 변경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해서 듣고 있던 교사들이 술렁거리기도 했다. 행정 사무관 한사람의 협박에 모든 학교와 선생님들이 죄인이 되어버린 현장이었다. 사실은 교육부가 만들고 해마다 땜질식으로 바꾸어놓은 입시제도에 의해 교육과정이 왜곡되고 있는데도 그 잘못을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에서 나는 처음으로 교육 관료주의가 이런 것이구나 통감하게 됐다.20년 시차로 우리사회가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동경대에 들어가기 위해 7수, 8수를 하던 경쟁과 사교육을 그대로 닮았고, 이후 유도리(여유)교육으로 공교육이 황폐화된 것도 닮았다.현재 일본은 ‘국제 바칼로레아(IB)’를 공교육에 도입,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혁명적인 교육개혁을 실행하고 있다. 그것도 대구, 제주 교육청이 따라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부도 시차를 두고 따라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일본에는 문부과학성이 있고 우리나라에는 닮은꼴의 교육부가 있기 때문이다. 관료주의는 두 나라가 뼈 속까지 닮았다.교육개혁은 관료주의의 조직 하에서는 단언컨대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적이려면 일선교사들의 공감을 얻어야하는데,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고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5년 주기의 정권하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교육개혁이란 만병통치약을 믿으면 안 된다’ 라고 선언한 ‘다이안 래비치’ 같은 교육학자도 있다. 그는 대안으로 ‘풍부한 교육과정과 충실한 수업’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일선 교사들의 입장에서 학생의 변화와 깨달음이 목표이지만 학생들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매년 목도한다.어쩌면 ‘수업을 통해 더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관료주의 안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 일선교사는 정작 교육개혁에 소외되는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매일매일 학생들에게 소외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교사의 일상과 진로를 방해하는 관료주의에 맞서기보다는 묵묵히 ‘풍부한 교육과정과 충실한 수업’을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9-12-09

멜랑콜리아와 군자불기

김현욱 시인동네 취미 미술 학원에 등록해서 가장 먼저 그린 것은 내 왼손이다. 왼손을 관찰해 그려보라는 미술학원에서의 첫 번째 과제는 내가 그동안 반 아이들에게 시 쓸 때 주변 사물이나 사건을 잘 관찰해서 써보라는 것과 같은 주문이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잘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내 왼손을 그렸다. 다 그린 후 미술 선생님이 유심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손과 스케치를 잘 비교해보세요. 다르지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하는데 현욱 씨는 머릿속에 있는 손을 그렸네요. 검지를 자세히 보세요. 약간 굽어있는 부분이나 굵기, 손톱 모양이 닮았지요? 검지는 다른 손가락과는 다르게 잘 관찰해서 그렸어요.”두 번째 수업은 사진을 거꾸로 놓고 따라 그리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수업이 머릿속에 있는 관념을 그리지 말고 눈에 보이는 대로 유심히 대상을 관찰해서 스케치하라는 주문이었다. 글쓰기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머리로 꾸며 쓰지 말고 보고 들은 것을 솔직하고 자세히 써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요즘 미술 관련 연수를 들으면서 르네상스 최고의 발명품은 안경, 나침반, 현미경, 인쇄술, 총, 지도 같은 것이 아니라 원근법이라는 얘기가 솔깃했다. 원근법은 거리감 있는 현실 공간을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평면 위에 구성, 재현하는 기술이다.원근법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태도 세 가지를 들었는데, 첫 번째는 세계를 관찰하는 고정된 시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화나 신학이 아닌 경험주의적 태도로 세계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태도를 갖게 됨으로써 근대 과학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여러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이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원근법은 기하학에 대한 이해가 광학으로 이어져 미술의 표현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3차원을 2차원 위에 옮겨 놓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바로 원근법이다.15세기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멜랑콜리아 I’에 그려진 인물과 소품이 참 흥미롭다. 날개를 단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이 컴퍼스를 잡고 앉아 있다. 주변에는 원구, 톱, 대패, 망치, 시계, 저울, 종, 마방진이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수학적, 과학적 탐구와 예술적 표현이 서로 융합된 시기였다. 문학, 철학, 역사, 과학, 수학 등의 학문을 구별하지 않았다. 논어 위정편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는 한 가지에만 쓰는 그릇이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맵찬 겨울바람처럼 수능 점수가 발표됐다. 고3이든 중3이든 학생들은 진로를 고민할 것이다. 취준생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날개 달린 르네상스 사람, 여러 그릇으로 쓰일 수 있는 군자가 되고 싶으면 문과, 이과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소신대로 선택할 일이다. 실패와 절망이 후회와 눈물이 결국에는 거름이 되는 게 인생이니까.

2019-12-08

공부의 즐거움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유가 경전인 논어의 첫머리에 나오는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요즘 말로 공부를 한다는 것일 터인데,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공자님도 공부를 한다는 것과 또 그것을 기쁘게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학창시절의 학생들이나 하는 것이 공부요, 지긋지긋하지만 입시나 취직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공부라는 보통사람들의 통념과는 많이 다른 말씀이다.현생인류를 분류학상 학명으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 한다. 우리말로 ‘슬기슬기사람’이라고도 하는데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될 것 같다. 인류가 다른 영장류에서 갈라져 나온 원인이 바로 공부하는 특성과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사람노릇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세상이 복잡다단해질수록 해야 할 공부도 그만큼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우선은 생업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보통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각종 시험에 높은 점수를 받고 더 좋은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보장 받는 건 아니라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소위 출세를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남보다 많은 재물을 모으고 높은 지위에 올라간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전락해서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남에게 고약한 갑질을 하거나 자기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치고 부정부패를 일삼거나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문학적인 소양의 부족에서 나오는 행태라고 봐야 할 것이다.사람다운 사람으로 살려면 평생을 두고 덕을 쌓고 교양을 갖추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인문학적인 공부다. 인문학이 보통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일컫는다. 그것을 통해 폭넓고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삶의 진실을 깨치는 것이 인문학적인 공부다. 물론 예술과 종교를 통해 심미안과 영성을 함양하는 것도 인문학의 영역이라 할 수가 있고.요즘은 참 공부하기 좋은 시절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무슨 공부든 손쉽게 할 수 있는 세상이다. 휴대전화기 하나면 세상의 온갖 정보에 접속할 수가 있는 데다 유튜브(Youtuve) 같은 동영상으로 각계 석학들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음악과 미술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문학과 철학과 역사와 종교에 이르기까지 혼자서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세계를 두루 여행하면서 인문과 자연을 배우는 것도 어렵지 않은 시절이다.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은 시류에 휩쓸리거나 편견과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는다. 복잡하고 혼란한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 편향된 진영논리나 당리당략 따위에 인생을 걸지 않는다. 기쁘고 정의롭지 않은 것은 공부가 아니다.

2019-12-05

12월 학교 하명 - 시험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1학기 때는 여유롭게 지내나 했는데, 2학기 오면서 내신 준비시킨다고 시험도 치고 있어요. 예민해지고, 친구와 갈등도 잦아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지난주부터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해요. 병원에서는 학교 스트레스래요. 아이 키우기 힘드네요.”지난 주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020 학교설명회가 있었다. 지난 여름에 이어 전국에서 많은 학부모께서 학생의 행복 교육을 찾아 학교를 방문해 주셨다. 설명회가 끝나고 경기도에서 온 학부모께서 교무실 자리에 앉자마자 폭풍 같은 한숨과 함께 쏟아낸 이야기이다. 그 날 참가한 많은 중학생의 학부모와 이야기를 했는데, 공통점은 자유학년제의 배신이었다.“학생들의 꿈과 끼를 길러준다고요,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아요. 아이들이 이야기합니다, 자유학년제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과연 자유학년제를 운영하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진로를 지도해줄만한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보십니까. 자유학년제와 같은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 할 수 있습니까. 그냥 연수나 이론으로 배워서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게 무슨 교육입니까? 자유학년제에 해당하는 학년의 자녀를 둔 교사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자신들의 아이들을 입시학원에 보내는 게 지금의 교육 현실입니다. 학생들 간의 교육 격차를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자유학년제라는 것을 정말 모르세요!”그 어떤 교육학자보다 더 정확하게 현재 실시되고 있는 자유학년(기)제에 대해 분석하고 있는 학부모의 말에 필자는 그 어떤 부정도 할 수 없었다.자유학년제를 경험해 보지 못한 교사들의 “자유학년제 지도 가능 여부”를 따져 묻는 말은 지금도 필자의 마음에 꽂혀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 지금의 자유학년(기)제는?한 나라의 문화는 곧 그 나라 국민들의 경험치(經驗値)이다. 국민들의 경험 수준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그 나라 문화 수준은 물론 그 나라 모습이 결정된다. 그럼 교육 수준은 어떨까? 그것은 교사의 경험치에 달렸다.우리나라 교사들의 경험치는 어떨까?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형식적으로는 자유학년(기)제다 뭐다 떠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이 성적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 이 나라 교육 수준과 이 나라 교사들의 경험치를 알만하다.교육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교육 문제의 핵심은 소통 부재이다. 근본도 없는 일방적인 교육당국의 하명과 그것을 따르기에 급급한 교사들에게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릴 리 만무하다.교육 문제 해결의 해법은 소통이고,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은 교사들의 경험치부터 넓히는 것이다.인성의 핵심 요소를 말하는 교사들 중에서 진정으로 사랑, 나눔, 배려 등을 실천하는 교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도전정신과 창조적인 삶을 이야기하면서 과연 이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몸소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교사는 몇이나 될까?또 답 없는 답답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시험 맹신자들이 만들어낸 시험 공화국의 학기말 시험 계절 12월, 한국 위기설이 아닌 한국 교육 붕괴설이 곧 현실이 될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이는 12월 첫 주다.

2019-12-04

歲暮의 언저리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어느덧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매듭달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듯한 올해도 또 한 겹 연륜(年輪)의 테를 남기며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기해년에서 경자년으로 시간의 바톤을 이어가며 서서히 세월의 바퀴를 굴려가고 있다.세모(歲暮)의 언저리에 서면 만감이 교차한다. 연초에 다짐했던 계획이나 목표를 어느 정도 실행하고 이뤘는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뢰와 관계는 어땠는지, 고난과 예기치 못한 일들에 직면해서는 어떻게 참고 극복해냈는지, 실로 끊임없이 희비의 쌍곡선이 그려지고 행, 불운의 갈피가 아스라하게 펼쳐지는 듯하다.설레임과 기대로 맞이한 새해의 숱한 나날 동안 별반 이뤄놓은 일도 없이 그냥 보내야 한다면 아쉽고 허전하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무위(無爲)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하루를 나름의 방식과 내용으로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돋보이거나 괄목할만한 일이 아닐지라도 매 순간은 개개인 생활의 단면이고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루 한달 한해를 보내면서 개인이건 조직이건 가시적인 성과나 목표 달성의 정도에 따라 보람과 희열의 체감도가 다르게 나타남은 보편적인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람들이 애써 노력하고 이룩한 결과물이 업적이 되고 내공과 지혜가 더해지면서 사회의 진보와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세월은 무심치 않아 연륜을 쌓고, 인생은 덧없지 않아 경륜을 낳는다고 했던가?12월은 한해를 매듭하기도 하지만 새해를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지나 온 날들에 대한 성찰과 미진함에 대한 점검으로 새로운 날들의 포부와 희망을 가늠해보는 때다.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의 충실함을 일구고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비슷한 이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맘 때가 되면 망년회니 송년회니 모임을 하면서 한 해 동안의 괴로움이나 근심 걱정을 지는 해와 함께 잊고 묻어버리면서, 좀 더 밝고 희망찬 날들을 기약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하루하루 숨가쁘게 살아온 날들에 대한 수고와 감사의 마음으로 주위에 온정을 베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침잠의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가 자신을 위무하며 명상과 관조의 세계에 접어들기도 한다. 그렇게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서 사람들은 한 겹 한 겹 나이테를 더해 가듯이 관록을 채워가며 성장과 농밀함을 더해간다.무슨 일이든지 끝이 좋아야 시작과 과정을 넉넉하게 웃으며 되돌아 볼 수 있다. 물론, 시작이 반이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자체도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결말이 빈약하다거나 흠결이 생기면, 결국 아쉽고 안타깝거나 오점으로 남는 일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숱하게 접해 왔다. 기해년 수묵빛 세월의 여울목에서, 한 달 남짓 남은 올해지만 끝까지 잘 갈무리하여 보다 꿈이 밝고 푸른 의미있는 내년을 준비해보자.

2019-12-03

미국식 예비군제도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대구의 남대구IC에 진입하려면 길게 쭉 뻗은 도로를 한참 지나야 한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구미IC를 지나면, 일반 고속도로보다 더 넓고 곧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만난다. 이들은 과거 공군용 비상활주로였다.필자는 공군 관제장교 출신이라 과거 군복무 시에 전국 비상활주로 좌표를 외우던 기억이 난다. 월배 비상활주로 자리에는 공장과 상가가 들어서 있고, 구미 비상활주로는 가변식에서 고정식 중앙분리대로 바뀐 것 같다.경북에는 영주와 울진에도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군 시절 영주 비상활주로는 자주 갔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변했는지 사뭇 궁금하다.월배 비상활주로와 구미 비상활주로를 지나갈 때면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예비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군사시설에서 해제되어 공장과 상가를 다 지어버렸는데, 언젠가 필요할 때에는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든다.미국은 상비군과 예비군을 복합적으로 운영한다. 이들을 다 합해서 국가방위군 및 예비군이라고 한다.일반 징병제 국가에서 제대 후 편입되는 예비군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절대 다수가 처음부터 예비군이 되는 개념이 존재한다. 미국이 연방국가임에 따라 연방예비군과 주방위군으로 구분되고, 상황에 따라 부분동원과 총동원을 할 수 있다. 2019년 현재, 미군은 상비군의 수가 135만 명, 예비군의 수가 81만 명에 달하며, 비상근과 상근 예비군 제도를 운영하면서 상비군 수준의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대부분의 비상근 예비역은 1년에 대략 보름에서 한달 반 정도의 훈련을 받고, 소수의 상근예비역은 이보다 훨씬 긴 연간 180일의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미국의 예비군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전시에도 동원되는 전력이다.한국은 국민 개병주의로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이지만 요즘 모병제가 대두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모병제는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로 입대하는 직업군인을 위주로 하는 제도라면, 징병제는 국민이라면 무조건 지게 되는 병역의 의무로 군복무를 하는 것이다. 냉전 이후 대체로 유럽의 각국들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하는 추세였으나, 모병의 문제, 비용증가의 문제 등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모병제 도입 논란에 대해 아직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아 중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면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당장에 쓰지 않는다고 민간에 분양해버리거나 고정식 중앙분리대를 설치해서 사장(死藏)시키듯이 예비군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운영하면 어떨까? 미국식 예비군 제도의 도입을 고려해볼 것을 제안한다. 건성건성 애국(!) 페이로 예비군을 운영할 것이 아니라, 현업에 종사하면서 충분한 보수를 지급받는 예비군으로 더블 잡(job)을 뛰게 하면 어떨까? 징병제이든지 모병제이든지, 어느 병역제도를 선택하더라도 미국식 예비군제도는 좋은 보완책이 될 것이다. 특히 인구감소에 따른 병력자원 부족 문제에도 효과적일 듯하다. 무조건 미국의 제도를 따르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시행하는 제도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잘 응용하면 답이 나올 듯하다.

2019-12-02

코주부사,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작은 역사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새 학기가 되면 이름표를 만들고, 체육복과 교련복에 학교 마크, 이름을 새기기 위해 마크사에 가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에 마크사 앞에 장사진을 이루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포항에는 육거리 코주부사, 오거리 고려마크사가 유명했다.세월이 흐르면서 이름표와 학교 마크를 재봉틀로 박음질하던 모습은 흑백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마크사 일감도 크게 줄어 고려마크사는 수년 전에 문을 닫았고, 코주부사는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코주부사는 1953년경 중앙동 국민은행 건너편에 문을 열었다. 상호(商號)는 당시 신문지상에 인기리에 연재되던 만화 ‘코주부’에서 빌려왔다. 그동안 이사를 네 번 했지만, 육거리 인근을 떠나지 않은 육거리 터줏대감이다.중앙아트홀 바로 옆에 있는 코주부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박영준 대표를 만날 수 있다. 1940년생인 박 대표는 1955년부터 코주부사에서 일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건강이 안 좋아 2년 쉬었다가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부터 64년 동안 불편한 몸으로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당시 주인과는 양아들 같은 관계가 돼 1978년 코주부사를 물려받았다.초창기 코주부사는 만물상과 같아 마크, 휘장은 물론, 체육복, 태권도복, 작업복 등 다양한 품목을 다뤘다. 1970년대 호황기에 일감이 몰려들 때는 열 명이 넘는 직원을 두기도 했지만, 이제는 물려줄 사람도 없는 처지가 됐다. 박 대표가 재봉틀을 돌릴 기력이 없게 되면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코주부사에 간간이 활기가 돌 때도 있다. 이따금 일감을 들고 오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이웃 주민들이 찾아와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 구실을 하는 덕분이다.박 대표는 중학생 때 처음 만졌던 일제 주키(JUKI) 재봉틀을 아직도 돌리고 있다. 수많은 학생들의 이름표를 새겼으니 돈을 꽤 벌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면, 아이들 코 묻은 돈을 받았는데 벌면 얼마나 벌었겠느냐며 딸 둘 키운 걸로 만족한다고 답한다.포항 원도심에는 코주부사 외에도 50년 된 포항이발소, 40여 년 된 동아세탁소, 할매떡볶이 같은 노포(老鋪)가 있다. 이 오래된 점포의 주인들은 소소한 기술과 성실한 노동으로 어렵게나마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웠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 톨의 씨앗도 품기 어려웠던 폐허에 힘겹게 실뿌리를 내리며 평생을 보낸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노포의 주인들을 만나 삶의 여정을 들어보면, 진정한 역사는 이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명력이 서로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역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한평생 지켜온 점포가 작은 박물관이고, 이들이 사용해온 재봉틀, 이발도구, 요리도구가 역사 유물이며, 이들이 웃음과 슬픔을 버무려 풀어놓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책이 아닐까. 지역 공동체의 정서와 문화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애틋한 삶을 잘 갈무리해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궁리해야 할 때가 됐다.

2019-12-01

월동준비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겨울이 오고 있다. 벌써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린 곳도 있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다. 그래서 모두들 겨울이 닥치기 전에 겨울나기 준비를 한다.털이 있는 동물들은 방한용 털갈이를 하고, 땅속이나 굴속에서 동면을 하는 동물들도 있다. 곤충들은 대다수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풀들도 보통은 씨앗이나 뿌리를 남기고 말라 죽지만, 살아서 겨울을 넘기는 풀도 상당수 있다. 나무들의 겨울나기가 그중 비장해 보인다. 앙상한 가지로 혹한을 견디는 나무들의 월동전략은 버리고 비우는 것이다. 나뭇잎을 다 떨고 몸 안의 수분까지 최소한으로 줄여서 빙점을 낮추는 것으로 동사(凍死)를 면한다. 잎을 달고 겨울을 나는 상록수들은 어쩌면 더 처절한 전략으로 월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지금의 북한이 그러하듯 우리에게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겨울은 혹독한 계절이었다. 최소한의 생존조건인 식량과 땔감의 마련도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 끼니때면 바가지를 들고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도 동네마다 한둘은 있었다.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북녘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아린 것은 굶고 떨어본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남아돌아 처치 곤란한 옷가지라도 보내줄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은가. 세습 신격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김정은 일당과 그에 동조하는 무리들에게 부디 천벌이 내리기를 바란다.아직도 굶어 죽은 사람이 있다고는 하나 백방으로 노력을 하면 먹고 입는 것의 해결은 가능한 것이 대한민국이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노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누군가 먹고 입을 것을 갖다 주는 나라가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살만하지 않은가. 빈부의 양극화니 상대적 박탈감이니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다지 절박한 사정이 아닐 수 있다. 그 때문에 절망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어리석고 나약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겨울을 견디는 저 나무와 풀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겨울이 되어도 굶어 죽고 얼어 죽을 걱정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제는 겨울이 생존을 위협할 만큼 혹독한 계절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비를 해야 할 것은 계절의 추위보다 개인이 겪는 마음의 추위인 것 같다. 중병에 걸리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사고를 당하는 등의 이유로 극한상황에 몰리는 경우가 겨울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배고픈 게 가장 섧다고는 하지만 배가 고프다고 자살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심리적인 이유가 더 절박할 수도 있는 것이다.며칠 전에도 젊은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 자살자가 연간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의 8할은 우울증이 있는 경우라고 하니 마음의 병, 심리적인 원인이 죽음이라는 극단으로까지 내모는 것이다.마음의 겨울에 대비하는 월동준비가 필요한 시절이다. 무성한 잎들을 다 떨어내고 최소한까지 수분을 내보내 빙점을 낮추는 나무들에게서 배울 일이다.

2019-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