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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

등록일 2019-10-14 20:17 게재일 2019-10-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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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재포항예총 회장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가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긴 장마에도 끝이 있듯이 지루하게 이어지던 더위가 꺾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열린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들고, 새벽녘에는 발치에 두고 자던 이불을 슬며시 턱까지 끌어당긴다. 절기의 변화는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참으로 심오하다. 이제 추분이 지났으니 낮보다 밤이 길어지기 시작할 것이며 곧 월동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미세먼지 스트레스로 하늘 쳐다 볼 일이 별로 없다가 추석 달 보느라 모처럼 올려다 본 가을하늘은 더 없이 높고 공활했다. 아! 이래서 천고마비라 하는구나. 예나 지금이나 하늘 높은 건 반가운 일이지만 마비(馬肥)는 좀 다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살찐 말은 아름답지만 사람의 경우는 기준이 좀 달라서 살을 빼느라 온통 난리법석이다. 살찐 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도 불룩 나온 아랫배가 부의 상징이라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그들을 부러워하던 이 땅의 부모님들 눈에는 학업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오랜만에 만난 자식들은 언제나 ‘얼굴이 반쪽’이었다. 배나온 사장님은 흠모의 대상이었으며, 그가 타고 온 포니자동차가 내뿜는 연기 냄새는 향수보다 매혹적이라 동네 아이들은 자동차 꽁무니를 무작정 따라 뛰곤 했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세상은 놀랍도록 변했다.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고, 배기가스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라 하여 오래된 경유차는 서울시내 진입을 제한할 지경이 되었으니 자동차는 더 이상 자랑이 아니라 재앙일지도 모를 일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가치롭게 여기던 시대가 있었으나 미의 기준도 달라져서 TV에 나오는 아이돌의 얼굴모습이나 몸매는 하나같이 바비인형을 닮았다. 그런 비현실적인 몸매가 선망의 대상이 되자 다이어트 열풍이 불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는 하지만 살 빼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은가 보다. 음식조절과 운동은 기본이고 약물이나 성형수술을 무리하게 하다가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다이어트가 쉽지 않은 까닭이 조상 탓이라는 설도 있다.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가 경작을 시작한지는 불과 1만년 정도에 불과하니, 19만년 동안은 수렵, 채취로 연명했음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사냥에 성공하고 맛있는 열매를 발견해야 먹을 수 있었으니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야 했을 것이고, 많이 먹고 몸속에 저장하여 다시 먹을 때까지 오래 견딜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먹지 않으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인체에는 그만 먹으라는 신호가 한 가지인데 반하여, ‘계속 먹어라’ 하는 신호는 무려 일곱 가지나 되며, 살이 빠지게 되면 위험신호로 인지해 기초대사량을 줄이게 되어 더 이상 살이 빠지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그러니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초인적인 노력을 하거나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다 부작용의 위험을 겪기도 하는 것이다.

멋진 계절 가을, 부작용 없이 다이어트하면서 내면은 부디 풍성하게 살찌우자. 깊어가는 가을밤, 월동준비 하듯 마음의 양식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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