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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③ 소나무와 잣나무

추사 선생은 세한도 발문에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인품과 처세에 대하여 이렇게 칭찬하고 있다. “세상의 인심은 각박하여 오직 권세와 이익을 찾아 나서는데 늙고 힘없이 귀양가 있는 내게 힘을 주는 구나” 태사공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익이 없어지면 왕래가 소원해 진다”라고 했는데 어찌 그대는 그러하지 않으니 태사공의 말이 틀렸다는 말인가!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즉 날씨가 차가워 진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고 하였다. 권모와 술수가 팽배하고 배신과 음모만이 출세의 방편이 되어버린 작금의 이 세태를 한없이 아프게 한다. 권력과 명예 앞에 지조없이 줄지어 서는 소인배들의 기회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을 회초리질 하고 있다. 진실된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 선생은 선생대로 배우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대로 도의를 떠나 모두가 몰지각한 자신의 이익 추구형으로 돌아져 버렸다.늘 사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시시각각으로 닥쳐오는 찰나의 난제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느냐 살아남는 지혜를 찾아 역경 속에 이겨내길 위해 노력하고 견디고 온몸과 핍박된 정신으로 참고 버텨야만 하는 슬프고 가련한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다들 어렵다고 앞다투어 밝지 않는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사람의 믿음과 정신세계는 어디 한 곳 투명하고 쉬운 곳이 없다.삶과 죽음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 사귀는 정분을 알 수 있고 망하고 흥해봐야 사귀는 태도를 알게 되며 귀천을 겪어봐야 사귀는 깊이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말은 멀리 가봐야만 그 힘을 알 수 있고 사람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술 마시고 같이 지낸 친우들도 많지만 진정히 받들어 모실 지조 두터운 두렵고 존경할 사람 있는가.이 시대 소나무와 잣나무의 변하지 않는 지조를 생활 속에서 지혜의 덕목으로 배우고 싶다.안산 송화산 송백을 늘 보고 살지만 나는 어둡고 지견 없어 눈 푸른 납자들의 살아있는 정신처럼 푸른 섬광 드러내고 가르침 주는 지조와 기상을 받아 적지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사는 멍청한 내가 부끄러울 뿐이다.후조당(後凋堂)이라고 현판을 내걸고 사는 그 사람이 궁금해지는 이른 아침이다.솔뫼 정현식서예가·솔뫼서예연구소장

2016-03-18

② 不遷怒 不貳過 (불천노 불이과)

사는 일이 허물투성이다.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잘못에는 이유 많고 지독하게 관대하면서도 남의 잘못에는 쉽게 화를 낸다. 화는 자신의 감정조화에 실패한 다툼이다. 노자(子)는 다툼 없는 부쟁(不爭)의 덕을 강조하였다. 한번 화를 내면 100가지 아니 만가지 장애가 생긴다. 화로 인해 자신을 상처주고 칼로 내 몸을 베는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공자는 옹야 편에서 “화를 내는 것을 넘어서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도 말고 잘못을 거듭 저지르지 않는” 학문 도통제일의 제자 안회(顔回)를 애공(哀公)에게 들려준다. 애공은 물었다. 그런 제자 없나요? 오직 안회뿐이라 했다.화를 낸다는 노(怒)는 노(奴)와 심(心)으로 이루어져있다. 화를 내면 마음의 노예가 된다. 자신이 마음의 노예로 살고 싶은가. 특히 화를 남에게 옮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사람이 살아온 인생만큼 살아갈 시간을 덤으로 준다 해도 잘못을 짓지 않고 살기는 쉽지 않다.살아가면서 점차 고칠 일이다. 나라를 위한다면서 큰 거짓을 하고 작게는 혼자만의 잘못을 짓게 된다. 옛 어르신은 홀로 있을 때 삼가하라고 하셨다.화를 내면 화가 되지만 알아차리면 그만이다. 화는 실체가 없다. 내면으로 승화시켜 볼일이다.육체적인 근육 말고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데 시간과 돈을 투자할 일이다.분노가 일어나는 근본자리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허물을 알고 고치는 일은 공부의 시작이며 그 자리가 완성이다.조용히 앉아 한 호흡 내려놓는 명상이 허물을 고치는 대안이다. 불만과 불평에 대한 감정적인 촉발반응을 그저 순응하고 창문을 열어젖히고 강버들 찾아 한적한 마을 뒤편 길에서 한시름 내려놓아 볼일이다. 세상천지가 마음 열어젖힌 환한 봄날이다.솔뫼 정현식서예가 ·솔뫼서예연구소장

2016-03-11

① 지호락(知好)

한동안 천지가 얼어붙었다. 한 겨울의 엄동설한과 살을 깎는 삭풍을 이겨낸 매화가 막 눈뜨는 참 귀한 봄의 기운이 산천에 익어가고 있다.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은 탐매여행을 떠날 것이다. 세상살이가 물질적 풍요와 물신 숭배의 혼탁스러움으로 타고난 착하고 선한 천품마저 빼앗아버렸다. 이 시대를 건져낼 수 있는 고전들은 영원히 살아있다. 한 말씀 한 구절이 촌철살인이며 혼탁세상 청정제이다. 서투르고 다듬어지지 않는 둔한 붓끝이지만 인간학의 첫 번째 영원한 고전 논어를 우리 생활 속에 다시 살아나게 할 일이다. 논어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서 시작하여 제20장 예의범절과 인간의 도리로 끝내고 있다.공자께서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하셨다.같이 즐기며 살고 싶어 첫 번째 글제로 택하였다.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 즐거움의 대상은 학문과 도만이 아니다. 문화예술 그리고 세상만사 모든 것들이다.문자와 눈으로 말로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좋아하게 되고 사유하게 되면 진정 좋아하게 된다. 그 연휴에야만 언어와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슴으로 진정된 열락의 즐거움에 이르게 된다. 내면으로 완전히 육화된 즐거움이 인생의 참맛이다.우리 모두는 한번의 인생을 참되게 즐기며 살아갈 의무가 있다. 즐기며 살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찾는 순간 인생을 제대로 살기 시작하는 것이며, 새롭게 눈 뜨는 일이며, 제2의 인생의 출발점이다. 이 봄에 같이 길 나설 일이다.솔뫼 정현식서예가 ·솔뫼서예연구소장

2016-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