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낭희 수필가파계사를 지나고 대비암을 지나던 포장길은 더 이상 가파른 산을 오르지 못하고 작은 주차장에서 끝이 난다. 숨이 가빠 지그재그로 몸을 누인 채 성전암으로 향하는 오솔길은 짧지만 만만치 않다.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쉬다가 선원장 스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며칠 뒤 하룻밤 묵을 행운까지 얻었다. 성전암은 성철스님이 철조망을 치고 10년간 동구불출하며 수행한 곳이다. 철조망의 자물쇠가 안쪽에 있으니 갇힌 것은 성철스님이 아니라 반대쪽이라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긴 겨울밤 요사채에 누워 무심히 울어대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정신세계를 엿보며 마시는 차 맛도 궁금하다.선원장이신 벽담 스님은 불자가 아니라고 소개하는 나를 향해 불자는 무엇이고 비불자는 무엇인가, 누구나 우주의 주인으로서 모두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의식이 일어나기 이전의 참된 나를 만나는 것이 깨달음이며 우리 모두가 부처라고 하신다. 선문답 같은 대화 속에서 스님도 나도 진지하다. 몇 번이나 길을 잃고 어리석은 물음을 던진 후 어렴풋이 부처님의 세계를 알 것도 같다. 어쩌면 그마저도 착각인지 모른다.맑은 공기와 호젓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리. 정성이 가득한 저녁 공양은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저녁 공양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원장 스님이 차 한 잔을 건네며 과제를 주신다. 이렇게 인연 맺기도 어려운데 이왕이면 전생의 업을 소멸시키는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밤새워 기도해 보라신다. 두꺼운 책이 약간은 위협적으로, 그러면서도 긴장하고 있는 우리를 흥미롭게 쳐다본다.이 기회에 나의 인내와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간식까지 챙겨주신 선원장 스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관음전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친구와 나란히 좌복 위에 앉아 소리내어 책을 읽으며 절을 했다. 산사의 밤은 빠르게 깊어갔다. 뜻밖에 우리는 내면의 세계로 몰입해 갔다. 둘이서 웅얼웅얼 산사를 밝히고 마음을 밝힌다.“지극한 덕은 매우 아득하여 본래 말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느니라. 말은 덕을 이야기함이요, 도에 들어가는 가까운 길이며 말하는 것도 이치에 이르는 계단이요, 성인의 자리로 인도함이니라. 그러므로 말은 이치를 초월하지 않느니라. 초학(初學)은 말로 인하여 도리를 알게 되다가 무학(無學)에 이르러서는 이내 이치에 합하고 말을 잊어버리느니라” 주옥같은 글귀들이 마음을 적신다. 모처럼 내면을 돌아보고 공을 들인다. 나와 가족에 대한 애착과 소유욕으로 존재가치는 늘 뒷전이었다.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하며 좀 더 나와 친해져 가는 시간, 알 수 없는 충만감으로 뿌듯하다. 기도 소리는 문틈을 빠져나가 허공을 떠돌다 만물 속으로 스며들리라.적막한 산중에서 바라본 도시의 밤 풍경은 정겹기보다 낯설다. 지척에 있지만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피안의 세계에서 속계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비슷한 무리 속에서 비슷한 관심거리들로 키재기를 하며 살아온 굴레, 불나방처럼 잠들지 못하는 도시가 고독한 섬 같다.멀리서 배고픈 산짐승의 숨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들린다. 무서움과 무릎 통증이 몰려와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지친 몸을 끌고 들어온 방안에는 은은한 불빛 아래 이부자리가 정갈하게 깔려져 있다. 객을 주인처럼 맞아주는 섬세한 배려에 가슴이 젖는다. 이 친절한 마음은 나를 다시 법당으로 인도했다.새벽 3시, 하늘이 열린다는 인시다. 어둠과 만물을 깨우는 도량식으로 암자가 눈을 뜬다. 목탁소리와 염불 소리는 깊은 울림으로 산사를 밝히고 영혼을 깨운다. 피곤하던 몸에 새로운 기운이 돈다. 은은하고 힘찬 새벽 종성이 법당 안을 채우면서 새벽예불이 시작되었다. 종소리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밀려들며 잠든 세포들을 깨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른다.해가 중천에 걸려서야 과제를 끝냈다. 열다섯 시간을 참고 견디게 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고정된 생각과 지식, 상념들에서 벗어나려면 수행밖에 없다는 스님의 말씀을 되뇌며 내면의 기쁨과 육체적인 고통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본다. 기도할 때의 정성과 뿌듯함으로 공양 후 설거지를 했는지, 스님은 왜 성전암의 멋진 분위기 대신 혹독한 과제를 주셨는지도 궁금하다.산사의 하룻밤은 힘들었다. 그러나 충만감과 온기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부처님의 세계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참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주신 선원장 스님, 성경의 시편을 인용하며 예수님을 부처님만큼이나 존중할 줄 알던 정만 스님, 끼니때마다 정성을 쏟으며 우리를 감동시키던 두 분의 공양주보살, 나는 그들에게서 부처님을 보았다.스님이 말씀하셨다. 큰 숲 사이로 걸어가면 내 키가 더욱 커질 수 있노라고. 때때로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익숙한 곳을 벗어나 꿈꾸던 환경과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 분명 객관적인 위치에서 지금의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을 테니까.
2015-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