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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큰 숲 사이로 걸어가면

▲ 조낭희 수필가파계사를 지나고 대비암을 지나던 포장길은 더 이상 가파른 산을 오르지 못하고 작은 주차장에서 끝이 난다. 숨이 가빠 지그재그로 몸을 누인 채 성전암으로 향하는 오솔길은 짧지만 만만치 않다.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쉬다가 선원장 스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고 며칠 뒤 하룻밤 묵을 행운까지 얻었다. 성전암은 성철스님이 철조망을 치고 10년간 동구불출하며 수행한 곳이다. 철조망의 자물쇠가 안쪽에 있으니 갇힌 것은 성철스님이 아니라 반대쪽이라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산사에서의 하룻밤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긴 겨울밤 요사채에 누워 무심히 울어대는 풍경소리와 스님의 정신세계를 엿보며 마시는 차 맛도 궁금하다.선원장이신 벽담 스님은 불자가 아니라고 소개하는 나를 향해 불자는 무엇이고 비불자는 무엇인가, 누구나 우주의 주인으로서 모두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의식이 일어나기 이전의 참된 나를 만나는 것이 깨달음이며 우리 모두가 부처라고 하신다. 선문답 같은 대화 속에서 스님도 나도 진지하다. 몇 번이나 길을 잃고 어리석은 물음을 던진 후 어렴풋이 부처님의 세계를 알 것도 같다. 어쩌면 그마저도 착각인지 모른다.맑은 공기와 호젓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리. 정성이 가득한 저녁 공양은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저녁 공양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원장 스님이 차 한 잔을 건네며 과제를 주신다. 이렇게 인연 맺기도 어려운데 이왕이면 전생의 업을 소멸시키는 `자비도량참법`을 읽으며 밤새워 기도해 보라신다. 두꺼운 책이 약간은 위협적으로, 그러면서도 긴장하고 있는 우리를 흥미롭게 쳐다본다.이 기회에 나의 인내와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간식까지 챙겨주신 선원장 스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관음전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친구와 나란히 좌복 위에 앉아 소리내어 책을 읽으며 절을 했다. 산사의 밤은 빠르게 깊어갔다. 뜻밖에 우리는 내면의 세계로 몰입해 갔다. 둘이서 웅얼웅얼 산사를 밝히고 마음을 밝힌다.“지극한 덕은 매우 아득하여 본래 말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느니라. 말은 덕을 이야기함이요, 도에 들어가는 가까운 길이며 말하는 것도 이치에 이르는 계단이요, 성인의 자리로 인도함이니라. 그러므로 말은 이치를 초월하지 않느니라. 초학(初學)은 말로 인하여 도리를 알게 되다가 무학(無學)에 이르러서는 이내 이치에 합하고 말을 잊어버리느니라” 주옥같은 글귀들이 마음을 적신다. 모처럼 내면을 돌아보고 공을 들인다. 나와 가족에 대한 애착과 소유욕으로 존재가치는 늘 뒷전이었다.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하며 좀 더 나와 친해져 가는 시간, 알 수 없는 충만감으로 뿌듯하다. 기도 소리는 문틈을 빠져나가 허공을 떠돌다 만물 속으로 스며들리라.적막한 산중에서 바라본 도시의 밤 풍경은 정겹기보다 낯설다. 지척에 있지만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피안의 세계에서 속계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비슷한 무리 속에서 비슷한 관심거리들로 키재기를 하며 살아온 굴레, 불나방처럼 잠들지 못하는 도시가 고독한 섬 같다.멀리서 배고픈 산짐승의 숨소리 같은 바람소리가 들린다. 무서움과 무릎 통증이 몰려와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지친 몸을 끌고 들어온 방안에는 은은한 불빛 아래 이부자리가 정갈하게 깔려져 있다. 객을 주인처럼 맞아주는 섬세한 배려에 가슴이 젖는다. 이 친절한 마음은 나를 다시 법당으로 인도했다.새벽 3시, 하늘이 열린다는 인시다. 어둠과 만물을 깨우는 도량식으로 암자가 눈을 뜬다. 목탁소리와 염불 소리는 깊은 울림으로 산사를 밝히고 영혼을 깨운다. 피곤하던 몸에 새로운 기운이 돈다. 은은하고 힘찬 새벽 종성이 법당 안을 채우면서 새벽예불이 시작되었다. 종소리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밀려들며 잠든 세포들을 깨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른다.해가 중천에 걸려서야 과제를 끝냈다. 열다섯 시간을 참고 견디게 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고정된 생각과 지식, 상념들에서 벗어나려면 수행밖에 없다는 스님의 말씀을 되뇌며 내면의 기쁨과 육체적인 고통의 상관관계를 생각해본다. 기도할 때의 정성과 뿌듯함으로 공양 후 설거지를 했는지, 스님은 왜 성전암의 멋진 분위기 대신 혹독한 과제를 주셨는지도 궁금하다.산사의 하룻밤은 힘들었다. 그러나 충만감과 온기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부처님의 세계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참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주신 선원장 스님, 성경의 시편을 인용하며 예수님을 부처님만큼이나 존중할 줄 알던 정만 스님, 끼니때마다 정성을 쏟으며 우리를 감동시키던 두 분의 공양주보살, 나는 그들에게서 부처님을 보았다.스님이 말씀하셨다. 큰 숲 사이로 걸어가면 내 키가 더욱 커질 수 있노라고. 때때로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익숙한 곳을 벗어나 꿈꾸던 환경과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좋다. 분명 객관적인 위치에서 지금의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을 테니까.

2015-01-30

깊고 그윽한 소리를 찾아서

▲ 조낭희 수필가부인사는 팔공산 넓은 자락에 터를 잡고 앉아 툭 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만개한 연꽃처럼 큰 하늘을 품고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고찰의 운치나 세련된 건축미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주차장에서 경내로 걸어가는 동안 검은 때가 낀 세월의 옷을 입은 석축만이 역사를 말해 준다. “어느 봄날 부인사에 갔는데 뒤뜰의 할미꽃이 참 예뻤어. 화단을 보면 비구니 스 님들의 정성과 세심함이 느껴져. 벚꽃이 피면 더 좋을 거야.”겨울바람 사이로 친구가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돈다. 부인사는 내 기억의 한켠에도 뿌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다. 학창시절 초조대장경이 이곳에 보관됐다는 걸 알았을 때 묵직한 애향심 같은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초행길이다.일주문 대신 아름드리 벚나무 몇 그루가 너른 돌계단과 석축을 지키고 서 있다. 한 때는 대가람이었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당간지주는 깨어진 채 황량한 포도밭에 방치되어 있다. 아마도 그 옛날 절터는 좀 더 남쪽에 위치한 듯하다. 경내는 조용하다. 목탁 소리나 염불 소리도 없다. 꼬리를 흔들거나 컹컹 짖어대는 개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썰렁한 경내에 알 수 없는 허전함만 밀려든다.부인사는 신라 선덕 여왕이 창건한 절이다. 백제의 침공으로 위기에 놓일 때 친히 신라 오악 중 하나인 중악(팔공산)에서 기도를 드리자 도인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국난이 사라지고 통일을 이룰 수 있다 하여 세웠다고 한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을 기리는 의미에서 `부인사(夫人寺)`라고도 쓰고 초조대장경을 보관한 데서 연유한 `부인사(符仁寺)`로 쓰기도 한다. 한 때 39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전국 유일의 승시장(僧市場)이 서기도 했던 큰 사찰이다. 지금도 숭모전에는 여왕의 영전이 봉안되어 있으며 해마다 봄이면 선덕제를 지내고 여왕을 추모하는 행사가 이어진다.부인사에는 은통당 부도와 석종형 부도,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 석등과 배례석, 일명암지석 같은 훌륭한 문화재가 많다. 마모와 파손이 심해 복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짜임이 어색해 보인다. 넓고 깔끔한 경내와 웅장한 전각들, 게다가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는 부인사의 눈빛은 어딘지 쓸쓸하다. 쓰리고 할퀴어진 상처들로 내성이 생긴 것인지 부처님의 공덕으로 마음을 비워낸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지난 세월을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무심히 자리를 지키는 부인사의 속살을 보고 싶다.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염불 소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대웅전 삼존불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삼 배를 해보지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인 잃은 개처럼 썰렁한 경내를 두리번거리며 헤맨다. 이 순간 소요의 즐거움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막연한 느낌이지만 부인사는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아픈 민족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사찰이라는 사전지식 때문일까. 편안한 현실 뒤로 조상들의 질곡이 가쁘게 호흡하는, 그 애절한 눈빛을 만나고 싶었다. 대웅전의 삼존불이나 명부전을 지키는 지장보살, 수려한 자태의 산신과 숭모전의 선덕여왕, 모두가 상흔을 감춘 채 침묵하고 있다.무심코 玄音閣(현음각)이란 현판이 걸린 범종각 앞에 섰다. 깊고 그윽한 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적막한 겨울 산사에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몽고군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삽시간에 경내는 불바다가 되고 거란의 침입을 막고자 만든 고려대장경도 잿더미가 되고 만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보다 200년이나 앞서 만들었다는 민족의 염원이 화염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처절한 아비규환과 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이 그 옛날의 부인사와 나를 덮친다. 부인사는 현실 참여적인 절이었다. 속세를 등지고 앉기에는 나라 사랑하는 열정이 너무 뜨거웠을까. 무신 최충헌의 집권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의연하게 일어선 스님들의 함성이 또 한 차례 부인사를 긴장시킨다. 가파른 역사의 질곡들을 온몸으로 감내하던 부인사는 정화수 앞에 선 어머니 같다. 약소국의 서러움과 애잔하고 강인한 조상의 숨결이 곳곳에 서려 있다. 귀퉁이가 깨어지고 금이 간 삼층석탑의 비호가 그제야 들린다. 개인의 안녕과 즐거움만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만큼의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가. 부인사의 타종을 듣고 싶다. 그러기엔 저녁 예불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귀 기울여 범종이 울어대는 소리를 듣는다. 깊고 아득한 소리란 침묵과도 같은 본질의 소리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좀 더 사람답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잠언과도 같은 울림이 온몸으로 퍼져온다. 내가 추구해 온 지식과 관심은 언제나 내면이 아니라 바깥으로 향해 있었다. 짧지만 엄숙한 순간이다. 참된 나를 돌아보는 철학시간이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거룩한 종교시간이기도 하다.부인사를 빠져나오며 돌아보았다. 황량하던 전각들이 겨울바람 속에서 생기를 띄기 시작한다. 벚꽃이 피지 않아도 아름답고 자랑스런 부인사다. 꽃보다 신록이 아름답고 신록보다 겨울 나목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절이다. 역사의 고통을 제대로 치유하고 더 큰 가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 모아 합장했다. 그대, 부인사에 가거든 현음각 앞에 서보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것을 분명 들을 수 있으리.

2015-01-23

탐욕 버려야 통과하는 돌구멍절

▲ 조낭희 수필가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인지 암자로 가는 길목은 적막하다. 오늘은 넓은 포장길 대신 백흥암 해우소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택했다. 소나무 숲 아래로 이어진 길 위에는 침묵조차 따스하다. 겨울 숲길을 계곡이 동무 삼아 따라 걷는다. 솔잎이 쌓인 길은 양탄자처럼 폭신하다. 산란한 마음을 잠재우듯 꾹꾹 눌러 밟으며 산길을 오른다. 모퉁이를 지키는 잔설과 얼음장 아래에서 노래하는 계곡물, 힘줄처럼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들의 건강한 생명력이 겨울 숲의 주인이다. 간밤에 바람이 심하게 장난을 쳤던 걸까? 부러진 청솔가지와 솔방울들이 일부러 뿌려놓은 것처럼 정겹다. 겨울 소나무가 가진 푸른빛도 참으로 겸손하다. 누구의 초대가 이토록 섬세하고 다정할 수 있으랴. 겨울 산길답지 않게 포근하다.그러나 산이 가팔라지면서 길도 험해진다. 하얀 로프를 타고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오르고 산등성이를 걸을 때는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겨울 소나무들이 쏴아쏴아 거친 파도소리를 내며 일제히 울어댄다. 고요하고 풍요롭던 숲은 간곳이 없다.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좀 전까지 길을 방해하던 암석들도 이제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큰 바위 사이를 빠져 올라가자 마치 다듬어 놓은 듯 삼인암이 한가롭게 누워 몸을 말리고 있다. 지척에 있는 만년송은 겨울바람과 사투를 벌이듯 싸우고 있는데 삼인암은 막아주는 암석이 있어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하다. 가부좌를 하고 저 아래 펼쳐진 도시와 겨울 숲을 바라본다. 불안할 만큼 바쁘게 움직여야 오히려 편안하던 도시가 애처로워 보인다.은해사의 말사인 중암암은 신라 흥덕왕 때 위태로운 암벽 위에 지어졌다. 팔공산의 정기가 모여드는 이곳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풍광 또한 뛰어나다. 요새의 석문과도 같은 암벽 문을 통과해야 절이 보이기 때문에 돌구멍절이라고도 부른다.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정도로 작은 바위문이 일주문인 셈이다. 저절로 자세가 낮아지고 고개가 숙여지는 출입문이다.암자는 비어 있다. 스님은 동안거에 들어갔는지, 기도하는 사람도 지나가는 등산객도 없다. 풍경이 빈 몸으로 울어댈 뿐, 햇살 가득한 뜨락에는 고요만 넘실댄다. 댓돌 사이에서 자라는 신우대가 푸른 귀를 열고 암자를 지킨다. 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앉으니 몸과 마음이 구름처럼 가볍다.도시에서는 몸보다 마음이 외로웠다. 잠시지만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다. 수많은 지식이나 말들 속에서 나의 한계를 의식하며 싸워 왔던 못난 열등감도 내려놓는다. 욕심에서 놓여나지 않으면 결코 마음을 밝힐 수 없다. 평생 돌아보고 다스려야 할 부분인데 스스로 치유하는 법조차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그런 나와 조용히 마주 한다.작은 산신각 앞에 섰다. 다른 절과 달리 천도제를 지내지 않는다지만 한 때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던 민간 종교인 무교와 도교의 흔적까지 만난다. 불교계에서는 산신각이 비불교적이라 하여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산신각에서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질서를 요구하기보다, 모든 힘이 하나로 응축되어 있는 태초의 시간인 카오스가 그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중암암은 영험한 기도발로도 유명하지만 재미있는 전설도 많다. 통도사와 해인사, 중암암 스님이 모여 절 자랑을 시작했다. 통도사 주지가 절간문을 여닫을 때마다 문지도리에서 떨어지는 쇳가루가 한 말 석 되나 된다고 자랑하자, 해인사 주지가 뒤질세라 동짓날 팥죽을 쑬 때 배를 띄워 젓는다며 큰 가마솥을 자랑했다. 듣고 있던 중암암 스님이 “중암암 해우소에서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에야 그 배설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받아쳤다고 한다. 유명세에 비해 해우소는 소박하고 정갈하다. 볼일을 보면 내 안의 모든 근심 걱정이 팔공산 골짜기로 분진처럼 흩어져 버릴 것 같은데 지금은 사용을 금한다.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들여다보았다. 뜻밖에도 작은 구멍 안에는 암석 사이로 나무와 풀, 화사한 햇살이 모여 신세계를 펼치고 있다. 저 길목을 따라가면 무릉도원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든다. 이토록 멋진 해우소가 또 있을까.해우소 전설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많은 돌구멍에 전해지는 설화와 견고한 가르침이다. 암벽 사이의 좁은 통로를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극락굴,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쌀 구멍과 김유신 장군이 떠먹었다는 장군수, 그 밖에도 육중한 돌 위에 집채만한 바위가 얹혀진 일주문과 같은 석문 들이다. 욕심 많고 마음이 음흉한 자는 돌 틈에 끼거나 바위가 순식간에 덮칠 것만 같아 저절로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뒤늦게 법당 안으로 들어가 3배를 올리며 예를 갖추었다. 목탁 소리나 염불 소리도 없다. 법당문 밖에서 풍경이 홀로 산중의 적막을 가를 뿐, 아늑한 평화만 넘실댄다. 나는 햇살 가득한 툇마루에 앉아 바람의 말을 좀 더 경청하기로 했다. 뎅그랑 뎅그랑 어떤 말보다 많은 뜻을 설파한다. 그것은 고즈넉한 산사에서 듣는 훌륭한 법문이었다.

2015-01-16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 조낭희 수필가아침부터 눈이 내린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을씨년스럽던 겨울이 포근하고 따뜻해진다. 마음이 설렌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창가에서 눈을 감상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부랴부랴 김천에 사는 친구를 떠올리고 열차표를 예매했다. 우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소녀처럼 깡충거릴 것이다. 일주문을 통과하며 조금은 엄숙해질 것이고 흰 산은 법당을 들어서는 우리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볼 것이다. 절을 하거나 스님과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밖에서는 하염없이 눈이 쏟아지리라. 눈부신 산사의 고립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운이 좋다면 겨울 별들과 달빛이 적막한 산사 마당에 몰려와 저녁 예불 드리는 정취도 맛볼 수 있으리.내가 그린 산사 여행은 완벽할 정도로 환상적이다. 설경으로 뒤덮인 들과 산, 나목을 어루만지며 무궁화호 열차는 느리게느리게 달린다. 차창 밖으로는 처마가 낮은 집들이 흰 눈을 덮어쓴 채 옹기종기 고개를 맞대고 정답다. 직지사는 유명세와 달리 조용하다. 신라 눌지왕 때 불법을 전하러 온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설과 고려 초 능여화상이 절을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절터를 측량해서 직지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한 때는 정실만 352칸에 달하고 부속 암자가 26개나 있었을 정도로 동국 제일의 가람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사세가 기울어 퇴락하는 것을 대대적인 중건과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대웅전 법당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섰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뒤에는 아주 큰 삼존불탱화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하나하나 정성으로 칠해졌을 단청과 용 모양의 기둥, 연꽃 모양의 나무 조각들로 법당 안은 화려하다. 색이 바래고 먼지에 덮여 그 옛날의 고색창연함은 없지만 섬세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이 가슴을 서늘케 한다. 누군가의 불심과 예술혼으로 빚어진 법당에서 친구와 나는 108배를 시작했다.난방이 되지 않아 법당은 한기가 느껴진다. 낡고 오래된 마룻바닥은 움직일 때마다 삐걱댄다. 1600년의 역사를 견뎌온 소리일까? 절을 하는 동안 마음은 온통 시린 발과 마룻바닥이 토해내는 신음소리로 모아진다. 자기의식을 완전히 소멸시킬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붓다는 말했다.비로전은 맞배지붕으로 푸른 대숲을 지고 단아하면서도 고고하다. 본래 혼돈이었던 비로자나불은 자신의 존재감에 허무함을 느껴 스스로 어둠 깊숙이 들어가 오랜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빛이 되었다고 한다. 빛과 지혜로 두루 세상을 비추는 존재로서 하느님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인간과 우주만물, 게다가 모든 부처를 창조한 본초불이며 창조신이다.법당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과 노사나불도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그 뒤로 현세의 고통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한다는 천 개의 부처님도 모셔져 천불전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약사여래불의 왼손에 약병이나 약함이 없고 수인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은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했다. 불자인 친구는 별로 관심을 드러내지 않고 몸을 녹이라며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추위에 떠는 나를 걱정한다.혼자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때마침 명부전에서 쉬고 계신 젊은 스님을 만났다. 친히 비로전까지 따라 나와 궁금증을 들어주었으나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 시원한 답을 들을 수가 없다. 나의 어쭙잖은 지식은 긍금증과 답답함을 더욱 증폭시킨다. 승복을 입은 스님이 불교기초가 이래서야 되겠냐며 농을 던지자 출가한지 얼마 안 된 초보승이라며 미안해했다. 무심코 돌아서는 내게 스님이 공손히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나는 스님을 대할 때의 기본 예의를 잊고 말았다. 뒤늦게 한 손에 식어가는 차를 든 채 어정쩡한 자세로 답을 하고 무안함에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귀동냥 눈동냥이긴 하지만 그동안 숙지했다고 믿었던 것은 마음이 아니라 이론에 불과했다. 익숙하지 않아서 빚어진 실수였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핑계다. 그도 나도 둘 다 초보인 셈이다. 파르스름하게 머리를 밀던 그의 출가 날이 하얀 눈 위로 자꾸만 클로즈업된다. 무언가에 회의를 느껴 절로 들어왔을 그와 짧은 지식으로 사찰 읽는 재미에 빠진 나는 달라도 한참 다른 초보이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직지라는 이름이 죽비가 되어 나를 때린다. 붓다의 고행은 왜 시작되었으며 수많은 설법은 무엇을 위한 가르침이던가?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만 쳐다본 나의 아둔함이 드러났다.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현란한 지식이나 부, 명예가 아니다. 자기와 이웃, 세계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겨울 환상에 끌려 여기까지 왔듯 가시적인 것들에 탐닉하며 삶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본다. 나를 설레게 했던 눈은 진흙이 되어 발밑에서 질척거린다. 대빗자루 자국이 선명하던 어느 가을날의 직지사 마당은 얼마나 고결해 보였던가. 변한 것은 없다. 직지사 초보 스님이 내게 준 소중한 가르침이다.

2015-01-09

소원을 빌며 새해를

▲ 조낭희 수필가잔설이 남아 있는 숲을 헤치고 염불 소리가 먼저 마중을 나온다. 외롭지 않은 새벽 산길이다. 새벽잠이 많아 비장한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선뜻 동행해 준 지인의 고마움도 한몫을 했다. 초롱초롱한 가로등 불빛을 밟으며 우리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풀어내며 돌계단을 오른다. 숨이 차다. 난간을 잡고 걸음을 멈추자 뜨거운 입김이 찬 공기를 만나 하얗게 변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불변토록 존재할 이 우주 속에서 미약하기만 한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새벽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가? 무엇이든 하나의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갓바위를 찾아서.수시로 변하는 생각과 상을 좇아 허걱대며 살아왔다. 그럴수록 뒤안길은 허전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통과의례처럼 참다운 모습에 눈을 뜨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믿었다.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과 홀로 봇짐을 지고 오르는 불자들의 발걸음에는 단련된 익숙함이 있다. 편안해 보인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마음을 밝혀 주는 고요한 즐거움을 읽는다.어쩌면 이 우주조차 무상한 먼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고정 불변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진리를 찾아 헤매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염원하는 의식은 인간이 존재하면서부터 생긴,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본능과도 같은 행위이리라.“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염불 소리는 푸르게 눈을 뜨는 새벽을 적시고 얼어붙은 골짜기를 녹인다. 모처럼 맞는 안온함이다. 어린 시절의 새벽은 언제나 예배당의 종소리가 뎅그랑거리며 열어 주었다. 낯선 이국의 새벽을 열던 이슬람 종교의식, 아잔 소리도 결코 잊을 수 없다. 제사 때 축문 읽는 소리조차도 참다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게 했다. 나는 이 염불 소리가 좋아 갓바위를 찾을 때도 있다.팔공산 관봉에 위치한 갓바위의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약사여래불은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원해 주는 부처님으로 통일신라 시대 때 하나의 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답답한 법당을 벗어나 해발 850m의 정상에 정좌한 부처님은 근엄하다. 하나의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문 때문인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빈다.여느 부처님과는 달리 평평한 돌관을 쓰고 멀리 동쪽을 응시하고 있다. 어려운 학문과 졸업의 성취감을 상징하는 학사모가 연상되어서인지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고행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부처님의 돌관을 어찌 학사모에 비하랴만 시대에 맞는 인간미가 느껴져 왠지 친근해 보인다. 푸른 실루엣으로 물결치는 산야, 보석처럼 반짝이는 도시의 네온사인, 산 위를 밝히는 촛불의 일렁임까지 부처님은 말없이 굽어본다.나도 양초를 준비했다. 이름과 소원을 초에 적은 후 불을 붙이라고 했다. 소원은 희망을 주는 따뜻한 말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작은 바람들은 있었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은 없었다. 갑자기 욕심이 생긴다. 가족의 건강, 남편의 사업, 아이들의 안정된 미래, 아니 좋은 글도 쓰고 싶다. 짧은 순간 소원거리가 마구마구 밀려든다.이태 전 딸아이가 취업시험을 치른 후, 갓바위 부처님께 다녀왔다고 했다. 불자도 아니고 산을 좋아하는 아이도 아닌지라 그 간절함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기쁨은 잠시, 그토록 원하던 곳에 입사한 햇병아리 직원은 밀려드는 업무와 야근으로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청원을 위한 기도는 우리를 더 큰 탐욕의 세계로 몰아넣고 있지는 않은가. 잠시 고민하다 제대로 마음을 닦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적었다. 감정과 욕심에 휘말려 삶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치며 살고 싶지는 않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즉흥적인 내게 이것은 절실한 문제다. 정돈되어 있다고 믿었던 마음은 자주 통제력을 잃고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스스로를 들볶기도 한다. 대부분 상대적 열등감이나 자만심에서 비롯된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생각 속에서 나는 늘 자유롭지 못했다. 속된 욕심이 많아서일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닦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데 어쩌면 이 소원조차 욕심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욕심 아닌 것은 무엇인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왕이면 세계 평화나 남북통일, 좀 더 거룩하고 멋진 소원을 적을 걸 그랬다. 저 많은 초는 무슨 소원을 담고 타오르고 있을까? 소원은 삶을 희망적이고 견고하게 만든다. 그래서 소원이 있다는 것은 삶의 안전장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내가 딛고 서 있는 시공간이 더욱 진지하게 다가온다.동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만물이 깨어난다. 저 아래 도시도 부산하게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근엄하던 부처님의 얼굴에도 생기가 돈다. 돌이끼가 눈물자국처럼 보이기도 하고 짓궂은 미소를 살짝 보내는 것도 같다. 염불 소리는 더 힘차고 낭랑하다. 바람 앞에서 일렁이는 수많은 촛불들, 그 안에 내 소원도 힘차게 타고 있다. 부처님의 공덕이든 하느님의 은혜이든, 세상의 모든 소원이 봄날의 꽃잎처럼 피어올랐으면 좋겠다. 겸허하게 자세를 낮추는 사람들, 그 숙연한 물결 속에 끼어 나도 백팔 배를 시작했다.

201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