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은해사 중암암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인지 암자로 가는 길목은 적막하다. 오늘은 넓은 포장길 대신 백흥암 해우소 뒤쪽으로 난 오솔길을 택했다. 소나무 숲 아래로 이어진 길 위에는 침묵조차 따스하다. 겨울 숲길을 계곡이 동무 삼아 따라 걷는다.
솔잎이 쌓인 길은 양탄자처럼 폭신하다. 산란한 마음을 잠재우듯 꾹꾹 눌러 밟으며 산길을 오른다. 모퉁이를 지키는 잔설과 얼음장 아래에서 노래하는 계곡물, 힘줄처럼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들의 건강한 생명력이 겨울 숲의 주인이다. 간밤에 바람이 심하게 장난을 쳤던 걸까? 부러진 청솔가지와 솔방울들이 일부러 뿌려놓은 것처럼 정겹다. 겨울 소나무가 가진 푸른빛도 참으로 겸손하다. 누구의 초대가 이토록 섬세하고 다정할 수 있으랴. 겨울 산길답지 않게 포근하다.
그러나 산이 가팔라지면서 길도 험해진다. 하얀 로프를 타고 바위 사이로 난 길을 오르고 산등성이를 걸을 때는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겨울 소나무들이 쏴아쏴아 거친 파도소리를 내며 일제히 울어댄다. 고요하고 풍요롭던 숲은 간곳이 없다.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좀 전까지 길을 방해하던 암석들도 이제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큰 바위 사이를 빠져 올라가자 마치 다듬어 놓은 듯 삼인암이 한가롭게 누워 몸을 말리고 있다. 지척에 있는 만년송은 겨울바람과 사투를 벌이듯 싸우고 있는데 삼인암은 막아주는 암석이 있어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하다. 가부좌를 하고 저 아래 펼쳐진 도시와 겨울 숲을 바라본다. 불안할 만큼 바쁘게 움직여야 오히려 편안하던 도시가 애처로워 보인다.
은해사의 말사인 중암암은 신라 흥덕왕 때 위태로운 암벽 위에 지어졌다. 팔공산의 정기가 모여드는 이곳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풍광 또한 뛰어나다. 요새의 석문과도 같은 암벽 문을 통과해야 절이 보이기 때문에 돌구멍절이라고도 부른다.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 정도로 작은 바위문이 일주문인 셈이다. 저절로 자세가 낮아지고 고개가 숙여지는 출입문이다.
암자는 비어 있다. 스님은 동안거에 들어갔는지, 기도하는 사람도 지나가는 등산객도 없다. 풍경이 빈 몸으로 울어댈 뿐, 햇살 가득한 뜨락에는 고요만 넘실댄다. 댓돌 사이에서 자라는 신우대가 푸른 귀를 열고 암자를 지킨다. 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앉으니 몸과 마음이 구름처럼 가볍다.
도시에서는 몸보다 마음이 외로웠다. 잠시지만 실타래처럼 엉켜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다. 수많은 지식이나 말들 속에서 나의 한계를 의식하며 싸워 왔던 못난 열등감도 내려놓는다. 욕심에서 놓여나지 않으면 결코 마음을 밝힐 수 없다. 평생 돌아보고 다스려야 할 부분인데 스스로 치유하는 법조차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그런 나와 조용히 마주 한다.
작은 산신각 앞에 섰다. 다른 절과 달리 천도제를 지내지 않는다지만 한 때 우리의 의식을 지배했던 민간 종교인 무교와 도교의 흔적까지 만난다. 불교계에서는 산신각이 비불교적이라 하여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산신각에서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질서를 요구하기보다, 모든 힘이 하나로 응축되어 있는 태초의 시간인 카오스가 그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중암암은 영험한 기도발로도 유명하지만 재미있는 전설도 많다. 통도사와 해인사, 중암암 스님이 모여 절 자랑을 시작했다. 통도사 주지가 절간문을 여닫을 때마다 문지도리에서 떨어지는 쇳가루가 한 말 석 되나 된다고 자랑하자, 해인사 주지가 뒤질세라 동짓날 팥죽을 쑬 때 배를 띄워 젓는다며 큰 가마솥을 자랑했다. 듣고 있던 중암암 스님이 “중암암 해우소에서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에야 그 배설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받아쳤다고 한다.
유명세에 비해 해우소는 소박하고 정갈하다. 볼일을 보면 내 안의 모든 근심 걱정이 팔공산 골짜기로 분진처럼 흩어져 버릴 것 같은데 지금은 사용을 금한다.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들여다보았다. 뜻밖에도 작은 구멍 안에는 암석 사이로 나무와 풀, 화사한 햇살이 모여 신세계를 펼치고 있다. 저 길목을 따라가면 무릉도원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착각까지 든다. 이토록 멋진 해우소가 또 있을까.
해우소 전설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많은 돌구멍에 전해지는 설화와 견고한 가르침이다. 암벽 사이의 좁은 통로를 세 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극락굴,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쌀 구멍과 김유신 장군이 떠먹었다는 장군수, 그 밖에도 육중한 돌 위에 집채만한 바위가 얹혀진 일주문과 같은 석문 들이다. 욕심 많고 마음이 음흉한 자는 돌 틈에 끼거나 바위가 순식간에 덮칠 것만 같아 저절로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뒤늦게 법당 안으로 들어가 3배를 올리며 예를 갖추었다. 목탁 소리나 염불 소리도 없다. 법당문 밖에서 풍경이 홀로 산중의 적막을 가를 뿐, 아늑한 평화만 넘실댄다. 나는 햇살 가득한 툇마루에 앉아 바람의 말을 좀 더 경청하기로 했다. 뎅그랑 뎅그랑 어떤 말보다 많은 뜻을 설파한다. 그것은 고즈넉한 산사에서 듣는 훌륭한 법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