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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그윽한 소리를 찾아서

조낭희 수필가
등록일 2015-01-23 02:01 게재일 2015-01-2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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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부인사
▲ 조낭희 수필가

부인사는 팔공산 넓은 자락에 터를 잡고 앉아 툭 트인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만개한 연꽃처럼 큰 하늘을 품고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고찰의 운치나 세련된 건축미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주차장에서 경내로 걸어가는 동안 검은 때가 낀 세월의 옷을 입은 석축만이 역사를 말해 준다.

“어느 봄날 부인사에 갔는데 뒤뜰의 할미꽃이 참 예뻤어. 화단을 보면 비구니 스 님들의 정성과 세심함이 느껴져. 벚꽃이 피면 더 좋을 거야.”

겨울바람 사이로 친구가 했던 말이 귓전을 맴돈다. 부인사는 내 기억의 한켠에도 뿌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다. 학창시절 초조대장경이 이곳에 보관됐다는 걸 알았을 때 묵직한 애향심 같은 걸 처음으로 느꼈다.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초행길이다.

일주문 대신 아름드리 벚나무 몇 그루가 너른 돌계단과 석축을 지키고 서 있다. 한 때는 대가람이었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당간지주는 깨어진 채 황량한 포도밭에 방치되어 있다. 아마도 그 옛날 절터는 좀 더 남쪽에 위치한 듯하다. 경내는 조용하다. 목탁 소리나 염불 소리도 없다. 꼬리를 흔들거나 컹컹 짖어대는 개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썰렁한 경내에 알 수 없는 허전함만 밀려든다.

부인사는 신라 선덕 여왕이 창건한 절이다. 백제의 침공으로 위기에 놓일 때 친히 신라 오악 중 하나인 중악(팔공산)에서 기도를 드리자 도인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국난이 사라지고 통일을 이룰 수 있다 하여 세웠다고 한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을 기리는 의미에서 `부인사(夫人寺)`라고도 쓰고 초조대장경을 보관한 데서 연유한 `부인사(符仁寺)`로 쓰기도 한다. 한 때 39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전국 유일의 승시장(僧市場)이 서기도 했던 큰 사찰이다. 지금도 숭모전에는 여왕의 영전이 봉안되어 있으며 해마다 봄이면 선덕제를 지내고 여왕을 추모하는 행사가 이어진다.

부인사에는 은통당 부도와 석종형 부도,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 석등과 배례석, 일명암지석 같은 훌륭한 문화재가 많다. 마모와 파손이 심해 복원했지만 안타깝게도 짜임이 어색해 보인다. 넓고 깔끔한 경내와 웅장한 전각들, 게다가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는 부인사의 눈빛은 어딘지 쓸쓸하다. 쓰리고 할퀴어진 상처들로 내성이 생긴 것인지 부처님의 공덕으로 마음을 비워낸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지난 세월을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고 무심히 자리를 지키는 부인사의 속살을 보고 싶다.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염불 소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대웅전 삼존불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삼 배를 해보지만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주인 잃은 개처럼 썰렁한 경내를 두리번거리며 헤맨다. 이 순간 소요의 즐거움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막연한 느낌이지만 부인사는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아픈 민족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사찰이라는 사전지식 때문일까. 편안한 현실 뒤로 조상들의 질곡이 가쁘게 호흡하는, 그 애절한 눈빛을 만나고 싶었다. 대웅전의 삼존불이나 명부전을 지키는 지장보살, 수려한 자태의 산신과 숭모전의 선덕여왕, 모두가 상흔을 감춘 채 침묵하고 있다.

무심코 玄音閣(현음각)이란 현판이 걸린 범종각 앞에 섰다. 깊고 그윽한 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적막한 겨울 산사에 뽀얗게 먼지를 일으키며 몽고군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삽시간에 경내는 불바다가 되고 거란의 침입을 막고자 만든 고려대장경도 잿더미가 되고 만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보다 200년이나 앞서 만들었다는 민족의 염원이 화염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처절한 아비규환과 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이 그 옛날의 부인사와 나를 덮친다.

▲ 대구 부인사
▲ 대구 부인사

부인사는 현실 참여적인 절이었다. 속세를 등지고 앉기에는 나라 사랑하는 열정이 너무 뜨거웠을까. 무신 최충헌의 집권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의연하게 일어선 스님들의 함성이 또 한 차례 부인사를 긴장시킨다. 가파른 역사의 질곡들을 온몸으로 감내하던 부인사는 정화수 앞에 선 어머니 같다. 약소국의 서러움과 애잔하고 강인한 조상의 숨결이 곳곳에 서려 있다. 귀퉁이가 깨어지고 금이 간 삼층석탑의 비호가 그제야 들린다. 개인의 안녕과 즐거움만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돌아본다. 나는 얼마만큼의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가.

부인사의 타종을 듣고 싶다. 그러기엔 저녁 예불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귀 기울여 범종이 울어대는 소리를 듣는다. 깊고 아득한 소리란 침묵과도 같은 본질의 소리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좀 더 사람답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잠언과도 같은 울림이 온몸으로 퍼져온다. 내가 추구해 온 지식과 관심은 언제나 내면이 아니라 바깥으로 향해 있었다. 짧지만 엄숙한 순간이다. 참된 나를 돌아보는 철학시간이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거룩한 종교시간이기도 하다.

부인사를 빠져나오며 돌아보았다. 황량하던 전각들이 겨울바람 속에서 생기를 띄기 시작한다. 벚꽃이 피지 않아도 아름답고 자랑스런 부인사다. 꽃보다 신록이 아름답고 신록보다 겨울 나목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절이다. 역사의 고통을 제대로 치유하고 더 큰 가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 모아 합장했다. 그대, 부인사에 가거든 현음각 앞에 서보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없는 것을 분명 들을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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