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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국제기본단위 재정의

‘세계측정의날’인 20일부터 우리가 흔히 쓰던 질량의 단위 킬로그램(㎏), 전류의 기본 단위 ‘암페어(A)’, 온도 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낸 ‘몰(㏖)’ 등의 4개 단위에 바뀐 표준이 적용된다. 이날부터 전 세계 산업계와 학계는 새롭게 정의된 단위를 사용해야 한다.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국제기본단위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표준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국제기구 약속에 따라 20일(세계측정의 날)자로 시행한다고 밝혔다.과거에는 기본단위가 실물을 기반으로 해서 변형(질량·kg, 물질의 양·mol)이 생기거나, 특정물질에 의존하여 불안정(온도·K)했다. 애매한 표현의 사용으로 혼란을 야기(전류·A)했다.바뀐 단위 기준은 우리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마이크로 수준의 오차도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질 수 있는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기업 연구소에는 영향을 미친다. 독성 조절 등 초정밀 측정기술을 필요로 한 제약업계나 정밀 측정이 필요한 산업계에선 일부 설비 보완이 필요한 사건이다.국제 도량학계는 1889년 백금 90%, 이리듐 10%로 구성된 높이, 지름 각각 39㎜인 원기둥 모양의 원기 일명 ‘르그랑K’를 1㎏의 국제 기준으로 정한 뒤 파리 인근 국제도량형국(BIPM) 지하 금고에 보관해 왔다.그러나 르그랑K가 130년이 다 되어 가면서 처음 만들었을 때보다 최대 100㎍(마이크로그램ㆍ100만분의 1g) 가벼워졌다. 이에 따라 도량학계는 물리상수 중 하나인 ‘플랑크 상수(h)’로 질량을 정의했다. 플랑크 상수는 빛 에너지와 파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 상수이자 전류 및 전압의 강도를 토대로 중량을 재는 특수저울 ‘키빌 저울’로 측정할 수 있는 불변의 자연 상수이다. 이번에 ㎏뿐 아니라 암페어(A), 켈빈(K), 몰(㏖)도 같은 물리상수인 아보가드로 상수, 기본 전하(e), 볼츠만 상수를 이용해 재정의했다.우리 역사에서도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봉서와 함께 도량형 통일을 위한 ‘유척’을 지니고 다녔다니 도량형의 중요성을 앞서 깨달은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못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0

대구 도동서원

미술사학자 유흥준 교수는 말의 마술사처럼 책을 낼 때 한마디씩 던진 말이 히트를 쳤다. 대표적인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우리의 문화재를 익히고 공부하는 만큼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감동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그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100만권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가 유행시킨 이 말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 다른 분야에서도 폭넓게 쓰이는 표현이 된다.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도 그가 지어낸 말이다. 역사를 보아도 인생을 살아보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인생 도처에는 여러 고수(高手)들이 존재하며 그 고수들로 인해 비로소 그 가치가 밝혀진다는 뜻이다. 그는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든 필부들이 상수”라고도 했다.문화를 직접 보고 배우며 체험하면서 느낀 인생철학의 화두 같은 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잘 인용하는 표현이 됐다. 그는 “국토가 박물관이다”라고 자주 표현한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그만의 각별한 애정이 담긴 말로 여겨진다. 한 때 영남대에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쳐 지역과도 인연이 닿은 학자이다.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소재한 도동서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대구로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처음 있는 일이라 경사가 난 셈이다.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소중한 문화재산이겠지” 정도 여겼던 도동서원이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올랐으니 대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유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도동서원의 최대 특징을 미적 탁월함에 있다고 해설했다. 서원 곳곳에 조각을 가미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한 곳은 도동서원에서 밖에 볼 수 없다고 극찬했다. 특히 도동서원을 둘러싼 기와돌담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물(제350호)로 지정,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문화재라 했다. 도동서원이 마지막 관문을 통과,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된다면 대구의 가치를 알리는 또 하나의 콘텐츠로 충분한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9

우리 시대 선비정신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선비란 대체로 이렇다. 지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고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신으로 많은 사람이 선비정신을 들고 있다. 유교적 철학을 바탕으로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청빈낙도의 삶을 사는 조선의 지식인을 선비 상으로 보는 것이다.유교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일컫는 군자(君子)와는 조금은 다르다. 그러나 학덕과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역사학자 가운데는 조선 왕조가 500년 역사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조선 왕조가 힘에 의한 패도(覇道)정치가 아닌 명분과 포용의 왕도(王道)정치를 한 결과라는 것이다. 법치보다 덕치를 우선하는 성리학적 철학이 숨은 배경이라는 의미다.경북을 흔히 선비의 고장이라 부른다. 유교적 전통과 관습이 강하게 흐르고 양반 사회를 대표하는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가 세계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신청한 ‘한국의 서원’ 9곳 가운데 4군데가 경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를 입증한다. 특히 경북 영주는 선비의 고장을 도시 브랜드로 이미지화하고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과 선비마을을 테마로 선비문화축제 행사도 매년 열고 있다. 선비의 정신이 현대사회에 와서도 추앙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이란 의미를 떠나 선비정신이 가지고 있는 청렴성과 도덕적 모범성 때문이다.특히 남을 위한 살신성인의 정신과 정치를 할 때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지 않는 선비의 자세가 시대를 초월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이다.영주시가 고귀한 선비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선비대상 후보자 공모에 나섰다고 한다. 선비사상 구현과 선비정신 실천 등에 공이 큰 사람에게 상을 준다. 물질만능에 치우쳐 상실돼 가는 우리의 도덕성 회복에 각성제 역할을 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6

귀 건강 지키기

전 국민이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꽂은 채 음악이나 뉴스를 듣는 시대에 자칫하면 귀건강을 잃을 수 있다. 특히 이어폰을 통한 잦은 음악 감상은 고막에 무리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이어폰을 끼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면 ‘소음성 난청’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전화 통화를 비롯해 음악 감상, 동영상 시청 등을 떼놓고 하루의 일상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게 문제다.그렇다면 ‘60·60 법칙’을 지키며 이어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이는 WHO(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방법으로 이어폰 이용을 ‘최대 음량 60% 이하’, ‘하루 60분 정도’로 지키는 것이다. 큰 소리에 장시간 노출될수록 청력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급적 작은 음량, 단시간으로 이어폰을 이용해야 한다. 청력은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올바른 생활습관을 통해 청력 관리에 신경을 쓰고, 이상을 느끼면 즉각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큰 소음을 피하는 것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휴식기를 가져야 한다. 이어폰으로 30분 이상 음악을 들었다면 5∼10분간 이어폰을 빼고 쉬는 것이 좋다.또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은 후에는 바로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헤어드라이어나 선풍기의 찬 바람으로 귀를 충분히 말려 건조하게 유지해야 외이도염을 방지할 수 있다. 고온다습한 여름 장마철도 외이도염이 발병하기 좋은 환경이므로 이때는 이어폰 사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고무 패킹이 달린 ‘커널형(밀폐형) 이어폰’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고무마개가 귓속 깊숙이 파고들어 완전히 밀폐되게 만들어 세균성·진균성 염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널형 이어폰은 고무마개를 자주 교체하고 소독용 에탄올을 활용해 닦아주는 것이 귓병 예방에 좋다. 커널형 이어폰은 고막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기 때문에 소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의 헤드폰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은 이어폰 하나에 귀건강이 달렸으니 주의사항을 숙지해 사용할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15

세종대왕 탄신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을 설문조사해 보면 대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을 손꼽는다. 그 중 세종대왕은 한국 역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성군(聖君)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조선시대 4대 국왕이며, 태종의 셋째 아들이다. 선왕 3명(태조, 정조, 태종)이 모두 고려왕조에서 신하로 일하다 왕위에 올랐으나 세종은 조선시대 조선 사람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첫 임금이다.세종대왕의 업적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하다. 우리민족 역사에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왕으로 평가된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을 펼쳤다. 측우기 개발 등 농업과 과학의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우리민족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업적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왕이다.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자를 그는 만들었다. 세계인이 극찬하는 과학적 원리의 글자이다. 특히 “어리석은 백성들로 하여금 쉽게 글을 익혀 편안하게 사용하고자 함에 있다”고 밝힌 그의 한글 창제 배경이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愛民)정신에 있어 한글 창제의 의미가 더 값져 보인다. 이 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종의 이름을 딴 명칭이 우리나라 곳곳에 사용된다. 대한민국 최초의 이지스함을 세종대왕함이라 명명했다. 1만 원권 지폐에는 세종대왕의 얼굴이 실려 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이름에도 이 분의 이름을 사용했다.5월 15일은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올해로 622돌이다. 이 날은 바로 스승의 날이기도 하다. 스승의 날을 세종대왕 탄신일로 잡은 것은 민족의 큰 스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만이 공자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삼은 것과 비슷한 경우다. 세종이 성군일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능력가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왕이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백성에게 자주 은전을 베풀고 노비의 처우를 개선하는 등 애민의 정신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성군 세종의 애민정신을 모두가 되돌아보는 일은 퍽 의미가 있는 일이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14

레깅스 논란

레깅스는 요가나 운동을 할 때 거추장스러움을 막기 위해 몸에 딱 달라붙도록 입는 복장을 가리킨다. 레깅스가 일상복이 되면서 찬반 논란이 미국에서 한창이다.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지난 3월 가톨릭 계열의 인디애나 노트르담 대학 신문에, 가톨릭 신자이며 4명의 아들을 둔 엄마라고 밝힌 여성이 노트르담 대학 여학생들에게 레깅스를 입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글을 기고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엄마는 여학생들이 레깅스 대신에 청바지를 입어달라고 호소했다. 이 글을 읽은 노트르담 학생들은 오히려 반발하면서 ‘레깅스 시위’를 벌였다. 여성의 복장이 남성을 유혹해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책임을 여성의 잘못이라고 암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들은 여성들은 자유롭게 의상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남성 때문에 특정 의상을 입지 못한다거나 행동의 제약을 받는 것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국한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는 와중에 미국의 일부 보수적인 학교 등에서 레깅스를 착용한 여성의 출입을 금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미 인터넷 매체인 복스는 최근 텍사스 휴스턴 제임스 메디슨 고등학교에서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노출이 심한 옷과 여성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레깅스, 깊게 파인 옷 등을 입은 학부모는 학교 출입을 제한하도록 하겠다’고 공지했고, 일부 학부모들이 “시대작오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여성들이 레깅스를 일상복으로 입는 것 자체가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데 무의식적으로 동조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의 기고에서는 운동을 할 때 몸에 편하고 활동성이 좋으려면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되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든 여성들이 비싼 요가복이나 레깅스를 입는다고 지적했다. 비싼 레깅스를 팔려는 스포츠 의류업체들의 마케팅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 여성들이 2007년에는 레깅스보다 정장을 구입하는 데 21억달러를 더 사용했으나 2017년에는 그 차이가 1억5천800만달러로 줄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뜨거운 레깅스 논란이 우리나라에도 머지않아 보인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13

민생고(民生苦)

민생고란 일반 국민들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겪는 고통을 말한다. 예로부터 백성한테는 먹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인류의 생존 과정도 자세히 따지고 보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감히 말해도 된다. 오죽했으면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호구지책(糊口之策)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싶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 살길을 찾아보겠다는 인간 본능적 욕구를 강하게 표현한 말이다.맹자는 백성의 생활이 얼마나 안정되느냐 하는 것이 통치의 근본이라 했다. “정치가 뭐냐”고 묻는 제(齊)나라 선왕의 물음에 “백성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의 길은 저절로 열린다”고 콕 집어 설명했던 것이다.조선시대 최고의 개혁적 조치로 평가받는 대동법(大同法)은 먹고 살기에 지친 농민에게 생존의 희망을 준 착한 정책이다. 가구 기준으로 받았던 세금을 토지 기준으로 바꾸면서 소작농을 비롯한 많은 서민이 세금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토지의 많고 적음이 세금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지주 계층인 양반사회의 극렬한 반대가 뒤따랐다.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100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전해지니 당시 양반들의 저항이 만만찮았음을 짐작케 한다.몇 년전 청백리로 칭찬받던 전직 대법관이 민생고 해결을 위해 대형 로펌에 들어가면서 던진 말이 있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가지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의 로펌행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보통시민으로서 살아가기에 경제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문 정부의 경제 정책이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 정책에 대한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의 배를 넘는다. 야당의 비판도 경제 실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여당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도 경제 분야다. 먹고 사는 문제가 꼬여 국정 지지도가 떨어지니 이래저래 경제가 골칫거리다.일찍 정치의 요체가 민생이라 했던 맹자의 말이 새삼 와 닿는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12

안동의 겹경사

20년 전인 1999년 4월 21일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찾은 날이다. 한영수교 116년 만에 영국 국가 원수의 처음 있는 한국 방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가장 한국적인 곳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뜻에 따라 안동 하회마을과 봉정사가 여왕의 방문지로 선택됐다. 여왕의 안동 방문을 두고 당시 언론은 영국 신사와 한국 선비의 만남이라고 비유했다.갓을 쓰고 도포를 차려입은 한국 종손의 동양식 환대를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여왕의 모습에서 왕국의 품격을 느끼게 했던 일이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의 씨족 마을이다. 낙동강 줄기가 이 마을을 S자형으로 휘감아돈다하여 하회(河回)란 이름이 붙었다. 600여 년을 한 씨족이 대를 이어 살아온 마을이다.임진왜란 시절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등 많은 고관들을 배출한 양반 마을이다. 한국의 전통적 주거문화가 남아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사회구조의 독특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는 문화적 가치가 인정된 곳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으로 201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봉황이 날아와 앉았다는 봉정사도 201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신라 고찰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이 이곳에 있다. 당시 여왕은 방명록에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글을 남겨 화제가 됐다.지금 안동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의 이곳 방문을 앞두고 온통 축제 분위기다. 오는 14일 안동을 방문할 앤드루 왕자는 어머니가 다녀간 하회마을-농산물도매시장-봉정사 등 똑같은 길을 다녀 볼 예정이다.여왕이 다녀간 20주년에 영국 왕실의 손님까지 다시 맞게 된 안동시는 경사가 겹친 꼴이다. 앤드루 왕자가 걷게 될 길을 ‘로열웨이’라 부르고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여왕의 안동 방문으로 하회마을은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변신했다. 앤드루 왕자의 안동 방문이 주는 의미 또한 크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09

끝나지 않은 라돈공포

라돈(radon, Rn)은 원자번호 86번의 원소로, 강한 방사선을 내는 비활성 기체 원소다. 우라늄과 토륨의 방사성 붕괴 사슬에서 라듐(radium, Ra)을 거쳐 생성되는데, 원소 이름은 원천 원소 라듐에 비활성 기체의 접미어‘on’을 붙여 지었다. 지구 대기 중에는 기체 분자 1천20개당 대략 6개의 비율로 들어 있다.라돈은 미국환경보호국이 흡연 다음가는 주요 폐암 원인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건강에 위험한 기체다. 지난해 5월 대진침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되는 침구류, 온수매트, 미용 마스크 등 생활제품이 꾸준히 발견돼 국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에는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전기매트와 침구류에서 또 검출돼 비상이 걸렸다.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삼풍산업·(주)신양테크·(주)실버리치가 제조한 가공제품에서 나온 라돈이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에서 정한 안전기준(연간 1mSv)을 초과해 해당 업체에 수거명령을 내렸다”고 7일 밝혔다. 삼풍산업은 2017년 3월부터 전기매트‘미소황토’, ‘미소숯’, ‘루돌프’, ‘모던도트’, ‘스노우폭스’ 등 모델 5종에 모나자이트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모나자이트는 우라늄과 토륨이 1대 10 정도로 함유된 물질로, 우라늄과 토륨이 붕괴하면 각각 라돈과 토론이 생성된다. (주)신양테크는 2017년 3월부터 ‘바이오실키’ 베개에 모나자이트를 썼고, (주)실버리치는 2016년 8월부터 2017년 6월까지 ‘황금이불’, ‘황금패드’ 등 침구류 2종에 모나자이트를 사용했다. (주)시더스가 태국에서 수입·판매한 ‘라텍스 시스템즈’ 역시 안전 기준을 초과(연간 5.18mSv)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업체가 2015년 3월 파산해 정확한 판매 기간과 수량을 파악할 수 없어 문제다. 원안위는 방사능이 의심되는 제품은 즉시 생활방사선 안전센터로 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원안위는 모나자이트 같은 방사성 원료물질을 넣은 제품의 제조·수출입을 막는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 일부개정법률’을 마련, 오는 7월 시행한다. 국민들을 걱정케하는 라돈공포를 끝낼 수 있도록 정부가 만전의 방안을 강구해주길 바란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8

‘개나소나 콘서트’

2009년 청도에서 시작해 작년까지 10회 공연을 가졌던 ‘개나소나 콘서트’가 올해도 열릴 수 있을까 초미의 관심사다.‘개나소나 콘서트’는 반려동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공연으로 지방소도시에서 개최돼 전국적 명성을 날렸던 이색 행사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기획한 이 행사는 세계 최초로 반려동물을 배려한 음악회라는 점에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고 시작 첫해부터 수천 명의 관중이 몰려올 만큼 큰 반향을 일으킨 행사다. 청도군이라는 소도시를 전국적으로 알린 계기가 됐으며, 다른 지자체가 호시탐탐 탐내는 행사가 됐다. 지금도 전씨에게는 지속적인 러브콜이 온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전씨는 최근 10여 년 살아왔던 청도를 홀연히 떠났다. 청도 세계 코미디아트페스티벌(청도 코아페) 개최를 앞두고 청도군과 생긴 갈등이 이유라 했다. 무슨 영문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전씨의 말대로라면 페스티벌 행사와 관련해 “모욕감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주변의 권유에도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다고 했다.전씨는 청도에 이사 오자 재능 기부형식으로 농촌을 활성화해보자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벌여놓은 사업들이 꽤 많다. 복날 희생된 견공들을 위한 개나소나 콘서트 말고도 2011년에는 철가방 극장을 열었다. 웃음을 배달한다는 발상으로 전국 최초의 개그 전용극장을 세운 것이다. 개관 이후 4천400여 회의 공연을 개최했으며, 2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방문을 했다. 또 그는 2015년 청도 세계 코미디아트 페스티벌을 기획해 한적했던 농촌마을을 전국적으로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이다. 누가 뭐래도 소싸움 도시 청도를 전국적으로 알린 일등공신이다. 그가 떠난 청도에 또다시 그가 기획하는 행사가 열릴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청도군으로서 그의 ‘탈 청도’가 뼈아픈 후회로 남을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전씨 지인들의 도움으로 올해는 개나소나 콘서트가 청도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다. 콘서트 상표권을 가진 그의 구두 승낙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가 없는 개나소나 콘서트가 ‘앙꼬 없는 찐빵’처럼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07

카톡 청첩장

청첩은 주로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주인이 사람들을 초청하는 글을 말한다. 따라서 청첩장은 혼인 잔치만이 아닌 돌잔치, 회갑잔치 등에 쓰이는 초대장을 가리킨다. 1973년 ‘새가정의례준칙’에“혼례, 수연의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돌리면 안 된다”라는 규정이 생긴 것으로 보아, 1970년대 이전에는 회갑잔치에도 청첩장을 돌리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 돌잔치, 회갑잔치 등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혼례식에 초대하는 문서만을 보통 ‘청첩장’으로 부르고 있다.청첩장은 공문서가 아니지만 갖추어야 할 요건을 제대로 갖추어 매우 신중하게 보내는 것이 예의에 맞다. 보통 결혼식의 날짜와 시간, 장소, 예식장에 오는 길과 차편 등을 기록하며, 혼인 당사자의 부모와 당사자의 이름을 명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결혼식 참석에 대한 감사의 뜻이나 신랑·신부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의지 등을 함께 표현하기도 했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제3의 인물인 청첩인을 내세워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의 청첩장을 보면, 청첩하는 주체는 신랑·신부의 부모, 즉 혼주인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이후에는 혼인 당사자가 청첩의 주체가 되어 직접 보내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결혼 당사자가 자신의 결혼식에 직접 청첩인이 된 것은 혼주의 역할이 축소됐음을 반영한다.청첩장 안내문의 변화는 결혼이 집안의 행사에서 개인의 일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반영하고 있다. 2010년 이후에는 인터넷 통신 및 스마트폰의 발달로 친소관계에 따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간단하게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종이로 된 청첩장을 대신하는 예가 크게 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부고 또는 청첩이 왔을 경우 스마트폰 화면을 캡처해 프린트 해놓은 것 만으로도 종합소득세 신고시 비용처리가 가능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결혼 소식을 전하는 데에는 종이로 된 청첩장이 여전히 중요하다. 예의를 다해 손님을 청하고, 대접하는 것이 현대라고 해서 나쁠리 없기 때문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6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불교에서 탑(塔)은 무덤을 뜻하기도 한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탑을 세운 뒤 자신의 사리를 이곳에 보관하라고 하면서 탑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초기 불교에서 사리를 안치한 탑 중심의 신앙이 강했던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탑은 나무로 만든 목탑, 돌로 만든 석탑, 벽돌로 만든 전탑, 돌을 벽돌처럼 쌓은 모전석탑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인도나 중국은 전탑이 많고 일본은 목탑 그리고 한국은 석탑이 많은 나라다. 우리나라 석탑은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삼국시대 석탑으로 현존하는 탑은 신라 경주의 분황사지 모전석탑과 백제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석탑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여 년 전에 세워진 석탑인 만큼 모두가 보존 상태가 온전치 못한 건 사실이다.경주에 있는 분황사지 모전석탑은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불행히도 원형의 모습은 사라지고 3층까지의 모습만 남아있어 아쉬움이 있다.1915년 일본인에 의해 개축·보수된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 탑은 처음 만들어진 이후에도 수없이 개축된 것으로 확인돼 신라시대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탑은 멀리서 보면 벽돌로 쌓은 전탑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 보면 돌을 하나하나 벽돌 모양으로 깎아서 만든 탑이다. 전탑이 유행한 중국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복원공사가 20년 만에 완공됐다는 소식이다. 백제시대 최대 사찰로 알려진 미륵사 금당 앞에 세워진 이 석탑은 반파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다.설상가상으로 일제 강점기에 파손된 부분을 콘크리트로 덧씌워 탑은 일찌감치 제 모습을 잃었다. 문화재 당국의 노력으로 장장 20년의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우리나라 문화재 복원사업 사상 최장 기록이다. 석탑의 보수는 국제 수준에 맞게 보수, 정비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석조 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가 될 것이라도 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20년을 공들여 온 문화재 당국의 인내와 의지가 놀랍다. 1천380년 전 삼국시대 석탑이 어떤 모습으로 복원됐을까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02

정당해산의 역사

청와대 국민청원에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해산 청원이 올라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 8조 4항에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즉,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는 불순세력이 정당의 형태를 조직해 활동할 경우, 헌법에 정해진 바 정부가 헌재에 해산을 제소하게 된다. 다만 우리 정당 역사에는 위헌정당 해산제도 적용 없이 정당이 해산된 사례도 있다. 진보당 사건으로 해산된 조봉암의 진보당이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1960년 위헌정당해산제도가 헌법에 들어왔다.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의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4년 이내에 총선 혹은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기만 하면 강제해산되지 않는다. 이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2% 이하의 득표를 할 경우에는 정당등록이 취소됐는데, 이 부분이 위헌결정이 나오면서 득표율 부진의 이유로 정당은 강제해산 될 수 없다. 위헌정당해산제도는 민주주의와는 모순되는 야당 탄압용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어 적용이 쉽지않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위헌정당 해산심판에서 해산된 통진당의 경우에도 해산 청구를 한 박근혜 정부에 비민주적이란 비판이 많았다.청와대 국민청원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해산청원이 올라온 것은 2019년 4월 22일이었는데, 순식간에 100만명을 뚫어 주위를 놀라게했다. 이번 청원은 선거법과 개혁입법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폭력사태 등 자유한국당이 상대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상황을 연출한 탓인지 5월 1일 오후 4시 기준 156만여명으로 신기록을 경신했다. 자유한국당 역시 더불어민주당 해산청원을 올렸으며, 등록한지 48시간이 되기도 전에 청와대 답변 기준선인 20만명을 넘겼다. 어쨌든 100명이 넘는 현역의원을 가진 제1야당을 정부여당이 해산절차를 밟는 무리수를 놓을 리야 없지만 자유한국당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01

대구의 랜드마크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대표적 상징물인 건물이나 문화재 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징물은 그 나라나 도시를 널리 홍보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그곳의 관광산업 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여신상, 런던의 타워 브릿지 등은 그 나라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시드니하면 오페라하우스를 연상하듯 이런 상징물들을 우리는 ‘랜드마크’라고 부른다. 랜드마크는 원래 여행가들이 어느 지역을 여행하면서 처음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둔 것을 가리켰으나 지금은 건물이나 조형물 등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란 뜻으로 통한다. 한때는 63빌딩이 서울의 상징이 된 적도 있다. 지금은 제2 롯데타워가 그 이름을 대체하고 있다. 세계 5위 높이의 롯데타워는 대한민국 서울의 역동적인 현대 문화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건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세계 10대 도시라 일컫는 서울만 해도 도시를 상징하는 이와 같은 건물과 문화재는 수두룩하다.고속 성장한 중국도 이젠 건축물만으로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24명의 황제가 나라를 통치하며 머물렀던 자금성은 베이징의 대표적 상징이다. 세계 5대 궁의 하나로 손꼽힌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상하이 푸둥 지구에 있는 동방타워 역시 건물의 높이나 웅장함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광저우 타워, 텐진의 영락교와 선전의 지왕빌딩 등도 한 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워도 부끄럽지 않을만한 건축물들이다. 도시의 대표성만큼이나 관광자원으로서 홍보와 효과도 뛰어난 건물이라 할 수 있다.인구 250만 명이 살고 있는 대구는 어떤 상징물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퍼뜩 떠오르는 상징물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구시가 시청 신청사 건립을 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나섰다고 한다. 최고의 정성을 들여 대구의 랜드마크가 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도 들린다. 늦은 걸음이라도 괜찮다. 100년 대구를 내다본 신념이 담긴 건축물로 탄생하였으면 하는 게 시민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30

전기차 vs 수소차

전기차는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 등의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나 전동기와 내연기관을 같이 장착한 하이브리드 자동차와는 달리 순수히 전기만 사용해 구동하는 자동차를 의미한다.전기자동차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시기인 1830년대에 최초로 개발됐다. 심지어 100㎞/h를 처음 돌파한 것도 전기자동차였다. 그러나 당시의 전기자동차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성능 향상이 지지부진했고, 비싼 가격, 심하게 무거운 배터리, 너무 긴 충전 시간 등의 문제가 있었다. 결국 전기자동차는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1990년 이후 화석연료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앞다퉈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본격적 개발은 21세기의 눈부시게 향상된 전력전자 기술과 우수한 반도체 등의 첨단 기술에 힘입어 내연기관 차량이 100년에 걸쳐 쌓아올린 내연기관의 성능을 고작 10년도 안 돼서 쫓아오는 데 성공했다.최근 정부가 지원을 약속한 수소차 역시 전기차의 일종이다. 다만 기존 가솔린 내연기관 대신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만드는 연료전지를 이용한 차세대 친환경 자동차를 말한다. 전기차와 수소차는 전기를 이용해 모터를 구동한다는 구동방식에서는 똑같다. 다만 전기 충전 방식이 다르다. 전기자동차는 일반적으로 관공서, 아파트, 개인주택에서 전기 충전기를 설치해야 충전이 가능하고, 충전 시간이 급속 기준으로 40∼50분 걸려 상대적으로 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수소차는 수소를 충전하므로 충전 시간이 매우 짧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국내 수소 충전소가 많지 않고, 충전소 시설비용도 수십억원으로 비싸 운영이나 충전 인프라 구축에 어려움이 많다.어떻든 전기차든 수소차든 향후 충전 인프라만 충분히 구축된다면 점유율이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친환경자동차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대세인 만큼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전기차나 수소 자동차가 대중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야흐로 친환경자동차시대가 다가온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29

경북 농업의 힘

얼마 전 농림식품부가 ‘2018년 귀농귀촌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귀농인은 귀농 결심 이유로 ‘자연환경이 좋다’(26.1%) ‘귀농비전과 발전 가능성’(17.9%) ‘도시생활의 회의’(14.4%) 등을 차례로 손꼽았다. 특히 귀농인의 60.5%가 만족한다고 말했다. 불만스럽다는 7%였다. 32.5%는 보통이라고 답했다. 또 귀촌 가구의 19.7%가 귀촌 이후 5년 이내에 농업으로 유입됐고, 귀농 준비에 평균 27.5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조사됐다. 귀농 5년차에 들어 평균 소득이 3천896만원으로 올라서 농가의 평균 소득을 웃돌았다고 한다.베이붐 세대의 귀농 행렬에 이어 최근 심각한 취업난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도 귀농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해동안 귀농귀촌 인구가 51만 명을 넘어섰다.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농촌 현실에 귀농인구 증가는 반가운 소식이다. 각별히 주목되는 것은 40세 미만 청년 귀농가구가 전체 귀농가구에 차지하는 비율도 해마다 증가세에 있다는 점이다.본래 귀농은 농촌을 떠나 제2차 3차 산업에 종사했던 사람이 농촌으로 환류하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불황에 의한 노동력의 환류나 은퇴노동자의 복귀가 대부분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농촌의 귀농 사정이 이랬다. 그러나 최근 젊은 엘리트의 귀농도 부쩍 늘어난다 한다. 고학력자나 전문직 종사자의 귀농은 귀농 현상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가능성을 보이게 한 낙관적 변화다.경북도가 14년간 귀농 1위 지역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귀농귀촌 통계에서 전국 가구의 18.3%가 경북에서 이뤄졌다. 1960년대 이후 오랫동안 경북도를 웅도(雄道)라 불렀다.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제1의 도시란 뜻이다. 웅도의 위세가 많이 쇠퇴한 측면이 있으나 경북은 여전히 전국 최고의 위용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 농축산물의 생산과 판매는 최고다. 다양한 고소득 작물과 선도농가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귀농 1등 경북은 ‘경북의 농업’의 매력을 의미한다. 전통 경북 농업의 힘이라 하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4-28

약령시

약령시(藥令市)에 명령을 뜻하는 영자가 들어간 것은 관(官)의 명령에 따라 시장이 열렸기 때문으로 해석한다.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중국으로부터 수입해 온 약재를 많이 사용했다. 그래서 중국에서 들어온 약재를 당약(唐藥), 당재(唐材)라 불렀다. 중국 약재와 구분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향약(鄕藥)이라 부른다. 중국산 당약은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 하므로 일반인이 사용하기에는 힘든 약재다. 그래서 값싼 약재의 손쉬운 구매를 위해 조선 세종 때는 향약 생산을 장려하는 기구와 정책을 펴기도 했다.국내 약재의 주요 산지로는 예로부터 경상도와 강원도, 전라도를 손꼽았다. 특히 대구와 원주, 전주는 주변에서 반입되는 약재의 집산지로 잘 알려져 있었고, 이곳은 관할 관찰사의 명에 따라 약령시가 열렸다고 한다. 약령시는 음력 2월과 10월 1년에 두 번 열린다.약령시가 열리면 관리가 나와 중국에 바치는 약재(조공약재)와 우리나라 조정에서 필요한 약재를 먼저 매입했다고 한다. 약령시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 각지의 약초 재배자와 채취자, 상인과 약재 수요자가 몰려 시장은 성시를 이뤘다. 약령시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것이 대구약령시다. 대구약령시는 1658년 효종 9년에 시작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의 약령시에는 단순 거래와 교환 외에도 많은 사람이 찾아와 약령시 개설을 알리는 각종 행사도 열었다고 한다.따지고 보면 올해가 대구약령시 개장 361주년 되는 해다. 이 만큼 긴 역사를 가진 축제도 잘 없다. 한국기네스위원회는 2001년 대구약령시를 한국 최고(最古)의 약령시로 인증을 했다.또 2004년에는 대구약령시 일원이 한방 관련 분야 최초로 한방특구 지정도 받았다. 귀중한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인정된 셈이다.대구약령시 한방축제가 5월2일부터 5일간 약전골목 일원에서 열린다. 거리극단, 한방미용체험, 정성탕 나누기 등 각종 행사도 덩달아 펼쳐진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왔던 전국 최대의 약령시 축제가 이제 현대적 축제로 발전, 새로운 중흥기를 맞고 있다. 힐링감을 느낄 수 있는 한방축제 속으로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25

조현병 논쟁

최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방화·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조현병 환자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조현병은 정신질환의 하나로,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렸다. 하지만 부정적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악기의 현을 고르다’는 뜻의 조현병(調絃病)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악기의 줄처럼 이어진 뇌의 신경구조가 잘 조율되지 않아 정신적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조현병의 주된 증상은 환청, 망상, 이상 행동 등의 증상과 감정이 메마르고 말수가 적어지며, 흥미나 의욕이 없고, 대인관계가 없어진다. 환자들은 흔히 환각을 경험한다. 어떤 환자들은 이런 환청과 대화를 하기도 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환각과 함께 망상은 정신분열병의 가장 특징적인 증상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신과 연관지어 개인적인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망상, 나를 감시하고 있다거나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피해망상, 내가 구세주이거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종교망상을 자주 볼 수 있다. 망상은 합리적인 설득이나 논쟁으로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 의사들은 망상이나 환각, 환청, 이상한 행동 등이 6개월 이상 지속하면 조현병으로 판단한다. 조현병 환자가 전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 환자들은 공격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전문가들은 보건 당국, 경찰, 지역 사회 등이 나서서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사회 안전망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는 피의자와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만드는 강력 범죄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따라서 기초수급자 등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 어려운 조현병 환자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공공의료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 스스로 치료를 중단한 고위험군 환자는 방문 확인을 하는 등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또 치료조건부 기소유예나 현재 유명무실화된 치료명령제도를 활성화해 국가·지자체 차원에서 환자들을 관리해야 한다. 조현병 환자가 불특정다수를 향한 강력 범죄 피의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24

신문고(申聞鼓)

신문고는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북을 쳐서 임금에게 알리는 옛날 왕조시대의 민원 상소 제도다. 조선시대 때 태종이 이 제도를 도입해 백성의 억울함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 신문고는 원래 당나라 태종이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설치한 등문고(登聞鼓)가 최초인데 이것이 조선으로 유래한 것이다.역사가들은 백성의 뜻을 잘 살핀 조선 태종(이방원)과 당나라 태종(이세민)은 닮은 데가 많다고 해석하고 있다. 우선 태종이란 묘호를 쓴 게 같다. 태종이란 묘호는 본래 건국 후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가의 기틀을 다진 왕들에게 붙여주는 명칭이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대표적이다.조선의 이방원과 당나라의 이세민은 둘 다 개국 군주의 아들이다. 둘 다 장남이 아니면서 권력의 실세였고 왕자의 난을 치르며 권력의 정상까지 오른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건국초기의 나라 기반을 굳건히 세운 공로자라는 점에서도 같다.당 태종은 중국 역대 황제 중 최고의 성인(聖人)으로 통한다. 그는 농민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나눠주고,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등용했다. 등문고를 설치, 백성의 억울함을 살피는 등 국가와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푼 황제다.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조선 태종도 사실상 조선의 창업군주라 불린다. 정몽주를 제거하는 등 개국 공신일 뿐 아니라 아버지를 이어 국가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세운 그의 공로는 대단하다.1401년 조선 태종이 설치한 신문고는 백성들의 억울함을 왕이 직접 듣고 풀어주기 위한 제도다. 억울한 백성은 대궐 밖 문루에 올라가 북을 두드리면 임금이 직접 이를 챙겼다고 전한다. 지금으로 보면 청와대 게시판과 같은 역할을 한 제도다. 이용하는 백성이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왕조시대에 백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고 한 왕의 발상이 놀랍다.‘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지금의 국민청원은 곧 조선시대 신문고와 비슷한 취지의 정책이다.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이 21만 명을 넘었다. 정치권이 풀지 못하고 있는 포항시민의 요구에 이제 청와대가 답할 차례다. 어떤 답을 줄지 사뭇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4-23

위기의 ESS

ESS(Energy Storage System)는 태양광·풍력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나 값싼 심야 전기를 배터리처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이에 쓰이는 장치를 축압기라고 하고, 더 넓은 범위의 시스템 전체를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라고 부른다.일반 가정에서 사용하는 건전지나 전자제품에 사용하는 소형 배터리도 전기에너지를 다른 에너지 형태로 변환하여 저장할 수 있지만 이런 소규모 전력저장장치를 ESS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수백kWh 이상의 전력을 저장하는 단독 시스템을 ESS라고 한다.에너지 저장방식에 따라 크게 물리적 에너지저장과 화학적 에너지저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물리적 에너지저장으로는 양수발전과 압축공기저장, 플라이휠 등을 들 수 있으며, 화학적 에너지저장으로는 리튬이온배터리, 납축전지, NaS전지 등이 있다. 배터리 형식의 ESS를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ESS라고 하면 BESS를 말한다.문제는 우리나라에 설치된 ESS에 원인불명의 화재가 잦아 가동이 중지되는 등 업계가 위기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ESS 화재는 지난 2017년 8월 전북 고창변전소에서 처음 발생한 이래 올 1월까지 전국에서 21건이 잇따랐다. 이 가운데 15건(71%)은 태양광·풍력 발전에 연계된 ESS에서 일어났다.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ESS 가동 중단을 권고했고, 지난 1월부터 ‘민관 합동 ESS 화재 사고 원인 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하고 있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 곳에서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산업통상자원부가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4월 12일 기준으로 전국에 설치된 ESS 1490개 중 747개가 가동 중단 상태다. 화재가 잇따르자 전국 ESS의 절반은 가동중단 조치됐고, ESS 신설 역시 중단됐다.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이 지연되면서 신규 ESS 설치 계약 물량도 끊겨 ESS 산업 생태계도 무너지고 있다.신재생에너지 시대를 맞아 관련 기술의 선제적 개발과 적용 노력이 아쉬운 때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