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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제2의 천안문 사태

1978∼1992년 중국의 최고 실권자였던 등샤오핑은 오늘날 중국의 근대화를 이룬 정치 지도자다.‘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흑묘백묘론을 앞세워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이 잘 살면 그것이 최고라는 사상으로 중국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다.그의 개방 정책은 오늘날 중국을 G2 국가로 성장시킨 배경이 됐다는 점에서 그는 긍정적 지도자로 평가받는다.그러나 그의 개방 정책이 한편으로 중국의 민주화 열기를 끌어들였고, 이를 진압하는 선봉에 그가 섬으로써 그는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그의 개방 정책으로 일어난 중국에서의 민주화 요구는 급기야 천안문 사태로 발전한다.부정부패 척결과 민주화를 요구한 수십만 군중을 향해 등샤오핑은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 진압에 나선다. 무차별적으로 쏘아 댄 최루탄과 실탄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1989년 당시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사망자 200명 정도다.하지만 항간에서는 수천명, 영국정부의 외교문서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서는 1만명이 넘는 사람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올해 6월로 중국의 천안문 사태는 발발 30년째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중국의 젊은이와 지식인에게 천안문 사건은 잊혀진 과거사일뿐이다.중국 정부가 빠른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 중국인 머리에는 천안문 사태는 지워지거나 잘못된 민중 항거정도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공산당인 중국에서의 민주화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라 할 수 있다.송환법으로 촉발된 홍콩의 시위사태가 천안문 사태 30년을 기점으로 더욱 폭발하고 있다.중국 인민군의 홍콩 접경지 집결 등 중국 정부의 대응 움직임도 심상찮아 국제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게 한다.중국으로 반환된 땅이라 하지만 홍콩의 국제적 위상은 여전히 자본주의 가치 존중과 인권의 보루라는 상징성에 있다.만약 만에 하나라도 무력진압이 진행되면 국제사회의 경제 질서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홍콩경제가 예측불허의 충격에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홍콩사태에 대한 중국의 접근 방식을 눈여겨보고 있다. 제2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날까 봐서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8-18

‘창과 방패’

‘창과 방패’는 법 지상주의자인 한비자(韓非子)가 유가(儒家)의 덕치주의를 비판한 고사로 유명하다. 초나라 때 한 무기상인이 시장에 창과 방패를 팔러 나왔다. 상인은 먼저 창을 들고 외쳤다. “여기 이 창의 예리함은 천하일품으로 그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버린다”고 했다. 이어 상인은 방패를 들고 소리쳤다. “이 방패는 견고하여 어떤 창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본 구경꾼들이 “그러면 예리한 창으로 견고한 그 방패를 찔러보면 어떻겠소”라고 물으니 상인은 서둘러 시장을 떠났다.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생겨난 고사로 한비자의 난세편에 나오는 이야기다.한 주제를 두고 한 사람이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게 행동할 때 우리는 이율배반적이라 한다. 그리고 일이 생겼을 때마다 왔다갔다하며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사람을 자가당착적 행동자라 표현한다.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요즘 많이 유행한다. “남이 바람을 피우면 불륜이고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라는 것이다. “남이 벼락을 맞으면 하늘의 뜻이고 내가 벼락을 맞으면 재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마음대로 해석하는 모순적 태도를 꼬집는 표현이다. 지금 우리 정치판이 이런 모순적 상황에 빠져있다. 여야가 현안마다 집단의 이익에만 매달려 협치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인사 청문회를 마주할 때는 극과 극으로 대치한다. 언론에서는 이를 ‘창과 방패의 대결’로 비견한다.인사 청문회의 본질인 능력 검증이나 도덕성 검증은 처음부터 뒷전이다. 한쪽은 창을 들고 천하일품이라 떠들고 다른 한쪽은 천하무적의 방패라고 떠드니 국민이 보기에 어이가 없다. 8.9 개각에 따른 인사청문회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벌써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갈 것이란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미 16명의 장관급 인사가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된 전례로 볼 때 결과는 뻔하다는 관측이다. 청문회 무용론이 고개드는 이유다. 내 기준과 내 이익만 생각하고 세상을 재단하면 모순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이번 청문회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15

지방대학의 몰락

‘인서울 대학’은 90년대 유행한 용어다. ‘Universities in Seoul’의 영어 표현에서 따왔다. 서울시 내에 소재한 대학을 총칭하는 말이다.서울 쪽으로 정치와 경제 등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 우스갯소리지만 그 시절에는 서울과의 거리에 따라 지방대학을 다르게 호칭했다.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인서울 대학’이라 했고,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수도권에 있는 대학은 ‘서울 약대’라 했다. 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대학이란 뜻이다. 서울에서 그런대로 다닐만한 충청권에 있는 대학은 ‘서울 법대’다. 서울에서 제법 떨어진 대학이란 말이다. 경상도, 전라도와 같이 아예 멀찌감치 떨어진 대학은 ‘서울 상대’다. 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대학이란 뜻이다.모든 잣대가 서울 중심이다. 어느 때부터 서울에 소재해야만 우수대학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지방대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퇴조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과거에는 서울의 몇몇 대학을 빼고는 우수한 대학은 지방에도 골고루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수도권 집중화로 지금은 지방대학이 설 자리를 잃었다. 벼랑 끝 신세다.외국 어느 나라에도 찾아볼 수 없는 비정상적 현상이다. 미국, 영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과 중국도 이 정도는 아니다. 나라마다 지방에도 명문대학이 고르게 분포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여건이라고 하기에는 국가 시책의 잘못이 너무 컸다.서울과 지방으로 극단적으로 갈라진 한국의 대학구조는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내년부터는 하위권 대학부터 치명적 타격을 입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내년도 대입가능 자원은 올해보다 4만6천여명이 줄어든 47만9천여명이다. 작년 대입정원 기준보다 1만7천여명이 적다. 대입자원을 40만으로 잡고 지난해 전국 372개 대학의 입학정원을 토대로 학생을 순차적으로 채워간다고 했을 때 하위 180개 대학의 신입생 수는 0명이 된다. 기막힌 현실이다. 지난해 지방대 입시 경쟁률은 수도권 대학의 절반 수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지방대학의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방도시의 황폐화를 예고하는 현상이나 마찬가지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지방대학을 살릴 묘안이 필요한 때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8-13

디지털디톡스

디지털디톡스는 세계적으로 디지털중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처방으로 등장한 운동을 말한다. 디톡스(detox)는 인체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디지털 중독 치유를 위해 디지털분야에 적용하는 디톡스요법을 디지털디톡스라 한다. 디지털 단식이라고도 한다. 세계적인 IT회사인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도 디지털디톡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슈미트는 2012년 5월20일 보스턴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인생은 모니터속에서 이뤄질 수 없다”며 “하루 한시간 만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고 강조했다. 디지털디톡스 운동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다섯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인터넷 휴(休)요일’을 만들거나 한 시간 정도 ‘디지털과의 이별’을 연습하라. 둘째 디지털기기와 단절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뭐하고 시간을 보내나?’하는 생각을 예방하기 위해 생각의 목표를 설정하라. 셋째, 디톡스의 궁극은 침묵에 있기에 꼭 필요한 말외에는 하지 않는 ‘말의 침묵’, 불필요한 행동은 자제하는 ‘표현의 침묵’, 필요한 것에만 관심을 두는 ‘정신의 침묵’, 불같이 화를 내지 않는 ‘열정의 침묵’, 남에 대한 선입견을 품지않는 ‘상상의 침묵’을 시도해보라. 넷째, 디지털디톡스를 결심했다면 다음 날 기상한 순간 무엇을 할 지를 정해두라. 다섯째, 메신저로 수다를 떨고 싶은 욕심이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마다 공책을 임시보관함 삼아 생각을 적어두라.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하는 디지털디톡스 5계명을 소개했다. 침대로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않기, 이메일 계정 로그아웃하기, SNS와 모바일 메신저 알림기능 끄기, 디지털기기 대신 종이책 보기, 온라인 접속시간 측정하기 등 5가지다.디지털중독을 치유하기 위한 디지털디톡스가 디지털을 매개로 전개되고 있다는 자체가 아이러니다. 하지만 그만큼 디지털중독이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름휴가가 한창인 요즘, 하루만이라도 디지털디톡스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사랑하는 가족들과 더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귀한 처방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12

한국에는 없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성과를 낸다. 하나는 계층 간 대립을 해소하는 최고의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계층 간 대립은 정치의 안정을 해치는 불안한 요소다. 그러나 가진 자 특히 귀족층의 용기 있는 양보를 통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요즘 부자들의 도네이션 등이 이런 것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국민을 통합하는 힘이다. 기득권층의 솔선수범 정신은 국민을 하나로 묶고 사회적 역량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이런 경우는 고위층의 청렴성과 높은 도덕심이 관건이 된다.지금 우리가 맞이한 정치적 상황은 매우 불안스럽기 짝이 없다. 대외적으로 북한의 핵 도발과 미사일 발사, 한미일 안보공조의 불안감,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 등 어느 하나 불안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국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극으로 달리는 정치적 대립과 시민사회의 갈등은 설상가상이다.여야 정치인 모두가 좀 잘 풀어갔으면 하는 국민적 바람이 간절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의 지도층이 지금쯤 꼭 새겨야 할 정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떠올려 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와 권력을 가진 계층의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다.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시의 시민정신은 아직도 많은 후손에게 회자되는 교훈의 장이다. 영국 정부가 전쟁에서 이기고 모든 칼레 시민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그동안 저항한 죄를 물어 6명의 대표를 처형키로 결정했다. 누가 단두대에 오를 6명의 대표가 되어야 하는 문제를 두고 칼레시는 갑론을박을 벌인다. 그 때 도시 최고의 부호가 가장 먼저 목숨을 내놓기로 자청한다. 그러자 곧 칼레시의 시장과 고위 관료들이 줄지어 목숨을 내놓기를 자청하면서 칼레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도시가 된다.우리의 정치인 및 고위 관료가 이런 상황에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역사적 교훈을 백번 익혀도 한번 실천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청와대가 2기 장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검증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한국은 지금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필요한 때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11

위기의 망월지

충북 청주시에 있는 ‘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은 전국 최초로 아파트 단지 안에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4천900가구가 들어선 택지개발지구내에 생태공원이 조성된 것 자체부터가 이색적이다. 이렇게 조성되기에는 자연을 보존해야겠다는 이곳 주민들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2003년의 일이다. 토지공사가 산남지구 택지개발공사를 시작하기 전 인근 구룡산에서 동면하던 두꺼비 수만 마리가 알을 낳기 위해 방죽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주민들에 의해 포착됐다. 이곳이 두꺼비의 집단 산란지임이 알려지게 되었고,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업무방해와 환경평가 소홀 등으로 서로 맞고소를 하던 양측이 합의점을 찾아 이곳에 두꺼비 생태공원이 지어진다. 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은 이처럼 시민의 뭉쳐진 힘으로 만들어졌다. 자연을 보존하겠다는 주민들의 뜻이 모아지면서 만들어진 생태공원은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로 평가를 받았다.33만평 규모 아파트 단지를 끼고 100억 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돼 만들어진 이곳 두꺼비 생태공원은 전국 최고의 두꺼비 생태공원으로 지금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자연생태 학습장으로서도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전국 최대 규모 두꺼비 산란지로 알려진 대구 수성구 망월지가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알을 낳고 이동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선사했던 이곳은 주변의 개발과 지주들의 연이은 용도폐지 신청으로 어쩌면 못의 일부가 메워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져있다. 사유권 행사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막무가내로 자연생태계가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2007년 새끼 두꺼비 300만 마리가 이동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이곳은 도심 속 자연생태공원이라는 별명으로 전국적 유명세를 탔다.원흥이 두꺼비 생태공원처럼 개발할 수야 없겠으나 생태적 가치를 살리는 행정당국의 관심과 지혜가 필요하다. 최근 20년간 양서류의 급격한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망월지 위기에 대한 해법이 있어야 할 이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08

환율전쟁

환율전쟁은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목적으로 외환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자국의 통화를 가급적 약세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자국 통화가치 하락(평가절하·devaluation)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총성 없는 경제전쟁’이다.수출 증가와 자국 내 일자리 확보를 겨냥한 환율전쟁은 △1930년 대공황을 촉발한 1차 환율전쟁(1921~36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2차 환율전쟁(1967~87년) △2010년 이후 현재의 3차 환율전쟁 등 크게 세차례가 있었다. 특히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내수 확대와 수출 증대를 통해 경기 회복을 도모했지만 곧 한계점에 다다랐다. 이에 따라 수출 확대를 위해 자국의 통화를 약세로 유지. 수출제품의 해외 가격이 낮아짐으로써 매출 증가를 꾀했다. 따라서 환율전쟁은 일종의 근린궁핍화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라고 볼 수 있다.환율은 무역에서 큰 파급효과를 갖는다. 예를 들면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붙이면 미국에서 중국 물건이 비싸지게 된다. 그러면 전에는 값싼 중국산을 살 수 있었던 미국인 소비자나 기업은 손해를 보지만 중국입장에서도 미국에서 제품을 팔기가 힘들어진다. 이때 중국 돈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이 중국 제품에 붙인 관세가 힘을 잃게된다. 즉, 어제까지 1달러로 6위안 어치밖에 못 샀는데 오늘부터 7위안어치를 살 수 있다면 관세를 1위안 붙인다고 해도 미국인 입장에서 어제랑 가격이 똑같기 때문이다.최근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환율전쟁으로 불이 옮겨붙었다. 미국 재무부가 최근 중국을‘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위안/달러 환율이 이른바 심리적 저지선으로 불리는 달러당 7위안선(포치·破七)을 돌파한 데 따른 것이다.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 처음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와 긴밀한 관계인 두 강대국의 환율전쟁 파급효과만 생각해도 걱정이 한 짐인 데, 정부여당은 수출규제조치에 나선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니 이래저래 걱정만 늘어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07

극일(克日)

반일(反日)을 넘어 극일(克日)로 가고 있다. 여기서 반일은 일본에 반대하는 사상이나 운동을 의미한다. 과거 우리 역사에 기억된 일본과의 나쁜 감정이 섞인 표현이다. 반일 감정이 더 악화되면 혐일(嫌日)이라는 표현도 가끔 사용한다. 그러나 극일은 반일과 혐일보다 좀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 표현이다.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나쁜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일본을 이겨 더 나은 나라로 가자는 뜻이다.지금 우리는 극일운동으로 나라가 온통 떠들썩하다. 한국경제의 숨통을 거두겠다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되면서 정부와 기업 할 것 없이 일본의 경제 제재에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연일 분주하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날로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다. 여당 정치권에서는 “도쿄를 여행금지 구역에 포함시키자”는 과격한 발언까지 나왔다. 대통령도 “남북경협으로 단숨에 일본을 뛰어 넘겠다”고 하니 두 나라간 경제전쟁은 불가피한 한판 싸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이런 분위기에서 협상과 타협의 얘기를 꺼내면 이는 친일이요 배신이다. 하지만 협상과 타협은 게임을 이기는 수단으로 매우 유효하게 쓰일 수 있다. 협상과 타협은 과거에는 대체로 나쁜 이미지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승패를 가리는 방법으로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지금은 협상과 타협이 대세를 이루는 글로벌 시대다. 국가와 국가간에도 상호 협상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 새로운 국제간 질서다. 대립과 경쟁보다는 협상과 상생, 화해의 묘를 살리는 극일의 방법도 찾아보자는 것이다. 손자병법에도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라 했다. 무기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굴복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는 뜻이다.일본의 경제 보복에 온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그러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에 국민의 불안감도 증폭하는 것이 사실이다. 폭락한 국내 주식시장이 바로 냉엄한 현실을 반영한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은 ‘기술의 거래’라는 책에서 “선택의 폭을 최대한 넓혀라”고 충고했다. 극일을 위한 선택의 폭도 넓혀보면 어떨까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06

리얼돌 논란

리얼돌은 사람, 특히 여성의 실제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인형을 말하며, 사람의 실제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리얼돌의 시초는 2002년 미국의 아비스사에서 영화의 특수 메이크업에 사용하는 고급 실리콘으로 만든 데서 비롯됐다. 피부를 실리콘으로 처리해 실제 사람의 피부처럼 말랑말랑하고, 구체관절인형처럼 손가락·무릎·발가락 등의 모든 관절이 움직이는 것도 있다. 식도까지 있어 입으로 음식을 먹일 수 있는 인형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성기까지 있는 인형도 있다. 머리카락, 눈썹, 눈동자, 가슴 사이즈 등 신체의 각 부분을 섬세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 기간이 길고 가격도 비싸다.리얼돌이 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은 최근 대법원이 수입을 허용하는 판결을 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27일 한 업체가 인천세관을 상대로 낸 리얼돌 수입통관보류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해외 제작 리얼돌의 수입을 허가하면서 상용화를 사실상 허용한 셈이 됐다. 이후 논란이 불거진 것은 대법원 판결 직후 일부 판매 대행업체가 “연예인·지인 등 원하는 얼굴로 맞춤 제작을 할 수 있다”며 홍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심지어 아동의 신체를 본뜬 리얼돌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결국 청와대 국민청원에 지난달 8일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고, 지난달 31일 현재 동의 수 20만명을 돌파했다.이에 대해 여성 네티즌들은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성인용품이 될 수 있다니 끔찍하다”, “여성과 아동이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반대로 “여성 성인용품과 동일한 하나의 도구일뿐”이라거나 “오히려 성적 욕망을 해소해 성범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리얼돌의 사용 자체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남녀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화에서나 보던 리얼돌이 사회적 논란거리로 떠오르는 건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성문화가 마찰을 일으킨 때문으로 풀이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8-05

왜관(倭館)

왜관은 과거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머물렀던 장소에 붙여진 이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려말 이후 조선 초기까지 경상도 지역에는 왜구의 원정 노략질이 잦았다. 경상도 지역 여러 항구에서 출몰한 그들은 상업 활동을 핑계로 자주 말썽을 일으키자 조선시대 태종이 그들의 노략질을 막기 위한 유인책으로 왜관을 설치했다. 왜관의 설치로 그들의 왕래와 상업 활동을 공식 인정하고 교역상의 무질서를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그들이 머물렀던 왜관에는 관사와 숙소, 교역장 등이 세워졌다. 그러나 세종 때 대마도 정벌이 있은 후 우리나라에 설치된 왜관은 모두 폐쇄됐다. 이후 조선시대는 일본과의 외교 사정에 따라 왜관은 설치와 폐쇄가 반복됐다. 지리적으로 왜구의 노략질이 잦았던 동래의 부산포와 내이포, 울산의 영포 등이 왜관이 설치된 대표적 장소다. 일본인의 입국이 많아지자 서울에도 낙선방, 동평관이라는 왜관이 설치되고 관원을 두어 관리했다. 조선시대 많을 때는 한 해만 6천명이 넘는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입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왜관이라는 용어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에서 파생한 단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역사적으로 미묘한 관계에 있다. 최근 벌어진 한일간 무역전쟁도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한일간 무역전쟁으로 빚어지고 있는 반일운동 분위기 속에 칠곡군 왜관읍 지명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고 한다. 일부 시민단체는 차제에 “일제 잔재 명칭인 왜관이란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을 제안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일본인이 거주한 곳의 단순 의미의 명칭일 뿐이라 맞서고 있다. 1996년 전국적으로 일제 잔재 지명을 바꿀 때도 지금의 왜관읍은 사용해도 무방한 것으로 판단된 바가 있다고 한다. 이후 여러 번 명칭 변경 의견이 나왔지만 실행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지역민의 종합된 생각이다. 반일감정이라는 일시적 시류에 흐르기보다는 역사적 시각 등 지명에 대한 종합적 상황 등을 고려해 지역사회 스스로가 판단, 결정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8-04

슈퍼문

슈퍼문은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시기와 보름달이 뜨는 시기가 겹쳐, 평소보다 더 크게 관측되는 보름달을 가리킨다.달은 지구주위를 원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공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과 지구의 거리는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가까워 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이런 현상중 달이 지구에 가장 근접했을 때, 보름달이 뜨게 되면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달의 모습이 관측된다. 이것이 바로 슈퍼문이다. 슈퍼문이 관측될 때는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만큼 달의 인력도 가장 크게 작용하게 된다. 이는 곧 조수간만의 차(밀물과 썰물의 차이)에 변화를 주게되는 데, 평소보다 19% 가량 차이가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1일에서 4일, 그리고 30일에서 9월2일 사이에 슈퍼문이 뜰 예정이어서 관계 기관이 주의보를 내렸다. 올해 지구와 가장 가까웠던 슈퍼문은 2월19일에 있었으나, 겨울철 낮은 수온과 고기압 발달로 인해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수온이 높고 저기압인 여름철에는 해수면의 높이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국립해양조사원은 이번 슈퍼문 기간에 해수면의 높이가 2010년 이후 약 10년만에 가장 높게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해양조사원이 설정한 4단계 고조정보(관심·주의·경계·위험) 기준에 따르면 슈퍼문이 뜨는 두 기간에 33개 바닷가 예보기준 지역 가운데 21개 지역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고조정보가 ‘주의단계’로 상승할 것이란 예상이다. 이 가운데 인천, 평택, 안산, 마산, 성산포 5개 지역은 최대 ‘경계단계’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해안지역으로 여행하는 피서객들은 안전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슈퍼문이 뜨면 평소보다 빨리 물이 빠지고, 물이 들어올 때는 빠르고 높게 차기 때문에 낚시나 갯벌 체험객 등은 고립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야간(새벽) 시간대에는 해수면이 더 차오르기 때문에 야간 바다활동을 자제해야 한다. 슈퍼문이 크고 탐스런 보름달을 연출해 보기에는 좋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31

잡호핑족

평생직장 개념이 엷어졌다. 요즘 젊은이한테 “지금 다니는 직장에 평생 다닐거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노(NO)라 답할 것이다. 막상 정해진 곳은 없으나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이직할 수 있다는 뜻이다. 60,70년대만 해도 직장은 한번 입사하면 퇴직할 때까지 근무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직장에 대한 충성도며 사회적으로도 명예로운 일이었다. 연공서열이라는 체제가 유지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장을 자주 옮기는 사람에 대해서는 되레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평생직장 개념이 퇴색하게 된 것은 직업이 다양화되고 직장을 규제하는 각종 제도의 변화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문화가 크게 달라진데 기인한다. 특히 신기술의 도입 등 급변하는 정보통신기술(IT)의 변화는 직업인의 한자리 근무를 허용하지 않는다. 스카우트가 예사로 이뤄지고 유명 직장보다는 보수가 좋은 직장이 더 인기를 얻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최근 모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3명 중 1명은 자신을 ‘잡호핑족’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잡호핑족’이란 2∼3년 단위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 이직하는 직장인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고 경력을 쌓는다는 의미에서 ‘잡호핑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잡호핑족’을 이기적이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지금은 역전적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성취욕구와 도전정신을 긍정 평가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반 세기 정도가 흐른 지금, 평생직장 개념은 분명히 퇴조의 길로 들어섰다. 평생직장 개념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머물며 인간관계를 쌓아왔던 과거의 직장 문화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기성세대의 아쉬움은 있다. 행여 사람보다 물질이 우대받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도 있다.“우물을 파더라도 한우물만 파라”고 가르치신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나는 때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야 생존이 가능하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겠으나 평생직장, 평생동지와 같은 친근감 있는 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7-30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

디스커버리 제도는 본안 재판 전 증거조사 절차로 미국과 영국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 일종의 증거제시제도다. 상대방이나 제3자로부터 소송에 관련된 정보를 얻거나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변론기일 전에 진행되는 사실 확인 및 증거수집 절차를 가리킨다. 재판이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서로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의료기관이나 기업, 국가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낼 때 개인인 원고의 증거 확보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한 말이 나오게 된 것은 바로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보톡스 분쟁’을 조사중인 중소벤처기업부가 처음으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적용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4월 LG화학이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제소했던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LG화학이 굳이 미국까지 가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미국의 디스커버리는 사실심리(Trial)가 개시되기 전에 당사자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확보하고 이를 상호 공개하여 쟁점을 명확히 정리하는 제도다. 미국의 절차는 증명책임이 없는 당사자라도 서로가 가진 증거와 서류를 상호 공개하는 당사자의 증거공개의무를 핵심으로 하면서, 이를 위반시 강력한 제재수단을 두고 있다. 대웅제약과 보툴리눔 톡신, 즉 보톡스 분쟁을 벌이고 있는 메디톡스 역시 대웅제약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국내에서 증거를 공개하지 않아 미국 ITC에 제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톡스’분쟁을 제1호 ‘중소기업 기술 침해 행위 행정조사’사건으로 결정한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번 사건에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활용할 계획이다. 중기부는 먼저 기업에 적극적으로 증거 제출을 명령하고 이에 불응하면 입증 책임을 해당 기업에 묻거나 증거 확보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의 본격 도입이 필요하게 됐다. 정부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29

경북 사과의 봉변

프랑스의 화가 모리드 드니는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다고 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이며 둘째는 ‘뉴턴의 사과’, 셋째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의 사과’라 했다. 여기에 우리가 덧붙인다면 ‘윌리엄 텔의 사과’와 ‘백설공주의 사과’ 이야기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사과는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과일 중 하나다. 사과가 인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맛과 향, 그리고 효능 때문일 것이다. 미국 속담에 “하루 한 개의 사과면 의사를 멀리 한다”는 말이 있다. 사과가 품고 있는 풍부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사람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뜻이다. 백과사전에 나오는 사과의 효능을 보면 정말로 놀랍다. 자료에 따르면 사과에 포함된 식이섬유는 혈관에 쌓이는 유해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내보내고 유익한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하루 한 개의 사과만 먹어도 나쁜 콜레스테롤을 40% 가량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사과의 섬유소는 혈중 인슐린을 통제, 혈당치 변동을 예방하여 당뇨병 환자에게도 좋다고 한다. 사과에 함유된 케세틴은 폐기능을 강화한다. 또 사과의 과육은 잇몸 건강에 좋으며, 사과산은 어깨 결림을 감소해 준다고도 한다.사과하면 대구를 떠올리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제 그 명성은 경북지방으로 넘어갔다. 경북은 전국 사과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사과 주산지다. 사과 재배의 역사와 노하우도 으뜸이다. 청송사과는 저농약 재배로 껍질째 먹는 사과를 전국 처음 개발한 곳이다. 전국 어느 지역 사과보다 사과의 육질이 단단하고 저장성이 뛰어나다. 당도도 높으며 과즙이 많아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는 것으로 유명하다.최근 충주시가 충주사과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경북 청송사과와 영주사과를 비교 폄하하는 내용을 담아 말썽을 일으켰다. 청송과 영주지역 농민들의 즉각 항의로 사과는 받았지만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우리나라 사과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홍보 내용이었지만 해당지역 농민에게는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전국 최고 명품에 대한 모욕이자 자존감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경북 사과의 난데없는 봉변이었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7-28

“바캉스다”

본격 무더위와 함께 바캉스철이 시작됐다. 왜 우리가 여름휴가를 바캉스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가에 대해 그 근원을 알 수 없지만 아마 프랑스 사람의 유별난 휴가문화가 작용한 탓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프랑스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긴 휴가를 즐긴다. 물론 유럽 국가들이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프랑스는 계절별로 바캉스가 있을 정도로 바캉스 문화가 잘 발달된 나라다.프랑스에서는 1936년부터 시작된 유급 휴가가 오늘날까지 시행되고 있다. 1년에 4∼5주 정도 유급휴가를 쓴다. 여름철이면 프랑스 파리가 텅 빌 정도로 많은 사람이 휴양지를 떠난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다.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더 많다. 바캉스의 개념이 우리와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고작 4∼5일 여름휴가를 즐기는 한국인에게 그들은 별천지 사람이다.휴가는 생활의 여유에서 시작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휴가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산업이 고도성장하면서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여가활동도 생각하게 된 것이 휴가의 개념이다. 선진국이거나 부자 나라일수록 휴가의 개념이 더 철저히 지켜지고 휴가 문화도 더 발달된 이유다.7월 마지막 주다. 직장인의 올여름 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76%가 여름휴가 계획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여름휴가는 이제 일 년 중 가장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며 문화다. 그러나 휴가 기간이나 휴가비 등을 보면 아직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모습이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직장인의 휴가비는 평균 54만 원 정도로 조사됐다. 올해는 경기가 나빠서인지 국내 휴가가 해외 휴가보다 배가 많았다. 휴가 일수는 평균 4.1일 수준이었다.그러나 휴가는 많든 적든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다. 이 기간만큼은 모든 일상의 짐을 던져놓고 마음껏 여유를 즐겨 보고 싶은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방에 콕 박혀 있는 것보다 작은 비용이지만 알뜰한 준비로 휴가를 보내는 지혜를 발휘해 보는 것은 좋은 생각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7-25

괴롭힘금지법의 민낯

괴롭힘금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으로, 직장에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동이 확인되면 사업주는 가해자를 즉시 징계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최근 직장인 퇴사 결심 이유 1위로 뽑힌 상사 갑질(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결과),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간호사 태움 문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등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실제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남녀 1천500명 중 73.7%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직장 갑질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구가 많아지면서 직장내 괴롭힘금지법이 2018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지난 16일부터 시행됐다. 법안에서는 직장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의무도 명시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이를 조사하고, 피해 직원의 희망에 따라 근무 장소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만약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했음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그러나 시행 일주일여 만에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우선 괴롭힘방지법은 국가·지방공무원법의 적용을 받는 공무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공무원노동조합에서는 공무원도 괴롭힘을 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도록 공무원 복무규정이나 행동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회가 있는 여의도에서도 갑질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국회 보좌관들의 페이스북 계정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의원 보좌진은 국가공무원이지만 정작 국회의원들은 보좌진을 공무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노비 정도로 여기는 모양”이라며 “의정 활동과 관련 없는 잡다한 일들을 보좌진에게 시킨다”라고 했다. 괴롭힘 방지법을 만든 국회에서 직장내 갑질과 괴롭힘이 성행하고 있다니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24

무궁화 사랑

우리나라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근화(槿花)라고도 부른다. 신라시대 효공왕 때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는데, 이는 ‘무궁화가 많이 피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밖에도 우리의 옛 문헌에는 근원(槿原) 혹은 근역(槿域)으로 표현한 글이 나오나 이는 ‘무궁화 땅’이라는 의미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무궁화 땅에 살고 있음을 알린 표현들이다.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도 한반도에는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는 곳이라 소개하고 있다.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국화가 된 배경에는 이 같은 오랜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음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무궁화가 나라꽃이란 말은 법령 어느 곳에도 없다. 애국가나 태극기와 같이 나라의 상징인 표상물이면서 법령에 명기되지 않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그냥 자연발생적으로 국민 다수가 국화로 여겨왔던 것으로 보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도 “무궁화는 구한국시대부터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다.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고 국민 대다수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무궁화가 국화로 본격 인정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다. 일제의 침탈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국화가 자주 사용되면서다.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가 등장하고, 독립투사들이 무궁화를 우리나라와 일체화하는 글을 많이 남기면서 무궁화는 나라꽃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무궁화 꽃은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이라 한다. 단결성과 협동심을 상징하기도 하고 인내와 끈기로도 표현한다. 꽃 말도 ‘일편단심’이다. 변하지 않는 민족의 마음과 통한다고 한다.한 때 국가의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우리나라는 무궁화 꽃으로 애국심을 가르쳤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이라는 노래도 부르고 학교와 직장 곳곳에는 무궁화 꽃을 심어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시켰다. 나라 꽃 하나로 애국심을 똘똘 뭉치게 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지금쯤 곳곳에 활짝 피어 있어야 할 무궁화 꽃이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졌다고 한다. 애국정신이 그만큼 희미해진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7-23

페미니즘과 펜스룰

펜스 룰은 지난 2002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발언에서 유래된 용어다.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가 2002년 당시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참석하지도 않는다고 말한 발언에서 비롯된 용어다. 이는 성추행 등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아내 외의 여성들과는 교류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펜스 룰은 페미니즘으로 인한 미투운동이 크게 활성화하면서 나타난 사회현상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와 성차별을 타파하고, 여성의 성적 자율권과 주체성 확보 등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 정치적 운동을 뜻한다.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최근 숙명여대 강사 ‘펜스룰’ 논란이 있었다. 숙명여대에 출강했던 한 남성 A강사는 지난달 9일 자신의 SNS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 사진과 함께 “짧은 치마나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고개를 돌린다”며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다. 더욱이 여대에 가면 바닥만 보고 걷는 편”이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숙명여대 학생회는 A강사에게 입장문을 요구했다. A강사는 “불필요한 오해를 안 사게 주의하는 행동으로 바닥을 보고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오해를 사서 안타깝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학부는 교수회의를 열고, 지난 15일 A강사의 2019년도 계약은 유지하되 2학기 강의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과도한 처사’란 의견과 ‘펜스 룰’이란 보도가 뒤따르면서 논란을 빚었다. 여기서 펜스룰은 남성들이 여성과의 자리 자체를 피하는 것으로 여성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또 다른 차별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A강사의 발언은 펜스룰이 아닌 여성을 향한 성적대상화이므로 강단에서 내려오는 것이 맞다고 비판했다. 페미니즘이 미투운동을 낳고, 거기에서 빚어진 펜스 룰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걸 보면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다가오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7-22

공시생의 범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15∼29세)을 의미하는 취준생이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그 숫자가 무려 71만4천 명에 달했다.놀라운 것은 그 중 30%인 21만9천 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라 한다. 일반 기업체 입시 준비생(16만9천 명)보다 무려 5만 명이 더 많다는 통계다. 경기 침체로 인한 왜곡된 고용시장의 한 단면으로 보아기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꽤 있어 보인다.공무원을 하겠다는 젊은이를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왜 공시생의 길을 집요하게 선택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그 까닭을 한번쯤 따져 보는 것이 옳다.특히 젊은이가 세상을 향해 품어야 할 원대한 뜻이 고작 공무원 정도라면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미래의 길을 잘못 가르쳐 준 거나 다름없다. 시대정신이나 가치관에 대한 고뇌보다는 직장인으로서 자녀의 안정성만 내다본 부모들의 생각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전통 유교문화권에서 가장 후진적 병폐라 하면 대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관존민비(官尊民卑)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이다. 관리를 높게 보고 백성을 낮게 보는 사회적 풍토와 남녀 불평등의 오랜 고정 관념이 이 것이다. 두 가지 사상은 사실상 조선시대를 지배해 왔으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의 멸망을 재촉한 낡은 시대적 유물이라는 비판을 떨칠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시대의 공시생 양산현상이 혹시나 관존민비의 잔재적 사고에 기초한 것은 아닌지 괜스레 걱정이 된다. 물론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 국가를 위해 봉사의 길을 걷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전한 젊은이도 많이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도전보다 안주를 선택하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면 국가의 장래를 봐선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태산처럼 많은 지금이다. “한국에서 공무원이 되는 것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외국인의 비아냥을 따갑게 들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의 도전 정신은 이 시대를 살릴 유일한 기백(氣魄)이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정부가 심각히 고민하고 앞장서야 할 것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7-21

군인 정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군인이기에 또는 군인으로서 지켜야 할 본분의 문제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국민의 안위를 수호해야 하는 군인으로서 상명하복의 군인정신으로 목숨을 걸고 충실히 임무를 수행한 그들의 희생에서 국방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존재하는 것이다.많은 사람이 보았을법한 영화지만, 이야기는 라이언가 4형제가 전쟁에 참전하면서 시작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라이언가 4명의 형제 중 3명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한꺼번에 세 아들이 전사했다는 비보를 접한 어머니는 실의에 빠져들고 그러면서 하나 남은 막내아들의 생사를 걱정하게 된다.이 소식을 전해 들은 미 육군 참모총장은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을 살려서 집에 보내자고 판단하고 8명의 라이언 일병 구출팀을 전쟁터로 보낸다.라이언 일병 한명의 목숨이 여덟 명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지 혼란스럽기도 한 영화이지만 전쟁이라는 예외적 상황에서 발생한 극적 분위기를 잘 소화해 내고 있다. 전쟁이 부른 비극적 현실과 전쟁을 통한 인간애, 군인정신이어서 가능했던 임무 그리고 애국심 등의 모습을 잘 보여준 영화다.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오로지 그들의 희생정신에서 나온다. 군이 오합지졸(烏合之卒)이니 당나라 군대같다는 비난을 들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최근 북한 어선의 해상 노크 귀순 등으로 경계에 실패한 우리 군의 모습을 본 국민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해군 2함대 경계병 이탈사건과 사건 조작을 둘러싼 군의 막장 드라마 같은 모습에서 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개탄스럽고 착찹했다. 오죽했으면 군의 기강 해이를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에 비견하는 글들이 나왔을까 안타까울 뿐이다.정경두 국방장관의 해임을 둘러싸고 여야가 기 싸움이다. 야당은 해임을 촉구하고 여당은 해임 사안은 아니라고 한다. 논란을 더 일으킬 필요가 있을까. 군인정신 살려 장관 스스로가 물러나는 것이 뒤늦었지만 당당한 모습일 것같은데 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