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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를 빛낸 사람

대구 출신의 20세 이하(U-20) 월드컵 대표팀 정정용 감독에 대한 뒷 얘기가 무성하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히딩크를 연상케 한다.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U-20 준우승이란 신화를 일궈낸 그에게 언론은 그의 지도력과 인간애 등을 최고의 화제로 삼았다. 무명선수 출신으로 평범했던 그가 오늘의 영광을 안게 된 것은 오직 성실성과 인간적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라 평가했다.그는 대구신암초교에서 축구를 시작해 축구명문 청구중고교에서 선수로 뛰었다. 경일대를 졸업하고 아마구단인 이랜드 푸마에 입단했으나 서른도 되기 전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일념으로 대학원 과정에서의 공부와 열정으로 그만의 전략과 전술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선수들은 그를 ‘제갈용’이라 불렀다. 삼국지에 나오는 책략가 제갈공명 못지않은 축구 전략가라는 뜻이다. 변화무쌍한 전술 구사로 적의 허점을 찌르고 승리를 이끌어 내는 그의 전술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와 같았다는 평가다.그만의 리더십도 주목을 받고 있다. 지시보다 이해를 먼저 구하는 그의 태도에서 선수들은 그를 감독이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 불렀다. 언론은 그의 리더십을 ‘아저씨 리더십’으로 표현했다. 권위적인 리더십과는 다른 그의 다정다감한 리더십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팀의 동력을 키우는 힘의 원천이 됐다는 설명이다. 국가대표 이승우 선수는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라 말했다. 평범하지만 인간적인 그의 지도력이 새로운 리더십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든 요즘이다. 대구출신의 그가 들려준 낭보는 이곳 고향사람에게는 청량제와 같다. 갑갑하던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듯한 기분이다. 정 감독이 일궈낸 신화는 대한민국 모두의 영광이지만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제 일만을 열심히 해온 그의 성실함은 우리가 배울만한 일이다. 정 감독과 함께 대표팀에는 고재현,김세윤 두 명의 대구신암초교 출신선수가 더 있다. 그들이 함께 했기에 이번 영광이 더 자랑스럽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18

소셜벤처

소셜벤처는 환경, 교육, 삶의 질 등 사회문제를 혁신적인 기술과 사업 모델로 해결하려는 기업이다. 빈곤과 불평등, 환경 파괴, 교육 격차 등을 해소하면서도 사업을 지속할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스웨덴을 방문하면서 스웨덴과 양국 협력의 일환으로 소셜벤처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해 화제가 됐다.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이날 교류행사에 참여한 한국의 소셜벤처는 (주)엔젤스윙(대표 박원녕), (주)닷(공동대표 김주윤·성기광), (주)테스트웍스(대표 윤석원), (주)오파테크(대표 이경황), (주)모어댄(대표 최이현), (주)유니크굿컴퍼니(공동대표 송인혁·이은영) 총 6개사로, 뛰어난 혁신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함으로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기업들이다.우선 (주)엔젤스윙(ANGELSWING)은 웹에서 드론 데이터를 처리·분석하여 맞춤형 지도를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 제작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재난 복구를 돕는 등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소셜벤처다. 기업명 역시 ‘하늘을 나는 드론의 날개가 사회문제 해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명칭으로, 엔젤스윙의 창업자 박원녕 대표는 대학 창업팀 시절부터 드론 기술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해왔고, 이를 통해 미국 포브스지에서 발표하는 ‘아시아의 30세 이하 영향력 있는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창업팀 때는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 드론을 이용한 정밀 3D 지도를 제작하여 재난현장의 복구를 도왔고, 2017년에는 서울시와 함께 ‘서울 쪽방촌 리빙랩 프로젝트’를 추진, 쪽방촌의 안전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주력해 왔다.폐자동차 시트 등 재활용 가죽을 활용하여 친환경 제품을 제작하고 있는 (주)모어댄,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기기를 개발 사업화하고 있는 (주)닷 등 다른 소셜벤처 5개사도 혁신적 기술 또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업들로 널리 알려져있다.혁신적 기술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이상을 실천하는 기업인 소셜벤처가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17

국민 세금과 고액 강연료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과의 점심경매는 이제 연중행사가 됐다. 지난해 워렌 버핏과의 점심경매는 한화 약35억 원에 낙찰됐다. 낙찰을 받은 사람은 버핏과 3시간 동안 점심을 같이하며 그에게 돈버는 노하우를 듣는 댓가로 수십억을 던져버린 것이다.올해 경매는 암호화폐 트론(TRX) 창시자인 ‘저스틴 선’에게 한화 약 54억 원(456만달러)에 낙찰됐다. 지금까지 자선경매 중 가장 높은 낙찰금액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버핏이 알려주는 부자가 되는 비법을 한수 배우기 위해 해마다 엄청난 점심 값을 지불하려고 줄을 선다. 어떤 사람은 버핏과의 점심이 30억 원어치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다. 돈 버는데도 엄청난 돈을 지불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버핏과의 점심경매는 20년째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투자의 귀재’란 버핏의 유명세가 덧붙여져 홍보 등 다른 이득 효과가 있다. 그래서 낙찰금액에 대한 적절성 시비는 없다. 게다가 여기에 모여진 돈은 전액 빈민구제단체에 기부되고 있어 행사 자체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방송인 김제동의 고액 강연료 시비가 적절성 여부를 두고 계속 논란이다. 김씨 강연료에 대해 여론은 “대체적으로 과하다”는 반응이다. 대학교수나 유명 기업인의 90분 강연료가 500만∼700만 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그가 특별하게 더 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강연료는 강의자의 사회적 지위와 강의 내용, 참석인원 정도, 서울이냐 지방이냐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따져서 결정한다. 강연료를 얼마나 줄 것이냐는 강연을 개최한 기관의 판단 몫이다. 개최 당사자가 판단해 일반적인 수준보다 더 주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주최자가 국가나 공공기관인지 혹은 사기업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강연료를 준다고 한다면 사회적 통념을 고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누구의 강의도 모든 청중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누구에게는 감명을, 누구에게는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 새겨들어야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16

홍콩의 역대급 시위

박근혜 전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한창인 2016년 12월 우리나라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였다. 군자주야 서자수야(君者舟也 庶者水也)에서 따온 말이다.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는 뜻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물은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순자 왕제 편에 나오는 말로 순자는 “임금은 이를 염두에 두고 위기가 닥칠 때 이런 상황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그 해 교수회가 올린 사자성어는 박 전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두 번째로 교수의 지지를 받은 사자성어는 역천자망(逆天者亡)이다.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는 뜻이다. 천리를 따르는 사람은 흥한다는 순천자흥(順天者興)과는 반대되는 말이다.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노적성해(露積成海)와 “사람이 많이 모이면 하늘도 이긴다”는 인중승천(人衆勝天)도 후보로 올랐다. 특히 군주민수는 유교적 사상에 근거한 민본주의 사상을 잘 표현한 말로 임금도 백성의 뜻을 굽어 살피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표현이어서 그 해 사자성어로 뽑혔다.모든 역사는 나라의 근본을 이루는 백성에서 시작된다. 역사는 백성이 태평성대를 누렸을 때 가장 잘한 정치라 칭하고 당시 군주를 성군(聖君)이라 불렀다. 역사적 사실을 귀납해보면 역사는 사람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하늘의 뜻에 달렸음을 깨닫게 된다. 수많은 정치적 물음에는 백성이 항상 가운데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홍콩에서 벌어져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9일에는 100만 명이 넘는 군중이 운집, 경찰과 충돌도 빚었다. 시위대는 홍콩정부가 추진 중인 범죄인 인도법안이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압박하고 홍콩의 자유를 위축하게 할 것을 우려한다며 반대에 나서고 있다. 홍콩의 시위는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지지를 보내면서 국제간 긴장도도 높아지고 있다. 홍콩 인구의 7분 1인 1백만 명이나 거리에 나선 홍콩인의 시위가 군주민수의 교훈을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6-13

가업상속공제

가업상속공제는 가업을 이어받는 사주의 자녀에 대해 상속세를 줄여주는 제도로,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이나 매출액 3천억 원 미만 중견기업을 상속할 시 가업상속재산가액의 100%(최대 500억 원)를 공제해 주고 있다.100년 장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1997년 도입된 이 제도는, 도입 당시에는 공제 한도가 1억 원이었다가 2008년에는 30억 원, 2012년에는 300억 원, 2014년에는 500억 원으로 확대됐다. 상속재산 공제액은 가업 영위 기간이 10년 이상은 200억 원, 20년 이상은 300억 원, 30년 이상은 500억 원이다. 공제 혜택을 받는 기업은 중소기업으로 제한됐다가 2013년부터는 매출 2천억 원 이하 중견기업으로, 2014년에는 3천억 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범위가 확대됐다.이 제도에 따라 상속세를 공제받을 경우 상속인은 10년 동안 휴업·폐업, 업종변경, 가업용 자산 20% 이상 처분 등이 금지되며, 지분과 고용을 100%(중견기업은 120%) 유지해야 한다. 이 제도에 대해 기업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매출액 한도를 확대하고 10년으로 규정돼 있는 사후관리 기간을 단축시키는 등 규제를 완화하자는 주장과, 가업승계에서 세금을 과도하게 면제해 부의 세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규제를 완화하자는 분위기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에서 “업종변경 허용범위도 표준산업분류상 소분류에서 중분류까지 크게 확대해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고자 했다”면서 “10년의 사후관리기간을 7년으로 단축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또 자산의 처분도 보다 넓게 허용하고, 중견기업의 고용 유지 의무도 중소기업 수준으로 완화할 전망이다.다만 정부는 탈세, 회계부정에 따른 처벌을 받은 기업인에 대해서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배제토록 했다. 나름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 흔적이지만 부의 세습을 막기에는 이미 구멍이 너무 커져버린 것은 아닐 까 싶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12

금값

금은 인류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오래 사용해온 금속류다. 사용 연대도 기원전 3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가히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했다 할만하다. 엘도라도는 황금이 넘쳐나 온 도시가 황금으로 도배됐다는 전설의 도시다. 그러나 중세시대 탐험가들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전설의 도시를 찾아 머나먼 항해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금에 대한 인간의 애착은 시대를 관통할 정도로 집요하다.골드러시란 말의 유래가 19세기 미국에서 발견된 금광 소식에 몰려든 인파에서 나왔다고 한다. 금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들끓었으니 금과 인간의 관계는 불가분이다.금은 일찍이 상거래의 화폐로, 권위의 상징으로, 화려한 장식으로 인류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집트 왕릉에서도 신라왕릉에서도 화려한 금관과 금으로 된 장식품이 쏟아진 사실만으로 이를 입증한다. 현대에 와서도 금의 존재 가치는 여전히 엄중하다. 금은 탁월한 부의 저장 수단으로 인정받는다.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수단으로 금만한 것이 없다. 미래에 도래할지도 모를 통화시스템의 붕괴에 대해서도 금은 안전성을 보장할 거라 대부분 믿는다. 금본위제란 금의 가치가 화폐의 기준이 되는 제도였다. 금이 가진 자체의 성질이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기에 만들어진 제도였다.금값이 뛰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으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작용한 탓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금값 상승에는 항상 사회적 불안 심리와 연동돼 왔다는 것을 우린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난달부터 골드바를 판매하기 시작한 우체국에서 한달 사이 43억원어치의 골드바가 팔려 나갔다고 한다. 우체국 관계자도 예상을 뒤엎는 결과라고 한다. 금 거래량도 지난해 8월 이후 최고다. 가격도 지난 1월보다 10% 정도가 올랐다. 재화 수단으로 금은 지구촌 공통의 화폐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가치성 때문에 보험으로서 기능도 한다.보통서민은 금값이 오르면 괜히 불안해진다. 정치 경제적으로 나쁜 일들이 생길까봐 조바심이 난다. 최근 금값 상승이 행여 정치 경제적 악재에 의한 동요가 아니었으면 한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11

플라스틱 프리챌린지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 캠페인은 플라스틱 제품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세계자연기금(WWF)이 주관해 시작한 친환경 운동으로, 머그컵과 텀블러 등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사진을 찍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게재하고 다음 참여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환경 캠페인이다.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 의회는 ‘특정 용품에 대한 1회용 플라스틱 사용 금지 규제안’을 통과시켰고, 2021년부터는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으로 제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미국에서도 역시 작년 5월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가 가세했고, 올해부터는 뉴욕까지 대부분 대도시에서 커피 컵과 빨대, 포장용기 등에 플라스틱 활용을 금지했다.한국도 지난해부터 커피 전문점에서 1회용 빨대 및 컵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작으로, 올해 들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지난 4월1일부터 대형 마트와 165㎡ 이상의 슈퍼마켓에서 비닐 봉지 이용을 금하고, 제공 시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는 한국 국민 1인당 연간 420장 정도의 비닐 봉지를 쓰고, 100㎏에 이르는 플라스틱을 소비해 전 세계 플라스틱 소비량 1위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현재 전 세계가 해마다 생산하는 플라스틱 양은 3억3000만t.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생산된 약 83억t은 미국 뉴욕의 맨해튼을 3.2㎞ 깊이로 묻어버릴 수 있는 규모의 양이다.문제는 그동안 생산된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이 불과 9%에 그치고 있으며, 79%는 그대로 폐기물이 되었다는 점이다.지금 추세대로라면 2050년까지 폐기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약 120억t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고, 이 중 약 1천200만t은 매년 바다로 흘러가 잘게 쪼개진 뒤 세밀한 미세 플라스틱 덩어리가 돼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고, 결국 사람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환경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될 ‘플라스틱 프리챌린지’ 캠페인이 전세계에 환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10

‘은퇴 나이’

우리나라에서 법적 정년이 모든 사업장에서 60세로 늘어난 것은 불과 2년 전 일이다. 그 이전만 해도 회사마다 정년 나이는 들쭉날쭉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12년도에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정년은 58.6세로 조사됐다. 정년제도란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노사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것을 의미한다. 평생직장이나 연공서열식 관념이 강한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 고임금, 고연령 근로자를 자연스럽게 배제하고 인사의 신진대사를 확보하는 정책으로 적절했다.그러나 국민의 수명이 늘고, 노령인구가 증가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다. 모든 직장에서 법적 정년이 60세로 확대된 배경에는 노령화 현상에 대한 대책이 주된 이유다. 이로부터 불과 2년 만에 또다시 법적정년 65세 연장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대법원도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 상한선을 만 60세에서 65세로 끌어올렸다. 우리 사회의 급속한 노령화가 사회경제적 분위기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는 현상이다.한 취업포털 회사가 설문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82%가 정년 연장에 대해 긍정 답변을 했다. 지금의 60세 정년이 65세 정년으로 미뤄지더라도 수긍한다는 뜻이다. 금융기관을 포함 이미 우리 기업 곳곳에서도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 이런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이 자국의 기업들이 종업원들에게 70세까지 일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자 일부 장노년층에서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소식이다.노령인구 증가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은 2013년부터 기업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했다. 그러나 또다시 70세까지 고용을 의무화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나자 일부 노인층 사이에서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느냐”식의 푸념적 비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년 연장은 당연한 사회적 흐름이지만 일을 멈추고 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노인도 적지 않다. 무한정 정년을 늦출 수만 없다. 적절한 은퇴 나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19-06-09

문산호의 기억

문산호는 장사상륙작전을 수행한 유일한 배다. 이 배는 1943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건조된 2천366t의 전쟁용 수륙 양용차다.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전쟁을 수행하다 1947년 한국 정부가 수송용으로 사들인 배다. 우리나라에 와서는 대한해운공사에서 수송용으로 사용했으며 전쟁이 나자 군사용으로 전환됐다.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양동작전의 일환으로 단행된 전투다. 6.25 전쟁사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다. 작전이 치열한 첩보전 속에 비밀리에 진행 되어야 했고, 참가자 대부분이 학도병 등 민간이어서 기록도 거의 없다.1997년 3월 경북 영덕군 장사리 앞 바다에서 전쟁 당시 좌초됐던 문산호가 해병대 1사단 대원에 의해 발견된다. 47년 만에 바닷속 갯벌에서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문산호의 발견은 장사상륙작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장사상륙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숨은 공로자임이 제대로 알려지고 이를 계기로 역사적 기록도 조금씩 밝혀졌다. 장사상륙작전이 일반의 기억에 남는 전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인천상륙작전에는 유엔군과 해군 군함, 수백 척의 배 등이 동원됐으나 장사상륙작전에는 민간 선박인 문산호 1척이 다였다. 동원된 군사도 우리지역 출신 10대 학도병 772명과 해병 56명이 모두다. 임무는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 새벽에 감행된 장사상륙작전은 때마침 찾아온 태풍과 적의 포격으로 해안에 도달하기도 전에 배가 침몰한다. 가까스로 육지에 도달한 병사들은 적의 공격으로 많은 희생을 치르고 끝내는 보급로 차단에 성공한다. 139명이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장사전투는 한 노병의 끈질긴 추적으로 최근에 문산호에 승선했던 선원 11명의 민간인 명단이 밝혀졌고 그들에게 화랑무공훈장도 수여하게 됐다. 늦게나마 그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호국의 달. 국가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달이다. 전쟁에 대한 기억이 옅어져 가는 요즘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던졌던 그들의 고귀한 애국정신을 새롭게 다져볼 시간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6-06

금수저 세상

사회 양극화 현상이 커지면서 우리사회 상류층을 빗댄 거지부자의 이야기가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다리 밑에서 잠을 자던 거지 부자는 다리 위로 윙윙 거리며 달려가는 소방차 소리에 잠을 깼다. 아들이 먼저 말했다. “아버지, 우리는 집이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 불이 나도 위험하지 않지요” 아버지가 답하길 “그게 다 아버지 덕이다”.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돈 없고 빽 없는 아버지들의 푸념으로 오랫동안 유행했다.우리나라에 금수저론이 사회이론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4∼5년 전 일이다.수저 계급론이란 이름으로 많은 공감을 얻은 이론이다. 큰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설명이다. 외국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영어 표현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말이 있다. 유럽의 귀족층은 은식기를 사용하고 태어나자마자 유모가 젖을 은수저로 먹이는 풍습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가난하고 배고픈 서민들의 이야기야 지구상 어디 간들 없겠는가.모차르트가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나 금수저를 물고 나온 재력가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천부적 기회를 제공받았다는 면에서 비슷하다.그러나 천부적이라고 해도 그들이 살면서 일궈놓은 평생의 과업에 따라서는 평가가 달라진다. 다른 사람을 위한 공헌도가 중요한 잣대의 하나라 볼 수 있다.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사회활동 인식조사’ 결과가 눈길이 간다.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출세를 하려면 부유한 집안 출신이어야 한다”는 물음에 85%가 긍정적 답변을 했다고 한다. “한국은 높은 지위에 오르려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물음에도 응답자의 66%가 긍정적 답변을 했다. 우리 사회의 평등성과 공정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반증한 조사다. 대다수 국민은 금수저 이론에 대해 여전히 공감한다는 결과여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것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유하고 있는 것 등이 우연한 결과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04

아프리카 돼지열병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주로 감염된 돼지의 분비물인 눈물, 침, 분변 등에 의해 직접 전파되는 돼지전염병이다.돼지과(Suidae)에 속하는 동물에만 감염되며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르기 때문에, 한번 발생할 경우 양돈 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다.잠복 기간은 약 4∼19일로, 이 병에 걸린 돼지는 고열(40.5~42℃), 식욕부진, 기립불능, 구토, 피부 출혈 증상을 보이다가 보통 10일 이내에 폐사한다.이 질병이 발생하면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발생 사실을 즉시 보고해야 하며, 돼지와 관련된 국제교역도 즉시 중단된다.바이러스는 병원성에 따라 보통 고병원성, 중병원성 및 저병원성으로 분류된다. 고병원성은 보통 감염 1~4일 후 돼지가 죽는 심급성과 감염 3~8일 후 돼지가 죽는 급성형 질병을, 중병원성 균주는 감염 11~15일 후 돼지가 죽는 급성이나 감염 20일 후 돼지가 죽는 아급성형 질병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적이 없으며, 현재 가축전염병예방법상 제1종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이 질병에 대한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국 여행 자제 및 양돈장 출입 금지, 돼지 잔반 급여 금지, 야생동물 접근 차단 등 국내에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대책이 해당 병의 확산을 막는 데 필수적이다.주로 1920년대부터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왔으며, 유럽의 경우 1960년대에 처음 발생했다가 포르투갈은 1993년, 스페인은 1995년에 박멸됐다. 그 이후 2007년에 조지아에서 다시 발병하면서 현재 동유럽과 러시아 등지에 풍토병으로 남아 있다.최근에는 2018년 8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아시아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 중국 전 지역으로 확대됐다. 지난달 30일 북한이 압록강 인접 지역인 자강도 우시군에 있는 한 협동농장에서 돼지열병이 발생했다고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보고했다.정부는 경기·강원도 접경지역 10개 시·군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정하고, 긴급 방역에 나섰지만 양돈농가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6-03

슬픔에 잠긴 다뉴브

왈츠의 왕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만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를 관통하는 다뉴브 강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곡이다.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가 실의에 빠진 비엔나 시민을 위로키 위해 요한 스트라우트에게 요청해 만든 곡이다. 다뉴브 강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희망찬 가사와 흥겨운 왈츠 리듬으로 조합된 이 곡은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탄 세계적 명곡이다,우리 국민에게도 일찍부터 친숙한 음악이다. 오스트리아인인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만든 곡이지만 다뉴브하면 대개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먼저 떠올린다. 부다페스트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으로 유럽 3대 야경의 하나다. 아름다운 다뉴브 강이 흐르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다. 우리나라에서 동유럽 여행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가장 핫한 도시로 떠오른 곳이기도 하다. 동유럽지역 대표적 여행지인 부다페스트는 밤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도시의 모습이 파리나 프라하와는 다른 화려함과 강렬함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다뉴브 강의 야경은 필수 코스다. 다뉴브 강의 총 길이는 2천850km다. 유럽의 10개 나라를 통과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찬란한 순간을 만나는 곳이 부다페스트라 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는 강을 기점으로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으로 나누어 별개의 도시로 발전해 왔다. 부다 지역은 왕과 귀족이 거주하는 상류층의 구역이었고, 페스트는 서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1849년 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현수교인 세체니 다리가 건설되면서 두 지역을 양분했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1873년 하나의 도시로 통합, 지금에 이른다.낭만과 역사적 격랑이 꿈틀였던 도시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인 관광객 26명이 실종되거나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다. 당국의 계속된 노력에도 아직 실종자에 대한 수색작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낭만과 아름다운 추억으로 넘쳐야 할 다뉴브 강이 지금 슬픔으로 잠겼다. 해외여행 자유화에 매달려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달려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안전한 해외여행에 경각심을 일깨운 가슴 아픈 사건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6-02

경제와 심리

같은 물건을 하나 더 사면 그 상품은 50% 할인해 주는 판매 행위를 ‘로스 리더 마케팅’(loss leader marketing)이라 부른다. ‘로스 리더’란 원가보다 싸게 팔거나 일반 판매가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상품을 말한다. 우리 말로는 미끼 상품이라 표현한다. 고객은 미끼 상품을 사러 왔다가 다른 물건도 사고 가기 때문에 매장으로 봐서는 싸게 판다고 해도 손해볼 게 별로 없는 마케팅 전략이다.경제는 심리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 잘 될거 라고 소문나면 잘 되고 잘 안될 것 같다고 소문이 나면 부진해지는 것이 경제다. 어떤 야채가 “건강에 좋다”고 TV에 소개되고 나면 그 다음날 그 야채는 시중에서 품귀현상을 빚는다. 식품 값이 인상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 가수요가 발생하는 것 역시 소비자의 심리가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TV에 등장하는 간접 광고도 소비자의 심리적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효과를 노린 기획 광고물이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에서 주가가 연속 상승하는 현상은 결국 미국이 무역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에 깔려있는 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다.특히 심리적 경제 현상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잘 두드러진다. 정부가 무조건 규제를 하고 억누른다 해서 폭등하는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일시적 하락은 있으나 규제에 의한 가격 하락은 언제나 반등의 기회를 노린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 개입이 아니라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에 대한 방어 전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전쟁에서도 심리전은 매우 중요하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전략으로 고도의 심리전술이 많이 활용된다. 한나라 유방이 칼 한번 쓰지 않고, 화살 한번 쏘지 않고 적장 항우를 굴복시킨 것이 바로 심리전 때문이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최근 한국의 기업경기와 소비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고 한다. 우리경제를 불안해하고 비관적으로 보는 국민도 부쩍 많아졌다. 잘 될거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정부가 희망적 메시지를 많이 주어야 한다. 경제는 심리이기 때문이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30

번아웃 증후군

번아웃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적ㆍ정신적인 피로감으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을 가리킨다.미국의 정신분석의사 H. 프뤼덴버그가 처음 사용한 심리학 용어다.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중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모두 불타버린 연료와 같이 무기력해지면서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일이 실현되지 않을 때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극도로 쌓였을 때 나타난다.즉, 일과 삶에 보람을 느끼고 충실감에 넘쳐 신나게 일하던 사람이 보람을 잃고 돌연히 슬럼프에 빠지는 현상이다. 주로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나타난다. 번아웃 증후군은 다 불타서 없어진다(burn out)고 해서 소진(消盡) 증후군, 연소(燃燒) 증후군, 탈진(脫盡) 증후군이라고도 한다.번아웃 경고 증상에는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들고,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다가도 오히려 열성적으로 업무에 충실한 모순적인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만성적으로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질환에 시달리고, ‘우울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 고갈 상태를 보인다.번아웃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지인이나 배우자 혹은 회사에 멘토를 두어 상담을 하거나 되도록 정해진 업무 시간 내에 일을 해결하고, 퇴근 후에는 집으로 일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운동, 취미 생활 등 능동적인 휴식 시간을 가지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번아웃 증후군은 우울증, 불안 장애, 적응 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 증상의 일종인지, 이를 질병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burnout)증후군’을 직업 관련 증상의 하나로 기술했지만 의학적 질병으로는 분류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로 인한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자’로 판단했다.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해진다. 옛말은 틀린 법이 없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9

봉준호 감독과 한국 정치

문화는 워낙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콕 찍어 “이것이다”고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의 culture는 원래 경작이나 재배의 뜻을 가졌으나 이후 교양, 예술 등의 뜻으로 바뀌었다고 한다.막연히 문화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높은 교양이나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등을 떠올리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 없다.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는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를 문화라 설명했다.그러나 이것 역시 포괄적 의미로만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문화는 집단이나 구성원에 따라 성격의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인식한다. 동양과 서양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에 따라서, 좁게는 가문에 따라서도 다름이 여실히 나타난다.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현대인들도 수준 있는 문화생활을 매우 중시 여기는 성향이 늘었다. 음악과 예술을 즐기고 품격 있는 라이프 스타일로 마음의 여유와 양식을 풍요롭게 하고자 노력한다.때마침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의 문화가 세계 최고 수준급으로 인정받는 쾌거를 올렸다. 이번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한류로 높아진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더 올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도 크다. 특히 한국 영화를 사랑해 온 많은 국민에게 이보다 자랑스런 경사는 없을 것 같다.그러면 문화의 카테고리 안에서 바라본 우리의 정치문화는 과연 어느 수준에 있을까 궁금하다. 정치 혐오현상이라는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문화가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치인 스스로가 만들어 낸 나쁜 정치행위에 대한 산물이다. 문화가 품격을 향상시키고 지적인 활동 영역을 확대해가는 과정이라면 우리의 정치는 아직 한참 먼 거리에 있다.5월 임시국회가 무산된 가운데 6월 국회도 개점휴업일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평행선을 달리는 여야는 자신들의 주장만 고집하고 있다. 타협과 포용, 협치의 문화는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국 영화 100년에서 일궈낸 봉 감독의 쾌거를 계기로 한국의 정치문화도 좀 바뀌어져야 할 것 아닌가 싶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8

인터넷 전문은행 시대

인터넷 전문은행은 모든 금융서비스를 온라인 상에서 제공하는 은행이다.오프라인 지점을 토대로 하고 있는 기존 은행과 달리 인터넷 은행은 물리적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1990년대 IT 발전과 함께 인터넷 이용률이 증가하고, 음반·영화 등 전 산업에 걸쳐 온라인 채널 혁신이 일어나면서, 은행 산업에서도 인터넷을 주 영업채널로 활용하는 인터넷 전문 은행이 등장했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은 ‘SFNB(Security First Network Bank)’로, 1995년 10월 미국에서 설립된 이후 유럽·일본 등 전세계로 확산됐다. 2000년 말까지 미국에서만 40개 이상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됐다. 2014년 9월 말 총자산 기준으로 미국 50대 은행에 6개 인터넷 전문은행이 순위에 올랐으며, 일본의 SBI(Sumishin Net Bank)는 일본 인터넷 전문은행 최초로 예금규모 3조 엔을 달성하며 일본 은행 전체 37위(105개 지역은행 기준)를 기록하는 등 위상이 증대됐다.국내에서는 2008년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금융실명제법 및 자금 확보 문제, 은산분리 규제 등에 의해 무산됐다.특히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4%로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정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걸림돌로 작용했다.2014년 금융위원회는 30대 그룹과 상호출자제한 대상 그룹에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제한하고, 나머지 기업에 참여 기회를 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허가했다.즉, 삼성, 현대자동차, LG, SK 등 30대 그룹 계열 제조사, 금융회사는 설립이 제한되며,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의 기업은 인터넷은행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이에 따라 2017년 4월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7월에는 카카오뱅크가 영업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제3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인가 신청을 키움뱅크와 토스뱅크 컨소시엄으로부터 받았으나 두 곳 모두 심사에서 탈락했다.그러나 IT와 금융시장 환경의 급변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7

남성도 양산을 쓰자

예년보다 9일 빨리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5월 중순 들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이 30도를 웃도는 불볕 더위를 보이고 있다.특히 지난 주말은 경북 울진과 영천, 경주 등의 기온이 35도를 넘겨 전국 최고를 기록하면서 대구경북지역은 아열대 현상과 더불어 사실상 초여름 날씨를 맞고 있다. 유난히 더운 대구경북의 올 여름 날씨가 얼마나 뜨거울지가 벌써부터 관심이다.지난해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역대 최대 폭염 일수를 기록할 만큼 무더웠다. 그동안 최고 기록을 유지해왔던 1994년의 폭염일수가 지난해 여름에 의해 기록이 무너졌다.지난해 여름 폭염 일수 31.3일로 폭염관측 이래 최고 일수를 기록했던 1994년(31.1일)보다 높았다. 기상청은 올해도 우리나라 여름날씨는 작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고했다.우리나라 기상 재해 통계를 살펴보면, 태풍이나 집중호우보다 폭염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위로 인한 온열질환자가 집중 발생하는 시기는 7월과 8월이다. 여자보다 남자한테서 온열질환자가 2.7배나 더 많이 발생한다. 유럽의 사례지만 2003년 유럽을 강타한 폭염으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지에서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 미국 시카고에서도 40도가 넘는 살인적 더위가 5일간 연속되면서 7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다. 사상자의 대부분이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고 하니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있어야겠다.최근 일본정부는 올여름 폭염대책의 하나로 ‘남자 양산 쓰기 캠페인’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양산을 쓰면 3~7도 정도 기온을 낮출 수 있고 땀은 17% 정도가 감소돼 열대병 예방효과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남성의 양산 쓰기 캠페인을 성공시키기 위해 일본에서의 아버지날인 6월 16일에 아버지에게 양산을 선물하도록 하자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폭염 예방을 위한 남자들의 양산 쓰기 운동은 관습적인 거부감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남성의 양산 쓰기 캠페인 해볼 만한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19-05-26

바른말 고운말

미러링 효과(Mirroring Effect)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 등을 거울 속에 비친 것처럼 따라하는 행동을 일컫는다.상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 세일즈 마케팅 등에 많이 활용된다. 아이가 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 표정까지 따라하는 것도 일종의 미러링 효과다.생후 6개월 이후의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 한다고 한다. 부모의 행동과 말, 작은 습관이 어린아이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심리적 효과를 말한다.바른말 고운말을 쓰야 하는 것은 개인 간이나 집단 간에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른말 고운말은 상대 인격에 대한 존중의 출발점이 됨으로 원만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는 최고다.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밝게 해 커뮤니티 내의 문제점을 푸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은 말을 가려서 잘할 때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돋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은 말하는 당사자 생각의 또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으로부터 듣게 되는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것이 모두 이런 연유에서 생긴 말이다.말이 많으면 화(禍)를 면하기 어렵다. 반대로 과언무환(寡言無患)이라 하여 말을 줄이면 근심도 줄어든다고 옛 성현들이 가르쳤다.서양의 격언에도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한다. 동서양 사람들이 가지는 말에 대한 신중한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말이 젊은 세대들에 의해 행여 잘못 사용되기 십상인 요즘이다. SNS를 통한 신조어나 줄임말 등이 한글의 훼손으로 이어질까 걱정스럽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의 막말이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올라 국민을 언짢게 한다. 여야 구분 없이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내로남불’식 막말로 경쟁하듯 다투고 있다. 정치인의 막말 경쟁 이제는 끝낼 우리의 나쁜 문화다. “말이 도리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아니함만 못하다”는 명심보감의 말씀을 되새겨 봐야겠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3

갈라파고스 신드롬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만든 상품이지만 자국 시장만을 생각한 표준과 규격을 사용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즉, 다윈이 발견했던 고유종들은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갈라파고스섬에서 독자적으로 진화를 거듭했는데, 일본 휴대전화 역시 최고의 기술을 가졌지만 세계시장 흐름과는 동떨어진 상황을 나타낸다.일본 휴대전화 인터넷망 아이모드의 개발자인 나쓰노 다케시 게이오대 교수가 맨 처음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일본 통신산업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모바일인터넷, 모바일 TV 등이 상용화됐으며, 휴대전화 기술은 1999년 이메일, 2000년 카메라 휴대전화, 2001년 3세대 네트워크, 2002년 음악파일 다운로드, 2004년 전자결제, 2005년 디지털TV 등 매년 앞선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일본 내 3세대 휴대전화 사용자가 2009년 들어 미국의 2배 수준인 1억 명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커다란 내수시장에 만족해 온 일본은 국제 표준을 소홀히 한 탓에 경쟁력 약화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만들어 차세대 스마트폰 생태계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정부와 의회가 각종 규제로 생태계를 보호했지만 이종 생태계가 진입하자 연약한 생태계는 그대로 파괴되고 말았다.이같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은 우리 사회 주변에도 널려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다. LED 조명, PC 제조 등에 대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지정함에 따라 삼성과 LG의 제조와 생산은 막았지만 필립스, 레노버 등 글로벌 업체를 막을 수 없었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우버, 에어비앤비, 인터넷은행, 자율주행차, 카풀 규제 등도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하나다. 못된 규제임을 인식하지만 시민단체와 택시기사들의 표를 의식해 눈을 감는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해법은 승차공유 규제는 풀되, 예측 가능했던 삶이 무너진 이들을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렸다. 이미 자율주행차 시대로 굴러가는 시대의 수레바퀴는 브레이크 없이 가속도가 붙고 있는 데, 이를 중재해야 할 정부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정치권과 업계 눈치만 살피고 있어 걱정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9-05-22

트램의 부활

프랑스 파리와 홍콩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램(노면 전차)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선보일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받아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주관하는 저상트램 연구개발 과제 공모에서 부산광역시의 ‘오륙도선’이 선정돼 우리나라 1호 트램은 이르면 2021년부터 부산에서 시범 운행에 들어갈 것 같다는 소식이다.원래 전기트램의 발명은 독일 지멘스가 먼저 했으나 보급되는 실용화 단계는 미국에서 완성된다. 기존의 기차보다는 압도적으로 싼 시설비와 높은 수송능력 덕분에 트램은 불과 10년 사이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된다. 1920년 기동성이 뛰어난 버스가 보급되면서 전기트램도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트램을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899년 서울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트램이 처음 개통되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차량이 급격히 늘어나던 1968년을 기점으로 트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트램은 전기를 사용해 움직이기 때문에 오염배출이 적은 친환경 교통수단이라는 장점 때문에 최근 또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또 지하철이나 경전철보다 공사비가 월등하게 저렴하고 노약자 등 교통약자의 이용이 용이한 점도 트램 부활의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부산에 이어 울산, 대구, 인천, 대전 등 전국의 16개 지자체가 트램 도입을 추진 중이거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2층 구조의 홍콩 트램이 도시의 상징성을 나타내듯 트램을 도시의 이미지로 각색하려는 도시들의 움직임도 노골화되고 있다.최근 대구에서도 “트램, 새 교통수단으로서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트램 도입 여부를 묻는 정책포럼이 열렸다. 트램 설치는 원래 권영진 대구시장의 공약 중 하나여서 대구에서의 트램 설치 가능성은 비교적 높다 하겠다. 대구시는 동대구 역세권과 서대구 역세권을 잇는 도심 순환선과 달성선 등 몇 가지 노선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시의 신교통 수단인 트램에 대한 논의는 지금부터 본격화 될 것같다./우정구(논설위원)

2019-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