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하면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으로, 수출 중소기업들이 환 헤지 목적으로 가입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무려 732개 기업이 3조3천억원 상당의 피해를 보는 사태를 빚은 금융상품이다.
당시 피해기업 상당수는 은행권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13년에 키코 계약의 불공정성이나 사기성은 인정하지 않는 대신 상품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취임 직후 키코 사건 재조사에 착수한 지 1년 만에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오는 9일, 늦으면 16일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재조사에 대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이번 분쟁조정 대상은 일성하이스코와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4개 업체로, 피해금액이 총 1천500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은 이번 재조사 과정에서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부분, 즉 불완전판매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의 키코 상품 판매를 불완전판매로 규정하고 피해액의 20∼30%를 배상하라는 권고안이 유력하다고 한다. 다만 은행의 불완전판매 책임이 큰 경우 배상비율이 50%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경우 은행들이 부담할 배상액은 300억∼450억원선이 된다.
문제는 은행들이 권고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 손해배상에 대한 소멸시효(손해 발생일로부터 10년)가 완성된 상태여서 은행이 분쟁조정안을 거부하고, 피해기업들이 이후 소송을 걸어도 승산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분쟁조정을 신청한 4개 기업처럼 분쟁조정이나 소송 등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업이 150곳(피해금액 2천억∼4천억원 추산)에 달해 전선이 확대될 경우 피해 규모가 조 단위로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선무당 사람잡는다’더니 어설픈 금융상품 한 번 잘못 판매한 것이 뼈아프다.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상품이나 경제정책은 파급효과가 큰 만큼 더욱 더 신중하게 수립·시행할 필요가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