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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크라우드 펀딩은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초기에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소셜 펀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크라우드 펀딩은 종류에 따라 △후원형 △기부형 △대출형 △지분투자형(증권형) 등으로 나뉜다. 후원형은 대중의 후원으로 목표 금액을 달성하면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방식으로, 공연과 예술 분야에서 많이 활용된다. 기부형은 보상을 조건으로 하지 않고 순수한 기부 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대출형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이뤄지는 금융으로, 소액 대출을 통해 개인 혹은 개인사업자가 자금을 지원받고,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다시 상환해 주는 방식이다. 지분투자형(증권형)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비상장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형태다.세계 최초의 크라우드 펀딩은 지난 2005년 영국에서 시작된 대출형 크라우드 펀딩 업체인 ZOPA.COM(조파닷컴)이다.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은 2007년 영국의 크라우드큐브(crowdcube.com)가 최초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08년 미국에서 최초의 기부형(후원형)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인디고고(Indiegogo)가 출현하면서, 크라우드 펀딩이란 용어가 널리 알려졌다.우리나라의 경우 크라우드 펀딩이 2011년 후원·기부·대출형을 시작으로 정착되기 시작했고, 2016년 1월에는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이 도입됐다.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은 개인 투자자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업체를 통해 중소·벤처기업에 연간 최대 500만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제도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91개 기업이 92건의 크라우드펀딩으로 120억원을 조달하는데 성공했으며, 자금유치 성공률은 64.3%로 나타났다. 10곳 중 6곳이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국회에서도 최근 크라우드 펀딩 투자한도를 확대하고, 투자광고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온라인을 통한 금융기법의 발달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더욱 빨라지게 하고 있다. /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10-10

암표의 경제학

과거 추석명절이면 으레 나돌았던 귀성객을 상대로 한 귀성열차 암표거래가 요즘은 싹 줄어들었다. 자가용 보급 등 교통편이 다양화되면서 귀성객을 노려 터미널 등에 등장했던 암표상들의 모습은 이젠 아련한 추억거리가 돼 버렸다. 그러나 누가 암표를 `필요악`이라고 했던가. 지금도 인기 공연에는 암표상들이 여전히 등장하고 있다. 주 공간이 인터넷상으로 바뀌면서 암표 거래는 엄연히 존재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본주의 시장 원칙에서 발생하는 암표는 자연스런 현상의 하나라고 지적한다. 유명 연예인의 공연이 인터넷을 통해 단 2초 만에 매진되는 것을 보면 공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일부는 거래되는 가격 이상의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다. 경제학적으로는 공급보다 수요가 더 많은 현상을 초과수요 상태라고 한다.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나타나는 기능이 암표인 것이다. 암표 거래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받아 국가에 따라서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암표를 팔다 적발되면 경범죄 처벌을 받는다.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암표가 극장 객석의 점유율을 높이는 긍정 효과도 있다고 한다. 암표상은 아무리 막아도 또다시 등장하며 철저히 현금 거래하기 때문에 거래내역을 추적할 수도 없다.3일 은퇴하는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의 고별경기 티켓이 완전히 매진되면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암표가 나오고 있다. 블루존 내야석 4장(정가 6만원)을 50만원에 판다는 내용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승엽 선수 은퇴경기 입장권 2만4천장이 매진된 상태라고 했다. 11년 만에 무대에 서는 가수 나훈아의 컴백 공연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암표 티켓이 고가로 나돌고 있다고 한다. 정가보다 3배나 높은 20만~40만원에 팔린다는 것이다.가난했던 시절 고향 길 열차 표에 목을 메야 했던 우리들이 이제는 여유와 즐김의 문화에서 암표를 구한다. 암표도 생활 변천사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10-02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추석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연중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은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중국의 중추절, 미국의 추수 감사절과 같은 날이다. 한해 농사를 잘 마무리하고 풍성한 수확 앞에 감사의 마음을 신과 조상에게 전하는 날이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자연이 안겨다 준 신성한 결실 앞에 인간은 그냥 숙연하고 감사할 뿐이다. 추석(秋夕)은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이다.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다. 한가위라고도 부른다. 가위는 8월의 가운데라는 말이고, 한은 크다는 뜻이니 추석날을 일컫는다. 추석에 대한 유래는 명확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등 문헌자료를 살펴보면 신라시대부터 명절에 버금가는 행사가 이어져 온 것으로 짐작된다.보름달은 밝음의 상징이다. 전기가 생산되지 않았던 시절 한 밤중을 훤히 밝히는 보름달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지방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보름자정을 전후해 마을의 평온을 비는 제사를 올리는 게 보통이다. 정월 대보름이나 음력 8월 대보름이 명절이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우리 속담에 추석날을 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한다. 햇곡식과 햇과일 등으로 풍성히 차려진 음식을 먹고 밤낮으로 놀이를 즐기는 민속절의 기쁨이 오래 오래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청년 실업난에 허덕이는 요즘 젊은이에게 추석은 마냥 즐거운 날이 아니다. 올 추석 연휴가 역대 최장기간을 기록함에도 홀로 추석을 보내겠다는 젊은이가 많다는 여론조사다. 아르바이트 구인구직 전문 포털인 `알바천국`이 전국 20대 청년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보니 10명 중 6명이 혼자서 추석을 보내겠다는 `혼추족`으로 밝혀졌다. 그 이유로 아르바이트(27%), 친척 및 가족들의 잔소리(23%), 취업 및 시험준비(17%) 등이 손꼽혔다. 요즘 젊은이의 고단한 현실을 반영한 것 같아 씁쓸함이 느껴진다.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 입장에서도 마음 아픈 일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실현될 날을 기다려본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29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o)는 금전을 요구하거나 이별을 빌미로 협박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 영상 콘텐츠를 뜻한다. 성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부가`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보복성 성적 영상물을 유포할 경우 무조건 징역형으로 처벌하기로 했다. 즉, 리벤지 포르노 범죄의 경우 이유불문하고 `5년 이하의 징역형`만으로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기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카메라 등으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촬영하여 판매, 유포하는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이를 통해 영리를 취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현행법상 스스로 찍은 촬영물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3자가 유포해도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지 않고, 명예훼손죄만 적용된다니 피해자 입장에서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지난 2011년 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서울 지역 법원의 1심 판결 결과를 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몰카 범죄에 징역형이 선고된 경우는 5.3%에 불과했다. 음란물 유포죄의 경우에도 징역형이 선고된 경우는 5.8%에 그쳤다. 반면 벌금형의 비율은 60~70%에 달했다. 심각한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게 경미했다는 지적을 정부가 받아들인 셈이다.리벤지 포르노는 주로 남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당시 찍은 성적 사진이나 영상콘텐츠가 대부분이다. 두 사람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자 했을 성적 영상물은 두 사람이 헤어질 경우 한 쪽(주로 남자쪽)이 다른 한 쪽에게 배신감에 휩싸이면서 보복 수단으로 전락해 SNS상에 공표되는 경우가 많다. 성생활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상 리벤지 포르노 피해 당사자는 큰 타격을 받게된다. 연예인이거나 공직자, 저명인사일 경우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따라서 본인 동의 없이 개인의 명예와 프라이버시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리벤지 포르노`는 엄벌해야 마땅한 중범죄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 명예도 지켜줘야 한다. 정부의 조치를 환영한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28

피아노의 부활

피아노는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포리라는 사람이 처음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가문 `메디치`를 위해 건반악기를 제작한 그는 1710년경에 3대의 피아노를 완성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유럽의 부유한 귀족들은 그들의 문화생활 향유를 위해 피아노를 발명했고 그 피아노는 세월이 흘러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됐다.피아노는 서양을 대표하는 악기다. 서양음악의 꽃이란 별명도 있다. 피아노가 서양음악의 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피아노만이 가지는 특징적 소리의 강약 조절 때문이다. 그래서 피아노는 독주로도 연주되고 다른 악기 연주의 반주로도 많이 애용되고 있다.대구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00년 3월 26일이다. 대구 최초이면서 우리나라 최초이기도 하다. 피아노가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 곳은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다. 선교사인 리차드 사이드보텀 부부가 선교를 목적으로 도입한 피아노는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일본과 부산을 거쳐 낙동강 하류인 사문진으로 옮겨진다. 당시 사문진 나루터는 영남권 물류 요충지며 대구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했던 곳이다. 경부선 철로가 없었던 시절로서는 열악한 육로교통보다는 짐배를 통한 수로가 수월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주민들 사이에는 이런 피아노는 `귀신통`으로 통했다. 벌써 100여 년 전 일이다.대구에 처음 들어온 서양음악은 찬송가나 손풍금 등 선교활동으로 주민들과 만났다. 박태준, 현제명 등 대구출신 음악가들이 일제 강점기에도 그나마 음악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종교적 이유가 있었다. `달성 피아노 100대 콘서트`가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안고 문화 콘텐츠로 변신한 게 올해로 6년째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대구 사문진에 들어온 피아노는 시간과 역사의 옷으로 갈아입고 `100대 피아노`로 부활했다. `100대 피아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지역대표 예술 공연으로 우뚝 섰다. 작년에는 이탈리아 `PIANO CITY MILANO 축제`와 교류를 시작하면서 세계무대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피아노의 화려한 부활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27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바로 기원전 1천700년경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법 원리이다. 바빌로니아 제6대 왕인 함무라비는 함무라비 법전을 제정해 법치주의에 의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다. 이 법전은 최초의 성문법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同害) 복수법에 기초한 형벌법이 들어 있다. 이 법전은 20세기 초 프랑스 학자 드 모르갱에 의해 서부 이란의 페르시아 만 수사에서 발견돼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함무라비 법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다소 섬뜩하다. 우선 전 282조 중 제196조에는 `만일 사람이 평민의 눈을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눈도 상해져야 한다`, 제200조에는 `만일 사람이 평민의 이를 상하게 했을 때는 그 사람의 이도 상해져야 한다`고 돼 있다. 한 마디로 이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법에 기초한 형벌법으로서, 타인의 눈을 상하게 한 사람은 자기 눈도 상해져야 하고, 부모를 구타한 아들은 그 손목이 잘려져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당시의 사회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 복수법의 관념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이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유엔총회에서 미사일도발과 핵실험을 일삼고 있는 북한을 가리켜 `북한 완전 파괴`, `그들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며 대북 위협 발언을 쏟아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가리켜서는 `미치광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 23일 유엔본부 기조연설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를 겨냥, `악마 대통령`, `거짓말 대왕` 등으로 비하했다. 리 외무상은 이어 “트럼프는 망언으로 취임 8개월 만에 백악관을 수판알 소리 요란한 장마당으로 만들어놓고 유엔무대까지 돈과 칼부림밖에 모르는 깡패들의 난무장으로 만들려 했다”며 맹비난했다. 독설가로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말폭탄을 던졌다가 도리어 카운터펀치를 맞은 모양새다. 한마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이다. 어쨌거나 그 바람에 가슴졸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국민들이다. 북한과 미국의 막말 공방 격화가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고 있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26

무자식이 상팔자

작가 조창인의 작품 `가시고기`가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백혈병을 앓는 어린 아들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제목에 나오는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고 나면 수컷이 알을 보호해서 새끼들을 키운다고 한다. 새끼들이 독립해서 떠나게 되면 기력이 다한 수컷은 죽고 만다. 이 소설을 통해 가시고기가 부성애를 강조하는 고기로 일반에 많이 알려졌다.아버지와 자식의 문제는 천륜의 관계지만 항상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구세대와 신세대의 개념으로 만날 때가 많다. 아버지의 말씀이 일방적으로 옳다는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아버지의 생각과 아들의 생각이 달라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의 생각을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자식농사가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러나 요즘은 자식 농사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진 것 또한 사실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원화되면서 이해관계도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비극적 부자관계는 조선시대 영조와 사도세자간이 아닐까 싶다. 자식을 뒤주에 가둬 숨지게 한 비정의 아버지 영조의 행위는 가히 엽기적이다.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갈 바에야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옳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정치인들이 자식들의 불미스런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된 아들을 면회하고 온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인데 누굴 탓 하겠냐”고 했다. 모든 일을 자신의 불찰로 돌렸다. 다시 한번 국민께 사죄했다.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위협을 받아도 자식에 대한 책임을 남 탓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도 최근 아들의 성추행 문제와 관련해 직접 사과했다. “자식 이길 부모 없다” 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야 정치인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무자식 상팔자 소리 안 듣게 자식들이 잘해야 될 일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25

천고마비

이해인 수녀는 `가을편지`란 제목의 시에서 가을을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이라고. 또 `가을 노래`란 그녀의 또 다른 시에서는 가을에 대한 감정을 “하늘은 높아가고 마음은 깊어가네”라고 표현했다. 시인들은 가을과 마음을 매우 밀접한 관계로 본다. 가을을 노래한 시인들의 글 속에 마음은 어떤 형태로든 표현되어야 할 필수품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왔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는 가을이 좋은 계절일 때 흔히 쓰는 말이다. 가을이 모두에게 좋고 아름답고 빛나는 계절이기에 시인들도 사람의 마음을 가을 속에 꼭 집어넣고 싶어 하는 것 같다.그러나 천고마비는 유래를 살펴보면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보다 경계의 뜻이 담겨있다. 본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의미다. 중국 고대에는 추고마비(秋高馬肥)라 불렀다 한다.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은 지금과 같다. 가을에는 흉노족이 날뛰니 경계를 하자는 말이다. 중국은 옛날부터 북방 유목민족인 흉노족의 약탈로 골머리를 앓았다. 흉노족은 긴 겨울을 앞두고 북쪽변방에 자주 나타나 그곳 중국인을 상대로 약탈을 일삼았다. 약탈한 농산물은 그들의 긴 겨울 양식이었다. 고대 중국 군왕들이 북쪽변경에다 장성을 쌓은 것도 흉노족 침입에 대비한 조치였다. “추고마비의 계절이 오면 언제 흉노족이 침입할지 몰라 모두 전전긍긍 한다”는 말이 천고마비의 유래가 된 것이다.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왔다. 가을은 천문학적으로 추분(9월 23일)부터 동지(12월 21일)까지다. 기상학에서는 보통 9월부터 11월에 해당하는 날이다. 가을은 아직은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듯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여름에 지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 10월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알록달록 단풍잎은 사람을 감성의 바다로 유인한다. 설렘의 가을을 맞아 마음의 양식을 찾아보는 일도 좋아 보인다. 책속의 주인공을 찾아 문학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고 책속에서 일상의 나를 만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22

몰링(malling)

여가시간과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한 곳에서 쇼핑과 여가선용을 하려는 욕구의 증가로 몰링(malling)을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몰링의 확산은 대형유통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온라인 시장의 폭발적 성장 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대형마트들이 체험과 전문성 등을 강조한 이색매장으로 변신을 꾀하면서 더욱 가속도가 붙고있다. 몰링은 대형 복합쇼핑몰에서 외식이나 쇼핑, 영화감상 등의 여가활동 등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롯데마트의 경우 기존의 마트 매장에 분야별 전문 특화매장을 입점시켰다. 롯데마트는 현재 패션잡화 매장 `잇스트리트`, 자전거용품 매장 `바이크 라운지`, 완구 매장 `토이저러스`등 분야별 14종의 전문 특화매장을 운영 중이다. 새롭게 문을 여는 점포들은 체험에 집중했다. 지난 4월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로 문을 연 초대형 매장 롯데마트 양평점의 경우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1층을 파격적으로 상품 매장이 아닌 `어반 포레스트`라는 이름의 휴식 공간으로 꾸몄다. 7월에 문을 연 서초점과 지난 15일 개장한 김포한강점에는 `그로서런트 마켓`이 들어섰다. 그로서런트란 식재료 구입과 요리, 식사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는 체험형 복합공간을 뜻한다. 마트에서 고기, 해산물, 과일 등 식재료를 구입한 뒤 500~2천원의 조리비를 추가로 지불하면 즉석에서 재료를 조리해 준다.여성 고객 위주였던 대형마트로서 업계 1위자리를 고수해온 이마트 역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마트가 남성 소비자를 공략한 가전·키덜트 전문점 `일렉트로마트`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15년 6월 일산 킨텍스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에 13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일렉트로마트는 가전이나 장난감 같은 상품 외에도 커피, 맥주 등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일렉트로바`, 남성 전용 미용실인 `바버샵`, 오락실 등이 있어 전문 매장에 체험형 콘텐츠도 함께 갖췄다. 생존을 위한 대형마트의 몸부림이 소비자들에게 더욱 편리한 쇼핑환경과 놀이문화를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21

은퇴의 미학

노추(醜)라는 말이 있다. 늙고 추하다는 뜻이다. 정년을 마치고 은퇴하는 실버세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금기 중 하나다. “나이가 들어 늙고 추하다”는 얘기만은 듣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퇴를 한 실버세대들은 은퇴 후 생활이 늘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은퇴 후 생활이 뜻대로 안 되는 게 보통이다.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 은퇴는 `있는 자의 전유물`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의 보장제도가 노후를 안정시키기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복지로 본다면 선진국이 되기는 아직 한참 멀었다. 실버 송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라는 노래가 SNS 상에서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영상 조회 320만 뷰를 기록하고 있는 이 노래는 은퇴한 실버세대들의 애환을 재미있고 익살스럽게 전하고 있다. 올해 일흔두 살의 서유석씨가 2015년 작사 작곡했다. 곡이 유쾌하면서도 노랫말에서는 실버세대들의 비장함도 느끼게 할 만큼 절절한 맛도 있다. 그래서 실버들 중심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는 소식이다.인생 2막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시대 시니어들의 하소연도 보인다. 직장생활 30년을 마치면 노후가 안락할 줄만 알았는데 막상 나와 보니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는 말이다. `세월이 30년간 나를 속였다`는 노랫말 속에 우리 사회의 부족한 노후복지를 꼬집는 풍자도 있다. `은퇴 미학`이라는 말은 은퇴 후 성공적 삶을 살 때 붙여지는 수식어가 아닐까 싶다. 미학(美學)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학문이라는 뜻이다. 가치로서 아름다움을 가리킨다.삼성라이온즈 프로야구 이승엽 선수가 10월 3일 대구에서 은퇴한다. 이날 은퇴식은 22년의 긴 야구 인생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날이 된다. 한국 프로 야구사상 가장 많은 신기록을 남긴 그의 은퇴에 팬들의 극찬이 쏟아졌다. 그는 “이젠 떠날 때가 됐다”는 말로 은퇴의 변을 함축했다. 성공한 그의 은퇴야 말로 미학이라는 표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그의 미학 속에는 남다른 피와 땀의 노력이 있었음이야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20

탄생 100주년 맞은 윤이상 선생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인 윤이상 선생은 지난 17일 탄생 100돌을 맞았다. 윤이상은 1917년 9월17일 경남 산청군에서 태어났고, 통영에서 자랐다. 14세부터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했으며, 1935년 일본 오사카 음악학교에 입학해 정식으로 작곡을 비롯, 음악이론과 첼로 등을 배웠다. 해방 후 1952년까지 통영과 부산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다가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을 공부했고, 다시 독일 베를린음악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1959년 동양적 색채를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접목시킨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교류하다가 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 속칭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196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돼 서독으로 추방됐으며, 한국에서는 윤이상의 입국과 윤이상이 작곡한 음악의 연주가 금지됐다. 1970년부터 1971년까지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가르쳤다. 1971년 독일로 귀화했고, 1972년에 뮌헨 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 음악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1970년에 킬 문화상과 1987년에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을 수여 받았다. `서양현대음악 기법을 통한 동아시아적 이미지의 표현` 또는 `한국음악의 연주기법과 서양악기의 결합`이라는 평을 받았고, 유럽의 평론가들에 의해 `20세기의 중요 작곡가 56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선정되기도 했다.그의 음악에는 통영의 잔잔한 바다, 물고기로 넘쳐나는 어시장, 밭일 하는 어머니의 노랫소리, 밤바다를 타고넘는 어부들의 뱃노래까지 통영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탄생 100돌을 맞아 페이스북에 “아직 우리에게 그의 음악은 낯설기만 하다”면서 “국민과 함께 윤이상이 사랑했던 이 땅, 이 바다, 이 하늘의 소리를 그의 음악에서 발견하고 즐길 날을 기대해본다”고 추모했다. 세계가 칭송하는 그의 음악을 한번쯤 즐겨보면 어떨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19

히딩크 신드롬의 재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영웅으로 등극한 인물.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는 우리 국민의 우상이었다. 외국인이라지만 그 사람 만큼 우리 국민의 열광을 온몸으로 받은 인물은 없었다. 온 나라가 히딩크 신드롬이었다. 그의 멋들어진 어퍼컷과 카리스마, 지도력 등은 늘 우리의 화두였다. 이런 경우 히딩크는 어떻게 했을까, 모든 문제의 해답은 히딩크로 귀결되던 시절이다. `히딩크` 이름을 달고 출판된 서적들이 홍수를 이뤘다. `히딩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이 최고의 유행어가 될 정도였으니 당시 히딩크 신드롬의 열기가 얼마나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붉은 악마의 옷을 입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한민국`을 크게 외쳤던 젊은이들도 이젠 중년의 나이쯤 됐을 지금이다. 히딩크 신드롬이 15년 만에 되살아났다.한국 축구 대표팀이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 본선 9회 연속 출전권을 땄지만, 최악의 경기력에 실망을 느낀 팬들이 히딩크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히딩크 감독 복귀설이 솔솔 흘러나오자 인터넷 등에는 히딩크 등장과 관련한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지난 14일 히딩크 전 감독이 네덜란드에서 유럽주재 한국기자들을 만나 “한국축구를 위해 어떤 형태든 기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후 히딩크 이름이 인터넷을 이틀 동안 도배를 한 것. 4강 신화를 만든 그에 대한 추억이 강력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축구 4강 신화 재연과는 별개의 문제이면서 말이다.히딩크 신드롬의 본질은 한국 축구도 4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데 있다. 그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몸으로 던진 그의 멋진 리더십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를 통해 우리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이것이 신드롬의 주된 배경이다.폴란드전을 앞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영웅에는 관심이 없다.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지금 한국의 팬들은 성공신화를 이룩한 히딩크를 통해 또 한번 한국인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18

인사가 만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를 판단할 때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아라”는 말이 있다. 신언서판이 사람을 평가할 기준은 되나 꼭 맞는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을 쓴다는 게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이다. 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자리에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신언서판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도 관리등용의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풍채와 언변과 문장력, 판단력 등으로 선비가 지녀야 할 네 가지 덕목을 인재 선택의 기준으로 본 것이다.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 면접장에 우리나라 최고의 관상쟁이를 데려다 두고 심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 그만큼 정성을 쏟았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성공한 기업들 속에는 반드시 훌륭한 인재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인재를 선택한 경영주의 눈과 인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영주의 마음이 기업을 성공하게 만든다. 지속 가능한 경영도 좋은 인재 영입에서 출발한다. 요즘 경영의 흐름이다.공직에서 사람을 쓰는 것은 민간 기업에서 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 국민에 대한 신뢰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이 인사를 잘못해 국정을 그르친 일은 비일비재하다. 인사가 만사인데 인사가 망사(亡事)돼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경우는 많다. 2005년 장관에 대한 인사 청문회가 도입된 후 이명박 정부는 45일, 박근혜 정부는 83일 만에 장관 인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고위 관리를 등용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다.요즘 새삼스럽게 “인사가 만사다”라는 말이 정치권에 화자 되고 있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후 문재인 정권의 인사 난맥상을 꼬집는 말이다. 연속되는 인사 난맥으로 문대통령도 인사 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는 소식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15

한반도의 기상이변

지난 11일 부산과 통영 등 경남 지역에 내린 사상최대 폭우는 기상이변의 하나였다. 1904년에 부산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후 9월 하루 강수량으로 최다인 264mm를 기록했다. 부산 영도구에서는 한 시간에만 110mm에 달하는 막대한 양의 비가 내렸다. 최근 중남미와 미국에서는 `하비`에 이은 `어마` 등 괴물급 허리케인이 잇따라 덮쳐 난리다. 특히`어마`는 바람이 시속 300km에 달해 위성관측이 시작된 이후 40년래 역대 최강급이란 평가여서 기상이변으로 꼽힌다. 지난 2010년 1월 서울에 내린 25.8㎝의 기록적인 폭설이나 영국 런던의 25㎝ 폭설, 스코틀랜드에 닥친 50년 만의 한파도 기상이변의 한 예로 소개된다. 당시에 벨기에와 이탈리아, 그리고 폴란드의 폭설과 추위로 동사자가 발생했으며, 알프스 산지에서는 눈사태로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미국 대평원 지역과 중동부 지역에는 한파와 강풍이 몰아치고 폭설이 내렸고, 겨울에도 늘 따뜻하였던 플로리다에서도 동사자가 생겼다. 여름으로 치닫고 있던 남반구에서도 2009년 말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초원 지역에서는 큰 가뭄으로 들불이 나고 가축들이 죽었으며, 반대로 브라질에서는 큰 홍수가 발생했다.기상학자들은 2010년 1월을 전후해 점점 잦아지고 있는 세계 기상이변의 원인을 제트기류의 약화와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제트기류는 북극 한파를 가둬 두는 `둑`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둑의 곳곳이 터지면서 북극의 찬 공기가 유럽, 동아시아, 북아메리카 등지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해수면 기온이 높아지는 엘니뇨 현상 역시 당시 폭설의 주범이다. 엘니뇨 현상으로 인도양 등지에서 공급된 수증기가 북쪽의 한파와 만나 눈덩이를 키우는 작용을 했다. 남반구에서 홍수 피해를 유발하는 것도 엘니뇨 현상이라는 게 정설이다. 문제는 제트기류의 약화나 엘니뇨현상 역시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받고있다는 점이다. 기상이변을 일으키는 `지구온난화`는 인류에 치명적인 재앙을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전 인류적 차원의 대응이 조속히 필요하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14

벌초의 계절

백로(白露)는 24절기 중 열다섯 번째 해당하는 절기다. `흰 이슬`이란 뜻이다. 이때쯤 기온이 이슬점 아래로 내려가 풀잎 등에서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 양력으로 9월 9일 전후이며 올해는 이달 7일이 백로였다. 우리 선조들은 백로가 지나면 벼를 수확하기 시작한다. 다음 절기인 중추에는 서리가 내리기 때문이다. 이 무렵 일반 가정에서는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伐草)를 하는 풍속이 있다. 그 근원은 잘 알 수 없으나 유교의 관혼상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본다. 벌초는 조상 묘의 풀을 베어 정리하는 풍속이다. 금초(禁草)라고도 하는데 `불을 조심하고 풀을 베어 무덤을 잘 보살핀다`는 뜻의 금화벌초(禁火伐草)에서 따온 말이다. 보통 벌초는 처서가 지나 하는데, 풀이 다 자란 상태라 겨울동안 조상 묘를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예로부터 벌초를 효의 기준으로 삼았다. “제사는 지내지 않아도 남이 모르지만 벌초를 안 하면 금방 남의 눈에 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벌초를 하지 않는 것을 큰 불효로 여겼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죽은 조상을 잘 섬기는 민족도 드물다. 마치 살아계신 부모처럼 예를 갖춰 섬긴다. 유교적 영향이 크다. 조상을 잘 섬기는 것을 부모에 대한 효행과 동일시하는 관념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민족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벌초 때마다 말벌에 쏘여 고생하는 사람들이 매번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벌초를 그만 두는 후손들은 없다. 과거와 달리 벌초 대행업소에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졌으나 조상숭배의 예는 여전하다.벌초는 조상에 대한 효의 개념이지만 조상 은덕에 대한 감사의 정성으로 보는 것이 좋다. 오늘날 이처럼 무탈하게 살아온 것도 조상이 보살펴 준 은덕(恩德) 덕분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 “처삼촌 벌초”라는 표현이 있다. 대충 대충 일을 무성의하게 할 때 이르는 말이다.벌초의 계절이다. 조상 묘소를 찾아 조상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을 정성껏 표시해 보는 것도 뜻 있는 일이 될 수 있겠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13

금한령의 뒷모습

중국정부가 사드 한국배치를 기화로 한국 단체관광을 금지하는 금한령(禁韓令)을 지난 3월15일 내린 후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유통기업이었다. 이마트는 연내 중국시장에서 완전철수한다는 목표로 점포 매각작업중이며, 롯데마트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마트는 중국매장 6곳 중 5곳을 태국 최대 재벌인 CP그룹에 매각하고 나머지 1개 점포 매각도 서두를 예정이다. 롯데마트는 中 정부의 사드보복이 본격화한 지난 3월중순 이후 5천억원 넘게 피해를 봤다. 총 112개 점포 중 74곳이 영업정지상태다. 정지이유는 소방법위반 등인데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다. 사드보복 분위기에 편승한 중국인들의 불매운동까지 겹쳐 그나마 영업중인 점포매출도 급감했다. 연말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피해액은 1조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한다. 화장품업계도 고전하고 있다. 이 업종의 中의존도가 7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中 단체관광객(요우커) 의존도가 높은 명동지역 화장품 숍들도 매출이 반토막났다.서울시내 면세점도 직격탄을 맞았다. 요우커 위주로 영업해온 서울시내 면세점 9개가 한순간에 매출이 90% 가까이 급감했다. 급기야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던 면세점 문을 닫겠다는 곳까지 나왔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달 31일 제주국제공항내 면세점 임대차계약을 종료하겠다고 한국공항공사측에 통보했다. 현재 연말까지 기한을 연장했지만 임대료 조정 등 부담을 크게 줄였다. 롯데면세점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운영을 접어야 할지 고심중이다.중국내 진출기업에 대한 중국정부의 겉다르고 속다른 모습은 뒤늦게 얘기할 거리도 못된다. 문제는 기업차원을 넘어 국가적 이슈로 부상한 금한령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더 큰 문제다. 외교부는 “북핵 문제가 해소되면 될 일”이라고 하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약속이 전부다. 우리 정부도 한중FTA협정에 명시된 보호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나서야할 때다. 외교문제는 외교문제대로, 통상문제는 통상문제대로 대처해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지혜가 아쉽다./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12

오만방자 중국

한국에서의 사드 배치 완료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국이 또다시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치졸한 보복에 나서고 있다. 한류문화 및 관광분야 제재로 한국을 압박하던 중국이 이번에는 중국 언론을 앞세워 현대차 흔들기에 나섰다는 보도다.“현대차와의 합작을 끝낼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관영언론이 떠든다. 20년 현지에서 영업했던 이마트가 철수를 결정했다. 중국 현지 롯데마트는 누적적자가 5천억원에 달하자 현지 매장 절반을 처분하기로 했다. 사드보복에 따른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8조5천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니 사드를 둘러싼 중국의 대응이 옹색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다.성주 사드 배치 완료에 대한 중국 언론의 보도는 더 가관이다. 중국의 최대 국제뉴스 전문지인 환구시보는 한국의 사드 배치를 두고 `악성종양`이란 말로 맹비난했다. “한국 보수주의자는 김치만 먹어서 멍청하다”, “한국인은 수많은 사찰과 교회에서 평안을 위한 기도나 하라”는 둥 저질스럽고 품격을 잃은 막말의 논평을 냈다.북한이 6차에 걸친 핵실험에도 일언반구 없던 그들이 최소한의 방위 수단인 한국 측의 사드 배치에는 온갖 막말이니 `사돈 남 말` 꼴 아닌가 싶다. 한국에 대고 “강대국 사이 개구리 밥 신세가 될 것”이란 말은 또 뭔 말인가. 국가 간에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나라다.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다. 정부 당국의 입장을 담아왔던 그동안의 보도태도로 보아 한국에 대한 중국 고위층의 생각과 수준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과연 중국이 스스로 대국이라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있는지 의문이다. 땅덩어리만 컸지 하는 짓은 졸장부나 다름없다.사드는 공격용 무기가 아니다. 중국 정부도 잘 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의 사드 배치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아직도 그들은 `중국은 대국, 한국은 속국`으로 생각하는 걸까. 북핵보다는 북한 정권의 유지에 더 신경을 쓰는 그들의 태도에서 이런 의심도 가져본다. 사드 보복에 우리가 더 당당해져야 할 이유가 이런 데 있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11

대가족제의 추억

요즘은 초(超)핵가족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가족 단위가 더 세분화되는 사회현상을 이른다.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인구는 2.41명이다. 한집에 부부가 산다고 가정하면 1명의 자녀도 채 두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2000년 이후 나타난 만혼 현상과 이혼의 증가, 노령사회 등이 가구당 인구수를 줄이는 요인들이다. 이제는 1인 가구 수가 전체가구 수의 27%까지 늘어났다. 4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인 셈이다. 산업화로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불가피하게 우리사회는 핵가족화로 진행되었다. 반면에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졌던 대가족제는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대가족 중심의 가정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다. 뉴욕대학교의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라 불렀다. 이들 집단의 경제적 영향력을 의미하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사회는 핵가족화가 보편화 되면서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여중생 폭행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또래 여중생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참혹하게 두들겨 패놓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금의 교육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소년법 폐지를 원하는 청원이 수십만 건 청와대 홈피에 올랐다고 한다. 이것이 법 개정으로 고쳐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법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 또한 능사는 아닐 것이다.이번 사건을 보며 우리의 대가족제가 가져왔던 교육 효과를 추억해 본다. 대가족제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 삼대 이상이 되며 결혼한 자녀들이 분가하지 않고 함께 사는 가족 형태다. 대체로 가족 구성원 수가 많고 엄격한 가부장적 권위가 특징이다. 핵가족화의 흐름을 거스를 생각은 전혀 없다.그러나 인간적이고 위계를 배우는 대가족제의 분위기가 자식세대에게도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것이 가정교육의 근본 아니겠는가./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08

최저임금 VS 최저연봉

미국의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회사인 그래비티의 CEO 댄 프라이스는 2015년 4월 파격적인 연봉정책을 발표했다. 경비원, 전화상담원 등을 포함한 120명 전직원의 최저연봉을 7만달러(약 7천900만원)으로 올린 것이다. 대신 110만달러였던 자신의 연봉은 7만달러로 삭감했다. `사회주의 냄새가 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함께 회사를 창업한 형이 “회사를 잠재적 위험에 빠뜨렸다”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댄 프라이스는 “나는 자선사업 하는 게 아니다. 임금인상도 투자며, 회사발전을 위한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2년 5개월이 지난 현재 이 회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마이클 휠러교수는 “그래비티는 연매출이 연봉을 올리기 이전보다 75% 증가했고, 직원숫자도 40%가 늘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지난해 8월 밝힌 성과지표에서도 직원들의 행복도가 올라갔고, 이직은 크게 감소했으며, 입사지원자는 크게 늘었고, 직원들의 출산이 늘어났다고 밝혔다.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이 짧아지고, 저축은 늘었다. 신규고객이 크게 늘었고, 매출도 2014년보다 35%나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 7월에는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댄 프라이스에게 감사의 뜻으로 테슬라자동차를 선물하는 장면이 해외토픽에 보도되기도 했다. 댄 프라이스는 “우리가 탐욕으로 만들어지는 성공모델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면 다른 이들도 우리를 따를 것”이라며 강조했다. 이 회사의 정책에 감명을 받은 바이오분야 리크루트회사인 파머로직스도 2016년 1월 전 직원 46명 가운데 연봉이 낮은 28명의 연봉을 33% 인상했다. 이후 1년 회사는 눈에 띄게 성장해 연매출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직원수도 72명으로 느는 성과를 거뒀다. 국가가 기업에게 최저임금을 올리도록 강제하는 최저임금 정책이 적지않은 기업의 반발을 사고 있는 상황에서 댄 프라이스의 최저연봉정책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회사가 성공하려면 직원들부터 대접해야 한다는 건 새로운 경영철학일 수 있다. 이런 경영철학이 설득력을 얻는 경제환경을 조성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최저임금 정책이 아닐까./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2017-09-07

지금부터 고령사회

경제학자 한양대 전영수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고령화 사회를 괴물`이라 했다. 괴물인 이유는 이렇다. 고령화 사회는 우리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지 상상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젊은층이 많고 노인층이 적은 전통적 피라미드형 연령 분포가 바뀌는 사회구조다. 그래서 전대미문의 사회현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얼마큼의 위력으로 세상을 흔들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삶의 방식과 유형은 물론이요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모든 시스템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 전망했다.특히 그는 노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를 청년문제와 결부해 주목을 받았다. 노령화 사회가 오면 노인보다 청년이 훨씬 열악하고 피폐해질 확률이 높다는 것.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과거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사회현상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한국도 8월말 행안부 발표로 공식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14%를 넘었다. UN은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7%를 초과하면 노령화 사회, 14%를 초과하면 노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정의했다. 이 기준에 따라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지 불과 17년 만에 고령사회에 도달했다. 통계청 예측보다 1년이 빨랐다. 고령화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시간이 프랑스 115년, 미국 73년, 독일 40년, 노령화가 빠르다는 일본도 24년이 걸렸는데 비해 우리의 고령사회 진입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교수는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일본과 닮고 있다며 일본의 실패를 배워 한국의 고령사회에 대비하자는 주장을 편다. 인구는 많아도 고민, 적어도 고민이다. 우리는 저출산 등 인구 문제가 이미 심각단계에 있다. 올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725만7천명이다. 당분간 더 늘어난다. 고령사회 시작을 가리키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이다./우정구(객원논설위원)

2017-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