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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각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2021년 아마존 최고의 책으로, BBC CNN USA Today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면서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채터 당신 안의 훼방꾼’(원제 Chatter·김영사)이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의 저자 이선 크로스 교수는 ‘마시멜로 실험’으로 유명한 성격 이론의 대부 월터 미셸의 연구를 이어받은 제자로, ‘벽에 붙은 파리 효과(Fly-on-the-wall-effect)’라는 심리기법을 창안한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다. 그는 인간이 내면에서 나누는 대화에 주목하고, 우리가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런 대화를 어떻게 통제하고 이용하면 더 행복하고 건강하며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심리 실험과 뇌 메커니즘’을 통해 살펴본다. 여기에 흥미로운 사례를 접목시켜 부정적 생각과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내 안의 목소리와 잘 지내는 방법을 펼쳐 낸다.내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똑같이 내면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힘없이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트레스에 짓눌렸을 때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말하는 데도 옳고 그른 방법이 있을까? 우리가 염려하는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그들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부추기지 않고 그들에 대한 우리 감정도 격해지지 않을까? 소셜 미디어에서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무수한 ‘목소리’가 우리 마음속 목소리에 영향을 미칠까? 이런 의문을 엄밀하고 철저하게 연구한 끝에 놀라운 결과를 얻었고 답을 찾았다.저자는 21세기에 팽배한 문화적 주문인 ‘현재를 살아라’는 주문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 역행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간은 현재에 충실할 수 없는 존재다. 뇌가 그렇게 하도록 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뇌의 작동 방식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시시때때로 현재에서 빠져나와 마음속에 존재하는 내면의 세계에 빠져든다. 현재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혼자 자문자답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귀담아듣는다.인간은 뇌의 ‘작업 기억’ 덕분에 내면의 대화를 지속하면서도 일상을 유지한다. 작업 기억이 언어적 신경 연결로를 계속 열어두기 때문에 우리는 내면의 대화를 지속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상대하며 생산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한, 마음속 언어적 사고의 흐름은 과거를 조각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자서전적 추론을 통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꾸며낸다.타인을 관찰할 때처럼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 정신의 특성인 비대칭적 사고로 인해 내면의 목소리는 종종 못되고 집요한 수다쟁이 ‘채터’로 변한다. 한번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면 내면의 목소리는 눈앞에 닥친 장애에만 정신을 집중하도록 제한하며 문제의 다른 대안을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채터는 사회적 삶, 경력 심지어 신체 건강까지 파괴한다.그렇다면 어떻게 부정적인 ‘채터’를 통제하고 이를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저자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문제를 규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이다.‘채터’는 우리가 ‘몰입자’가 돼 고민거리를 가까이 끌고 와서 확대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벽에 붙은 파리처럼 초연한 관찰자, 외부자가 돼 고민거리를 바라보라고 저자는 제안한다.아울러 고민거리를 생각할 때 주어를 ‘나’보다는 ‘자신의 이름’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동시에 이인칭, 삼인칭 대명사를 사용하면 자신에게 말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정서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방법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에게 일어나는 보편적인 사건임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저자는 이 밖에도 SNS를 이용할 때도 거리 두기에 유념하고, 플라세보(위약) 효과를 볼 수 있는 걱정 인형과 같은 물건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14

가을엔 詩를… 라틴아메리카 문학 거장 바예호의 첫 시집

“사노라면 겪는 고통, 너무나 지독한…. 모르겠어!신의 증오 같은 고통. 그 앞에선 가슴 아린지난날이 밀물이 되어 온통영혼에 고이는 듯…. 모르겠어!”―‘검은 전령’, 세사르 바예호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에서‘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민음사)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세사르 바예호의 대표 시집이다.시인이자 극작가, 소설가, 저널리스트였던 바예호는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와 더불어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단을 대표한다.바예호의 시에는 상징이나 전원적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하는 인디오 특유의 상징주의적 요소 외에도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요소들이 풍부하게 구현된다. 바예호 시의 고유성은 시인이 자신의 서정을 그려냄에 있어 라틴아메리카 시 세계의 언어를 새로이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바예호의 시들은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닮았다. 바예호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여러 차례 중단하고 생업에 종사해야 했으며, 20대 후반에는 정치적 소요에 휘말려 투옥됐고, 석방된 후에는 평생을 파리에서 궁핍하게 살았다. ‘조금밖에 죽지 않은 오후’는 바예호의 첫 시집으로 삶의 고통과 좌절, 실존의 그늘을 토로한다. 이렇듯 굴곡진 삶은 그의 시에도 반영돼 작품 전반에 우울하고 어두운 정서가 깔려 있다.평생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았던 시인은 “사노라면 겪는 고통, 너무나 지독한…. 모르겠어!”라며 삶에 대한 좌절감과 염세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시인은 나르시시즘적인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고통에 비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타인의 고단한 삶에 대한 책임감을 고백하기도 한다.시인의 사랑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넘어 신성(神性)에까지 미친다.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바라보는 신 역시 창조주로서 탄식하며 마음 아파할 것을 짐작해 시에 녹여냈다. 바예호는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을 개인적 차원에서 ‘우리’의 차원까지 확장한 시인이었다.바예호의 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위로와 용기를 준다. 그래서 바예호의 시는 혁명가가 힘의 논리에만 휘둘리지 않고 휴머니스트로서 남아 있도록 잡아 준다. /윤희정기자

2021-10-14

플라톤부터 존 롤스까지, 철학자들의 정치적 사유 탐구

독일 출신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오트프리트 회페는 ‘정치철학사’(길)에서 정치와 관련, 우리 시대를 ‘위기의 시대’라고 진단하면서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서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요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중요한 정치철학자 20여 명을 소개하는데, 단순히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 및 문제의식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특정한 보편성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철학자들의 정치적 사유를 탐구하는 이유는 현실정치가 철학적 사유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듯하지만, 사실 사회발전과 정치발전이 이들의 사유를 비판하거나 모방하거나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사유가 현실정치에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저자는 정치를 단순히 경제의 상부구조나 권력의 문제라고 해명하는 철학자들에게서조차 정치가 인간의 공존을 위한, 즉 ‘보다 좋은 사회적·정치적 세계를 기획’하는 ‘비전’의 영역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책은 저자가 2015년 튀빙겐대에서 한 강의를 바탕으로 펴낸 단행본.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부터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까지 서양 인물의 정치철학 사상을 20개 주제로 요약해 소개했다. /윤희정기자

2021-10-14

박태준 10주기… 되짚어보는 거인의 삶

“철강산업을 일으켜 국가건설의 초석이 되겠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뜻이다.”“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순교자적으로 희생하는 세대다.”“교육이 일본에 앞서야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故) 박태준(1927∼2011) 포스코 창업회장의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정신과 신념이 함축돼 있다.포항의 시민단체인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대표 이재섭·이하 포사연)가 박태준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추모도서 ‘박태준 생각’(아시아)을 펴냈다.‘박태준 생각’ 편찬위원들은 “박태준 선생이 남긴 공적의 탑은 생각과 말과 행동의 삼일치가 만든 위업이다. 그러나 공적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그것을 성취하게 만들었던 선생의 정신, 고뇌, 투쟁이다. 이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야 하는데, 그것을 어떤 실체로 세우려는 출간 취지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또한 포사연은 “지리적으로든 시대적으로든 가까운 거리에서 박태준 선생에 대한 정당한 칭송과 합당한 비판에 게으르지 않았던 우리가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선생의 10주기를 기리는 일들에 나서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고 예의인데, 물론 ‘박태준 생각’이 전국적으로 널리 읽히게 되는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지난 9월 14일부터 내년 1월 9일까지 열리는 포항시립미술관의 ‘신화를 담다―꺼지지 않는 불꽃’ 전시를 찾아오는 관람객들이 이 책을 기념으로 오래 간직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박태준 생각’은 3부로 짜였다. 1부 ‘사진과 행적으로 만나는 박태준의 생애와 정신’은 출생부터 서거까지 일대기 전체를 66개 소제목으로 나누고 관련 사진 103장과 함께 행적과 어록을 간추려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이대환 작가의 ‘박태준 평전’에서 해당 시기에 대한 비평적 관찰을 발췌해 곁들였다. 2부 ‘황혼기의 연설에서 박태준정신을 되새기다’에는 김호길 포스텍 총장 10주기 추모사, 한일국교정상화 40주년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 국립하노이대학 특별강연, 그리고 마지막 연설로 남은 ‘퇴직 직원들과 19년 만의 재회’ 인사말 등을 실었다. ‘박태준 생각’을 따라가면서 ‘박태준 생각’과 진지하게 교감할 수 있는 기회다.3부 ‘학자의 눈, 작가의 눈으로 박태준정신을 탐구하다’에서는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사회학)의 논문 ‘특수성으로서의 태준이즘 연구’와 이대환 작가의 에세이 ‘천하위공의 길, 박태준의 길’을 통해 박태준정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한편, ‘박태준 생각’을 펴낸 아시아 측은 ‘2011년 12월 13일 향년 84세로 서거한 박태준은 41세(1968년)부터 65세(1992년)까지 사반세기 동안 언행일치와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포스코를 세계 최고 철강기업으로 우뚝 세우는 가운데 국내 최고 수준의 14개 유·초·중·고교와 세계적 연구중심대학 포스텍을 설립·육성함으로써 생전에 자신의 말을 실체적 위업(偉業)으로 이룩했다. 그의 삶에서 필생의 사상적 두 축이 되었던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을 실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2021-10-11

혼돈의 시대, 민중은 왜 교회로 몰려갔나

“어찌 보면 인간은 각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한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그렇게 아파하고 신음하고, 때로는 자신의 실패와 마주함으로써 성장합니다.”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작가의 신작 에세이 ‘믿는 인간에 대하여’(흐름출판)가 출간됐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한 명의 신앙인이자 오랜 시간 법학을 공부해온 저자가 유럽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믿음과 종교에 대해 탐구하고 얻어낸 결과물이며,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성찰하고 얻은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저자는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서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법과 정치가 종교와 분리된 것은 불과 몇 세기에 지나지 않았고, 10세기 초반 유럽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 불안에 떨던 민중은 교회로 몰려와 신의 보호와 자비를 청하기도 했다”고 말하며, 역사 속 종교와 인간이 걸어온 흔적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분석한다.저자는 특히 흑사병과 기근 등으로 고통의 시기를 겪었던 중세의 모습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오늘날을 비춰보며, 과거 인류가 중세를 거쳐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으나 그것을 계기로 의학이 어떻게 종교로부터 독립된 학문이 됐고, 역사 속에서 종교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돼왔으며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살핀다.또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불거졌던 ‘종교의 자유’를 언급하며, 오늘날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종교행사나 각종 집회가 금지되는 중에 몇몇 종교 공동체가 내세운 ‘종교의 자유’는 과연 합당한가 하는 문제를 법학자의 시선으로 짚어낸다.이 책에는 저자가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의 성지가 모두 모여 있는 종교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한 달 동안 머물렀던 경험도 담겨 있다. 저자는 그곳에서 각자의 종교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리장벽을 세우고 전쟁도 불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며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한다.베드로 회개성당으로 알려진 ‘닭 울음 성당’을 방문한 저자는 스승 예수를 배반한 베드로와 유다가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자결을 택한 이유에 대해 ‘실패’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생각하고, 구 시가지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 초입에 새겨진 “오,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이여, 나의 고통과 같은 아픔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인간으로서 ‘같은 아픔’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밖에도 모든 종교가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만, 그 둘을 가르는 차이는 인간 존재의 태도에 있지 않은가라는 물음이나, 인간의 고통은 신이 아닌 인간 사회가 만들어온 구조적인 문제에서 더 크게 비롯된다는 지적도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 “오늘의 아픔과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인간은 그 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라고 적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07

예고 없이 찾아온 ‘늙음’ 앞에서 나를 돌아보다

‘내가 늙어버린 여름’(김영사)은 프랑스 출신의 미국 작가이자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를 역임한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이 쓴 노화에 대한 쓸쓸한 에세이다.프랑스에서 태어나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저자는 어릴 적 향유했던 거대 문학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며 이중 문화 문학과 여성 문학, 페미니즘 학자로 미국 유수 대학의 교수로 활동했고 특히 MIT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해 매년 문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에게 상을 수여할 정도로 인정받는 학자였다.그러나 어느 여름 ‘늙음’이라는 거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엄청난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일생 고독이나 외로움, 추억을 회상하는 일 따위는 없는 꼿꼿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이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과거 딸로, 아내로, 운동가로, 잘나가던 학자로 살던 여러 가지 나를 만나 그때의 내가 앓았던 결핍마다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저자는 ‘늙음’을 ‘재난’에 비유하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회와 관계로부터 배제되는 일상에 분노와 서운함, 자괴감을 느낀다.하지만 이 위기마저도 인생의 유일한 친구인 문학에 기대어 ‘어떻게 나답게 늙음을 돌파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모두가 ‘어떻게 늙을 것인가’에 집중할 때 몹시 현실적인 태세로 ‘늙은이’가 돼버린 나를 거침없이 폭로하면서 시종일관 시적이고 우아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한 여성이 통제할 수 없는 변화를 맞닥뜨리고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존재로 자신을 정의하게 되는지 스물두 편의 거침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엿볼 수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07

감정, 관계, 집을 잘 파는 능력까지… 체온조절에 달렸다?

프랑스 그르노블알프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인 사회심리학자 한스 이저맨은 ‘따뜻한 인간의 탄생’(머스트리드북)에서 인간은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서로에게 의존해왔으며, 이런 사회적 체온 조절 본능은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고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체온 조절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탐색해 감정, 관계, 건강, 언어, 심지어 집을 잘 파는 능력까지 얼마나 많은 것이 주변 온도에 또 체온에 따라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로 연결돼 물리적 접촉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놀라운 메시지를 던진다.따뜻한 사람은 너그럽고 사교성이 뛰어나며 성품이 훌륭한 사람으로 비치고, 차가운 사람은 인색하고 무정하며 비열한 사람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차가운 커피보다는 따뜻한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인간은 한층 더 친근감을 느낀다고 한다.이렇게 따뜻함에 인간이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 접촉해 온기를 나누며 체온을 조절하는 사회적 체온 조절이 인간의 생존과 번영에 꼭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10-07

세종은 왜 운동을 멀리했을까 역사적 인물 10인의 질병 추적

우리 역사상 최고의 리더이자 다재다능했던 세종대왕은 왜 운동만은 멀리했을까? 천상의 건축가 가우디는 왜 하필 해골 집을 짓는 데 집착했을까?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어쩌다 도박꾼이 되었을까? 인상파의 거장 모네의 말년 화풍은 왜 추상화처럼 변했을까?정형외과 전문의인 이지환 씨는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부키)에서 그 해답은 이 천재들이 각기 앓았던 질병 속에 있다고 말한다.저자는 사서(史書) 등을 추적해 총 10명의 역사 속 인물의 다양한 질병을 탐구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건축가 가우디,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작곡가 모차르트, 철학자 니체, 과학자 마리 퀴리, 화가 모네와 로트레크와 프리다 칼로, 가수 밥 말리가 그 주인공이다.이 책에서 저자는 당시 시대상과 의학 수준, 발병 과정, 외관상 병증을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역사 문헌과 기록, 사진 자료와 초상화, 국내외 의학 논문을 참고해 마치 한 편의 추리 소설처럼 펼치고 있다. 심지어 저자가 직접 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강직성 척추염 사례로서 세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SCIE급 이상 국제 학술지에서 세종을 다룬 첫 논문이기도 하다.△조선 최고의 리더 세종은 왜 운동을 멀리했을까?최고의 성군이자 천재 중 한 명이었던 세종. 하지만 그는 ‘고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해서 결국 비만해진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종의 건강과 관련한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눈병 12번, 허리통증 6번, 무릎 통증 3번, 목마름 증상 2번, 살 빠지는 증상 1번이 언급돼 있다. 나이대별로 분석하면 허리통증은 20대 초반에 발생해 30대 때 심해졌다가 낫기를 반복했다. 눈 통증은 40대부터 악화했다가 역시 좋아지다가 악화하기를 반복했다.그러나 정확히 어떤 병을 앓았는지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세종이 피부병이나 임질(현대적 의미로는 방광염)에 걸렸다거나 당뇨 합병증을 앓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천상의 건축가 가우디는 왜 해골 집을 지었을까?가우디는 수많은 해외관광객을 불러들이며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건축가다. 그의 건축물들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 건물 곳곳에서 발견되는 뼈와 해골 형상이 그것이다. 평론가들의 혹평과 주민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해골 집 짓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심한 관절염을 앓았기 때문이다.그는 종종 형의 등에 업히거나 나귀를 타고 등교해야 했을 정도로 관절통이 심했다. 병약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해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평생 2겹의 양말과 푹신한 신발을 신고 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관절염은 결국 죽음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도박꾼이 된 사연도스토옙스키는 못 말리는 도박꾼이었다. 원고료를 모두 날린 것은 예사였고 원정 도박에 나섰다가 돌아올 경비까지 잃고 쩔쩔매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독일의 비스바덴 쿠어하우스 카지노가 ‘기념할 만한 호구’라며 그의 이름을 딴 홀을 만들고 흉상을 세웠을 정도다.도스토옙스키가 이처럼 유산까지도 다 날릴 만큼 지독하게 도박에 중독된 이유는 간질 발작 환자였기 때문이다. 자기 결혼식 피로연에서 2번이나 발작을 일으킬 정도였던 그는 언제 어디서 발작이 자신을 덮칠지 몰라 평생 전전긍긍했다. 간질 발작 환자는 흥분 신경 전달 물질이 많은데, 흥분 물질이 많으면 도박이 주는 자극에 취약하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작품에는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실존 철학의 선구자 니체는 어쩌다 정신 병원에 입원했을까?학창 시절 “사원에 숨은 열두 살짜리 예수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니체는 추천사만으로 대학교수에 임용되고, 1년 만에 여러 저작을 집필했으며, “신은 죽었다”고 당당하게 선언할 만큼 자신만만하고 탁월한 철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심한 두통과 불면에 시달렸으며, 나이가 들어서는 성격마저 괴팍하고 폭력적으로 변해 버렸다. 자신의 소변을 마시는 등 기이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1899년 친구의 손에 의해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다음 해 퇴원한 후 그는 누구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살아 있는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지낼 뿐이었다. 니체는 결국 1900년 폐렴으로 사망한다. 그의 뇌와 영혼을 파괴한 질병은 무엇일까? 당시 니체는 신경 매독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극심한 두통, 불면증, 발작, 성격 변화를 한꺼번에 설명할 수 있는 질병은 바로 뇌종양이다. 커다란 종양이 니체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자라면서 뇌와 신경을 압박했을 것이다. /윤희정기자

2021-09-30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의 인터뷰

소설 ‘연인’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여성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1914~1996)의 인터뷰집 ‘뒤라스의 말’(마음산책)이 출간됐다.뒤라스의 말년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인 레오폴디나 팔로타 델라 토레와 이뤄진 인터뷰를 토대로 엮은 ‘뒤라스의 말’은 유년시절부터 인터뷰가 이뤄진 시점까지 연대순으로 작가의 삶을 통과하며 그의 작품 활동을 엿볼 수 있다.소설의 선형적인 흐름이나 사건 전개식 구성을 배제하고, 인물의 심리 표출을 극도로 절제하면서도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온 뒤라스는 때로는 ‘누보로망’ 작가로, 때로는 ‘여성적 글쓰기’의 전범으로 꼽히지만 스스로는 특정 사조에 갇히길 거부하며 자신만의 문학적 영토를 개척하는 데 충실해왔다. 또한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 영역을 확장해왔기에 현대 문화사에 남긴 족적도 적지 않다.1931년 프랑스로 이주하기 이전 식민지 베트남에서 험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뒤라스는 18년 동안그곳에서 소외감과 고독감을 깊이 느끼게 되고 이는 뒤라쓰 글쓰기의 지속적인 모티브가 된다.책은 칸 영화제 수상작 ‘인디안 송’을 연출하는 등 영화 시나리오 작업 및 연출로도 주목받았고, 2차 세계대전 중 적극 참여했던 레지스탕스 활동, 38세 연하의 연인과의 사랑, 알코올 중독 등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놓는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30

근현대 한국불교 선승 ‘백성욱 박사 전집’ 출간… 총 6권 구성

독립운동가이자 근현대 한국불교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백성욱 박사(1897~1981)의 깨달음과 그 가르침이 담겨 있는 ‘백성욱 박사 전집’(김영사)이 출간됐다. 김영사가 전 6권으로 출간한 ‘백성욱 박사 전집’은 그의 강의, 강설, 법문, 글과 함께 생전에 그를 만나 교유했거나 가르침을 받은 22명의 회고와 전기 등을 망라했다. 1권 ‘백성욱 박사의 금강경 강화’(강설집)를 시작으로 ‘불법으로 본 인류 문화사 강의’ ‘분별이 반가울 때가 해탈이다’(법문집) ‘백성욱 박사 문집’ ‘금강산 호랑이, 내가 만난 백성욱 박사’ ‘응작여여시관’(전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전집은 그의 제자인 김강유 김영사 회장이 고인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을 수소문해 강의와 법문 녹음을 정리하고, 관련 인물 인터뷰와 취재 등을 통해 2년9개월 만에 완성했다.출판사 측에 따르면 백성욱 박사는 3세에 아버지, 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서 12세에 출가한 승려였다. 1920년대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이자 불교학자이기도 했다. 1929년 불교전수학교(동국대 전신) 철학과 강사를 그만두고서 금강산에 입산해 10년을 정진한 수행자였다. 한국전쟁 뒤로는 동국대 총장을 지냈고, 1962년 경기 부천에 ‘백성목장’을 열어 20년 가까이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강의했다. 치열하고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태어난 날인 음력 8월 19일 입적했다.김영사 측은 “한 사람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극적인 변화와 기록들, 비범한 통찰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전집은,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독자들에게도 의미있는 지침이 돼줄 것”이라고 일독을 권했다. /윤희정기자

2021-09-30

자식에게 기대던 시대는 갔다… 셀프부양 시대 대처법

평균 수명이 연장되고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어느 때보다 노후 대비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노후 설계 전문가인 강창희씨와 자산운영 연구자인 고재량씨는 공저인 ‘오십부터는 노후 걱정 없이 살아야 한다’(포레스트북스)에서 풍요로운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선 일찍부터 마인드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저자들은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가 평생현역이라는 정체성과 역할 확보라면서 퇴직 후 12만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창직의 사례를 들어 일러준다. 이와 함께 저성장, 저금리시대에 금융자산은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생애주기별 포트폴리오 짜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재테크보다 더 중요한 3층연금 쌓는 방법과 노후대비 상품으로 활용이 가능한 퇴직연금 등의 활용법도 설명한다.3층 연금이란 1층에 국민연금, 2층에 퇴직연금, 3층에 개인연금을 쌓아 연금을 마련해 두라는 것이다. 선진국은 노후의 주요 수입원으로 60% 이상이 이런 연금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10% 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매달 현금 흐름이 나오는 연금을 준비해 놓지 않고 노후를 대비했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나의 노후를 책임질 사람은 바로 나뿐이다’는 인식의 전환이란다. 나이 들어 가장 중요한 게 경제적 자립 능력이다. 돈이 없으면 노후의 5대 리스크(장수, 건강, 자녀, 자산관리, 저금리)를 대비할 수 없기 때문. 저자들은 자식에게 기대던 시대는 이미 갔다면서 자신을 부양하는 셀프부양의 시대에 맞게 적극적으로 대처하라고 거듭 역설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23

자본주의 미국서 부활하는 ‘사회주의’

“세계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나라, 미국에서 사회주의 인기가 높다.”좌파잡지 ‘자코뱅’의 창립자인 바스카 선카라는 ‘미국의 사회주의 선언’(미래를소유한사람들)에서 이제 미국에선 ‘사회주의자’라고 해도 더는 ‘미친놈’으로 취급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전후 매카시즘과 1990년대 공산주의 붕괴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진 젊은이들의 사회주의 호감도가 높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이뤄진 조사에 따르면 18~34세 미국인 중 58%는 사회주의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미국의 사회주의 선언’은 맑스와 엥겔스의 시대부터 미국의 버니 샌더스, 영국 노동당의 지도자 제레미 코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주의 정치 운동의 역사를 검토하고,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매카시즘 논란 이래 미국에서 ‘사회주의’만큼 불온한 단어는 없었다. 미국에서 사회주의 정치나 운동은 유럽이나 제3세계와 달리 매우 주변적이었다. 100여 년 전 베르너 좀바르트는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는가?’라는 질문에 미국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선동에 현혹되기에는 경제의 번영으로 ‘로스트비프와 애플파이’를 너무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답을 찾았다.그의 답은 오랫동안 정확한 것으로 여겨졌다.그런데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면서 세계사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사회주의가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더 지난 시점에 미국에서 부활하고 있다.2018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30세 이하 젊은이들 가운데 35%는 사회주의를 매우 선호했고, 그렇지 않은 비중은 26%에 그쳤다. 최근의 조사에서는 젊은 미국인 중 58%가 사회주의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 의원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2016년과 2020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각각 43%, 27%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미국 사회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성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전 하원 의원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그녀의 트위터 팔로워는 자그마치 400만 명에 이른다.이러한 인식 변화의 한 가지 이유는 ‘사회주의가 갖는 이미지’의 변화다.한 조사에 따르면 사회주의에 대해 미국 젊은층의 58%는 덴마크 같은 노르딕 국가로 이해한 반면, 65세 이상의 고령층은 소비에트 시스템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서론 격인 제1장에서 저자는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스웨덴에서 실현됐던 ‘사회민주주의’를 앞으로 실현해야 할 ‘민주적 사회주의’에 가장 가까운 현실로 제시한다.제2장에서는 맑스는 20세기의 복지 국가나 일반 노동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사치품의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다보지는 못했지만, 자본주의는 위기에 취약하고 지배와 착취 위에 서 있으며 사회적, 환경적 파괴로 사회 전체적 비합리성을 양산한다고 평가한다.제3장과 제4장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에 사회주의가 가장 활력 있는 시기를 맞이하였으나, 사회주의가 러시아의 가혹한 조건 속에 고립되면서 피로 얼룩진 피투성이의 집단주의로 전락한 사연을 다루고 있다.제5장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가 복지 국가라는 역사적 진보를 이뤄냈음에도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후퇴하게 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제6장에서는 사회주의가 민족 해방 투쟁의 이념으로 기능한 역사를 살피고, 제7장에서는 미국 역사에서 그동안 실체가 가려진 채로 면면히 이어져 온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마지막 제8장~제10장에서는 미국과 영국에서 현재 진행되는 사회주의 운동의 현실을 소개하고, 앞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의 성취를 기반으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과 결합해 나갈 때 비로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계급투쟁 사회민주주의’라는 비전을 제시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23

세계적 신경과학자 연구 ‘인간의 신체와 마음’

‘데카르트의 오류’‘스피노자의 뇌’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감정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 연구로 세계 뇌과학 분야의 선두주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77)의 최근작 ‘느끼고 아는 존재’(흐름출판)가 출간됐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인간의 ‘정서’와 ‘느낌’이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과 자아 형성에 기여한 역할을 연구했으며, 인간의 마음이 단순히 뇌의 작용만으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임을 고찰해냈다.그는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인간 문명의 발전에 이르는 긴 진화적 과정 동안 느낌과 감정이 생명 유지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의식의 비밀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다마지오는 인간의 감정과 의식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설명해왔다. 다마지오는 ‘느끼고 아는 존재’에서 그동안 자신이 의식의 문제에 천착해온 결과를 갈무리하고 최근 연구 성과를 덧붙였다.이 책에는 인간의 신체와 마음의 작용에 대한 다마지오의 통합적 관점이 그 어떤 책보다도 간결하고 포괄적으로 설명돼 있다. 책은 △제1장 존재에 관하여 △제2장 마음과 표상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관하여 △제3장 느낌에 관하여 △제4장 의식과 앎에 관하여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23

완벽할 수 없는 우리 생애를 감싸안는 따스한 희망 담아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한 조해진의 신작 소설 ‘완벽한 생애’(창비)가 출간됐다. 창비 출판사의 젊은 경장편 시리즈 ‘소설Q’의 열한 번째 작품이다.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직장을 그만 둔 윤주, 윤주의 제주 생활 동안 그의 방을 빌리며 한국여행을 하게 된 시징, 꿈을 접고 신념을 작게 쪼개기 위해 제주로 이주한 미정의 이야기가 다정히 주고받는 편지처럼 이어진다.삶에서 잠깐 스쳐갈 뿐인 타인에게 ‘방’을 내어주고 기꺼이 자리를 마련해주며 “필연적으로, 그렇지만 그림자처럼 은근한 방식으로”(발문 최진영) 연결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불완전하게 흔들리는 세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 있음’의 증인”(작가의 말)이 돼줄 수도 있겠다는 단단하고 따스한 희망을 품게 하는 소설이다. 조해진은 작가의 말에서 “신념을 따르고 사랑에 진심일수록 상처받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또 “생애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면서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생애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서로에게 ‘살아 있음’의 증인이 되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2021-09-23

대사상가 다석 류영모의 삶·사상 45개 주제로 엮은 ‘저녁의 참사람’

‘저녁의 참사람’(메디치미디어)은 한국의 정신가치와 삶의 의미를 일깨운 대사상가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의 평전이다. 씨알사상을 주장한 함석헌의 스승인 류영모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했다. 아주경제 논설실장인 저자이상국씨가 신문에 쓴 글을 모아 단행본으로 펴냈다. 책은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고 살았다는 다석의 삶과 사상을 45개의 소주제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하루 한 끼, 일일 일식’ ‘이승훈의 오산학교와 만나다’ ‘톨스토이와 천로역정’ ‘불경스런 사내, 우치무라 간조’ ‘한글 속에 있는 하느님, 우리 말글의 성자’ ‘없이 계시는 신-몸과 성령’ ‘예수의 길과 다석의 길’ ‘부처·노자·공자가 모두 하느님을 가리키고 있다’ 등 다석 사상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서울에서 13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류영모는 연동교회를 다니며 기독교를 접했고, 평북 정주 오산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북한산 아래에서 은거하며 농사를 짓기도 하고, 광복 이후에는 은평면 자치위원장으로 활동했다.저자는 류영모 사상이 기독교를 본령으로 하면서도 동양 사유체계와 철학적 관점을 결합해 동서가 회통(會通)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이어 신앙의 개별성과 자율성을 부각한 ‘얼나사상’과 죽음을 신과 귀일하는 것으로 이해한 ‘얼삶사상’ 등을 소개하고, 류영모의 주체적 사상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저평가됐다고 강조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09

불평등한 복지국가 한국, 근본적 과제를 논하다

복지와 정치·경제를 통합적으로 연구하며 실천적 대안을 모색해온 한국의 대표적 사회복지학자 윤홍식 인하대 교수가 ‘선진국 한국의 다음 과제를 짚는’ 신간 ‘이상한 성공’(한겨레출판)을 출간했다. ‘한국은 왜 불평등한 복지국가가 되었을까?’라는 대(大)질문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왜 우리는 성공했으나(부유한 선진국이 되었으나) 불행한가?’ ‘왜 한국의 청년들은 기후위기와 세계평화를 고민할 여유조차 허락받지 못하는가?’ ‘어쩌다 한국의 복지제도는 정규직만을 위한 복지제도가 되었나?’ 등 착잡한 현실을 꼬집는 중대한 질문들을 이어가며 명쾌하게 답한다.윤홍식 교수는 일제강점기부터 지난 100여 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우리의 성공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덫이 됐다. 지금의 불행은 역설적이게도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성공의 결과다”고 단언한다.책은 한국이 GDP 9위의 선진국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왜 10명 중 6명은 ‘울분에 가득 찬’ 극도로 불안한 나라가 됐는지, 복지지출을 매년 늘리는데도 왜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수년째 벗지 못하는지 등을 경제, 정치, 역사, 사회복지 측면에서 탄탄하게 분석한다.1장 ‘성공의 덫’에서는 한국의 청년들과 다른 신자유주의 국가 청년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 사회, 경제적 현안들을 지적한다. ‘86세대가 불평등의 원흉인가?’라는 팽배한 세대 담론부터 ‘청년의 절반 이상이 계층상승에 대한 기대감조차 갖지 못하게 된 배경’ 등을 부의 세습, 능력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2장 ‘성공, 그 놀라움’에서는 한국이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이뤘는지를 사회 전방위적 측면에서 다룬다. 해방 후 성장의 역사와 지금의 ‘불평등한 기회, 불공정한 과정, 부정의한 결과’를 대비해 보여주면서 우리를 성찰하게 하는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현재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3장 ‘성공의 이유’에서는 1960년대 농지개혁부터 국가가 주도한 산업화 과정, 국민의 인내와 대기업의 노력으로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하게 톺아본다. 이 장에선 특별히 ‘한국의 성공 방식과 이면’을 10~20년 단위로 치밀하게 분석했다.4장 ‘성공이 덫이 된 이유’에선 바로 이 성공 방식이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낱낱이 분석한다. ‘열심히 사는데, 왜 우리의 형편은 그대로인지’, ‘복지지출은 매년 증가하는데 왜 불평등은 날로 심해지는지’, ‘어쩌다 정규직만을 위한 복지제도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5장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선 한국 사회가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을 모색한다. ‘소득 간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려면 증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민이 행복한 선진국이 되려면 국가는 무얼 변화시켜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윤홍식 교수는 “국민은 국가의 역할이 다시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성장이 불평등과 빈곤을 완화하는 ‘그런 놀라운 기적’은 이미 1990년대부터 일어나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리고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보다 부동산, 민간금융상품이 더욱 신뢰받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공적 부조’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과 통찰들을 조목조목 설파한다. 핵심은 ‘복지’에 대한 개념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입고, 먹고, 몸을 누이는 생존에 직결된 복지만으론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음을 구체적 논증으로 피력한다.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 돌봄 노동 해소를 통한 노동시장 참여, 실패해도 괜찮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갖가지 실천적 방법들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마무리한다./윤희정기자

2021-09-09

한강이 소설에 담은 ‘제주 4·3 사건’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51) 작가가 5년 만에 신작 장편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를 펴냈다. 신작은 1947~1954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제주 4·3 사건을 다룬다. 본래 2015년 황순원문학상을 받은 단편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2018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작별’에 이은 ‘눈 3부작’ 마지막 작품으로 구상됐지만 그 자체 완결된 작품으로 나왔다.‘소년이 온다‘, ‘흰’, ‘눈’연작 등 근작들을 통해 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고투와 존엄을 그려온 한강 문학이 다다른 눈부신 현재를 또렷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한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는 잡지사 기자 출신 작가 경하를 내세워 제주 4·3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들의 길고 고요한 투쟁 서사를 시적으로 담았다.문학동네 측은 “오래지 않은 비극적 역사의 기억으로부터 길어올린, 그럼에도 인간을 끝내 인간이게 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에 실려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했다. 또 그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에 대해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생각했다”며 “어떤 것도 종결하지 않겠다는 그것이,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희정기자

2021-09-09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위험에 대하여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는 말마따나 인공지능 기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미래 산업은 물론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엔 어떤 가능성과 한계가 있으며, 인류가 대비해야 할 위험은 무엇일까. 만만치 않은 질문이지만, 꼭 대답을 찾아 나가야 할 인류의 숙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프시케의숲)에 이름을 올린 필자 25인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 과학사상가들로, ‘거대한 기술’ 인공지능을 철저히 파헤치기에 합당한 지적 거인들이다. 파괴력 있는 저작으로 화제를 몰고 다니는 하버드대의 심리학 석학인 스티븐 핑커는 물론, 인공지능의 미래를 여러 매체에서 웅장한 시야로 조망해온 맥스 테그마크, 인류의 인공지능 통제 문제를 줄곧 제기해온 스튜어트 러셀 등이 눈에 띈다. 또한 프랭크 윌첵이나 벤키 라마크리슈난 등 노벨상을 수상한 석학도 명쾌하고 우아한 관점으로 인공지능을 바라본다. 인상 깊은 저작을 통해 한국의 지식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대니얼 데닛, 톰 그리피스 등도 집필에 합류했다.특징적인 것은 이 책이 인공지능 전반을 다룬다는 점이다. 현재 각광받는 ‘딥러닝’ 인공지능은 물론, 앞으로 도래할 ‘초지능’ 인공지능까지 아우른다. 또 오늘날 이만큼 도달하기까지의 여정, 즉 폰 노이만과 클로드 섀넌에서부터 시작되는 초기 역사부터 인공지능 기술을 짚어나간다.이 책에는 25명이라는 필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관점이 담겨 있다. 섣불리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한 논의가 펼쳐진다. 단 하나 공통되는 것은 논의의 출발점이다. 엮은이 존 브록만은 일찍이 사이버네틱스라는 용어를 제시하고 그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한 인물인 ‘노버트 위너’를 화두로 제시했다. 사이버네틱스는 오늘날의 인공지능 개념을 선취했으며, 더욱이 노버트 위너는 마치 핵폭탄을 우려하듯 사이버네틱스의 지배를 두려워했다. 이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 집필자들이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는 것이 이 책의 탄생 배경이다.어떤 필자는 그러한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에 동조하고, 어떤 필자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선호하는 인류의 고질적인 습성이라며 그러한 두려움을 일축한다. 또 다수의 필자는 그러한 찬반 구도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매혹적인 인공지능론을 펼쳐나간다. 그렇게 마련된 25개의 조각들로 독자들은 저마다의 모자이크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지식의 지휘자’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엮은이 존 브록만은 집필진을 과학자, 프로그래머, 공학자, 사상가, 예술가 등 다채로운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해 인류가 가진 AI 지식의 전모를 밝히고 그 통섭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영감이 열리길 도모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02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의 마음·사랑·사람 탐구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이기주 작가가 신작 산문집 ‘마음의 주인’(말글터)을 펴냈다.250만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 이기주 작가는 이번엔 ‘마음에 관한 탐색’을 시도한다. 일상을 비집고 들어가 포착한 시간과 공간에서 마음의 본질과 실체를 마주하고 그것을 여백 위에 잔잔한 문장으로 그려냈다.책은 “우리 삶의 많은 문제가 마음을 잃어버리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화두를 내던지며 시작한다. 마음, 사랑, 생애, 사람이란 주제를 통해 그 답변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다만 이기주 작가는 마음을 향해 떠난 여정에서 딱 떨어지는 정답에 다가가려 애쓰기보다 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자신만의 답을 주워 담았다. 그렇게 끌어모은 마음에 관한 생각을 책 곳곳에 심어놓았다.저자는 “모든 일이 잘될 거야”라는 식으로 함부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고, “내가 그리 특출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과 마음의 상태를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또한 살다 보면 무턱대고 다가가기보다는 관심과 무관심 사이, 그 어디쯤에서 인내심을 갖고, 누군가를 기다려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그는 “어떤 면에서 인생은 내가 그리 특출 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틈틈이 깨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라든지,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단면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과 마음의 상태를 바라볼 것을 권유한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02

화를 내는 것은 본능일까?… 분노를 해석하는 12가지 담론

화를 내는 것을 의미하는 ‘분노’(憤怒). 세상에는 수많은 분노의 원인이 존재한다. 그중 어떤 것들은 당장 화를 내야 한다고 외치고, 어떤 것들은 화를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화를 내서 욕을 먹고 때로는 화를 안 내서 욕을 먹는다. 이렇게 분노의 가치가 뒤죽박죽 뒤섞인 상황이다 보니 분노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앞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언제 화를 내는지 안다고 생각하며 다른 이의 분노 역시 알아볼 수 있다고 꽤 확신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우리의 분노 안에는 온갖 의미의 영역이 전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분노란 무엇인가’(타인의사유·원제 ‘Anger’)는 분노를 이야기하는 담론 12가지를 기반으로, 수많은 결의 분노와 이를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소개한다.감정의 역사를 연구해 온 저자 바버라 H. 로젠와인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학교 명예교수는 이 책에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분노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크게 세 가지 계보 속에서 나눠진다고 설명한다.분노를 피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보는 계보, 때에 따라 악덕과 미덕 사이를 오간다고 보는 계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보는 계보가 있다.이런 세 가지 카테고리에서 세네카,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폴 에크만, 리사 펠드먼 배럿, 마사 누스바움 등 학문을 넘나들며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본다.미얀마 군부와 불교도에 의한 로힝야족 무슬림 탄압이나 최근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反)인종차별 캠페인 BLM 운동과 같은 사회적 맥락에서의 분노 개념도 함께 돌아본다.저자는 현재의 분노 담론이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명예가 모욕과 비방을 당했다는 느낌이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내쫓기고, 무시되고, 경멸받는 명예, 한마디로 ‘디스’되는 명예에 대한 감각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그럴수록 모두가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옳고, 정의롭다고 믿는다. 저마다 자신의 관심사를, 그리고 분노 해소 방식에 관한 생각을 다른 모든 이에게 주입하고 싶어 한다.하지만 저자는 이럴수록 분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분노가 단지 어떤 하나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분노의 가치와 뿌리를 이해할 때 이런 극단적이고 대립적인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9-02

초상화 속 인물은 왜 웃지 않을까… 대중 눈높이 맞춘 미술 이야기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미술에 대한 우리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환기하며 미술작품을 통한 사유와 감성의 확대를 모색한 책 ‘벌거벗은 미술관’(창비)이 출간됐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의 장구한 역사를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미술사학자이자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사를 대중화하는 데 노력해온 양 교수는 오랫동안 미술작품을 마주할 때마다 고민해오던 문제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집요하면서도 자상하게 풀어낸다.‘미술은 왜 끊임없이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속성을 보여주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고전미술의 신화화 과정을 파헤치고, 미술관에 들어설 때마다 느끼던 무게감을 초상화의 무표정성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 밖에도 박물관과 시민사회의 함수관계, 화려한 미술 속에 담긴 질병의 그림자 등을 통해 인간이 미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축했는가를 살핌으로써 독자들을 미술에 대한 다각적인 성찰로 이끈다. 과거와 현재, 서구와 한국을 넘나들면서 펼쳐지는 설명은 직관적이고도 유려해서 저자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다.4개 장으로 구성된 이번 책은 강연을 바탕으로 썼다. 문명과 표정에 앞서 첫 장에서는 고전미술의 허상을 말한다. 석고상 그리기가 미술교육의 기본이 된 역사, 군국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탄생한 그리스 조각이 서구에서 수천년 동안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 과정을 살핀다. 3장과 4장에서는 각각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싼 격동의 역사, 코로나19 사태와 미술을 다룬다. 각 장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미술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만난다. 미술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다가간다./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202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