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는 역사적, 시기적으로 세르비아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같은 지역을 두고 서로의 주장이 상이하다는 뜻이다. 사정이 어찌 되었던 현재 크로아티아 땅은 그리스와 로마 비잔티움제국을 거쳐 바이킹 노르만족, 헝가리, 베네치아와 오스만터키에 이어, 오스트리아, 독일 등 지속적으로 외부 세력의 영향 아래 들었다는 것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처럼 다양한 민족 지배에 들기 시작하면서 한 국가 내에서도 자그레브를 중심으로 한 내륙과 헝가리와 세르비아 경계인 보이보디나,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해안 도시 달마티아로 구분되면서 경제는 물론 극명한 문화적 차이를 보였다.
서기 803년 샤를마뉴대제가 위용을 부릴 당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비잔티움제국의 동방정교에서 로마가톨릭으로 자연스럽게 개종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비잔티움제국 영향 아래에 있던 세르비아와 불가리아 정교 문화권과는 본격적인 경계선이 형성된다.
그러나 적어도 10세기 초까지 달마티아 지방은 오랫동안 비잔틴제국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에 소속되어 있어 가톨릭인 자그레브와 지역적 경계가 명확하다고 할 수 없다. 지금의 크로아티아 지도를 펼쳐놓고 경계 짓는다면 오류란 뜻이다.
로마 가톨릭과 서유럽문명권에 동승한 크로아티아는 9~11세기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과거에 로마제국 당시 세워졌다가 아바르족에 의해 파괴된 100여 개의 교회를 새롭게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초기의 로마네스크양식 교회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어쨌거나 비잔티움제국 발아래 호시탐탐 독립의 기회만 엿보던 크로아티아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불가리아가 비잔티움제국에 반기를 들면서 비잔티움이 눈과 귀가 불가리아로 향했을 때 불이불식간에 독립을 선언해버린다.
더구나 지리적 이점과 국제정세 흐름을 타고 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해 귀족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재산을 교회에 환원하면서 권위는 물론 정통성까지 충족하려 했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지면서 교회에 재산을 헌납하는 일은 하느님에 대한 선물로 승화되고, 크로아티아 군주들은 로마교황으로부터 하느님 은총과 함께 충복으로 인정을 받는 개가를 올린다.
기실 하층민으로부터 권력과 정통성을 부여받는 그 이상도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크로아티아인들 삶에 가톨릭이 깊게 파고들면서 아드리아해 족장이던 토미슬라브(재위 925~928)에 의해 독립국가로 우뚝 선다.
912년 비잔티움 황제 알렉산드로스가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성기를 조각해 원형경기장 멧돼지에 붙이고, 이교 제사를 지내며 성불구를 치료하기 위해 애를 쓰는 등 정상이 아니었다. 이 광기 어린 황제는 913년 6월 6일에 쓰러져 죽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불가리아 시메온이 반기를 들었고, 크로아티아가 이 틈바구니를 이용해 ‘크로아티아공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왕국을 선포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토미슬라브는 세르비아 듀산왕과 마찬가지로 대크로아티아주의 원조로 추앙받게 된다.
로마교황 존 10세로서는 교권의 확장을 반기면서 독립국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토미슬라브는 교세 확장에 노력을 약속하면서 충성 맹세를 한다. 그는 서로마를 위협하는 헝가리 마자르족의 공격을 일선에서 막아낸 혁혁한 공로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는다. 한발 더 나아가 로마와 연합군을 꾸려 제1불가리아제국을 선제공격하자고 나섰다. 시메온이 죽고 없는 제1 불가리아제국과 한판 승부에서 크로아티아가 승리를 거두면서 크로아티아 왕국은 승승장구한다.
935년 크로아티아 왕 페타르 크레시미르는 아드리아해 북부 달마티아를 비롯해 해안을 따라 리예카는 물론 남쪽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에 이르는 네레트바강까지 영토를 넓혔다. 크레시미르는 로마 교황을 넘어 비잔티움제국 바실 2세로부터 크로아티아와 달마티아의 왕으로 공식 인정을 받아 명실공히 왕국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온전히 왕국의 기틀을 세운다.
이처럼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크로아티아왕국은 11세기 후반 뻬타르 크레시미르 4세를 정점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크레시미르 4세는 아드리아해 지배권까지 손에 넣었고, 이때 11세기 소아시아에서 등장한 셀주크투르크의 군사적 압력은 비잔티움제국 세력 약화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이 틈바구니를 역이용했던 크레시미르 4세는 아드리아해와 달마티아 전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중세 왕국의 면모를 갖춘다. 아드리아해 무역권을 장악하자 신흥 귀족이 탄생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크레시미르 4세가 후손을 남기지 않은 채 죽자 복잡한 후계 구도가 벌어진다. 여러 도시의 영주 ‘반’들이 서로 왕이 되겠다고 설쳤다. 이때 로마교황 의중을 간파한 크로아티아 중동부 도시 슬라보니아의 반이었던 드미타르 즈보니미르가 교황으로선 더없이 충성스럽게도 십자군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맹세하면서 로마교황청 후원으로 왕좌에 오른다. 눈치가 빠르고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읽는 눈이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