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의 영원한 맞수 크로아티아는 10세기 초 남슬라브족 중 발칸반도 불가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왕국을 세웠다. 이곳은 지리적으로 비잔티움제국과 로마교황 사이에 이해가 맞물리는 현장이다. 크로아티아지역 아드리아해 항구도시 역시 비잔티움제국 영향 아래에 있었지만, 점차 프랑크왕국 카를대제에 의해 복속되고, 북서부와 남동부로 발칸반도가 나눠지면서 두 제국의 영향에서 까닭 없이 보냈다.
긴 역사에 있어서 아주 짧은 기간에 독립왕국을 세웠을 뿐 대부분 이민족 영향을 받으며 제국으로부터 피지배 민족으로 살거나 자치권을 획득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의외의 효과가 나타났다. 현재 아드리아해의 빼어난 풍광을 비롯해 중세 유적들이 크로아티아 곳곳에 산재해 관광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자 국민 생활 수준 역시 몇 단계 상승한다.
크로아티아는 남슬라브족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 5~7세기경부터 아드리아 해안 지역에 진출해 정착하면서 성장을 거듭한다. 일부 크로아티아 역사가들은 그들은 여타 남슬라브민족과는 다른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키운 샤르마냔(Sarmatian)인의 일파라고 주장하면서 남슬라브민족과 일단의 선긋기를 시도한다. 역사적으로 보헤미아지방과 폴란드 남부를 정복했으나, 발칸반도로 이주하면서 남슬라브족과 섞여 문화가 통합 흡수되고 동화되어갔을 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공허한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세르비아에게 역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수준이랄까? 7세기에 이르러 온전히 발칸반도에 정착한 남슬라브민족은 민족적 기원만 같을 뿐 역사가 전개되면서 단절과 고립, 그에 따른 종교와 경제력 차이, 사회제도, 관습 등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를 경험하면서 이어졌던 탓에 이러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아드리아해 바닷가에 그리스와 일리리아(Illyria)인들(알바니아인 조상격)이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정착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마지막까지 로마를 괴롭힌 전사들이었다. 이후 로마제국 우산 아래서 풍부한 물산으로 인해 로마제국 소비재 생산지로서 빠르게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해안, 즉 달마티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주로 일리리아인)은 지속적으로 외부의 침략을 받아야만 했다. 캅카스 아르메니아 선조인 아바르족의 침략과 훈족 역시 꾸준하게 약탈을 이어갔다.
로마가 동‧서 로마로 갈라지면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지역은 자연스럽게 비잔틴제국의 영향으로 정교가 깊게 뿌리 내린다. 그리고 훈족의 침략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낳았다. 무주공산이 된 발칸반도에 슬라브족이 몰려들었다. 우크라이나를 지나, 헝가리 판노니아평원(부다페스트 지역 대부분)과 도나우강 건너 발칸반도까지 먼 길을 이동해온 남슬라브민족이 정착하면서 깊숙하게 뿌리내린다.
6~7세기 이곳은 비잔티움제국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들은 유목민족과는 딴판으로 느리면서도 습관적 이동에 인이 쌓였다. 그러다 기름진 땅을 만나 정주생활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났다. 이들은 아드리아해 북쪽 바닷가부터 흑해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 삶을 이어갔다. 그리스 북서부와 지금의 알바니아,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지방 전체가 남슬라브민족이 정착하게 되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때로는 훈족과 어깨를 당당하게 하면서, 혹은 아바르족과 손을 잡는 등 비잔티움제국은 물론 게르만족이 세운 프랑크와 대결구도에 돌입하기도 한다. 이로써 발칸 내륙과 아드리아해 도시들은 오롯이 남슬라브민족 차지가 된다. 이때 세르비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와 함께 크로아티아 역시 독립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터전을 닦는다. 크로아티아 선조들은 달마티아 해안가와 아드리아해 가운데 코르출라 지역 등 여러 섬에까지 정착하면서 영역을 넓혔다.
사실 남슬라브민족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다만 비잔티움제국이 아바르인을 물리치기 위해 크로아티아인을 제국의 군대에 편입했다는 기록(헤라클리우스황제/ 재위 610~641년)이 있다. 크로아티아인들은 비잔티움제국의 뒷배를 믿고 세르비아인과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크로아티아는 역사적·시기적으로 세르비아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같은 지역을 두고 서로의 주장이 상이하다는 뜻이다. 크로아티아 주장에 따르면 자신들 선조가 내륙으로는 지금의 헝가리 땅이자, 헝가리 선조들이 최초로 나라를 세운 판노니아 평원에서부터 보스니아 지방을 거쳐 몬테네그로까지 넓은 지역에 걸쳐 자리 잡았다고 거품을 문다.
세르비아 사가들 시각으로선 가당찮은 주장이다. 이들은 비잔티움제국을 근거로 든다. 7세기에는 발칸반도 대부분을 세르비아인들이 차지했으며, 9세기 말에는 달마티아까지 정복했노라 주장한다. 현재 크로아티아 지역 거의 모든 땅을 세르비아인이 정복했다는 말이다.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면, 둘 다 틀렸거나 둘 다 맞는 주장이다.
지도는 역사가 그려놓은 화판이라고 하는데, 제각각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 답은 없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