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열쇠는 지역의 이해와 국가의 선택에 달렸다
2026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 제조업은 ‘탄소 비용’을 본격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한다. EU의 CBAM(탄소국경조정제도), 각국의 강화된 NDC, 배출권 총량 규제는 고탄소 생산방식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철강은 전체 산업 배출의 7%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기초소재 산업으로, 탈탄소 전환의 성패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분야다.
한국 철강산업의 핵심인 포스코 역시 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고로(용광로) 공정은 효율성이 뛰어나지만 석탄 기반이라는 구조적 한계로 탄소 배출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글로벌 시장과 주요 수요 산업은 이미 ‘그린스틸’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 속에서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HyREX)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본 기획은 수소환원제철이 일개 철강제조기업의 기술 개발 차원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정책과 산업 인프라, 국제 통상 질서, 그리고 포항 경제의 구조적 전환까지 동시에 요구하는 국가적 과제임을 짚어보고자 한다.
〈철의 미래가 바뀐다…포스코 HyREX, 탄소중립 향한 승부수〉
고로 중심 생산체계의 구조적 한계
기술·전력·수소·부지…국가 역할이 성패 좌우
세계 철강산업은 탄소 규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고로 공정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포스코가 추진하는 HyREX는 가루 철광석을 수소로 환원해 직접환원철(DRI)을 만들고, 이를 전기로에서 쇳물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배출물이 CO₂가 아닌 물(H₂O)로 전환된다.
문제는 기술 자체보다 상용화 여건이다. 글로벌 경쟁국들은 이미 조 단위 정부 지원 아래 대규모 전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전력·수소 공급과 부지 조성 등 정책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왜 지금 수소환원제철인가…탄소규제가 철강을 다시 설계한다〉
철강, 국가 감축 목표 달성의 핵심 산업
수요 산업의 저탄소 요구 본격화
한국은 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2~61%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배출 비중이 높은 철강업계에는 감축 압력이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EU CBAM과 글로벌 공급망 전반의 저탄소 요구가 겹치며 기존 고로 체제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업계는 고로 효율 개선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본다. 수소환원제철은 감축의 ‘질적 전환’이자, 글로벌 시장에 남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HyREX는 무엇이 다른가…석탄 대신 수소로 쇳물 만든다〉
FINEX 기반 유동환원 기술의 확장
배출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HyREX는 포스코가 보유한 FINEX 유동환원 기술을 수소 기반으로 확장한 공정이다.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면서 CO₂ 배출을 원천적으로 제거한다. 전 세계 유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루 철광석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즉 기존방식은 Fe₂O₃ + 3CO에서 2Fe + 3CO₂로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만 HyREX공정에서는 Fe₂O₃ + 3H₂에서 2Fe + 3H₂O로, 다시말해 CO₂가 사라지고 배출물이 물로 바뀌는 것이다.
생산된 DRI는 기존 전기로 공정과 바로 연계할 수 있어, 포스코가 축적해온 고급강 생산 체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대규모 전력과 수소 확보가 상용화의 핵심 조건이다.
〈포항이 승부처다…HyREX 부지 확보의 의미〉
생산 공백을 막기 위한 선제적 전환 필요
수소환원제철은 포항경제의 생존 문제
HyREX 도입을 위해서는 기존 고로의 순차적 폐쇄와 신설 설비 구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포항제철소 내부에는 추가 부지가 거의 없어 인접 공유수면 매립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되고 있다.
만약 이 과정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 포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포항 철강산업과 지역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환경 이슈를 넘어 지역 산업의 존속과 직결된 사안이다.
〈전력 25GW·수소 320만t…국가 인프라 없이는 불가능〉
고로 대비 전력 의존도 급증
제도 개선 없이는 상용화 한계
HyREX 전환 시 포스코 전체 조강 생산에는 약 25GW 규모의 무탄소 전력이 필요하다. 연간 수소 수요도 320만t에 달한다.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만으로는 비용 부담이 커 원전 기반 핑크수소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송전 거리 제한 등으로 실질적 활용에 제약이 있다. 업계는 전력과 수소를 국가 기반시설로 인식하고 제도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는 이미 국가전이다…철강 탈탄소는 정부가 뛴다〉
주요국, 조 단위 재정 투입
기술 경쟁 넘어 정책·인프라 경쟁
독일, 일본, 미국 등 주요국은 철강 탈탄소를 국가 주도 산업정책으로 추진 중이다. 대규모 재정 지원과 세제 혜택을 통해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강 탈탄소 경쟁이 이미 ‘국가 프로젝트’ 단계로 넘어갔다고 진단한다. 한국이 대응에 뒤처질 경우 산업 경쟁력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HyREX는 포항의 미래 산업이다〉
에너지·수소·첨단소재 산업과 결합
지역경제 구조 전환의 분기점
HyREX는 공정 전환을 넘어 포항과 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 동해안 에너지 벨트, 수소 인프라, 이차전지·첨단소재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도 크다.
결국 포항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수소환원제철의 중심 도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이 기회를 다른 지역에 내줄 것인지에 따라 포항의 미래와 한국 철강산업의 산업지도는 달라질 것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