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좋고 물 또한 깨끗하다. 거기에 온후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청도. 청도에 가면 마치 고향에 온 듯 푸근한 정취에 젖는다. 보태지도 덜어내지도 않고 자연 그대로의 삶을 지향하는 청도로 떠나는 향긋한 초겨울 여행.
△ 고졸하면서도 매혹적인 절 운문사
운문사는 동쪽으로는 운문산과 가지산 서쪽으로는 비슬산 남쪽으로는 화악산 북쪽으로는 삼성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대개의 산사는 산을 향해 올라가다보면 일주문이 나오는데 운문사는 숲을 향해 가다보면 마치 평지처럼 아늑한 절에 닿게 된다.
1500년의 역사를 지닌 운문사는 고졸하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어 6백년(진평왕 22년)원광국사가 중창하였다. 운문사는 화랑정신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원광국사가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오계를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시대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저술한 유서 깊은 곳이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 3층 석탑 등 모두 7점의 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웅숭깊은 절의 역사만큼 유명한 것은 진입로에 있는 소나무 숲. 미인송들이 열을 맞춰 도열한 듯 서있고, 여름만 되면 향긋한 솔 내음이 살포시 코끝을 스치는 곳이다.
운문사의 또 다른 명물은 경내에 있는 반송(처진 소나무)이다.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반송은 가지가 밑으로 늘어져 있는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어느 대사가 꽂아 놓은 지팡이가 자라서 소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채 세월을 이겨내고 있다.
이 반송은 매년 봄과 가을 나무 주변에 도랑을 파서 막걸리에 물을 섞어 대략 50말 정도를 부어준다 하여 막걸리를 마시는 소나무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 하지만 소나무 치고는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리는 셈이다.
운문사는 비구니 전문 강원이 개설되어 있다. 현재도 살림 안에 250여 명의 비구니 학인스님들이 용맹정진하고 있다.
승가대학으로 통하는 문의 이름은 불이문(不二)이다.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생과 사 그리고 만남과 이별 또한 근원이 하나이니 불이의 뜻을 알게 되면 해탈할 수 있다하여 ‘해탈문’이라고도 부른다.
△ 국내 최대 빛 테마파크 청도 프로방스
청도에서 겨울밤이 가장 먼저 꽃피는 곳이 있다. 국내 최대 빛 테마파크,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미끄러지고 나면, 1000만 개의 조명이 온 마을을 물들인다. 빛은 이곳에서 더 이상 장식이 아니라 ‘경험’이며, 어둠이 짙어질수록 화려한 감정의 층위가 살아난다.
프랑스 남동부의 햇살과 목가적 풍요로움으로 알려진 프로방스를 모티브로 한 이 테마파크는 남프랑스 특유의 로맨틱한 감성을 한국적 방식으로 소화해냈다. 따뜻한 노천 마을처럼 꾸며진 골목에서는 고흐나 샤갈의 그림에서나 보던 색감이 현실이 되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청도 프로방스를 제대로 즐기려면 해가 지기 전, 오후 무렵 입장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 카메라는 필수 장비다. 작품처럼 꾸며진 100여 개의 포토존은 관람객이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되도록 계산된 구도와 조명을 제공한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셔터 소리는 마치 이곳의 배경음악처럼 자연스럽다.
아이들의 웃음은 썰매장에서 터져 나온다. 사계절 내내 운영되는 사계절 썰매장과 간단한 놀이기구는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단순한 관광 이상의 기억을 남긴다. 하지만 이곳이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은 땅거미가 내려앉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밤이다.
작은 전구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면, 마을은 순식간에 색의 파동으로 채워진다. 러브 로드, 큐피트 로드, 프로포즈 로드로 이어지는 빛의 터널은 연인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겨울 성지’라 불릴 만큼 낭만이 짙다. 빛의 숲에서는 빛으로 만든 동물 조각들이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마치 동화 속 밤숲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아이들은 추위마저 잊은 채 동심의 환상에 빠져든다.
청도 프로방스의 겨울은 올해 특히 산타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핀란드 로바니에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책 읽는 산타, 선물 나르는 산타, 스키 타는 산타, 수십 명의 산타가 루돌프와 함께 이곳의 크리스마스를 밝힌다. 반짝이는 트리, 여기저기 서 있는 귀여운 눈사람들은 눈이 내리지 않아도 충분한 설렘을 만든다. 산타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은 아이들에게 오래 기억될 ‘겨울의 첫 추억’이 된다.
이곳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야광 장식으로 꾸민 몽환적인 ‘야광물고기 이야기’, 어른조차 길을 잃을 만큼 묘하게 빠져드는 거울미로, 갑작스러운 공포가 소리를 자아내게 하는 귀신열차까지 각종 체험관은 어른에게도 오랜만의 동심을 선물한다.
빛이 만든 상상력의 무대. 겨울의 긴 밤이 더 이상 춥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계절의 온도가 뒤집히기 때문이다.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마을이 바로 청도 프로방스다.
△ 감 향기 가득한 와인터널
청도의 대표적인 특산물 중 하나는 감이다. 다른 지역에도 지천으로 생산되는 것이 감인데 유독 청도가 감으로 유명한 것은 물론 감 생산량이 전국 제일이라는 점도 있지만 씨가 없는 반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에 씨가 없으니 그만큼 먹기도 좋고 실제 맛도 여타 지역보다 떫은맛이 덜하고 달다. 청도는 감을 이용해 다양한 부대 상품들을 만들었다. 곶감보다 더 부드러운 반 건시에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말린 감 말랭이, 그리고 감 와인까지.
특히 감 와인은 지난 2005년 고 노무현 대통령 당시 부산에서 열린 APEC 공식만찬주로도 쓰였으며 정권이 바뀌어 2008년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도 건배주로 쓰이며 전국적인 명성을 날렸다. 옛날로 치면 임금님께 바치는 진상물품 정도로 각광을 받은 셈이다.
감 와인이 유명해지자 대한제국 말기에 완공된 옛 경부선 경산-철도간 열차 터널이 110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감와인 숙성 저장고로 용도가 바뀌었다.
붉은 벽돌의 자연석으로 마감한 이 터널은 원래 일제가 중국 침략을 위해 건설한 터널이었다. 일제 때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나와 경부선 터널을 파야 했다. 아직도 터널 입구에는 대천성공(代天成功) 명치 37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하늘을 대신하여 천황이 사업을 완수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일본 왕을 위해 이유 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한 조선 민중들의 피와 땀이 배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들큰한 감의 향기만 남아 아픈 역사를 은근하게 치유하고 있다.
실상 터널을 들어서면 치장해놓은 것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터널을 이용해 감 숙성저장고로 용도만 바꾼 셈이지만 저장과 숙성하는데 이만한 조건을 갖추기가 어려운 듯 싶다.
와인 터널이 유명세를 타면서 가족 단위로 그리고 커플 단위로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고, 이제는 터널 안 벤치에 앉아 우아하게 와인 한 잔을 마시는 연인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곤 한다.
△여행메모
청도의 먹거리 - 한재 미나리
청도의 일품 음식으로 꼽는 것이 바로 한재 미나리다. 미나리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면 진정한 미식가가 아니다. 한재 미나리는 매운탕 등에 넣어서 향미를 돋우는 일반 미나리와 차원이 다르다.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으면 부드러우면서도 향긋한 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한재 미나리는 한재고개를 중심으로 많이 재배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