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더위는 이제 한풀 꺾였지만, 지난해 추석까지 이어진 극심한 폭염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다. 매년 반복되는 기록적인 폭염과 집중호우는 이제 기후위기가 일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해법은 결국 탄소중립이다. 하지만 단순히 석탄발전소를 줄이고, 자동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고, 또 누군가는 전기요금이나 생활비 부담을 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요즘 세계 곳곳에서 강조되는 것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 하자는 약속이다. 예를 들어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처럼 제조업과 에너지 다소비 기업이 많은 지역은 탈탄소 압력이 높다. 이런 곳에서 단순히 규제만 강화하면 중소기업과 노동자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에게는 새로운 직무훈련과 전환 일자리를, 기업에는 사업 전환 컨설팅과 금융지원을 연계해야 한다. 또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저소득 가정에는 에너지 바우처, 노후 주거지에는 단열·효율화 지원을 통해 부담을 줄여야 한다. 이처럼 ‘정의로운 전환’은 단순한 환경정책이 아니라 생활 속 문제해결과 연결된다. “탄소중립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라는 질문이, “내 집 전기요금과 일자리 문제이구나”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바로 ‘정의로운 전환’의 시작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실천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은 루르 지역 석탄광산을 닫으며 철도·대학·문화시설을 세워 지역경제를 살렸고, 스페인은 광산노동자에게 재생에너지 교육을 제공했다. 미국은 청정에너지 투자 혜택의 40%를 취약지역에 배정한다. 국내에서도 충남 보령과 태안은 석탄발전소 폐지 이후 특별법을 요구했고, 전남 신안군은 풍력·태양광 발전에 주민 지분 참여 제도를 도입했다. 대구·경북 역시 준비가 필요하다. 대구의 성서산단, 칠곡3지구, 신서혁신도시, 경북의 구미 국가산단, 포항 철강벨트, 경주 원자력, 영천 자동차부품 단지는 대표적인 전환 대상이다. 농촌 지역인 청도·의성·군위는 주민 참여형 재생에너지 모델 도입이 적합하다.
‘정의로운 전환’은 결국 우리 삶의 문제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성서·구미·포항 같은 산업지대와 농촌 마을을 특별지구로 지정해 맞춤형 지원에 나서야 한다. 중앙정부는 기금과 제도를 뒷받침하고, 지방정부는 에너지 효율 리모델링, 마을 태양광, 전환 직업훈련 같은 구체적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은 쉽지 않지만, 제대로 준비한다면 대구·경북은 기후위기 대응의 모범 지역이자 지역경제 재도약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위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다. 더 나아가 대구·경북이 먼저 길을 열어간다면 대한민국 전체가 참고할 수 있는 성공 모델이 될 것이다. 산업단지의 전환, 농촌의 에너지 자립, 시민 참여와 이익 공유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시도가 바로 ‘정의로운 전환’의 표준이 될 수 있다. 이제 대구·경북이 앞장서서 대한민국 ‘정의로운 전환’의 선도 모델이자, 탄소중립 시대의 새로운 희망지역으로 도약할 때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