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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맺음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한 여정”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25-09-23 16:29 게재일 2025-09-2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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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유리상자-아트스타 Ⅲ 김선경전 - 無와 有의 경계에서’
대구봉산문화회과
아트스페이스서 12월 14일까지
"사라짐으로써 영원히 남는 종이배
기억과 시간 비추는 전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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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 전 ‘無와 有의 경계에서’ 전시장 모습. /봉산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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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作 ‘無와 有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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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作 ‘無와 有의 경계에서’ 

대구 봉산문화회관은 오는 12월 14일까지  ‘202 유리상자-아트스타 Ⅲ 김선경 전 - 無와 有의 경계에서’ 전시를 아트스페이스에서 선보인다. 

2008년부터 이어져 온 전시공모 선정 작가전인 ‘유리상자-아트스타’의 올해 세 번째 행사로, 김선경 작가의 설치작업을 만날 수 있다. ‘아트스페이스(Art Space·유리상자)’는 사방이 유리로 된 개방형 전시 공간으로, 봉산문화회관 2층에 위치해 일상의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며 작가의 창의적 실험을 지원한다.

이번 전시는 김 작가의 대표 모티프인 ‘종이배’를 통해 시간과 존재의 순환을 탐구한다. 유리상자 내부에 설치된 대형 종이배 오브제는 시각적 웅장함과 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전달한다. 특히 전시장 바닥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검은 실은 그리스 신화의 ‘레테 강’(망각의 강)을 연상시키며, 삶과 죽음, 기억과 소멸의 경계를 상징한다. 반면 종이배 후미에 연결된 붉은 실은 생명의 연속성과 인연을 나타내며, 두 요소의 대비를 통해 존재의 이중성을 표현한다.

종이배는 낮과 밤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낮에는 자연광을 받아 반짝이며 생동감을 드러내고, 밤에는 반사되는 빛에 의해 어둠 속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는 “끝맺음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한 여정”을 은유하며, 작가의 희망적 메시지를 담았다.

김선경 작가는 경북 칠곡 출신으로 낙동강 인근에서 성장하며 유년기에 종이배를 접어 강물에 띄우던 경험을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추모와 치유의 맥락에서 시작된 ‘종이배’ 모티프는 점차 “생과 사, 유와 무의 경계를 넘는 여정”으로 확장됐다. 작가는 “종이배는 흘러가며 과거를 만들고, 현재를 비추며, 미래를 꿈꾸게 한다”며 “단순한 오브제가 아닌 ‘경계의 무엇’으로 재탄생했다”고 설명한다.

전시장의 중심을 차지하는 대형 종이배 모형은 기존 축소 모형의 개념을 뒤집는다. 실제 크기보다 수십 배 확대된 형태로 제작된 작품은 반투명한 비닐 테이프와 실을 층층이 쌓아 올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도록 설계됐다. 이는 “환영과 실체의 경계를 허무는 장치”로, 관람객이 작품 내부로 걸어들어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체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실로 연결된 종이배들은 공중에 매달리거나 벽면에 설치돼 유동적인 구조를 이루며, 마치 물살을 타고 흘러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김선경 작가는 재료 선택에도 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비닐 테이프는 내구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갖춰 “존재하면서도 사라지는 이중성”을 표현한다. 여기에  붉은색·파란색 등 다채로운 색실의 조합은 생명력과 에너지를 상징하며, 부드러운 천과 실은 여성의 섬세한 손길을 연상시킨다. 

미술평론가 김영동은 “작가의 지난한 수작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치유의 과정 자체”라며 “수많은 손길이 담긴 작품은 관람객에게 위로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이번 전시는 세월호 참사 추모에서 출발했으나, 궁극적으로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묻는 보편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종이배가 물에 잠기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은 죽음의 이미지를 넘어 “새로운 시작을 위한 떠남”을 암시한다. 유리상자 내부에 설치된 작품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흐리며,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김선경 작가는 “종이배는 사라짐으로써 오히려 영원히 남는다”며 “이번 전시가 관객 각자의 기억과 시간을 비추는 거울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민주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삶과 죽음, 존재와 소멸, 기억과 망각, 유와 무라는 극단적 개념들이 서로 공존함을 보여주며, 시간의 흐름이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짐을 전달한다”며 “관람객이 종이배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고 감정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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