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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의 26만개 GPU 약일까 독일까?

한상갑 기자
등록일 2025-11-08 11:28 게재일 2025-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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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AI가 많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 산업 전반이 AI 기반으로 재편되는 지금, 기술 주도권을 잃는 나라는 곧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과거엔 석유가 세계를 움직였고, 지금은 GPU가 세상을 움직인다.”

 요즘 산업계와 기술 시장을 뒤흔드는 단어는 단연 ‘GPU(그래픽처리장치)’다. 원래는 게임 그래픽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수천 개의 연산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병렬 처리 능력 덕분에 이제는 인공지능(AI)의 ‘엔진’이자 ‘석유’로 불린다. CPU가 두뇌라면 GPU는 근육으로 비유된다.

 GPU의 중요성이 폭발적으로 부각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ChatGPT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은 GPU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규모 언어모델(LLM)과 이미지 생성 서비스가 모두 GPU의 막대한 연산 능력을 필요로 한다. △둘째, 데이터센터 경쟁이 치열해졌다. GPU가 곧 ‘AI 공장’이기 때문이다. △셋째, 공급 독점 구조다. GPU 시장의 80~90%를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어 공급은 부족하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최신 GPU 한 개가 5000만~7000만원, AI 서버 한 대는 3억~5억원에 이른다.

 이제 세계는 석유 대신 GPU를 두고 경쟁한다. 과거엔 공장을 세워 물건을 찍어냈다면, 지금은 GPU를 깔아 AI를 학습시키는 시대다. 산업 구조의 기반이 ‘물질의 생산’에서 ‘지능의 생산’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러나 이 GPU 혁명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고 있다. AI는 인간의 조력수단을 넘어 경쟁자가 되고 있다. GPU의 폭발적 연산 능력은 AI의 학습 속도를 인간의 사고 능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AI는 이제 단순 노동뿐 아니라 사무, 회계, 번역, 디자인, 기자, 교사 등 전문직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은 AI 효율화를 이유로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미국 아마존은 최근 조직 효율화와 자동화 전략 강화를 이유로 1만4000개의 사무직 일자리를 줄였다. 이는 전체 사무직의 약 4% 수준이다. 인력 감축은 인사, 기기, 서비스, 운영 부문에 집중됐다. 아마존 CEO 앤디 재시는 “AI 효율화가 앞으로 수년간 인력 구조를 크게 바꿀 것”이라며, 감축과 동시에 전략 부문 채용은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구글 역시 올해 초부터 플랫폼·디바이스 부문에서 수백 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안드로이드, 픽셀, 크롬 관련 조직에서 감원이 있었고, 관리직 비율은 전년 대비 35% 줄었다. 구글은 자발적 퇴직 프로그램까지 도입하며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조직 효율화’지만, 본질은 AI·클라우드 인프라 투자로의 자원 재배치다.

 AI의 가속화가 노동시장을 재편하는 가운데, GPU의 등장은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고가의 GPU 클러스터를 보유한 대기업은 AI 산업을 선점하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은 감당할 수 없는 비용 장벽 앞에 절망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AI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가 커지며, 기술 민주화가 아닌 기술 독점의 시대가 될 위험이 있다.

 또한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냉각 에너지를 소비한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대형 AI 센터 하나가 중소 도시 한 곳의 전력량을 넘는다는 보고도 있다. GPU 산업이 확장될수록 탄소 배출, 전력난, 환경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AI 선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조·금융·국방·농업 등 모든 산업이 AI 기반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기술 주도권을 잃은 나라는 종속될 수밖에 없다. AI를 돌리는 GPU와 알고리즘을 가진 나라가 세계의 데이터 흐름을 통제한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시스템을 빌려 써야 하는 위치에 머문다면, 산업 경쟁력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GPU 시대에 필요한 핵심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GPU 성능을 좌우하는 ‘심장’이다. 또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딥엑스 같은 스타트업들이 국산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여기에 네이버·카카오·LG 등이 자체 초거대 AI 모델을 운영하며, 정부 역시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최근 한국 증시는 그 방향성보다 ‘속도’에 취해 있는 것 같다. AI 관련주가 폭등하며 코스피는 단기간 급등 후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 반도체, HBM, 데이터센터 테마주가 하루에도 수%씩 출렁인다. ‘AI 거품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이유다.

GPU 혁명은 분명 양날의 칼이다. 하지만 그 칼을 휘두를 능력이 한국에 있다면, 우리는 AI 시대의 피동적 소비자가 아니라 주도적 설계자가 될 수 있다. AI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인간을 위한 AI를 만드는 나라가 돼야 한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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