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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누전 차단기

등록일 2025-09-14 16:57 게재일 2025-09-1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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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숙 시조시인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다. 매일 휴대폰 안전문자로 폭염경보 때론 주의보가 날아온다. 벌써 9월인데도 수그러들 기미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필수가 되었다. 오래 된 에어컨을 올해 마음먹고 바꾸었는데, 영 온도가 떨어지질 않는다. 용량이 작은 건가, 잘못 작동시키고 있나, 여러 생각이 오간다. 결국 설치기사분에게 전화를 했다.

기사가 오기로 한 날, 아침에 에어컨을 틀었다. 바람세기를 세게 하고 희망 온도는 낮게 잡았다. 그게 에어컨 전기료를 절약하는 방법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잘 돌아가던 에어컨이 갑자기 뚝 멈춰버렸다. 당황했다. 차단기가 내려간 것 같았다. 혼자 어쩔 수 없어서 기사분이 올 때까지 더위를 견뎌야 했다. 기사님이 접촉이 조금 나빠 온도가 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하며 쉽게 고쳐주셨다. 남은 문제는 차단기였다.

구축 아파트는 그 당시 가전제품이 많지 않아서 전압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 나오는 가전제품은 정격전압이 높은 편이라 차단기가 내려가는 것이라며 차단기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누전 차단기는 전류가 새어 나가는 순간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는 장치이다. 전기 사용 중 발생할 수 있는 감전이나 화재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인 안전장치로 주로 과부하가 걸렸을 때, 누전, 오래 된 전자기기, 등이 원인이라고 한다. 결국 차단기가 내려간다는 것은 안전을 위한 것이다.

결국 전기기사를 불렀다. 차단기는 4개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그 중 에어컨을 작동하는 차단기만 내려간 것이다. 차단기 전체가 너무 낡았다고 한다. 전체를 교체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아파트에 거주했고 아이들도 같은 학년이라 친하게 지냈다.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고 아이들과도 놀러 다니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

어느 날 이 친구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우리 집으로 뛰어 왔다. 그리고 다자고짜 화부터 내었다. 도무지 영문을 몰랐기에 어리둥절한 내게 점점 수위 짙은 말이 빠른 속도로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유추하니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며칠 전 다른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하게 지내느냐고. 무심코 서로 세상을 보는 시각은 다른 것 같은데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라고 답했던 것 같다. 그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시각이란 단어가 수준이 낮은 걸로 들렸나보다. 아니라고 하는데도 전혀 생각지 않았던 부분에서 화를 내는 친구를 보며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거칠어졌다.

그 날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이후로 좋았던 관계는 깨어지고 다른 아파트로 이사할 때까지 외면하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욱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나는 잘 참는 것 같다가도 일정 수위 이상으로 감정이 솟구치면 화산 터지듯 폭발해버려 뒤는 생각지 않고 뱉어내는 나쁜 버릇이 있다. 그 날도 그런 한계상황까지 간 것이다. 차분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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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누전차단기.

그 날 내 감정에도 차단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위험수위에 이르면 저절로 내려가 욱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차단기가 있었으면 좀 더 현명하고 기분 나쁘지 않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아마 친구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더불어 아이들도 더 좋은 기억을 담았으리라 싶다.

행복하기를 원하고 잘 살기를 바라며 인정받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이 때로는 그것 때문에 무리한 욕심을 부릴 때가 있다. 더 잘 살기 위해 하는 무리한 투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하다며 몰아가는 자녀들에 대한 지나친 교육열. 성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나만의 이기심과 시기. 이런 것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나다운 나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차단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군데군데 여러 개의 차단기를 마음에 심고 필요시에 얼른 내릴 수 있다면 조금은 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사가 가고 소파에 앉아 에어컨을 작동시킨다. 찬바람이 더위로 어질러진 마음을 가라앉힌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지. 손보다 마음이 먼저 리모콘으로 향한다.

/전영숙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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