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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부족 포항시, 이제는 지하댐을 고민할 때다”

임창희 기자
등록일 2025-09-11 08:46 게재일 2025-09-1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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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도시의 혈관이다. 포항은 바닷가에 기대어 성장해온 대표적인 해안도시다. 철강산업으로 성장했고, 최근엔 2차전지와 수소산업 등 신산업의 중심지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도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물’이다.

포항은 연평균 강수량이 1100mm 안팎으로 전국 평균(약 1300mm)과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지형이다. 내륙처럼 산과 계곡이 깊어 물을 가둬둘 곳이 거의 없다. 하천은 짧고, 빗물은 순식간에 바다로 흘러간다.

현재 포항은 공업용수의 80% 이상을 인근 댐 등에서 끌어다 쓴다. 연간 공업용수 사용량은 1억 4000만 톤에 달한다. 신산업단지 조성과 기업 유치로 수요는 매년 늘고 있지만, 외부 수원에 의존하는 방식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기후 변화로 극심한 가뭄과 불규칙한 강수량이 반복되면서 불안은 더 커졌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해수담수화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초기 건설비만 수천억 원대, 생산된 물값은 기존 육상댐보다 5배 이상 비싸다. 농축염수 처리 등 환경 문제도 풀기 쉽지 않다. 결국 포항만의 물그릇이 필요하다.

그 대안이 바로 지하댐이다. 지하댐은 땅속에 흐르는 지하수를 막아 저장하는 구조다. 평소에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고이게 하고, 필요할 때만 취수해 쓸 수 있다. 특히 포항처럼 하천이 짧고 해안에 인접한 도시는 빗물이 금방 바다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지하에서 이를 붙잡아 두면 물부족 문제를 크게 덜 수 있다.

실제 일본 오키나와, 대만 등에서는 이미 지하댐이 가뭄 극복의 실질적 대안이 됐다. 제주도 역시 육상댐 건설이 어려운 지형적 한계를 지하댐으로 해결해 연간 800만 톤 이상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지하댐은 육상댐 대비 건설비는 30~40% 수준이면서도 홍수와 가뭄을 함께 잡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강원도 사례는 포항에 주는 교훈이 크다. 요즘 강릉시는 국가재난에 버금가는 심각한 가뭄으로 생활용수까지 부족해 시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반면 인근 속초시는 상황이 다르다. 속초시는 일찍이 지하댐을 건설해 하루 63만t 규모의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극심한 가뭄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불과 수십 킬로미터 차이지만, 지하댐을 선제적으로 준비했느냐의 차이가 도시의 운명을 가른 것이다.

포항에도 지하댐은 물부족 해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 포항 도심은 해수면과 높이 차가 거의 없는 저지대다. 우수기마다 불어난 빗물이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해 도심에 고인다. 이를 막기 위해 해마다 대형 배수펌프장을 돌려야 한다. 펌프 가동과 유지에만 연간 수십억 원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매년 반복되는 침수 피해는 여전히 시민의 몫이다. 지하댐이 들어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강우기에 넘치는 빗물을 지하로 흡수해 임시 저류조 역할을 하고, 평소에는 저장된 지하수를 취수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도심 침수 위험과 배수펌프장 운영 비용을 줄이고, 가뭄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하댐은 대규모 토지 수용이나 주민 이주가 필요 없다. 하천 하류나 평야 지하 등 여러 곳에 소규모로 나눠 지을 수 있어 현실성도 높다. 필요한 만큼 물을 저장하고, 필요할 때 뽑아 쓰는 ‘작은 물그릇’이 여러 개 만들어지는 셈이다. 물부족과 침수방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발상의 전환이다.

한 지역 물관리 전문가는 “포항은 물을 남이 가져다주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물을 모으고 지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하댐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물은 도시의 생명이다. 더 이상 다른 지역에서 가져다 쓰거나 비싼 담수화 기술에만 기대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어렵다. 기후위기 시대, 물을 지키는 일은 도시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강릉과 속초의 대비된 현실은 포항에 던지는 경고다. 이제 포항이 ‘땅속 물그릇’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임창희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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