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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위기에서 만난 ‘몰라 몰라’

등록일 2025-09-07 18:23 게재일 2025-09-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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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老鋪 기행-태영수산 ①   개복치를 포항의 명물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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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포항 죽도시장 태영수산에 실려온 개복치. /김훈 사진작가 제공

죽도시장에는 ‘포항의 명물 개복치’라는 간판이 큼지막하게 붙은 수산물 가게가 있다. 2대에 걸쳐 76년간 개복치를 유통해온 태영수산이다. 그곳에는 개복치에 평생을 바쳐온 이영태(70), 박정자(69) 부부가 있다. 그들을 만나 개복치와 죽도시장 그리고 그에 얽힌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영태 대표의 할아버지는 포스코가 세워진 곳에서 살았다. 170여 가구가 살았던 동네에서 제법 땅이 많았고 집에는 일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배도 소유하고 있어서 영일만에 나가 조업했는데 가자미와 아귀가 많이 잡혔다. 할아버지가 가져온 어패류를 할머니가 시장에 나가 팔았는데 어머니도 그 일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도 돛단배 두 척을 가지고 영일만에서 어업에 종사했다. 1970년대 포항제철이 들어서자 지금 포항운하가 들어선 자리로 옮겨와 어로 작업을 하며 살았다. 올해 92세인 이 대표의 어머니는 20대부터 시어머니와 남편이 잡아온 조개, 멍게, 고등어, 대게 등을 팔아서 생계를 꾸렸다.

그 시절, 노점상 이름을 ‘태영수산’이라고 지었다. 대개 장사하는 사람들은 상호(商號)를 맏아들이나 맏딸 이름으로 정한다. 처음에는 3남 1녀 중 장남인 영태의 이름을 따와 ‘영태수산’으로 하려고 했는데 손을 댄 사업마다 실패하니 주변에서 ‘영태’를 거꾸로 해 지어보라고 권했다. 그 바람에 상호를 ‘태영수산’이라 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태영수산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다.

 

죽도시장에 터 잡고 2대에 걸쳐 76년간
개복치에 평생바친 이영태·박정자 부부

 

바다일 시키지않으려는 아버지 만류로
오랫동안 떠났다 운명처럼 다시 돌아와

 

고등어·갈치 등 생선 파는 일에 점점 한계 
죽도다리 지나다 개복치 잡는 장면 보며
“남이 안하는 것 하자” 품목 바꿔서 판매 
점차 개복치를 포항의 명물로 만들어가

 

1998년 태영수산으로 등록 후 만든 간판
2006년 마침내 가건물 짓고 당당히 걸어

포항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다

이 대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안의 일손이 부족할 때면 아버지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일을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몰래 혼자서 배를 타고 노를 저어 호미곶까지 갔다가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헤엄을 쳐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그 경험을 밑천 삼아 며칠 뒤, 이번에는 친구 여섯 명을 배에 태우고 바다에 나갔다. 무사히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학교와 집을 포함한 온 동네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이 일로 이 대표의 아버지는 “다시는 배를 타지 마라”며 크게 화를 내셨다. 또한 할아버지를 비롯해 집안 어른들은 이 대표가 바다에 나가 사고라도 당할까 봐 감시를 했다. 중학교 진학도 내륙인 대구에 보낼 정도로 바다로 이어지는 끈을 차단했다.

그 바람에 이 대표는 오랫동안 바다와 멀어진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부품 공장에 다니기도 했고, 결혼 후에는 울산에서 한국타이어 대리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잘못되어 사업이 망하고 말았다. 운명은 그를 다시 바다로 불러들였다. 살아갈 길이 막막해 여러 방도를 찾고 있을 때 포항 본가에서 부부를 불렀다. 이 대표의 아내 박정자 씨는 시어머니와 죽도다리 옆에서 상자에 생선을 올려놓고 팔기 시작했다.

죽도시장은 1950년대에 갈대밭이 무성한 동빈내항의 늪지대에 노점상들이 모여들어 축축한 바닥에 비닐이나 두꺼운 종이를 깔고, 그 위에 수산물을 놓고 팔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곳에서 박정자 씨는 어린 두 딸을 위해서라도 ‘내가 이걸 안 하면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악착같이 생선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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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치 해체 장면을 행인들이 바라보고 있다. /김훈 사진작가 제공

개복치와의 특별한 인연

이 대표의 아내 박정자 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선을 파는 일에 서서히 한계를 느꼈다. 시어머니는 주로 고등어, 갈치, 멸치 같은 유통이 빠른 생선을 취급했다. 그 품목들은 빨리 팔리는 대신에 목돈이 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팔아도 그 수입으로는 두 집이 살아가기가 빠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죽도다리를 지나다가 다리 위에서 큰 물고기를 잡는 장면을 보았다. 사람 몸집보다 큰 대물(大物), 개복치였다. 아직 복개하지 않은 때여서 어시장 사거리에서 죽도시장으로 들어가려면 죽도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그 위에서 개복치 잡는 것을 본 것이다.

개복치는 포항수협에서 직접 경매로 받거나, 부산과 강구 수협을 거쳐 경매된 것을 상인들에게 공급받기도 했다. 개복치는 워낙에 커서 죽도시장 안으로 옮기기가 힘들어 죽도다리 위에서 바닥에 비닐을 깔고 팔 때가 많았다. 개복치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는데, 그때 박정자 씨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많은 노점상이 취급하는 생선을 팔아봐야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해야 한다. 개복치를 팔아보자.’

박정자 씨는 그렇게 유통 품목을 개복치로 바꿨다.

“빨리 팔리지만 돈 안 되는 생선보다 내 손으로 정성을 들여 다룰 수 있는 생선에 집중하고 싶었지요.”

시어머니와 본격적으로 분리한 뒤, 죽도다리 위에서 개복치를 팔았다. 생선의 신선도를 물고기 눈알로 확인하는 법, 물 온도에 대한 감각, 생물을 다룰 때의 손 압력 조절, 계절별 유통 시점 등 부모에게 배운 수산물을 다루는 체화된 노동 기술과 지식을 기반으로 부부는 점차 개복치를 전문으로 판매해 포항의 명물로 만들어갔다.

‘태영수산’ 간판을 점포에 걸다

이 대표의 어머니는 30대 중반인 1968년에 포항 수산중매인 1호가 되었다. 포항수협에서 중매인을 모집했는데 본격적으로 수산물 중매를 하고 싶어 신청했다. 당시 중매인 1호는 다섯 명이었는데 그중 한 사람으로, 중매인 59번이었다. 이 대표는 부모님이 35년간 운영해온 중개업을 1984년에 승계받았다. 예전부터 태영수산이라는 상호는 있었어도 간판 없이 시장 한쪽에서 생선을 팔았는데, 1998년 태영수산으로 등록한 뒤에는 간판을 만들었다. 아직 건물이 없을 때라 파라솔 두 개를 가지고 20여 년 가까이 장사하는 동안 간판은 좌판 옆에 세워져 있었다.

2006년 이영태 대표가 수산중매인으로 등록하고 난 후 ㈜태양수산을 설립하면서 개미수산 옆에 가건물을 지어 그토록 원하던 간판을 점포 위에 당당하게 걸었다. 죽도다리 옆에서 시작한 시어머니의 노점상 ‘태영수산’이, 죽도다리 건너편에 가건물을 짓고 난 뒤 비로소 간판에 새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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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복치묵. /태영수산 제공

개복치는?

예부터 조상들이 사계절 선호하는 수산물로, 포항에서는 결혼식, 잔칫집, 돌잔치, 장례식 등의 경조사에 빼놓을 수 없는 바닷물고기다. 복어목 개복치과로, 비늘이 없고 길이 약 2~4미터, 몸무게 약 1∼2톤에 이르는 거대한 물고기다. 한 번 산란에 2억∼3억 개의 알을 낳지만, 성체가 되는 것은 한두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개복치’라는 이름은 머리만 뚝 잘라놓은 것 같은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학명인 ‘몰라 몰라’(Mola mola)는 맷돌을 닮은 개복치의 형상을 딴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영어 이름은 ‘오션 선피쉬’(Ocean sunfish)다. 납작하고 둥근 몸체를 가지고 파도가 없는 고요한 날에는 수면에 등지느러미를 보이면서 헤엄치거나 누워 뜨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태양 아래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처럼 보여서 붙여졌다. 개복치는 먹이를 씹지 않고 삼키는데 내장을 열어보면 오징어, 해파리, 멸치 등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피부 점액질에는 독이 있어 일종의 항생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상처 입은 물고기들이 개복치 주위를 헤엄치기도 하는데 ‘바다 의사’ 노릇을 하는 셈이다.

개복치 껍질은 마치 하얀 묵 같은데, 껍질을 삶으면 우무나 곤약처럼 투명해진다. 회로 먹기도 하는 개복치살은 참치와 비슷하고 그 맛이 일품이다. 콜라겐이 풍부하고 단백질, 비타민 등이 풍부하며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춘다. 빈혈에 좋은 타우린도 함유하고 있다. 바다의 육류라고 불릴 만큼 육질이 쫄깃하고 고혈압, 당뇨병, 신경통 등 성인병에 좋으며 동맥경화 예방, 근육경화 방지, 뇌기능 향상에도 효과가 있다.

/정미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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