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가 포항을 휩쓴 지 2여 년. 그 상처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오천읍 냉천의 범람으로 인명피해 10명, 재산피해 약 1조7000억, 기업피해 포스코 포함 92개 기업이 약 1조5000여억 원 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끔찍했던 기억이 잊히기도 전에 또다시 올 우수기가 시작됐다.
포항은 태생적으로 침수에 취약한 도시다. 현재 시가지는 죽도·송도·대도·해도·상도 등 5개의 작은 모래섬 사이를 메워가며 형성됐다. 해수면과 고도차가 거의 없는 이 지형은 집중호우 시 배수가 지연되거나 역류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다. 여기에 국가하천인 형산강 하류와 동해에 접한 개방적 지형은 태풍과 집중호우가 겹치면 내륙과 해양 양쪽에서 물이 밀려드는 이중고를 초래하는 형태다.
포항시도 이에 대비는 해왔다. 현재 도심에 크고 작은 배수펌프장 14곳과 27개 간이펌프 시설을 운영 중이다. 환경부도 2022년 이후 포항을 하수도정비 중점관리지역으로 지정, 빗물펌프장 11개소 신ㆍ증설 총사업비 3557억 원을 투입하는 등 배수 능력 기준을 20~30년 빈도에서 50년 빈도로 상향(해당 사업은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마무리될 예정)시키고 있다. 수해 대비에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은 포항의 침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자, 현장 유지 상태가 허술하면 언제든지 위험 요소가 발생해 인재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시는 올해도 우수기 대비 하수관로 33km를 정비하고, 빗물받이 2만여 개 준설 등 우수기를 앞두고 대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치는 그저 일의 총량일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직 포항에는 위험 현장이 수두룩하다.
형산빗물배수펌프장 경우는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전동기 1100마력 2대 등 배수 능력이 401만7600t/일(분당2790t)에 불과, 집중 호우 시 고장 나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일대가 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야산 절취가 많은 KTX신도시를 포함한 대형 개발 현장 13곳에 대한 철저한 점검도 시급하다. 이곳은 장마철마다 반복되는 토사 유출과 임시 가설물 붕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지진으로 손상된 노후 하수관로는 우려스럽고 남구 일원, 오천읍, 학산지구 등의 지역은 하수 역류가 여전히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학산지구 도시침수예방사업은 우수저류시설, 배수펌프, 관로 정비 등 침수 저감 효과가 기대되는 프로젝트지만, 연계된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일정 지연을 겪고 있으면서 수량의 유입·유출 수리 체계의 불균형이 생기면 일대 피해가 불가피하다.
GIS DB를 활용한 침수 이력 지도 구축, 실시간 강우·수위 감지, 배수시설 자동 제어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기술 기반의 선제 대응 체계를 마련한 스마트 도시침수 시스템도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시점에서 포항시는 현 상황에만 매몰되지 말고 국외의 침수 대응도 연구했으면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도시 침수 저감을 위해 주택과 건물에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지연배수(遅延排水)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이는 레인 가든, 빗물 저류 탱크, 침투 시설, 도시 저류 공간 등을 통해 빗물을 곧바로 하수도로 흘려보내지 않고 머물게 하여 하수처리 부담을 줄이는 분산형 빗물 관리 방식이다. 도쿄도, 오사카시, 요코하마시 등은 이를 법제화하거나 설치비 보조, 개발 허가 기준 등으로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저영향개발(LID)’ 개념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면 한다.
최근 들어 나타나는 이상기후 변화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시는 지금까지 집중호우 시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몇 년 빈도로 설계하여 통수단면을 확보해 왔다. 대형 펌프장 증설 등도 이에 근거, 강제 배수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이상기후로 인한 폭우에는 대응이 역부족이다.
포항시는 지금까지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 예산을 동원해 침수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현재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수치와 실행계획, 실적 보고서보다 앞서야 할 것은 현장의 체감과 실효성일 것이다. 건축조례제정이나 제도개선을 통한 지연 배수 정책 등을 조속히 도입했으면 한다.
시민의 안전은 ‘대응’이 아니라 ‘예방’ 속에서 지켜져야 한다. 이 원칙이야말로 우수기를 맞은 지금, 가장 절실한 기준이다. 아직도 힌남노 태풍 피해에 대해선 인재냐, 자연재해냐를 놓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형사재판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민관이 잘 대응해서 이제는 그런 수준 이하의 논쟁이 사라졌으면 한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