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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정치의 상관성에 대하여

등록일 2025-05-11 18:15 게재일 2025-05-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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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논어’를 읽다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나온다. ‘정사(政事)’에 관한 ‘위정편(爲政篇)’에서 우리가 만나는 대목의 핵심은 기실 정치 행위가 아니라, 정치를 하려는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공자의 생각은 인륜 도덕과 예의범절, 효도와 학문, 말과 행동, 불의와 대면했을 때 응당 가져야 할 태도 같은 인간의 바른 자세에 집중돼 있다.

그 가운데서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두 번째 장에 나오는 짧은 언명(言明)이다. “'시경(詩經'에 들어있는 시 300편을 한 마디로 개괄하면 생각에 사특(邪慝)함이 없다.” 정치인이 지녀야 할 덕목의 핵심 가운데 하나를 ‘시’로 지적한 것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여러분은 시를 암송하거나 시를 읽거나 시를 쓰는 정치인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가?

견문이 턱없이 부족한 탓일 것이나,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누군가가 아침저녁으로 시를 읽고 시를 생각하고 시를 논한다는 얘기를 아직 들은 바 없다.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한국의 정치판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우리 정치인들은 마음 편히 혹은 여유롭게 시와 만나고, 시를 음미하고, 시를 기억할 최소한의 여유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정치와 시를 연계한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그것은 ‘논어’ ‘계씨편(季氏篇)’에서 찾을 수 있다.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아버지한테 특별히 들은 게 없느냐, 하고 묻자, 백어는 아버지 공자를 인용한다.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지식인이 자신의 사유와 인식을 올바르게 전달하고자 한다면 시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가 엮은 ‘시경’에 포함된 305편의 시를 공부함은 시를 통째로 기억하여 일상적인 대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함을 뜻한다. 자연과 세상, 인륜과 풍속, 지난날과 당대의 세태, 각종 예법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시경’의 모든 시편을 암송함은 작은 백과사전을 머릿속에 내장하고 있음과 전연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의 생각을 단출하게 정리하면, 시로써 흥하고, 예의범절로 서고, 음악으로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예악사상의 첫 번째 단추를 공자는 ‘시’에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자는 정사의 요체로 시를 그토록 중시한 것일까? 정치인의 첫 번째 소양(素養)은 언어 구사 능력이다. 대중에게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설득력 있게 전달함이 무엇보다 긴요하기 때문이다.

잠시만 생각해 보시라! 고급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시편(詩篇)에는 인간의 거칠고 우매한 심성과 진창으로 더럽혀진 영혼을 세탁하는 강력한 세척력이 내장돼 있다. 어느 정치인의 언사가 시어(詩語)에 기초한 아름답고 세련되며 고매한 것으로 점철돼 있다면, 그것을 듣는 시민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자명한 결과가 여러분의 눈에 선하지 아니한가!

어느 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흙탕의 개싸움(泥田鬪狗)’과 일장활극(一場活劇)을 보노라니, 빈곤하다 못해 금수(禽獸)의 수준으로 타락한 그들의 언어로 오염되어 가는 우리 시민들과 어린 세대에게 부끄럽고 참혹한 마음 그지없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시를 공부하시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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