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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는 빈틈이 없다(부분)

등록일 2025-05-01 17:53 게재일 2025-05-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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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용

며칠 전까지 꽃잎 날리던 나뭇가지에 지금은 연구 잎사귀가 꽂혀 있다. 향기 머물던 자리엔 누군가 서성인 발자국이 얼룩덜룩하다. 오래전 어머니가 상추 가꾸던 텃밭에 오늘은 내가 쑥갓을 심는다. 흙에 버려져 반쯤 파묻힌 플라스틱 통에서는 민들레가 피어났다. (중략) 어디에도 빈틈은 없다. 꿰맨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어제의 갈피를 오늘이 뚫듯, 오늘의 간극은 내일의 에테르로 메꿔진다. 꽃 진 자리에 곧 새똥 같은 열매가 돋으니, 지워졌다 새겨지는 오랜 내력이 인류세가 지난 다음에도 계속될 것 같다. 그러니 지금 헐렁헐렁한 틈도 참을 만하고, 내가 곧 지워져도 괜찮다. 고개를 끄덕끄덕, 살래살래, 갸우뚱… 어쨌든, 다 좋다.

 

……….

시간에 빈틈은 없다. 시간 속에 빈틈이 생기긴 하나, 시간은 “꿰맨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곧 그 빈틈을 메꾸기 때문. “오래전 어머니가 상추 가꾸던 텃밭”에, 오늘엔 “내가 쑥갓을 심”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은 “어제의 갈피를 오늘이 뚫”으며 이어지고, 인류세 이후에도 “지워졌다 새겨지는” 내력은 지속될 테다. 하여 시인은 “내가 곧 지워져도” 시간은 이어질 것이어서,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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