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반쯤 허물린 담장을 경계로 서 있는 벚꽃 나무 아래
이 빠진 항아리가 빗물을 삭히고 있네
그 안으로 벚꽃 잎이 날아드네
한때는 간장으로 된장으로 고추장으로
속을 채웠을 그가
금이 가고 깨어진 몸으로
이름 모를 풀들을 키우고 있네
곁에 선 철쭉의 젓 몽우리를 딴딴하게 하네
그 환한 것들의 뒤란을
오글오글 타오르게 하네
…
이제 노쇠하여 ‘이 빠진’ 낡은 항아리. 한때는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을 담고 있었지만 이젠 빗물만 삭히고 있는. 하나 저 “금이 가고 깨어진 몸” 안으로도 “벚꽃 잎이 날아드”는 것, 존재의 아름다움은 쓸모를 다한 존재자에게도 방문한다. 그러자 저 깨어진 몸이 하고 있는 일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름 모를 풀들을 키우고” “철쭉의 젓 몽우리를 딴딴하게 하”면서 “뒤란을 오글오글 타오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