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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잎 화사하게 흩날리던 날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5-04-10 18:29 게재일 2025-04-1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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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수도산 흥무로 밤 벚꽃이 색색의 조명을 받아 더 화사하다.

친구 딸 결혼식이 있어 경주 보문으로 가는 길. 가로수에 늘어선 벚나무가 하얀 꽃잎을 화사하게 터트리는 아우성을 들으며 간다. 화사한 봄날, 잔칫집에서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이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일부는 한잔하자며 횟집으로 가고, 1년 365일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는 친구 몇몇은 술 대신 한잔하자며 카페로 간다. 이야기가 끝이 없다. 수십억 원을 상속받았다는 친구. 삶의 질이 달라 보이니 은근 부러움이 인다. 괜스레 상대적 빈곤감에 씁쓸해지는 맘을 다독인다. 저마다의 복 대로 살다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며칠 후 뜬금없는 비보가 들려온다. 그 친구 남편이 운동 삼아 늘 다니던 산에 갔다가 발을 헛디뎠단다. 갑작스런 사고에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던지 발인을 하루 앞두고 부음을 전한다. 황망한 비보에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달려간다. 며칠 전 잔칫집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장례식장에서 또 만난다. 그렇게 할 말들이 많던 친구들이 침묵한다. 말이 의미를 잃었다. 어떤 위로의 말이 도움이 될까? 침묵으로 조문을 대신하고 돌아오는 길. 경주 수도산 밤 벚꽃이 너무나 화사하고 화사해서 차를 세운다. 하얀 벚꽃 잎이 색색의 조명 위로 흩날리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다. 그냥 텅 비우고 밤 벚꽃의 화사함을 즐기자 했다. 가슴이 아릴만큼 아름답다.

여전히 만개한 벚꽃이 화사하게 흩날리는 날 “새댁, 집에 있지 말고 쑥 캐러 와”라는 동네 형님 전화에 과도와 비닐봉지 챙겨들고 나선다. 동네 사람 몇몇이 여기저기서 쑥, 달래, 개망초 등 봄나물을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뜯는다. 문득, 폰을 들여다보던 누군가 “대통령 탄핵이라네요…. 만장일치로….”라며 말을 흐린다. 다들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놓고 침묵한다. 또 한 번 말이 의미를 잃는다. 같은 마음인지 다른 마음인지 봄나물 캐던 이들이 말을 아낀다. 섣부른 정치얘기는 서로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탄핵이 되어야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진다 하고 또 누군가는 탄핵이 되지 않아야 자유민주주의가 지켜진단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탄핵이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거늘 작금의 상황에 일상도 버거운 민초들 마음이 편치 않다. 저 멀리 하얀 벚꽃 잎 화사하게 나리는 꽃비 아래서 어린이집에서 소풍 나온 듯 선생님과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 놀고 한 무리의 상춘객은 자리 펴고 둘러앉아 봄을 즐기고 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로 흩날리는 하얀 벚꽃이 슬프도록 아름답다.

어느 유튜버가 대만을 여행하던 중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는 현지인을 만난다. 왜 이민을 생각 하냐고 하니 불안해서란다. 어느 나라로 갈 거냐고 물으니 대한민국이란다. 대한민국을 택한 이유를 물으니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답한다. 유튜버는 그냥 선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한다.

친구의 기쁜 소식도 친구의 슬픈 소식도 대통령의 탄핵 소식도, 많은 소식을 하얀 벚꽃 잎 화사하게 흩날리는 이 봄에 듣는다. 삶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 소중하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시인인 친구는 삶을 ‘동의도 조언도 불필요한 일들, 상황들. 삶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미묘해서 가닥잡고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꽃잎 흩날리는 화사한 이 봄. 복잡 미묘한 마음 밀쳐두고 그냥, 맛있는 쑥국을 끓이는 데 정성 쏟아 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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