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란에는 어김없이 책이나 영화를 즐긴다고 적는다. 글눈을 뜨면서부터 책을 찾아 읽더라는 부모님의 말씀도 자주 들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도 어딘가 구석진 곳에서 책을 보고 있던 아이로 나를 기억해 주니 나의 독서벽은 꽤나 오래된 것임에 틀림없다. 영화를 즐기는 것도 역사가 깊다. 아버지와 함께 간 극장에서 본 ‘콰이강의 다리’가 여전히 선명하다. 대입 공부를 치열하게 하던 고3 때에도 TV 주말의 명화극장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연극을 처음으로 본 건 고2 때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오빠가 안톤 체호프 작품인 연극에 배우로 등장한다면서 친구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객석을 채워 주라고 했다. 오빠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가까이 지내는 친구 몇을 데리고 극장을 찾았다. 어두컴컴한 무대 앞에 몇 되지 않은 의자가 깔려있었다. 무대에 조명이 밝아지자 전통 러시아식 흰옷에 붉은 허리띠를 매고, 목 긴 가죽장화를 신은 오빠가 구부정한 채로 등장했다. 흰머리에 흰 수염을 붙이고 과장적으로 노인 분장한 오빠의 모습이 매우 생경해서 난 괜히 친구들에게 부끄러웠다. 무대 위의 오빠 모습은 이렇게도 기억에 선명한데 그 연극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도 국문과의 밤이라는 축제를 하면 당연히 연극이 무대에 올려졌고, 학과의 선후배들과 친구들이 밤낮으로 연습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 가까이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행사 후 찍은 단체사진에 분장한 채로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잠시 부러웠지만 그 정도였다. 연극은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나 보다. 이화회 회원들과 ‘친정엄마와 3박4일’을 본 적이 있었다. 워낙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들의 연극이라 볼 만하다고 관람한 거였다. 잘 아는 내용의 연극에,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으나 무대가 너무나 큰 극장은 연극 감상을 심히 방해했다. 비교적 앞자리에 앉았음에도 도저히 몰입되지 않아 성에 차지 않았다. 연극의 묘미는 무대 가까이에서 배우의 숨소리와 땀방울을 느끼고 보는 것인데.
지난달 배달된 대구문화 소식지에서 대구연극제 뉴스를 접했다. 연극 일정을 꼼꼼히 살폈다. 안톤 체호프의 ‘고니의 노래’를 택해 맨 앞자리를 예매했다. 원래 희곡은 두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15분짜리 단막극이나 실제 공연은 60분이었다. 지방 작은 극장 68세의 노배우가 연극이 끝난 뒤 프롬프터와 함께 연극 인생을 회고하는 내용인데, 각색이 많이 된 듯했다. 확인하고 싶어 도서관에서 ‘체호프 희곡 전집’을 빌려 읽기도 했다. 힌트가 될 만한 무대 장치, 젊은 배우의 서툰 분장과 연기에서는 오히려 노배우의 노쇠함 대신 청년극단의 활기가 전해졌다. 그러나 앞자리에서 직관한 배우의 땀방울, 거친 숨소리와 먼지내 나는 무대는 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엔 충분했다.
극장을 나서며 오랜만에 오빠와 통화했다. 52년 전 오빠가 공연한 연극 제목이 뭐냐고 물었더니 안톤 체호프의 ‘곰’이라며 첫 대사를 또렷이 기억해 들려준다. “좋지 않습니다. 마님, 몸만 상하실 겁니다….” 전화 너머로 건너온 오빠 목소리에서 아주 잠깐 연극배우의 포스가 느껴졌다. 그 옛날 20대에 늙은 배우를 연기한 오빠는 지금 73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