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산불, 영덕 바다끝 석리마을 폐허로<br/>평생의 거처 눈 앞서 잿더미 되는 생지옥<br/>극한의 공포 체험한 주민들 넋나간 상태<br/>각지서 봉사단체 몰려들어 뜨거운 위로
지난 3월 27일, 봄비가 흩날리자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어떤 이는 울기까지 한다. 이는 단비가 아니라 생명수다. 28일 새벽까지 내린 강수량이 겨우 1~3mm에 불과했지만 그 적은 양으로도, 일주일째 의성을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으로 내달리며 속수무책 미친 듯 날뛰던 화마를 진정시킨다. 흩날리듯 내린 봄비의 도움으로 그렇게 주불을 잡았다.
그러나 그 피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처참하다.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80여km(직선거리)나 떨어진 영덕 바다 끝 석리마을을 전소 시킬 것이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명 따개비 마을을 폐허로 만들고도 성에 차지 않는 듯 포효하며 바다위에 떠 있는 배까지 태워버린 성난 화마는 그렇게 바다도 태워버릴 기세였다.
22일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안동 길안까지 확산된 25일, 낮 기온이 28도까지 오르며 더 건조해진 나뭇잎에 때마침 불어 온 강풍을 타고 불길은 영덕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비화(飛火)되어 내달린다. 시급히 내린 대피령보다 화마가 먼저 들이닥친다. 시뻘건 솔방울이 날아다니는 불구덩이 속에서 극한 공포와 함께 지옥을 보았노라 그들은 말한다. 화마가 지나간 자리. 집도 추억도 일상도 남김없이 타 버렸다.
영덕 국민체육센터 이재민 대피소를 찾았다. 재난 기부 물품들이 쌓여가고 많은 봉사자가 분주히 오간다. 강구 여성의용소방대원들, 행정안전부 재난심리회복 지원센터, 대한적십자사 외에도 각지에서 모여든 많은 봉사단체 단원들이 힘들어하는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다. 산불 피해 지원 성금도 줄을 잇는다. 심각한 산불피해를 본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5개 지역은 경북도에서 ‘긴급재난지원금’도 지급 계획이다.
강구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은 영덕에 불길이 닿은 25일 그날부터 봉사중이다. 삶의 터전이 전소된 피해자들이 임시 거처가 마련될 때까지 봉사는 계속된다. 피해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크다보니 복구가 쉽지 않아 장기간이 될 것 같다며 김성호 영덕군의회 의장이 찾아와 수고를 부탁한다.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이들에게 지나가던 많은 사람이 엄지 척을 한다. 힘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자기들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고맙고 든든하다.
행정안전부 재난심리회복 지원센터 김지태님은 부산에서 왔다. 재난을 당한 피해자들은 물론 구조요원, 봉사자, 산불을 경험한 누구라도 원하면 현장에서 초기상담으로 심리적 응급처치를 한다. 피해자들의 힘든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위로한다. 설마 했던 집이 전소된 것을 보고 온 피해자가 대피소를 방문한 정치인에게 욕을 하고 고함지르는 것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 또한 마음을 푸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심하면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분자분 희망을 상담하면서도 가슴은 먹먹하단다.
그 어떤 물건도 인연이 다하면 떠난다지만 평생을 살아 온 거처가 한순간에 사라진 이 엄청난 현실 앞에서 그들은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또 내일을 희망한다. 절망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보듬고자 많은 사람이 불길보다 더 뜨거운 온정 담아 봉사로, 물품으로, 심리상담으로, 성금으로 희망을 전한다. 희망은 절망을 치유한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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