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영강 줄기 따라 펼쳐지는 150리 벚꽃길
영강(潁江)은 낙동강 발원지 마지막 큰 지류로 문경의 젖줄이다. 상주시 화북면 소재지에서 입석천과 용유천이 만나 영강이 되고, 곧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로 든다. 그리고 농암면 쌍용구곡을 설정하고, 농암면과 가은읍 경계에서 회룡포요, 하회인 ‘섬안’을 만들고, 상강정과 영류정을 짓고, 견훤 후백제왕도 탄생시킨다. 그리고 먹배이를 지나 마성면으로 들어 구랑리 적벽을 어루만지며 동남으로 흐른다.
그 물은 진남교에서 소야천을 만나 완전한 영강이 된다. 거기에서는 영강과 소야천(조령천) 두 물이 만나 ‘용소’가 되고, 깎아지른 절벽에 토끼비리 잔도(棧道)를 내고, 또 다른 회룡포요, 하회인 ‘된섬’을 만들어, 경북제일경을 낳는다. 그리고 불정협곡을 휘돌아 호계면으로 들면 ‘개여울’에 징검다리를 놓고, 신기공단의 용수가 되며, 창동 뱃나들에 배를 띄우고, 우지동 벌판에 물을 댄다. 그런 후 산양면과 흥덕동 사이에 딴봉을 낳고, 영강체육공원을 만들고, 영신숲 유원지를 감돌면서 화천(花川)을 이루어 곶내라는 새 이름도 짓고, 영신도령 이야기로 밤을 새우며, 150리 사연을 풀어놓는다.
영강의 59km, 150리 길은 때로는 굽이쳐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때로는 고요하게 거울을 펼치기도 하며, 산과 나무와 풀과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흐른다. 그리고 상주시 이안천을 만나 영순면 말응리에서 낙동강으로 들면 낙동강은 ‘완전한 낙동강’이 되어 여기서부터 부산 다대포까지 700리 여정을 시작한다. 영강은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꽃길이다. 수많은 절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겨우내 얼었던 물과 대지가 녹으면서 그 희고 냉랭한 기운이 벚꽃으로 흐드러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따라 활짝 피기 시작한다.
점촌시내 앞 20리 강둑길, 4월 초 되면 봄꽃맞이 자전거 행렬 러시
모전천 도랑가 꽃망울 터뜨리면 500m 길가에 파전·막거리 노점
진남교 국도 따라 꽃길 펼쳐지면 약수터·휴게소마다 상춘객 행렬
조령천 변 20리길 꽃터널, 목고개마을엔 주지봉 배경 ‘꽃대궐’이
□ 강둑길 20리 영신 벚꽃길
점촌시내 앞 영강 강둑길은 영신동에서 창동까지 20리. 길 양쪽에는 봄기운이 퍼지는 4월 초가 되면 문경에서 가장 먼저 벚꽃을 피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자전거길’로 나온다. 바람을 가르며, 겨우내 시린 칼바람이 언제 왔던가? 묻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삼삼오오 걷는다. 각기 다른 생각으로 같은 길 위를 걷지만, 벚꽃의 정취에 취하는 것은 모두 같다. 벚꽃이 벌어지는 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고, 생각도 열린다. 활짝 핀 벚꽃 아래 사진 찍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 안다. 벚꽃의 꽃비도 여기서 제대로 맞을 수 있다. 나비가 날아다니듯 하늘대는 벚꽃의 춤사위는 4월 중순까지 이어지고, 남녀노소 가릴 것도 없이 몸도 마음도 봄이 된다.
□ 점촌시내 모전천 벚꽃축제
그 사이 영강의 작은 지류인 점촌시내 모전천 ‘반쟁이’. 도심을 가르는 도랑 가에 벚꽃이 망울을 터트리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각설이가 축제를 연다. 포스터도 없고, 현수막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귀신같이 안다. 벚꽃이 피면 봄의 한 구색(具色)으로 이 축제가 열리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문경시민 모두가 안다. 특히 저녁이면 춘정(春情)을 못 이기는 사람들로 500m 거리가 북적거린다. 엿 사달라는 각설이의 입담이 외설의 담장을 아슬아슬 걸어가면, 더는 못 배기고 주머니를 끌러 엿을 사는 사람들. 그러면 꺾고 굴리며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한 곡조 노래를 선물한다. 그 옆에는 닭발·족발·파전·소주·맥주·막걸리에 노래도, 엿도, 만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사가 붉고 푸른 전등 빛에 또 다른 벚꽃을 피운다.
□ 진남교반 산벚꽃
영신 벚꽃길을 지나 북으로 오르면,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모두 모이는 불정협곡부터 10리 길은 외통수다. 산도, 물도, 길도 한 줄기씩, 서로를 안고 돌 뿐이다. 가파른 산이 동서에서 깎아 질러 산문을 만들었고, 그 사이로 물과 길과 사람이 드나든다. 산문을 들어서면 영강을 따라 진남교 10리 벚꽃 길이 옛 3번 국도를 따라 펼쳐진다. 그리고 어룡산 안부(鞍部)와 고모산성, 토끼비리에는 산벚꽃, 산 복숭아꽃, 산 살구꽃이 ‘봄의 게릴라’처럼 여기저기 피다가 이내 ‘봄의 혁명’을 성공시켜 온 산하를 봄으로 점령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봄으로 진군하는 꽃들의 맨 앞에 벚꽃이 있다. 약수 받는 사람, 민물매운탕 먹는 사람, 휴게소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 오미자테마터널을 감상하는 사람, 토끼비리를 걷는 사람, 고모산성을 오르는 사람. 그들 모두 벚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봄의 나그네들이다.
□ 조령천 20리 벚꽃길
진남교반을 돌아서면 ‘봉생정’에서부터 또 다른 20리 벚꽃길이 펼쳐진다. 영강의 큰 지류인 조령천(소야천)을 따라간다. 바쁜 국도에서 벗어나 멀리 주흘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면서 아늑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먼 산에서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부르는 소녀가 잔잔하게 손짓한다. 주지봉을 배경으로 ‘목고개마을’이 꽃 대궐을 이루고, 성주봉을 배경으로 ‘솥골마을’이 꽃 잔치를 벌이는 장관. 주흘산과 영강과 들판과 마을이 벚꽃을 매개로 봄의 왕국을 형성한다.
□ KTX문경역-문경온천 벚꽃길
조령천 20리 벚꽃길이 끝나는 문경읍 마원리. 옥녀봉 꽃 잔치 아래 ‘철마(鐵馬)’가 멈춘다. 수도권에서 뻗어오는 중부내륙철도의 KTX 종착역, ‘문경역’이다. 주흘산은 이마에 닿아 있고, 문경의 고도(古都)가 역사와 문화를 펼친다.
바로 앞 온천지구에는 영강의 또 다른 지류인 신북천을 따라 겹벚꽃이 좋다. 서울대학교병원인재원 쪽부터 문경골프장 입구인 고요리까지 10리에 펼쳐져 있다. 단산 활공장과 모노레일, 문경새재리조트, 수많은 크고 작은 펜션들, 벚꽃 아래 이 마을들은 유럽풍을 자아낸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