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부모·자식 관계는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는 관계일 테다. 때로 부모·자식 간에도 돈이나 그 밖의 것으로 서로 외면하고 심지어 살상을 벌이기까지 한다. 그런 것들은 예외로 치부된다.
친구 관계도 고등학교 다닐 때쯤부터 깊이 사귄 이들끼리는 우정으로 평생을 지켜가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동창은 시골 동창 아니면 너무 어려서, 삶이 갈려서 오래가기 어렵고, 대학 동창은 머리가 커진 뒤라 순수한 관계를 만들기 어렵다. 고교 동창 정도면 한두 사람씩은 평생의 관계를 맺어나갈 수도 있다. 그 친구들은 정의감이 같아서가 아니요 기질이 맞고 정이 들어서 길게 진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사회 나가서나 대학에서도 대학원 같은 곳에 가서는 정말 믿고 통하는 관계는 이루기 어렵다. 무엇보다 자기 존재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경쟁이 되고 위해를 가하는 존재로 여겨지기 쉽다. 나이 엇비슷한, 아래위 5년 정도의, 같은 세대 사람들은 평상시 친해도 끝내 상대를 불신하고 저버리기 쉽다.
이렇게 서로 믿고 의지하기 어려운 사람 관계 속에서 어쩌다, 정말, 저 친구는, 저 선배는, 저 상사는, 그리고 저분은 믿을 수 있다고, 따를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아주 드물게 얻어질 수 있다. 희귀하게 그런 관계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세상은 거칠고 인생은 험난해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의지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그 괴로움, 외로움을 많이 덜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라면 어떨까? 글쎄다. 꼭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고교 동창이 한둘 있고, 대학에 믿고 의지할 선생님이 또 그만큼은 계시고, 대학 나와 문단과 학계에서 이런저런 관계로 얽힌 좋은 선후배들, 친구들이 또 몇 사람은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숫자를 너무 많이 ‘잡은’ 것이 아닌가 하고 염려한다.
더구나 지난 삼 개월여 동안 나는 과연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 어떤 믿음의 위기를 겪고 있고, 이유는 비교적 간단명료해 보인다. 무엇인가, 내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표명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형이, 선생님이, 당신이 그렇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나는 또 나대로 오랫동안 숙고해 온 데다 특히 지난 3개월은 사태가 엄중한 만큼 별일 아니라고 쉽게 의견을 접어버릴 수도 없다.
이런저런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혹은 자기 확신의 적개심에서 쏟아내는 말들이야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으면 아픔도 없는 까닭이다. 굳게 믿는 사람들이 걱정 반, 실망 반의 반응을 보일 때는 그러므로 상황이 달라 마음 아픈 것을 감추기도 쉽지 않다.
인내하고 기다릴 수 있다고 애써 생각한다. 사람 사이의 믿음이란 세상의 정치보다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 정치적 견해란 얼마나 ‘쉽게’ 변하는 것이던가. 세월을 조금이라도 길게 돌아보면 이미 우리들이 그런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렇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