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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섬세함, 작업서 빛 발하죠”

김락현 기자
등록일 2025-03-20 18:50 게재일 2025-03-2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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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 인생 38년  국담 곽미용<br/>선물 받은 작품 한 점에 이끌려<br/>나무 다루는 고된 작업 발 들여<br/>남편이 쓰던 붓글씨 이젠 직접<br/>후배작가 돕는 일에 진심 다해

“남성의 영역으로 알려진 서각 분야에 여성 후배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38년 동안 서각가로 일해 온 국담 곽미용(65·사진)씨의 말이다.

곽 서각가는 “서각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국보 제 52호인 팔만대장경”이라며 “서각은 문자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서예적인 멋과 운도(運刀)에 의한 멋, 색체에 의한 회화적인 멋, 그리고 공예적인 멋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자 전통 예술이다”고 설명했다.

그도 처음부터 서각가로 나선 것은 아니다. 그는 계명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어릴적부터 나무가 좋아서 나무로 물건을 만들어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대학생 시절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가 스님으로부터 서각 작품을 선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서각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서각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작업이 고되기도 하지만 남성의 영역으로 알려진 탓에 진입이 쉽지 않았다.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판목시켜서 결을 삭히고, 살충과 동시에 진을 빼고, 건조시킨 후 판면을 대패질하는 준비 작업은 남성들도 하기 힘들었다.

그는 나무를 다루는 일이 좋아 누가 뭐라고 해도 서각일을 고집했다. 경산 와촌에 작은 공방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서각일을 시작했다.

교사를 하던 남편이 많은 도움을 줬다. 남편은 취미로 붓과 더불어 지내다 조기 퇴직 후 본격적인 서예가의 일을 하면서 곽 서각가를 도왔다.

곽 서각가는 남편의 붓글씨를 매개로 서각일을 했다. 서각이 불교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보니 곽 서각가의 작품들도 유명 사찰의 외벽에 전시돼 있다. 대표적으로 은혜사와 보경사에 작품이 법당을 장식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7년 전 남편과 사별하면서 서각일을 잠시 쉬기도 했다. 그 기간 붓글씨 공부에 전념하면서 지금은 본인이 직접 붓글씨를 작성해 서각을 하고 있다.

곽 서각가는 “오랜 시간 서각일을 해오면서 느낀 것은 여성들의 섬세함이 서각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남성의 영역으로 알려진 탓도 있고 공정이 힘든것도 있어서 그런지 여성 후배들 중 3년의 기간을 넘지 못하고 서각일을 그만 두는 것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이 서각이라는 매력에 심취하길 바란다”며 “여성 후배들을 돕기 위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도 했다.

곽 서각가는 자신의 작업장에 60평 규모의 전시장을 마련해 후배 여성 예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장에는 서각을 물론 도자기, 서양화, 동양화 부분의 작가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곽미용 서각가는 마지막으로 “서각은 글을 받아서 작업을 하게 되는데 작품이 완성되면 글쓴이의 이름만 들어가고 정작 서각 작업을 한 사람의 이름은 작품에 기재할 수 없다”면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 이 부분을 꼭 바꾸어 놓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락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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