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림
아버지 성묘 다녀 온 겨울 숲에는
고라니 발자국들이 지그재그로 찍혀 있었다
고라니가 숨어서 보았을 텐데,
차례상 거두는 손길에 참 실망했겠다
북어포 찢어 던져놓고 올 걸
곶감 서너 개 뿌려줄 걸
돌아오는 길,
하트모양 발자국들이 배고프다고
내 마음밭을 헤집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작은 징표도 지나치지 않고 마음 쓰는 시인의 영혼. 성묘 다녀오며 시인은 하트 모양의 고라니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 모양은 배고파하는 생명 자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시인은 성묘 상에 올려놓았던 음식의 일부라도 던져놓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마음 아파한다. 그리고 묘 안에 계시는 아버지가 자신의 묘로 시인을 불러들이는 이유가, 숲속의 생명들에게 조금이라도 음식을 나눠주라는 것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