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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한 알

등록일 2025-03-10 18:59 게재일 2025-03-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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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나, 신나게 땅에 떨어질래

곽 찬 한 알의 온 무게로, 전속력으로

땅에 처박히겠어. 단숨에 땅을 들이받겠어

이 순간이 영원인 것처럼, 내 둥근 몸이 전 지구인 것처럼

단단한 땅을 부수고, 흙이 울리는 소리를 들을래

사방에 부서지는 사과 향기를 흩뿌리겠어, 황홀하도록

꼭지와 씨앗이 도려내진 채 청과상 쇼윈도에 갇히느니

냄새 없는 무늬처럼 비닐에 담겨 누군가의 접시로 실려가

조용하고 우아한 칼놀림 아래 같은 크기로 8등분 되느니

아, 차라리 떨어져 깨지겠어,

속살 드러낸 난만한 붉음이 되도록

큰 소리로 소란스레

바람을 일으키면서 쿵!

모든 삶은 추락할 운명을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저 나무에 매달린 사과처럼. 위의 시의 사과는 그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온 무게로” “땅에 처박히겠”다고 다짐한다. 하여 자신의 추락이 “단단한 땅을 부수고” 흙을 울리도록 하겠다고, 쇼윈도에 갇히거나 누군가에게 먹히느니 완전히 깨어져 “사방에 부서지는 사과 향기를 흩뿌리겠”다고 말이다. 아마 시인이란 존재는 이런 다짐을 하는 이가 아닐까 한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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