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법 수업을 할 때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일인칭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주어를 남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 일인칭은 필연적으로 ‘나’일 수밖에 없으므로 불필요한 단어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내가 나를 나로 인정한다’는 말은 참으로 거추장스러운 듯하다. 하나 마나 한 표현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단조롭고 식상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식상함이야말로 이 문장의 본질이기도 하다.
내가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은 칼럼을 쓸 때다. 세상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나의 시각을 명확히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더라?
경북매일신문에 신설되는 코너 ‘2030, 우리가 만난 세상’에서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얼마나 두려웠던가. 첫 번째 글을 송고하며 덜덜 떨던 기억이 선연하다. 어느덧 나는 ‘20’에서 ‘30’으로 넘어왔고 눈빛이 조금 흐리멍덩해진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손을 번쩍 들던 나는 어디로 갔나. 원고 쓰는 일을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루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책상 앞에 앉는다. 좋게 보면 여유가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을러진 셈이다.
특히 요즘 그와 같은 권태로움이 커지고 있는데, 어쩐지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그런 듯하다. 몇 년째 함께하는 필진이 정말이지 대단해 보인다. 아니,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아있단 말이야?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고 비척비척 노트북 전원을 켜 슬픈 리듬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을 땐 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썼나 들춰 보기도 한다. 매우 수치스러운 작업이다. 손가락으로 눈을 반쯤 가리고 후루룩 읽어도 탁 걸리는 몇몇 문장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아주 가끔이지만 꽤 기특한 부분도 보인다. 그래?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이지? 물론 그러한 마음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이 글 역시 나의 부끄러움이 될 것을 알지만, 뭐, 별 수 없지.
내가 차곡차곡 써 온 글을 바라보노라면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한때 나는 인간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성장해 가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생이 꼭 점진적인 상승의 구조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삶은 하나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성취와 소유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려 하면, 오히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나’를 찾는 과정에 관해 무수한 철학자들이 한 마디씩 내어놓지 않았던가.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 장자는 사회적 규범이나 외부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아의 발견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가정할 때 과연 지금처럼 살 것인가 자문하도록 했고, 라캉은 자아란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통해 형성된 오인된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현자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광장에 모일 필요 없는 세상이다. 훌륭한 사상은 도처에 범람하며 우리는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토록 좋은 말을 우격다짐으로 뱃속에 넣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건 왜일까? 아는 것과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니. 그 괴리가 클수록 ‘나’라는 사람은 복잡하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할 리 없다. 예쁘지도 않고 어느 때엔 천박하기까지 하다. 두피를 벅벅 긁으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문장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내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인정의 순간이 하나의 깨달음이다. 그렇게 쌓인 고민이야말로 ‘30’으로 가뿐히 넘어온 내가 얻은 값진 흔적이다.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 것을 포기했다. 하루를 정성껏 닦는 정도로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느슨한 분투 속에서 만나게 되는 세상을 글로 적고 번번이 미궁에 빠진다.
이전에는 혼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눈물 콧물 쏟아내며 발을 굴렀다면 이젠 바닥에 벌러덩 누워 하늘이나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무엇보다 나는 단 한 번의 마감도 펑크내지 않은, 성실한 노동자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