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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려 하면 잘리지 않는다

등록일 2025-03-03 18:39 게재일 2025-03-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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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언스플래쉬
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언스플래쉬

칼을 쥐고 무언가 잘라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잘리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미스터 초밥왕. 최근 우연히 읽게 된 만화책이지만 생각보다 나는 더욱 깊게 빠져 들어 읽고 있다.

거대 초밥회사인 사사 초밥이 장악하고 있는 홋카이도 오타루시. 주인공인 쇼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토모에 초밥은 사사 초밥의 훼방 속에서 간신히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가게가 망해갈 무렵, 다시 가게를 일으킬 기회인 초밥 콘테스트를 쇼타가 나가게 되고 어딘가 미숙하지만 성장 가능성을 알아본 오오토리 세이고로의 스카웃으로 도쿄의 유명 초밥집인 봉초밥집에 입성하게 된다. 곧바로 초밥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쇼타의 담당은 배달, 접시 닦기, 청소뿐이었고 간신히 그럴 듯한 임무가 주어지면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아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뿐이다.

하지만 쇼타는 그 어려운 도전 속에서 사람을 믿는 마음과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고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정진한다. 늘 새롭고도 강력한 도전자를 만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약점이 더 도드라지지만 약점에 함몰되어 자신감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될지 안될지 해보지 않는 이상 모른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계속 꾸준함으로 나아간다. 상대의 방해와 계략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놓고 쇼타를 험담하는 상황 속에도 쇼타는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상대의 본질과 약점을 파악하고 만다,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집중하여 근원을 찾는 쇼타는 결국 스스로를 믿는 힘에 열쇠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쇼타는 늘 성장한다. 어제보다 더 깨우치고 더 배우며, 자신보다 초밥 기술을 16년이나 앞선 라이벌의 코를 짓밟기도 한다. 쇼타는 그런 해맑고도 우직한 모습을 통해 알 수 없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쇼타가 늘 열의에만 가득차 있는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강적을 만날 때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쇼타는 심히 당황한다. 두 주먹을 질끈 쥐고서 어쩔 줄 모르는 막막함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땅 아래로 시선을 향해 있다. 나는 그러한 상태를 요즈음 나의 모습과 계속해서 겹쳐 보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늘 쇼타의 주변인들이 나타나 한마음으로 쇼타를 응원한다.

그가 왜 초밥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쇼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며 지지 않아야 되는 이유들에 대해 다시금 쇼타에게 알려준다. 쇼타 또한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다시금 일어나 씩씩하게 나아간다.

내가 지금 어딜 나아가고 있는지 모를 때, 믿음으로 이어진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고, 나는 그러한 믿음으로 이어진 유대감이 삶을 살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자 중요한 삶의 이유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만화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지게 느낄 만큼 믿음과 유대로 이어진 선의 편은 늘 이기고, 증오와 미움, 거만으로 점철된 악의 무리는 늘 거만에 취해 승부에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만화적인 권선징악의 주제가 좋다. 선은 어떤 방향으로든 이긴다라는 다소 유치하고 일차원적인 이 주제를 애써 믿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세상은 언제까지고 느리고 어리숙한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는 알게 모르게 그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게 제일 중요한 건 한낱 응석 뿐만이 아닌,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고 노력하는 마음을 갖는 것.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내 앞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다. 세상이 아주 새까맣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당혹스럽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내 주변의 믿음과 사랑을 떠올리면 된다.

최근엔 아주 어릴 적 논밭에서 작업을 하고 있단 할머니를 기다리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기에 전생이나 꿈결처럼 희미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일을 다 마치고 나서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갔던 언덕의 시골 풍경과 모퉁이의 코스모스의 길이 기억 난다.

할머니가 일을 마치길 기다리다 같이 손을 잡고 집에 가는 길은 분명히 천국의 무지개를 마주한 것처럼 따스했고 지나치게 평온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일은 무언가 급히 잘라야만 한다는 강박의 칼자루를 내려두고, 그저 현재를 지혜롭고 편안하게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 삶을 평온하게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고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나날들이지만 마음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는 사랑의 요소를 생각하며, 오늘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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