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인
길은 길게 기더라
배밀이로 기어서 갈 길 올 길을 빤히 보여주거나
대문 앞까지 안전하게 길손을 배송하더라
(중략)
길은 제 방식의 길을 버리지 않는 고집이 있더라
나서부터 물 발자국 아래 기었고 밟혔고
움직이는 목숨들의 길이 되는 생
자기는 맨바닥까지 낮추는
이타의 길,
눈부셔라
연달래 꽃장화를 신은 듯 갓길 꽃빛도 곱더라만.
시는 사물의 이미지를 재창출하여 삶과 세계를 새로이 생각하게 이끈다. 위의 시는 ‘길’의 이미지를 재창출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나, 우리 삶을 밑에서 받쳐주는 존재자가 있다. 길이 그렇다. 길은 “자기는 맨바닥까지 낮추는/이타의 길”을 살아간다. 길은 자신을 배밀이로 간신히 밀어내면서, “움직이는 목숨들의 길이 되”어 살아가는 것. 가끔 길의 이 고단한 길을 “갓길 꽃빛”이 곱게 단장해주기도 하지만.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