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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요새(부분)

등록일 2025-02-13 18:22 게재일 2025-02-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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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금숙

아름다운 것은 쉽다

수리 발톱 같은 뿌리로 흙을 틀어쥐고

흙 속의 피를 빨아올려

태양계속에

벨벳보다 부드러운 수백 겹의 겹눈을 굽는다

푸르고도 연하고도 날카로운 가시는

대기 속의 화농을 쿡 찌른다

조롱도 자부심도 이 밀도 앞에선 잠잠

들어간 자는 나올 수도

나온 자는 들어갈 수도 없으니

이 감옥에서는 늘 불 냄새가 난다

(하략)

위의 시에 따르면, 장미는 역설적이게도 공격성을 통해 아름다움을 얻는다. “흙 속의 피를 빨아올”리고 태양빛을 받아 부드러운 이파리들을 구워내는 불로 사용하니. 이 공격성은 연하면서도 날카로운 가시로 대기 속의 화농을 찔러 터뜨리는 데서도 나타난다. 하여 그 가시로 대기는 더 깨끗해지는 것, 세계의 정결함을 지켜내는 가시는 장미 넝쿨을 함부로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요새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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