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토론할 책은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다.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감상할 때 어느 정도 거리에서 보아야 하는지, 서양화와 달리 한국화는 오른쪽 위에서 대각선을 그리며 왼쪽 아래로 시선을 옮기라고 알려준다. 오래전 이 책을 읽은 뒤부터 미술관에 가면 그림 크기 대각선의 1.5배 정도 거리에서 먼저 보고, 다시 가까이에 가서 붓의 터치나 세세한 표현을 들여다보았다. 가까이에 또 멀찍이 떨어져서 자세히 느끼려 했다.
한국의 미를 읽을 줄 어찌 알고, 경주문화재단에서 우리를 위해 획기적인 전시를 준비해주었다. 이런 우연을 경험할 때마다 신이 우리를 내려다보시다가 옛다 하고 좋은 복주머니를 던져주는 것만 같다. 감사하게도 경주문화관1918(구 경주역 건물을 전시관으로 꾸몄다.)에서 ‘경주에서 만나는 조선’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가 토론하는 책에 나오는 그림이 대부분 있었다. 진품이 아닌 레플리카전이지만,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70여 점의 명화를 현대적으로 복원한 레플리카를 통해 조선 회화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재조명했다. 이번 전시는 포스코의 Pos ART 기술로 강판 위에 제작했다. 작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예술을 느낀다. 작품 표면의 질감을 손으로 만져보니 감동이 달랐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그림 옆에 설명해놔서 손으로 글과 그림을 볼 수 있게 했다.
레플리카는 고전 명화들을 현대기술로 복원한 고품격 복제품이다. 원작의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보존하며 섬세한 디테일과 색감을 충실히 재현해 원작에 가까운 감동을 제공한다. 맨 앞에서 우리를 맞는 그림은 강산무진도다. 책에서 알려준 한국화 감상할 때 제일 중요한 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으며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폭 8m에 달하는 웅장한 산수화인데 실물은 보존상태로 인해 부분적으로만 전시했다는데, 이번 레플리카전에서는 전폭을 완벽히 재현하여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9월에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촉잔도권’을 걸어가며 감상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영상으로 찍으려니 감탄이 나왔다. 그림 속의 탑은 경주의 탑의 형태와는 달라 중국의 탑인가, 자세히 만지며 보다 보니 높은 바위산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스마트폰에 하듯 손으로 확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정선의 박연폭포는 추상화 같다. 폭포가 시작하는 곳과 물이 떨어지는 곳에 검은 바위를 툭 찍고 물줄기는 한 번에 힘차게 쏴아 쏟아져서 귀가 먹먹한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과감한 생략이 현대 추상화를 압도한다.
신윤복의 미인도와 연당의 여인을 만나고, 화장실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나가면 거기에도 그림이 전시되어있다. 관동팔경 중 북한에 있어서 가보지 못하는 총석정과 강원도 여행길에 들르는 망양휴게소같은 망양정이 김홍도의 눈을 통과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강세황의 ‘매란국죽’, 신사임당의 ‘초충도’, 이암의 ‘모견도’ 등속의 작품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붙어있으니 관람자를 배려한 전시다.
손으로 만져보는 그림으로 제일 좋은 작품은 윤두서의 ‘자화상’이다. 수염 한 올 한 올 강렬한 눈빛까지 더듬어서 자세히 느꼈다. 김정희의 ‘세한도’ 앞에서는 그림 속 하얀 겨울을 느끼려 더 천천히 걸었다. 김홍도 ‘풍속화’의 틀리게 그린 그림을 숨은 그림 찾듯 자세히 보는 것도 재미라고 알려준 오주석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전시장 끝에는 색칠놀이하는 가족들이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 중이다. 우리는 1918카페에서 대추차와 팥물을 듬뿍 뿌린 찐빵을 먹으며 그림 이야기를 나눴다. 굿즈로 경주가 그려진 화투를 사서 나오니 곧 봄이 오려는지 날이 풀리고 있었다. 전시는 이달 23일까지며 토요일에는 오후 2시, 4시 도슨트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김순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