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하기 좋은 책 추천
많은 이가 작금을 낭독의 시대라 한다. 혼자 묵독하던 책을 여러 사람과 어울려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낭독 모임도 곳곳에 생겼고, 독서회 중에는 회원들이 돌아가며 한 사람이 책을 읽어주고, 그것을 들으며 뜨개질을, 어떤 팀은 컬러링북에 색칠을, 또는 만다라를 그리는 모임도 있다고 한다. 다양하게 낭독을 공유한다. 이번 설에 부모님께 시를 들려드리고, 조카들은 색칠하며 연휴를 꾸며도 좋겠다. 낭독하기에 좋은 책 몇 권을 골라보았다.
‘노벨문학상’ 한강의 작품, 묵독할 때보다 함께 읽으니 더 와닿아
사투리 버전의 ‘어린왕자’는 구수한 리듬에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구들과 목소리 맞춰보며 색다른 추억 쌓아
◇ 한강 작가 읽기
2024년이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들리자 출판사와 서점은 마비가 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책 주문이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책을 주문한 친지들이 입 모아 묻는 말은 비슷했다. 책이 어려워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재미있게 즐기는 좋은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대부분 독자가 완전하게 이해하기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이럴 때 낭독을 권하고 싶다. 우리 독서 모임도 정해진 목록이 있어서 어쩌나 하다가, 다른 날을 잡아 만나 그 자리에서 나눠 읽었다. 한강은 시, 수필, 소설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펴냈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는 권양우 낭독사랑방에서 20여 명의 동인이 나눠 완독했다. 3시간이 걸렸다. 시의 느낌을 나누고, 노벨상 수상작에 한강이라는 이름이 불리던 날의 감동도 나눴다.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뻤다고 했다. 어떤 이는 한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노벨상에 문학상이 존재한다는 걸 이번에야 알았다고도 했다.
얼마 후 독서회 회원들과 아침 8시에 만나 오후 1시까지 ‘소년이 온다’를 읽었더니, 반을 남기고 다른 날을 하루 더 정해, 마저 읽었다. 다음 달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두 번에 나눠 읽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경하는 ‘소년이 온다’를 쓴 작가로 등장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새’와 ‘눈’은 공통점이 많다는 것도 같이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혼자 묵독할 때보다 만나서 낭독하니,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와 앉았다. 회원이 읽는 것을 들을 때 문장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고, 아무 때고 이해가 안 될 때 멈추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니 도가 터지듯 그렇구나 하고 끄덕였다. 함께 읽는 것이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다 같이 공감했다. 세 번째 책으로 ‘희랍어 시간’을 2월에 낭독하기로 정했다.
◇ ‘어린 왕자’ 사투리 버전 읽기
‘어린 왕자’는 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150개가 넘는 언어로 출판했는데 포항 사투리 버전 ‘애린 왕자’가 125번이고, 전라도 사투리는 154번째로 세상에 등장했다. 제주도 사투리도 있으니 골라 읽어도 좋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과 함께 ‘애린 왕자’를 읽고 줌으로 만나 이야기 나누자 했더니, 고향이 안동이지만 30년 이상 서울 언저리에 살다 보니 글로 된 경상도 사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포항에 사는 철학의 위안 독서 팀에게 한 단락씩 나눠 녹음해서 공유하자고 했다.
핸드폰의 기능이 다양해져서 영상 찍기뿐만 아니라 목소리만 녹음해서 파일로 공유하니 카세트테이프도 필요 없었다. 부산 출신 현미씨의 목소리, 경기도가 고향인 정희씨의 서울 억양의 사투리, 포항에서 나고 자란 진아씨의 진정한 포항 사투리까지 더해지니 애린 왕자가 살아 움직였다. 여수가 고향인 하원씨에게 전라도 사투리 ‘에린 왕자’를 녹음해 달라고 해서 들었다. 구수한 남도의 사투리가 경상도 사람이 읽어서 낼 수 없는 뉘앙스까지 담아내니 절묘했다. 책을 귀로 읽으니 그 맛이 남달랐다. 함께 들으며 웃고 즐겼다. 독서 모임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 ‘즐거운 소음’(두 사람을 위한 시)
1989년 뉴베리 수상작이다. 뉴베리상은 어린이 글에 주는 상이다. 오래전에 상을 받은 작품이 2024년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곤충들의 일생이 그려진 문장들, 세밀화로 그려진 곤충들이 시와 함께 살아 움직인다.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은 둘이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야 운율이 살아난다. 마치 이중창처럼. 시는 악보처럼 한 사람의 목소리 부분, 둘이 함께 이중 화음으로 나눠 놨다. 같은 줄에 있는 구절은 내용이 달라도 같이 읽고 공간이 비어있는 사람은 쉬면 된다. 같이 읽다 따로 읽다 보면 저절로 시가 노래가 된다. 마치 듀엣처럼.
이 책이야말로 묵독하면 재미가 없다. 소리 내어 읽어야 그 맛이 산다. 미국에서 읽기 체험 교과서로 불린다. 다른 곤충들에게 물 위에 뜨는 법을 알려주는 소금쟁이, 하루살이, 메뚜기, 반딧불이, 각자 곤충들의 삶이 시로 적혔고 함께 읽으면 곤충들의 목소리가 들려와 교실이 풀밭이 되고, 숲이 된다.
이 책을 듣게 된 것은 라디오에서다. 지난봄 당일치기 여행을 하려고 새벽에 길을 나섰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니 자동으로 라디오가 들렸다. ‘라디오 북클럽’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림책 한 권과 즐거운 소음을 함께 읽어주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방송이라니 반가워서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일요일만 하는 방송이었다. 듣는 이가 적은 새벽 6시, 그것도 모자라 다들 간만에 늦잠을 즐기는 일요일 새벽 하루 방송이라니, 책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지 말해주는 시간대요 방송편성이었다. 다시 듣기로 몇 편을 찾아 들으니 좋은 책이 많았다. 메모해 두었다가 주문한 책이 몇 권이나 된다.
그중에 즐거운 소음은 북클럽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책이었다. 감사한 방송이다. 긴 연휴 동안 부부가 함께,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와 목소리를 맞춰보면 색다른 추억이 만들어질 소중한 책이다.
/김순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