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나무 밑에서는 아이들이 떠들며 논다
나는 까치에게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꼬마들은 아예 아무 생각 없으리라
까치에게도 아무 생각 없을 것이다
까치는 아이들을 사람으로 안 보는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앉는다
작년의 그 까치일까
내년에도 올까?
아이들만 있다면 더욱 허전할 내 마음이
까치가 있어 치료 받는다
까치가 온 것도 모르고
옆 호의 부부는 방 안에서 키득거린다
까치가 왔으니 생각들을 끄자
까치가 먼 데서 찾아왔으니
인천하고도 송림동 이 산동네를
까치가 와서 어린이들과 같이 놀고 있으니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산다. 문학적, 철학적 생각이 아니다. 대개 생활 문제, 돈과 관련된 생각이다. 그러니 그 생각은 우리를 부자유에 얽맨다. 저 떠들며 노는 아이들과 “아무 생각 없을” 까치들이 어울리는 장면은, 생각으로 가득 찬 어른에겐 자유로운 존재로 보인다. 시인은 저 장면을 보면서 잠시라도 “생각들을 끄자”고 마음먹는다. “먼 데서 찾아” 온 까치가 “내 마음”을 치료해준다고 느끼면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