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바닷가에서 ‘호남 바다의 시인’을 떠올리다 <br/>이주빈 시집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
요즘 같은 겨울이 그렇고, 여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바다는 사계절 아름답다. 동해와 서해가 다를 바 없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자동차로 3~4시간이면 달릴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다.
바다는 끊임없이 시심(詩心)을 자극하는 공간. 그래서다. 영남 바닷가엔 시인이 적지 않고, 호남 바닷가에도 시인이 많다.
최근 이주빈(56) 시인이 호남의 바다와 섬을 노래한 시집을 상재했다. 아래는 ‘영남 기자’가 ‘호남 시인’의 삶과 문학을 되짚어본 짤막한 기록이다.
“‘흔하기에’ 어떤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 이주빈의 시는 이주빈을 닮았다.
허위허위 세파를 헤치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이상향’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무너지지 않을 미려한 성채로 다가온다. ”
▲바다, 섬, 그리움으로 요약되는 이주빈의 시편들
낮지만 명확하고, 강변하지 않아도 설득력 높은 목소리을 가진 사내 한 명을 알고 있다. 흑산도에서 태어난 그는 목포와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이후 꽤 긴 시간을 기자로 살아가다가 지금은 고향 근처로 돌아가 ‘바다’와 ‘섬’에 관련된 일을 하며 지낸다.
그와 10년 가까이 같은 직장을 다닌 기자는 한잔 술에 취해 꿈꾸는 눈동자로 유년의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선후배와 주고받는 말 속에 은유와 상징을 무시로 담아내던 그는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시인의 성정으로 세상과 인간을 대해왔을 수도 있었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의 근거인 이주빈 시집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이 지금 앞에 놓여있다. 낮은 목소리로 상대를 설득할 줄 알고, 순정한 소년의 눈망울을 가진 이주빈이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써서 간직해왔을 시를 읽는다.
이주빈의 시를 관통하는 세 가지 핵심어는 바다, 섬, 그리움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세 가지를 소재로 이야기할 때 이주빈의 목소리엔 신명이 묻어났고, 눈동자는 유독 빛났다.
이번 시집은 바다와 섬, 그리고 그리움이 어떻게 그를 만들었고, 간난신고의 세상을 견디게 했으며, 내일을 그려가게 했는지에 관한 부연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이주빈의 고향은 바다, 그 가운데 외롭게 떠있는 섬이다. 부모미생전의 그리움이 생겨난 그곳을 짧고도 강렬하게 노래하는 ‘비 내리는 흑산바다’를 읽는다.
‘눈으로만 듣고 싶은/노래 있다//귀로만 보고 싶은/사람 있다//입술로만 부르고픈/이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인 이주빈은 흑산도에서 태어났다. 태를 묻고 더없이 다감했던 어머니 곁에서 유년을 보낸 그곳은 그의 품성이 형성되고, 감수성이 뿌리는 내린 공간일 터.
거기엔 ‘눈으로 듣는 노래’와 ‘귀로 보는 사람’ 또한, ‘소리 없이 불러야 돌아보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산다. 이 역설이 외떨어져 존재함으로써 외로움을 이겨낼 힘을 키우는 ‘섬 소년’ 이주빈을 기른 게 아닐지.
수십 차례의 만남에서 기자가 이주빈에게서 느낀 감정 중 하나는 ‘고독함’이었다. 큰 소리로 “나는 외롭다”고 하지 않아도 그의 손짓에서까지 확인되는 쓸쓸함과 고적함. 세상을 감각하는 시인의 촉수는 섬세하기에 그 섬세함으로 인해 상처 받는 경우가 흔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무인도’라 제목 붙인 시에서는 이주빈의 외로움이 가감 없이 읽힌다. 이런 노래다.
‘봄바다에 아지랑이 피듯/세상에 잘 깃들고 살아야 할 텐데//겨울바다에 눈 내리듯/그대 마음에 편히 스며야 할 텐데//나의 바다엔/허구한 날 소슬비 들이쳐//가없이 표류하는/작은 종이배 하나.’
16세기 방식으로 표현해보자. ‘소인배가 자신을 걱정한다면 군자는 남을 걱정한다’. 그렇다. 인간 개개인은 누구 할 것 없이 고독하고 쓸쓸한 존재다. 그걸 인식한 후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감정을 다스리느냐가 군자와 소인배를 구분하는 잣대다.
타자를 향해, 남을 향해,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객체를 향해 ‘아지랑이 피듯 세상에 잘 깃들’라고, ‘눈 내리듯 그대 마음에 편히 스며’들라고 축원할 줄 아는 이주빈이 소인배가 아님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명철하게 바라보려는 마음까지 갖췄기에 자신을 ‘가없이 표류하는 작은 종이배’라고 노래하지 않았을까?
▲모든 게 부족한 섬으로의 귀환을 꿈꾸는 시인
이 시인은 일렁이는 파도를 타고 바다 저편에서 건너온 ‘달콤한 육지의 과자’를 먹으며 유년을 보냈으니, 육지에 대한 동경과 궁금증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주빈은 불편이 적은 육지에서의 삶보다 모든 게 부족하고 모자란 섬으로의 귀환을 내내 꿈꿔왔던 것으로 보인다. 왜였을까? 아래 인용하는 시 ‘섬집’처럼 아무 것도 오지 않는 곳인데….
‘작은 우체통 녹슬어 으스러질 때까지/편지 한 통 오지 않았다/지붕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간 안테나에도/안부는 잡히지 않았다…(후략)’
위 시가 그려내는 풍경은 적막하고 우울하기 그지없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100년쯤 전에 그려진 낡아버린 수채화 같은 풍경이다. 네온사인 번쩍이는 육지와는 외떨어진 섬마을의 소년들은 오지 않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대상이 불명확한 그리움 속에서 나이를 먹어간다. 이주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른이 되었을 때 알게 된다. 모든 기다림의 끝은 허망하다는 걸. 그러나, 인식이 거기서 멈춘다면 그건 시인의 태도가 아니다. 허망함을 넘어 세상과 인간의 전망을 만들어낼 언어를 찾아가야 한다. 이주빈은 그 전망의 언어를 자신이 태어난 곳, 즉 푸른 바다 위 ‘작은 섬’에서 모색하고 있다.
▲이주빈 시의 출발은 ‘그리운 어머니’가 아닐지
이주빈에게 ‘어미’는 ‘사랑’과 동의어다. 지난 몇 년간 써온 그의 문장은 이젠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회한의 눈물 자국에 다름없다.
세상 어떤 것보다 가강 애타게 기다리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돌아올 수 없는 어머니. 이번 시집의 몇몇 노래가 이주빈의 ‘사모곡’으로 읽히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불시로 아련한 심장’도 그중 하나다.
‘(전략)…어쩌자고 나는/불시로 아련한 심장을/달고 태어난 것일까//어쩌자고 너는/까닭 없이 그리운 얼굴이었을까.’
‘불시로 아련해지는 심장’을 아들에게 준 어머니. 이주빈의 시집에서 무시로 출렁이는 바다와 서정으로 흔들리는 섬, 곳곳에서 발견되는 수백 번의 그리움은 모두 ‘어미’로 귀결된다.
바다, 섬, 그리움이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의 세 가지 핵심어라면, ‘어미’로 표현되는 시인의 어머니는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유일한 알짬이다.
50대 중반에서야 첫 시집을 독자들 앞에 내보인 이주빈. 그가 책의 마지막에 심어둔 한 편의 시가 세상의 처음이자 존재의 끝을 감지한 자의 예언처럼 우리 가슴을 술렁이게 만든다. ‘개망초꽃’이다.
‘부디 힘세고/돈 많은 자들은/너희들의 꽃을 찾아 떠나라//나는 개망초/오로지 가난한 자들에게만 보이고/오로지 힘없는 자들에게만 사랑이 되는/흔해서 따순/당신의 밥.’
‘흔하기에’ 어떤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 이주빈의 시는 이주빈을 닮았다. ‘그 사람이 쓰는 문장이 곧 그 사람’이란 선현들의 말을 거듭 되새김질 할 이유도 없다. 이주빈의 시는 곧 이주빈이다.
허위허위 세파를 헤치며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이상향’을 찾아가는 이들에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바다와 섬, 그리움으로 켜켜이 쌓아올린 무너지지 않을 미려한 성채로 다가온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게 분명하다. 고독하고 쓸쓸한 새해 벽두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특별히 권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