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화
모여 있는 이유를/ 한 번쯤 물어야 한다
백 년 전 황토현이 그랬고/ 아우내 장터가 그랬고/ 지구의 모처들이 그랬듯
자작나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있다
모여든다는 것/ 장미 넝쿨이 담장으로/ 폭죽 터지듯 피는 여름이 그렇고/ 다랑논과 밭이 그렇고/ 넓이를 따지지 않는 계절이 그렇다
자작나무 숲을 보면/ 세상의 것들 대부분/ 차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산다/ 서로 같은 처지를 곁에 두고/ 희끗희끗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다
왜 모든 존재자들은 모여 있는 것일까. 시인은 묻는다. 저 자작나무들을 보라. 자발적으로 모여 있지 않는가. 여름 담장의 장미 넝쿨도 그렇다. 논과 밭, ‘아우내 장터’, 계절 자체, “세상의 것들 대부분”이 그렇다. 시인의 대답은 “같은 처지를 곁에 두고” “위로하고/위로받”기 위해서라는 것. 하지만 이 모임은 무기력하지 않다. 장미넝쿨은 “폭죽 터지듯” 붉고, “백 년 전 황토현”에서는 혁명의 힘이 되지 않았던가.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