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역사적 사실을 재료로 문학적 진실에 다가서다

홍성식기자
등록일 2024-12-17 18:27 게재일 2024-12-18 16면
스크랩버튼
‘가라앉는 마음’ 출간한 20대 젊은 작가 홍기훈
‘가라앉는 마음’을 쓴 소설가 홍기훈.
‘가라앉는 마음’을 쓴 소설가 홍기훈.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2000년 8월 12일. 러시아의 잠수함 쿠르스크가 바렌츠해(海)에서 가라앉는다. 108m의 심해였고, 침몰한 잠수함엔 118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이 잠수함이 왜 침몰했는지, 어째서 그곳에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 생겼는지 정확히 밝혀진 것은 지금까지도 거의 없다. 역사 속 수수께끼로 남은 것이다.

바로 이 역사적 사건(사실)을 씨줄과 날줄 삼아 문학적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자 노력한 소설가가 있다. 열정과 에너지에, 적지 않은 시간까지 바쳐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 20대 젊은 작가 홍기훈(27)이다.

러시아에서 침몰한 잠수함 이야기를, 미국 기자의 입장에서, 한국 작가가 쓴 흥미로운 소설 ‘가라앉는 마음’은 포항에 자리한 출판사 도서출판 득수가 펴냈다.

소설과 소설가의 발굴에서부터 작품의 취재와 집필 과정, 그리고, 작가 홍기훈이 ‘가라앉는 마음’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까지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 독자를 대신해 작가와 작품에 관해 기자가 던진 질문과 홍기훈이 들려준 답변을 요약 정리해 옮긴다.

 

러시아 잠수함 ‘쿠르스크’ 침몰사건, 인터뷰 형식의 소설로 탄생

취재부터 집필·퇴고까지 1년 반 가까운 시간 질문 속에서 살아

독자들이 낯선 역사적 사건에 대해 한 번이라도 관심 가졌으면

- 역사적 사건,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사고를 찾아내 장편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듯하다. 쿠르스크호 침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처음에 내 시선을 끈 것은 본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였다. 다들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아도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알아낸 내용을 기반으로 소설을 준비하기까지 했지만, 집필 직전 미국의 HBO에서 그 사건을 다룬 동명의 드라마를 개봉했다. 드라마에서는 체르노빌 사고를 완벽에 가깝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건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쿠르스크 유가족들이 군 장성들에게 화를 내다가, 진정제를 주사 당한 뒤 끌려 나가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대체 어떤 나라가 사고 희생자의 유가족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 진정제를 주사하는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꼭 알아내고 싶었다.

- 쿠르스크호 침몰 사고의 개요를 독자들에게 간략하게 설명 부탁한다.

△2000년의 러시아는 1991년의 소련 붕괴와 1998년의 모라토리엄 여파로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쿠르스크는 소련 시절에 설계되어 러시아 시기에 건조된 핵잠수함으로, 2000년 여름 바렌츠해에서 훈련 도중 침몰해 승무원 전원이 사망했다.

- 소설의 집필은 ‘취재-집필-수정 및 퇴고’가 통상적이다. 완성까지 걸린 시간은.

△취재에는 3개월, 집필에는 5개월이 걸렸다. 수정에 3개월, 퇴고에도 집필과 비슷한 기간이 소모되었으니 다 따지면 1년 반 가까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사건이라는 것은 늘 양파와 같아서, 까도 까도 끝이 없다. 집필 기간에도, 수정 및 퇴고 기간에도 계속 사건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내내 취재를 겸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 ‘가라앉는 마음’은 인터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방식을 택한 이유는 뭔가.

△서방 국가에 살며 서방 언론을 접하는 내가 그 나라 사람들의 내면을 전부 안다는 듯 함부로 표현하며 글을 써내는 게 그리 좋은 선택 같지는 않았다. 내게서 편견을 완전히 걷어낼 자신이 없었기에 그런 부분까지도 작품에 녹여내자 싶었고, 그것이 인터뷰 형식의 소설을 쓰게 된 이유이다.

홍기훈의 소설은 오랜 시간의 퇴고와 교열 과정을 거쳤다. /(주)파동 제공
홍기훈의 소설은 오랜 시간의 퇴고와 교열 과정을 거쳤다. /(주)파동 제공

- 이번 작품의 형식 혹은,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작가가 있다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가라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인터뷰라는 방식 자체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라는 벨라루스 작가의 영향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한데, 실존 인물들을 만나 수집한 인터뷰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써내는 ‘목소리 소설’의 창시자다.

- 자료 수집 과정이 만만찮았을 것 같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가장 큰 문제는 자료 자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일단 소련 붕괴는 국내에서 관심 가지는 연구자가 거의 없는 주제고, 쿠르스크 침몰은 한술 더 뜬다. 국내의 주요 도서관이나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봐도 쿠르스크 침몰에 대해 다룬 논문은 단 한 건인데, 그마저도 침몰 사건 자체가 아닌 영화 ‘쿠르스크’에 대한 내용이다. 해외에서도 자료를 찾는 것 또한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소련 특유의 비밀주의 문화에 더해, 1990년대-2000년대 사이의 러시아는 사회가 완전히 무너져서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거나 기록할 상황이 아니었다. 서방 언론사의 편파적인 시선만을 전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런 이유로 교차 검증 가능한 자료들만 소설 내에 사용했는데, 그 자잘한 내용들을 한 번에 떠올릴 자신이 없어 필사를 하기도 했다.

- ‘가라앉는 마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가.

△이 책은 성경이 아니다. 절대적인 진실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래서 이 사건과 낯선 나라에 대해 한 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

- 지금도 세계에선 전쟁이란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보고 있나.

△정치인들은 스스로가 대단히 합리적이고 동시에 정의롭다고 믿으며, 거기에서 기인하는 각자의 명분이 있다. 그 알량한 명분을 자랑스럽게 손에 쥔 채 전쟁과 같은 끔찍한 일을 계획하고, 동시에 국민을 교묘히 선동한다. 거기서 희생되는 건 잘려 나간 다리를 보며 울부짖는 군인, 혹은 공습으로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된 죄 없는 아이들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소설의 제목은 누가 지은 것인가. 또, 제목에 담긴 함의는.

△가라앉은 것은 단순히 잠수함과 그 승조원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제목은 출판사와 내가 십수 건의 시안을 두고 여러 번 협의한 끝에 골랐는데, 처음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하다가도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은근한 맛이 있어 골랐다.

- 왜 소설을 쓰게 됐고, 당신에게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읽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쓰게 되었다. 우스우리만치 단순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냥 쓰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쓰는 건 재미있지만, 의미가 추가된 것이다. 나는 물리적 시간에 치여 소설을 쓸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 ‘시간’을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쿠르스크 침몰 사건을 다룬 장편 ‘가라앉는 마음’ 표지.
쿠르스크 침몰 사건을 다룬 장편 ‘가라앉는 마음’ 표지.

- 이른바 ‘MZ세대’는 문자보다 짧고 가벼운 영상을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런 견해에는 완전히 동의한다. 소설조차 종이책보다는 웹소설 시장에서 더 많이 읽히는 마당에, 접근성 좋은 가벼운 영상의 인기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유튜브 쇼츠를 위시한 짧은 영상은 단순히 가벼운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양가가 없다는 게 문제다. 소설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낀다. 늘 혼자,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게 소설 아닐까? 하지만, 영상과 소설 어느 하나만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 ‘가라앉는 마음’ 출간 이후 주위의 반응은.

△소설을 출간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기존에 연습을 위해 쓴 소설들은 많았다. 그런 습작을 꾸준히 읽어왔던 지인들에게는 이번 소설로 크게 도약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외부 독자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이 오고 있기는 한데, 막 출간된 소설이라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그러니, 내심 궁금하다.

- 앞으론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소설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여기에는 별다른 창의성이 묻어있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대신 정교함이 있다. 감히 비유하자면 호쾌하게 만들어낸 독특한 형상의 전위적 조각품보다는, 한 땀 한 땀 무늬를 그려 넣은 도자기 그릇에 가까운 듯하다. 낯선 사건,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다루지만 무엇 하나 빼놓지 않으려 애쓰며 소설을 썼고, 앞으로도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기획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