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다 한가운데 버티고 섰다. 맹렬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성난 바다는. 미친 바람이 사정없이 몰려들었다. 바다는 저도 모르게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허기에 사로잡힌 바다였다. 무엇이라도, 통째로, 송두리째 집어삼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았다. 괴물 같은 바다가 몸부림을 칠 때마다 미물 같은 생명들은 안쓰럽게 휘둘렸다.
바다는 눈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바다는 오로지 제 사나운 갈퀴를 들어 무엇이라도 찍어버리려 했다. 산더미 같은 파도 갈퀴들이 버티고 선 그를 덮쳐 버리려 했다. 미친 바다 날카로운 거품, 갈퀴 파도가 그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어디를 어떻게 긁혔는지, 빨간 핏물이 버티고 선 그의 두 뺨을 타고 흘렀다. 그것은 핏물 아닌 눈물, 피눈물이었다.
그때 성난 포말의 군중들이 사방에서 그를 물어뜯으려 몰려들었다. 하이에나 떼라도 된 것 같은 그들은 미친 문자의 바닷속에서 자기야말로 진짜 갈퀴를 가졌노라, 아우성을 쳤다. 하마 누구한테 뒤질세라, 더 맹렬하게 끓어올라야 하리라, 거품들은 거품처럼 거품답게 부풀어 올랐다. 한없이 부풀어올라 곧 금방이라도 허무하게 터져버릴 것 같았다.
미친 바다 한가운데서 그는 고독했다. 고립되어 있었다. 처절한 싸움의 한가운데 있었다. 사방에 덧없는 거품들, 헛소리들, 휘어진, 찢어진, 너덜너덜한 깃발들, 빛을 잃은 구호, 급조된 발작 버튼, 진실의 표면 위를 핥아대는 혓바닥, 시간에 쫓겨 초를 다투며 초조하게 날뛰는 몸부림들, 가짜 용기들, 가짜 소식들, 오염된 주인들, 가짜들, 어리석음들….
이 더러운 끓어오르는 바다 한가운데서 그는 산더미같은 고독에 휩싸여 있었다.
과연 그는 헤쳐나갈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몸부림치는 적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진실을, 정의를,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회복할 수 있을까. 이 현대판 리바이어던, 사나운 미친 포말의 괴물들, 거짓으로 빚은 공포의, 전체주의의, 괴물의 바다에서 그는 살아남아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벗들아, 그대들은 아는가? 그대들이 본 것은 진리가 아니었음을 사막의 신기루, 씻겨버릴 오물, 녹아버릴 3월의 눈, 말라붙은 쥐오줌, 썩어가는 분뇨더미, 악취 나는 노숙자 발바닥 같은 것들을 아는가? 우리가 우리를 속여왔음을 아는가? 스스로 최면을 걸고, 주박에 걸려, 앞뒤 모르고, 좌우도 모르고 날뛰고 있음을 아는가? 하늘 높이 우리의 부끄러움이 효수가 되어 걸려 있는 것을 아는가?
시간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법, 어떤 것도 시간 속에서 녹슬지 않는 것 없고, 병들지 않는 것 없고, 찌들지 않는 것 없고, 정확히 원래 품었던 염원의 정반대 것으로 전화되어 버리는 것을 아는가?
벗들아, 그대들이 눈이 없는 걸 아는가? 냄새도 맡지 못하는 색맹인 것을 아는가? 그대들의 깃발에 갈고리 문양이 그려진 것을 아는가? 그대들이 포말처럼 솟구쳐 올랐다 꺼져버릴 때, 그가! 우리들 상상 속 피투성이 ‘프로 혼’처럼, 그가 최후의 승리를 거머쥘 것을 아는가?
모래 시계 속에서 핏덩이 같은 모래알갱이들이 무심하게, 냉정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대들, 허위의 목소리들, 문자들의 시간이 흩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