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주
한때 생각했다
의식의 한 줌을 빛으로 모아
춥고 덥고 주린 시간을 벗어난다면
생을 건너는 방법이 육신에 걸리지 않고
빛으로 건널 수 있다면
나, 여기 땅에 있다
바람, 눈, 햇빛 적당히 가려주는 집을 갖고
굶주림에 굴복하지 않을 밥을 먹으며
나를 감출 옷을 두르고 세상에 산다
함께 있으나 함께 있지 않은 시간에 들면
길냥이처럼 홀로 있는 시간에 든다
“나를 벗는 시간”이 있다. “길냥이처럼 홀로 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시간. ‘나’로부터 떨어져 나와 ‘나’를 응시하는 시간. 이 시간엔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것이다. 위의 시의 시인이 “육신에 걸리지 않고/빛으로” “생을 건너”고자 했었다는 것을 상기하듯이. 그러나 지금은 “나를 감출 옷을 두르고” “굶주림에 굴복하지 않을 밥을 먹으며” “여기 땅에” 살아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기도 하는 시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