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기
세면대 위에 칫솔이 놓여 있다 그곳은 칫솔의 자리가 아니다 버려진 사물의 자세는 티가 난다 아무 데나 누워 있는 거리를 닮아 있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양치한다 흰 거품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거울 속에서 양치하는 나를 훔쳐보았다 자주 침을 뱉었다
목구멍 깊은 곳을 자꾸 건드려 헛구역질을 했다 구역질이 계속해서 구역질을 뱉어내고 있었다 사물이 죽는 방법은 간결했다
입 속에서
청결한 혀 냄새가 났다
사물이 있어야 할 곳이 있다. 시인에 따르면, 세면대는 칫솔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칫솔은 입속에 있어야 하는 사물이라는 것일까. 시인은 칫솔에 치약을 묻혀 목구멍 깊은 곳을 건드린다. 헛구역질이 나고, 이윽고 구역질을 한다. 무엇인가 쌓인 것을 토하듯이. 이 행위로써 칫솔이란 사물은 ‘간결’하게 죽어가면서 시인의 과거를 씻어준다. 하여 혀는 청결해질 것이며, 이제 시인은 새로운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