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명
이십 리 신작로 먼지 길 걷다 보면
쉰여덟 해 떠난 고향마을 포내리
무릎까지 눈 내리고, 비바람 몰아쳐도
굽은 허리 질끈 묶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마침 지나가던 어머니
굽은 허리 펴며 나무처럼 웅얼거린다
나무도 어머니도 한 시대 굴곡과도 같아
지금까지 잘 지탱해 주었으므로
누군가에게 뜨겁게 손 내민 적 없었다
그래서 마을은 사람과 나무와
이제야 한 통속이 되어
나무는 뿌리로, 사람은 속이 깊은 흙으로
서서히 몸을 눕히는 것이었다
땅 위와 그 아래로 서서히
움직여보는 것이었다
고루한 역사는 나중에 아주 먼 날
그때 남은 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나이 들었는지 “굽은 허리 질끈 묶고” 고향 마을을 언제나 지키고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시인은 그 나무를 “굽은 허리 펴며 나무처럼 웅얼거리는”‘어머니’와 동일화한다. 그들은 ‘굽은 허리’처럼 “한 시대 굴곡”을 같이 살았다. 이제 고루한 역사를 뒤에 두고 “나무는 뿌리로,” 어머니는 “속이 깊은 흙으로/서서히 몸을 눕히”고 있다. 그와 함께 마을은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 서서히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다. <문학평론가>